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올림픽 해설위원님들, 우리도 흥분 좀 합시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올림픽 해설위원님들, 우리도 흥분 좀 합시다"

[정희준의 어퍼컷] 해설 안 하는 해설자와 시청 '당하는' 시청자들

사실 방학 중에 기고를 쉬려 했다. 계약해 놓은 책도 있고 또 좀 쉬기도 해야 하고 해서 두달만 세상 잊고 보내려 했다. 그러나 인간은 역시 사회적 동물이라 했던가. '베이징 광풍'에 조금씩 빨려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그래서 틈틈이 올림픽경기 중계를 보게 된다. 그런데… 보다보다 못해, 아니 듣다듣다 못해 결국 참지 못하고 자판을 두드리게 된다.

도대체 경기를 보며, 그러니까 우리 선수들의 선전을 지켜보며 흥분하고 감격할 틈이 없다. 왜? 좀 감격할라 치면 해설자들이 다 빼앗아가 버린다. 나도 좀 흥분해보려 '흥분모드'를 준비하는 어느새 해설자들의 '광분'을 지켜봐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린다. 솔직히 경기장에 칼 든 강도라도 든 줄 알았다.

어제 오늘 이게 좀 문제가 되나본데 네티즌들 의견을 보니 '그거 뭐 좀 어떠냐', '그럼 그 와중에 책 읽고 있을까' 그런 반응들도 꽤 있다. 물론 이럴 땐 온 국민이 흥분해도 되겠지만 방송해설을 맡은 이들만은 그래선 안 된다. 왜? 그들의 임무는 해설이니까. 흥분은 시청자가 하면 되는 것이다. 괜히 '언론'이라 하는가.

해설자들, '절망'이다

4년 전 아테네 올림픽 당시의 이야기를 좀 해보자. 올림픽 중계 때 경기인 출신과 심권호, 방수현, 심권호 등 메달리스트들을 집중적으로 해설위원자리에 앉힌 게 그때부터다. 그러나 대부분 해설자라 이름 붙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술자리에서 TV보며 친구들에게 설명하는 듯했다.

"침착해야 한다," "안타깝다," "힘내야죠," "2분만 견디면 된다"는 식으로 전문성과는 동떨어진 해설이야 그렇다 치고 어떤 이는 "뒤집어, 뒤집어," "때려, 때려" 하며 아예 무아지경에 빠져 말까지 놓는다. 또 전 탁구대표팀 감독은 유승민 선수의 경기 때면 반말을 써가며 진행했고 자신이 몸 담은 소속팀의 모기업 선전까지 했다.

또 어떤 해설자는 결승에 나선 타국 선수를 '그 자식'이라 부르며 '해설'이 아닌 '응원'으로만 일관했다. 하도 정제되지 않은 표현을 쏟아내니까 캐스터가 슬그머니 이해해달라고 시청자들에게 부탁할 정도였다. 수준 낮은 해설, 애국주의에 애사주의까지 그리고 해설이 아닌 응원에 막말에 '말까기'까지, 하여간 해설의 아수라장이었다.

방송사 소속의 전문 아나운서들로 채워진 캐스터도 별 다를 바가 없었다. <SBS>의 송재익 캐스터는 그것도 비유라고 말리 선수들이 잘 뛰는 모습을 아프리카 동물의 세계에 비유하며 "발톱을 숨긴 맹수 같다," "소리 없이 다가오는 치타 같다"고 표현했다. 우리나라가 그때 다인종사회였으면 당장 사표 쓸 인종차별적 표현이다. 훈련된 캐스터들조차 해설 공부는 안 하고 애국심에만 호소하는 유치한 해설은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였다.

라디오중계 하나? 공부 좀 해라
▲ 큰 경기를 앞두고 캐스터와 해설자는 '공부'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해설자들이 하는 '짓'은 '막해설'에 가깝다. ⓒ<SBS> 화면캡쳐

이번에도 전 대표팀 감독들과 메달리스트를 총동원해 나섰다. 그러나 4년전 보다 나아진 것은 단 한 개도 없다.

우선 사전에 공부를 안 하고 해설에 나선다. 큰 경기를 앞두고 캐스터와 해설자는 '공부' 해야 한다. 그 종목의 특성이나 참가 선수들의 경기 전략 같은 경기 관련 이야기 뿐 아니라 지난 대회의 결과와 그 뒷이야기들, 이번 출전 선수들의 특성과 배경, 그들의 사적인 사연들, 올림픽에서는 없을 수 없는 라이벌 관계 등을 사전에 공부하고 입을 맞춰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해설자들이 하는 '짓'은 '막해설'이다.

이런 해설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 경기가 후반부로 들어가면 예의 '정신력 강조' 해설로 돌입(?)하는 거다. '정신력이 중요하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집중력을 잃으면 안 된다'식의 해설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 해설자는 밑바닥 다 드러난 거라 보면 된다.

경기시간을 채울만큼의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고는 막판에는 "박태환 선수, 예, 앞서 나갑니다, 예, 아, 박태환 선수, 이제 50m 남았습니다, 이제 30m, 15m, 10m, 아, 아, 악~ 악~" 이런다. 그런 건 큼직한 화면 보고 있는 무지몽매한 우리 시청자도 잘 안다. 라디오중계 하냐.

해설위원들 고르는 걸 보면 딱 우리사회의 특징인 '껍데기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내용은 따져보지도 않고 간판만 보고 고르는 것이다. 학계에만 '신정아'가 있는 게 아니다. 방송사엔 널렸다.

스타 선수가 곧 스타 감독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 둘간의 상관관계는 '제로'다. 우리나라는 무명 선수 출신에겐 아예 기회조차 주지 않는 못된 버릇이 만연해 웬만한 감독자리는 스타선수나 메달리스트들이 차지하고 앉았지만 외국의 경우 (히딩크처럼) 선수 때의 이름값과 감독으로서의 능력 간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당연히 스타 선수 또는 국가대표 감독과 좋은 해설자 간의 상관관계는 더더욱 없다. 어떻게 방송 경험이라곤 10초짜리 인터뷰 경력 밖에 없는 선수들을 그 막중한 올림픽방송 해설위원 자리에 앉히나.

스타해설자? 훈련부터 시켜라

외국에서도 선수 출신을 해설자에 쓴다. 그러나 훈련시켜서 검증된 사람만 쓴다. 스타 선수라도 마찬가지다. 데려다 쓸만한 선수 출신이 있으면 필드요원부터 시킨다. 경기장에서 선수, 감독, 선수의 가족들과의 인터뷰부터 시켜서 키우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가 없으면 방송부스나 스튜디오에 앉힌다. 우리처럼 "떨지 말고 편하게 하시면 되요" 이 한마디로 해설자 자리에 앉히는 경우 없다. 혹 내가 모르는 후진국이면 몰라도.

네티즌 의견을 보니 해설자들이 흥분하는 것은 히스패닉 쪽 방송이 더 하지 않냐는 의견도 있다. 그럴 것도 같지만 사실은 아니다. 아마도 축구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스페인어를 쓰는 나라의 해설자들은 흥분은 하지만 어디까지나 '절제된 흥분'을 하고 무엇보다 흥분된 와중에도 '해설'에 집중한다.

히스패닉 축구해설자들은 골이 들어가면 예의 그 소름 돋는 "GO~~~~~~~~~~~~AL"을 질러댄다. 보통 한 20초 하는 것 같은데 폐활량이 작아 숨이 짧은 사람은 10초짜리로 두 번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흥분된 외침을 마무리하면 곧 '해설'로 들어간다. 우리나라처럼 이성을 잃고 캐스터가 '악, 악' 대고 '꺼이꺼이' 해대는 중계해설자는 지구상에 유일무이할 것이다.

양궁 중계하면서도 소리 질러대는 한심한 해설

또 하나. 스포츠도 이제는 오락화 돼 스포테인먼트 개념까지 등장했지만 그래도 언론 매체라면 경기장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더 치중해야 한다. 뉴스가 중시하는 '사실 보도'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경기장 분위기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아예 분위기를 만들어 버리는 게 우리 방송사의 특징이다.

한 예로 우승이 확정된 직후, 금메달을 획득한 순간, 팽팽한 경기의 막바지에 역전 홈런이 터진 순간 미국에서는 해설자들이 입을 닫아 버린다. 경기장의 함성 속에 환호하는 선수들의 모습만을 보여준다. 거기에 해설자는 없다. 시청자로 하여금 경기장의 감격을 그대로, 가감없이 전달하는 것이다. 그렇게 20~30초가 지나면 해설자가 차분하게 나선다.

10년도 더 된 듯 하다. 미국 프로야구 미네소타 트윈스와 아틀란타 브레이브즈가 월드시리즈에서 붙었다. 미네소타에서 두 팀이 6차전을 치렀는데 아틀란타가 시리즈 전적 3대 2로 앞서는 상황이라서 아틀란타가 이기면 우승이 확정되는 경기였다. 9회가 끝났지만 무승부. 연장전에 들어갔다. 10회말 미네소타의 4번타자 커비 퍼켓이 끝내기 홈런을 때렸다. 공이 외야펜스를 넘어가는 순간 캐스터는 딱 한 문장만 얘기한다. 괴성이 아니고 상큼하게 말이다. "내일 밤 또 만납시다(See you tommorrow night!) 이후 1분여 해설자들은 화장실을 갔는지 아무 말이 없고 다이아몬드를 도는 커비 퍼켓과 이를 환영하는 동료선수들, 그리고 열광하는 관중들의 모습을 경기장의 함성과 함께 전달한다. 지금은 구하기도 힘든 14인치 조그만 TV였지만 그때만큼 승리의 순간에 몰입해 본 적이 없다.

하나 더. 해설은 경기 종목에 따라 분위기를 달리 해야 한다. 축구나 복싱 같은 열광적 해설도 있지만 테니스, 골프, 양궁 같은 조용한 해설도 있다. 이런 조용한 경기 경우엔 해설자들도 속삭이듯 말을 주고 받는다. 그래서 듣는(?) 시청자도 귀를 쫑긋 세우고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당연히 경기에 더 몰입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해설은 종목에 상관 없는 '광분 해설'이다. 그러니 양궁 같은 종목의 방송해설조차 악을 써가며 목청 터지게 중계하는 것이다. 판소리 연습하냐.

재미? 차라리 개그맨 앉혀라

이번 올림픽에서도 국민이 흥분하는 게 아니라 해설자가 흥분한다. 스포츠가 메달지상주의에 빠진 게 아니라 방송사가 빠졌다. 정보의 제공과 경기내용의 전달과 해설, 뭐 이런 게 해설자들이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앞장 서서 흥분하고 광분 분위기로 이끄는 것은 나이트클럽 디제이들이 하는 것이다. 재미있게 하려고? 그러려면 왜, 개그맨 데려다 앉히지. 공부도 하지 않고 메달리스트들만 데려다 앉히면 해설이 되는 줄 아는 우리 방송사들의 한심한 수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올림픽을 놓고 세 방송사들이 하는 '꼴'을 보면 어이가 없다. 해설자들은 시청자들은 아랑곳 없이 말 '까'고, 캐스터는 악악 소리 질러대고, 서로 선수 잘 안다고 자랑하며 이름 막 부른다. 연예인들끼리 신변잡담하며 누구랑 친하다고 자랑하는 꼴 보는 듯 하다. 아무리 스포츠가 오락화 됐어도 어떻게 공공재인 방송사들마저 스포츠를 무슨 연예오락프로그램 만들듯 하나.

분업사회가 된 지 한참 됐는데 우리도 이제 분업 하자. 제발 우리도 좀 끼자. 해설자들은 해설만 해라. 우리가 열광하고 흥분할게. 정 못 참겠으면 소리는 한 번만 질러라. 그리고 TV중계면 TV중계 답게 해라. 라디오중계 하지 말고. 또 해설위원님들은 좀 제대로 된 분들을 모셔다 앉혀라. 4년마다 신장개업하는 '올림픽 가게,' 이젠 도우미도 쓰나. 내용은 생각도 안 하고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도우미만 가져다 쓰면 다인가.

방송사는 '박태환 장사' 그만해라

그리고 한 마디 더하겠는데 이제 됐으니까 '박태환 장사' 좀 그만 하기 바란다. 박태환 덕에 올림픽 완전히 떴고(?) 광고도 더 들어올테니까 기분 좋을 게다. 목표한 대로 본전 건질 테니 이제 그만 하기 바란다. 박태환만 베이징 갔나. 다른 선수들은 눈에도 안 보이나.

최민호가 그랬다. 4년전 동메달 따고 기분이 좋았는데 금메달과 동메달 차이가 그렇게 큰 줄 몰랐다고. 동메달 따서 신났는데 거기에 찬물 끼얹은 게 도대체 누굴까. 물론 첫 번째는 체육계겠지만 체육계 못지 않은 주역은 바로 언론이다. 최선을 다해 올림픽에서 세계3위를 이룩한 젊은 선수의 기분을 더럽게 만든 게 바로 호들갑스럽게 금메달만 쫓아다니는 언론이란 말이다. 언론이 바로 우리나라 체육 망가뜨리는 1등 공신이다.

어느 네티즌이 이렇게 썼다. "시청 당하는 기분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