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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의 경기는 이제 단 두 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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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의 경기는 이제 단 두 번 남았다"

한국 핸드볼의 영원한 히로인 오성옥과 오영란

베이징 올림픽 폐막을 3일 앞두고 '우생순'의 역사가 새로 쓰여질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명승부를 펼쳤던 여자 핸드볼 결승전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핸드볼에 대한 온 국민의 관심을 모았다.

비인기종목이라는 설움을 떠안아야했던 여자 핸드볼팀은 이제 든든한 응원군을 등에 업고 21일 오후 7시(한국시간) 베이징 국가실내체육관에서 열릴 올림픽 4강전에서 유럽의 강호 노르웨이와 결승 진출을 다툰다. 노르웨이는 2006년 유럽선수권대회 우승팀이자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준우승팀으로 만만치 않은 상대다.

남은 핸드볼 경기에 더 눈이 가는 것은 '우생순'의 히로인이자 맏언니인 오성옥(36, 히포방크), 오영란(36, 벽산건설)이 이번 올림픽을 끝으로 대표팀을 은퇴할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 한국 여자 핸드볼의 대들보였고 2004년에는 '우생순'의 감동신화를 만들었다가 2008년 '아직까지' 팀을 이끌고 있는 두 아줌마의 투혼이 이번에도 한국인들에게 환희의 순간을 만들어 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세 번의 은퇴…그리고 돌아온 '아줌마의 힘'

오성옥은 익히 알려진 대로 영화 우생순 중 '미숙'(문소리 분)의 모델이 됐던 선수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1996년 애틀란타 은메달, 2000년 시드니 4위, 2004년 아테네 은메달의 주역으로 한국 여자 핸드볼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력만 보면 그의 삶은 승승장구의 연속이었을 것 같지만, 오성옥은 세 차례나 은퇴했다가 팀의 성화에 못이겨 다시 코트로 돌아온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 지난 9일 열린 한국 여자핸드볼 B조 예선 첫 경기 러시아전에서 오성옥이 수비를 피해 패스를 시도하고 있다. ⓒ연합

1990년 대전 동방여고 3학년 때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래 한국 최고의 핸드볼 선수로 성가를 높이던 그는 애틀랜타 올림픽이 끝나고 한창 나이인 25세 때 결혼과 함께 코트를 떠났다. 하지만 아들을 낳고 살림만 하고 지내기에는 그의 실력이 너무 아까웠다. 외환위기 시절 국내 실업팀이 잇따라 해체되자 오성옥은 일본으로 건너가 선수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오성옥은 '아줌마 투혼'이라 할 명승부를 펼쳤다. 결승전에서 한국은 심판의 극심한 편파 판정에도 불구하고 덴마크와 2차 연장전에 이은 승부던지기 끝에 은메달을 차지했다. 외면받는 '한데볼'이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승리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던 선수들의 모습은 온 국민에게 뜨거운 감동을 주었다.

오성옥은 1m71cm, 64kg의 평범한 체격이지만 날카로운 돌파와 스카이 슛, 예리한 패스로 대표팀의 주축 역할을 해왔다. 그는 센터백으로 나서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템포를 늦추며 경기 전체를 조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 러시아전 1골, 독일전 5골, 스웨덴전 3골을 기록하며 많은 골을 넣은 것은 아니지만 기습적으로 골을 터뜨리며 후배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고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이 5회 연속 올림픽 출전인 오성옥은 "솔직히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지구력과 회복 속도가 떨어지는 것을 절감한다"며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크로스컨트리에서는 후배에게 밀릴지 몰라도 코트 안에서 뛸 때만큼은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골 넣는 골키퍼' 오영란

골키퍼 오영란은 올림픽 대표팀의 주장이다. 그 역시 2000년 시드니,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국가대표로 출전하며 감동신화를 만들어낸 주역이다.

오영란은 불혹을 앞둔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번 올림픽에서도 '선방'을 하고 있다. 지난 중국과의 8강전에서 신들린 듯한 선방으로 19개의 슈팅을 막아냈고, 13일 스웨덴전에서는 후반 막판에 골을 넣으며 핸드볼계의 ´골 넣는 골키퍼´로 떠올랐다.

오영란은 노르웨이와의 4강전을 앞두고 "노르웨이에게 작년 세계대회에서 크게 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반드시 설욕하겠다. 결승에서 만날 것으로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만나게 됐다"며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며 굳센 각오를 보였다.

그는 남자 핸드볼 대표팀의 골키퍼인 강일구 선수(32, 인천도시개발공사)와 함께 부부 골키퍼로도 유명하다. 이번 올림픽에도 나란히 출전히 2개의 메달을 노렸으나 아쉽게도 남자 핸드볼은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오성옥과 오영란, 72년생 동갑내기 스타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경기는 이제 딱 두번 남았다. 만의 하나 노르웨이전에서 지더라도 3-4위전이 치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핸드볼 팬들은 그들의 마지막 경기가 결승전이기를, 그리고 그들이 목에 건 메달의 색깔이 금빛이기를 바라고 있다.
▲ 지난 9일 열린 한국 여자핸드볼 B조 예선 첫 경기 러시아전에서 투혼을 발휘하며 선방하고 있는 오영란 ⓒ연합

핸드볼, 아직은 '한데볼'

'한데볼'은 핸드볼인들이 추운 바깥의 종목이라며 자조해 부르는 이름이다. 비인기종목의 서러움을 표현한 말이다.

우생순 신화로 국민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순식간에 모든 사정이 좋아질 순 없었다. 수시로 실업팀이 해체, 창단하며 대학선수들은 실업팀에 입단하지 못해 선수생활을 그만두는 경우가 속출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올림픽이 끝나면 '한데볼'이 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일고 있다. 국내 리그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남자팀이 5개, 여자팀이 9개 있지만 지자체팀 등이 대부분이며 스타 선수도 배출하지 못했다. 독일 등 유럽에서 핸드볼이 축구, 테니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빅3' 스포츠 반열에 드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선수들의 사정은 더 열악하다. 팀에 관계없이 고졸 선수 초봉이 1800만원, 대졸 초봉이 2300만원 수준이다. 10년을 뛰어도 3000만원을 넘지 못한다. 스타급 선수들도 인센티브가 거의 없다. 연차에 따라 오르는 승급분만 바라보고 있다. 해마다 1억원 이상의 연봉을 제시하는 유럽팀들의 스카우트 제의가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선수들은 마음 놓고 팀을 떠날 수도 없다. 주축 선수가 떠나면 팀이 해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계속해서 핸드볼이 발전할 수 있는 것은 리그가 활성화돼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핸드볼인들은 한국에서 무엇보다 대기업의 실업팀 창단과 리그 창설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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