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대부분의 공기업에 대해 정부가 '경영효율화' 명목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어, 사실상 모든 공기업에서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은 마음대로 해고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노무현 정부 시절 "공공부문에서부터 비정규직 해결의 모범을 보이겠다"며 야심차게 내 놓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이명박 정부에서 사실상 물거품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또 정부가 나서 비정규직을 정규직 구조조정의 총알받이로 사용하는 잘못된 관행을 독려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구조조정 앞둬도 예외, 구조조정 계획 확정 안 되도 사유서 제출하면 OK
올해 '공공기관 기간제 근로자의 무기계약 전환계획'을 입수해 보도한 <매일노동뉴스>에 따르면, 정부는 2년 이상 상시직의 정규직 전환 예외조항에 "조직개편, 업무량 감소 등 구조조정이 예정돼 인력조정이 불가피한 경우"를 새로 포함시켰다.
또 구조조정이 예고된 공기업은 무기계약 전환계획서 작성 및 제출 의무에서도 제외됐다. 이 정부 지침은 '공공기관 비정규직 대책추진위원회'가 최근 회의를 통해 확정한 것으로 "최근 공공기관의 구조개혁이 진행·예정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구조개혁 때 예외와 기관의 자율성을 인정한다"는 큰 틀의 방향 속에 이 같은 세부 계획이 제시된 것이다.
뿐만 아니다. 구조조정 계획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공기업의 경우에도 "구조조정 미확정으로 전환계획서를 제출이 곤란한 경우는 사유서를 제출하면 된다"고 했다.
사실상 거의 모든 공기업이 비정규직을 상시 업무에도 무기한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바꾼 것이다.
2년차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규모 대폭 감소할 듯
이 같은 정부 지침은 지난 2006년 나온 '공공부문 비정규직종합 대책'에 따라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추진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 지침이다. 지난해 9월 정부는 이 대책에 따라 처음으로 2년 이상 기간제 7만1861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6월 30일 현재 6만8568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1차 무기계약직 전환 당시 근속기간이 2년 미만이어서 대상자에서 제외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정부는 "2008년 6월 2차 대책을 통해 추가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이날 드러난 전환계획은 올해 6월 30일을 기준으로 '상시·지속적인 업무'에 종사하고 근속기간이 2년 이상인 기간제 노동자를 꼽았다. 기관이 통폐합되거나 기능폐지, 출연기관화, 지방자치단체 이양, 내부 조직개편 등으로 기간제 노동자가 소속이 바뀐 경우에도 이전 근속기간까지 합산하기로 했다.
2차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위해 각 기관은 9월 30일까지 계획서를 작성해 중앙행정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중앙행정기관과 지자체 및 시도교육청이 10월 15일까지 이를 검토해 기획재정부 등에 제출하면 부처 간 협의를 거친 뒤 추진위원회가 11월 중 최종 대상자를 심의·의결하게 된다.
하지만 추진위원회가 확정한 세부계획의 예외조항으로 사실상 대상자의 폭은 대폭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이 이미 공공부문에서 상당수 비정규직 업무가 외주화 등으로 이 같은 정부 지침에서 원천적으로 제외된 상태다.
민주노총 "사회적 약자만 희생시키려는 이명박의 본질 드러나"
노동계의 강한 반발도 예상된다.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정규직 구조조정'이라는 예외 조항을 두는 것은 현행 비정규직 관련법의 법 취지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은 이와 관련 "철저하게 사회적 약자를 희생시키는 이명박 정부의 친재벌 정책의 본질이 다시 한 번 드러난 것 뿐 아니라 법과 원칙에 대한 이중잣대를 재확인시켜줬다"고 비판했다.
우문숙 대변인은 또 "비정규직 고용 불안을 개선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인 2년 이상 정규직 전환 조항 조차 무력화시킨다면 비정규직법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라며 "나아가 법의 권위를 지키고 현실에서 잘 지켜지도록 모범을 보여야 하는 정부가 이런 식의 편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부가 내세우는 공기업 '선진화'를 위해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이 위협받고 있는 가운데 "노동권 보호에서조차 배제된 비정규직을 최대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한다"고 우 대변인은 비난했다. "정규직의 저항을 피해가기 위한 정부의 꼼수"라는 비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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