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약간의 전사(前史)
광복절인가, 건국절인가로 이번 8.15는 말이 많았다. 그냥 외부에서 지켜본 내 입장에서는 '친일절'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친일파들이 이제는 당당하게 말하고, 자기 땅도 돌려받자는, 그런 선언을 한 2008년 8.15는 '친일절' 정도가 아닐까 한다.
어쨌든 일찌감치 8.15를 기점으로 촛불은 완전히 끄고, '명박 행정'의 드라이브를 거는 기점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이날 이명박 대통령의 기념사 중에 '녹색성장'이라는 개념이 끼어있었다. 주위 사람들에게서 이 사실이 매우 혼돈스럽고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들었다. 도대체 반 생태적인 건설주의의 대표격인 이명박 정부에서 나온 이 얘기는 무엇인가라는 것이 질문의 요지이다. 이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전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시민단체와 민주당 혹은 진보계열 정당에 에너지와 환경에 대한 이해가 높을 것 같지만, 전문가의 숫자와 질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에너지 정책이 괜찮았던 정당은 오히려 한나라당이었다. 대선을 기준으로 본다면, 노무현 대통령과 맞붙었던 2002년 이회창 후보의 대선 공약이, 최소한 내가 이해하는 한에서는 요즘 한참 유행하는 재생가능에너지에서 가장 급진적인 공약이었다.
여기에는 정부 주도의 행정구도상 시민단체나 진보정당이 그만한 지식과 능력을 갖춘 전문가를 확보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일반적 조건과 함께, 한 때 세풍으로 물의를 빚었던 이회창의 동생 이회성 원장이 국제 에너지경제학회의 회장을 맡을 정도로 최소한 에너지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전문가였다는 우연한 조건이 같이 개입한다. 좌우 논쟁과는 상관없이, 이런 이유로 이명박 대통령이 최소한 시민단체나 진보정당보다는 훨씬 급진적인 에너지 전문가들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이건 객관적인 현실이다.
2. 녹색성장, 혹은 탈탄(脫炭) 경제
이명박 대통령이 제시한 '녹색성장'이라는 개념은 수사학적으로 몇 가지 문제를 짚을 수 있지만, 어쨌든 '성장'에 대한 말장난을 피하고 핵심만 짚자면, '탄소를 줄이는 국민경제' 보통은 '탈탄 경제(de-carbonized economy)'라고 하는 그걸 하자는 말이다. 최근에는 에너지와 이산화탄소만이 아니라 생태계 혹은 '국토 생태' 같은 광의의 정의를 사용하는 것이 유행인 점을 감안하면 약간 유행이 지난 개념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말인즉슨 화석연료를 - 석탄과 석유 혹은 천연가스 -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고도 성장률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그런 국민경제를 만들겠다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내가 이해하고 있는 바에 의하면 실제 실무자들이 제시한 원 개념도 그런 의미이다.
여기에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서 새로 만들어질 기술들, 예를 들면 풍력, 태양광이나 혹은 각종 에너지 절약기술들을 해외에 수출도 하여 일종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그런 의미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원칙적으로는 조금 더 포괄적으로 지역 경제, 생태 농업, 고용 문제 등을 결합시키는 것이 최근 유행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얘기를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선적으로 짚어보아야 할 것이 세 가지 정도는 있다.
3. 추진체계의 문제
탄소세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인가, 배출권 거래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기술개발 및 국제적 협력을 어떻게 인센티브와 연결시킬 것인가와 같은 소소한 기술적 문제는 일단 다음 단계의 논의로 하더라도, 가장 우선적인 것은 그 추진체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국내외의 논의를 정리하면, 기획재정부를 '지속경제부'로 격상시켜 추진하는 북유럽식 방안, 환경부와 국토부를 아예 통합시켜 부총리급 장관을 만들고 여기에서 추진하는 프랑스식 방안, 환경+농업+식품부를 통합시키는 영국식 방안 및 기타 다양한 추진체계에 관한 문제가 있다. 일단 이 추진체계에 대한 언급과 절차가 없는 한, 이명박의 '녹색경제'는 아직은 레토릭 차원, 즉 '해보는 말'에 가깝다. 현재 한국에서는 총리가 각 부처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되어있는데, 이걸로는 아무 것도 못한다.
4. 두 가지 부작용에 관한 문제
이명박의 '녹색성장'의 첫 번째 종류의 부작용은 좀 심각할 수 있다. 탈탄경제의 세 가지 요소는, 1) 수요 관리, 2) 산업구조조정, 3) 에너지 믹스라는 세 가지로 구성되는데, 이 중 1번과 2번은 말만 거창하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3번 방식을 현실적으로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 믹스'가 말은 거창하지만, 결국 원자력 산업 중심으로 가자는 말인데, 지금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새로 정리하는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이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어서 여러 곳에서 우려를 하고 있다. 노후된 원자력 발전소는 그 설비 자체가 통으로 방사능폐기물이라서 일단 한 개라도 철거되면서 원자력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바뀌는데, 지금 한국이 딱 그 전환점에 있다. 이 상황에서 미래 에너지를 대거 원자력 발전으로 끌고 가자는 게 이명박 정부의 에너지의 기본 방침인 상황에서, 별도의 장치 없이 지금처럼 '녹색성장'이 추진되면 사실상 '강력한 원자력 정책' 이상이 아닐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것은 위험하고, 장기적으로도 오히려 국가적 위험을 늘이는 일이다. 말은 거창했지만, 결국 원자력 열심히 짓자는 얘기 이상으로 이명박의 '녹색성장' 얘기가 들리지 않는 것은, 안전장치나 기타정책에 대한 진지한 언급이 없어서 그렇다.
또 다른 하나의 부작용은, 말은 '녹색성장'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해외자원에 대한 의존도를 보장하기 위한 좀 위험한 '자원외교'에 대한 강조만이 발생하게 되는 경우이다. 실제로 총리가 한동안 자기는 자원외교만 하겠다고 입장을 여러 번 표명했고, 대통령도 입만 열면 자원외교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다. "녹색성장을 하려고 했지만, 여러 가지 기술적 이유로 잘 안되어서, 결국 자원외교로 뚫고나가는 방안 밖에는 없었다"가 내년도 8.15 기념사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5. 종합적으로는...
탈탄경제의 실질적 추진 의지는 추진체계 혹은 '감축목표'의 설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두 가지가 빠진 '녹색성장'은 철학적 기반과는 상관없이 행정적으로도 별 의미는 없는 단어이다. 게다가 현재의 몇 가지 정책기조로 보았을 때, 결국은 공격적으로 자기 임기 내에 몇 개의 원자력 발전소 준공은 하겠다는 말로만 들린다. 아닌가? 아니라면, 최소한 원자력에 대한 입장 표명은 해주시기 바란다. 별도의 입장 표명이 없으면, 8.15 이명박 대통령의 '녹색성장' 개념은 현실적으로는 '공격적 원자력 건설 선언'에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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