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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의 화려한 부활, 독인가 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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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의 화려한 부활, 독인가 약인가

[대중음악의 오늘을 보는 시선 ①]

대중음악은 대중과 가장 가까운 문화임에도 피상적으로 다뤄져 왔다. 특히 위기에 처했던 한국의 대중음악은 최근 산업적으로, 내용적으로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비평은 대중음악의 활력을 더욱 높이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프레시안>은 음악비평웹진 <보다>와 함께 대중음악의 현실을 짚어보는 기획을 12회에 걸쳐 연재한다. 김민규, 김봉현, 서정민갑 등 젊은 음악평론가들이 참여하는 이번 기획에서는 아이돌, 리메이크, 인디음악, 음악페스티벌 등 대중음악계의 주요 키워드를 차례로 짚어본다.

현재 <프레시안>에 고정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보다>의 일원인 나도원 대중음악평론가는 "대중음악의 음악적·환경적 지형을 살펴보는 이번 기획을 통해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고 대중음악 전반을 밀도 높게 그려내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번 기획은 매주 2편씩 <프레시안>과 <보다>(
http://www.bo-da.net )에 동시에 연재된다. <편집자>

누구나 한번쯤, 혹은 지금도 TV 속 전화벨 소리에 집안을 두리번거리곤 한다. 이 사소한 해프닝처럼 미디어가 창조하는 비현실은 항상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음악산업과 미디어가 고안해낸 가장 오래된 아이템이자 상품인 아이돌은 "비디오가 음악을 죽인다"는 푸념을 뒤로하고 열린 영상시대에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상업주의와 대중음악을 적대적인 관계로만 규정하는 것도 곤란하다. 아이돌을 통하여 트렌드와 시장작동방식을 이해할 수 있고,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대중음악 이면의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기획사시스템이 연예산업을 장악한 1990년대 중반 무렵부터 아이돌이 가요계와 방송을 과점해왔다. 그런데 특정 소비자군 만을 대상으로 단기수익에 집중하다보니 2000년대에 들어 아이돌과 팬덤은 '그들만의 세상'에 갇히고 말았다. 그 중 여럿의 이름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아주 오래된 이야기의 주인공들처럼 희미해졌다. 빠르게 소비되고 빠르게 잊혀진 것이다.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가 너무나 명확해진 가요계는 서먹한 풍경으로 변했다. 이러한 가요계의 '국소마취'는 뒤따라 찾아온 음반산업의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음악을 완벽히 도구화함으로써 전술만 남고 철학은 사라진 것이 1990년대 후반부터 급속히 진행된 시장논리의 강화와 관련이 없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 2007년, 고사 직전까지 갔던 아이돌 시스템이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로 대변되는 돌파구를 찾아냈다. 이 어린 친구들을 모르는 이가 없게 되었고, 'Tell Me'를 따라하는 아이들의 재롱은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의 고정 프로그램이 되었다. ⓒJYP엔터테인먼트

그런데 2007년, 고사 직전까지 갔던 아이돌 시스템이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로 대변되는 돌파구를 찾아냈다. 이 어린 친구들을 모르는 이가 없게 되었고, 'Tell Me'를 따라하는 아이들의 재롱은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의 고정 프로그램이 되었다. 2008년에는 쥬얼리의 'ET춤'이 그러했다. 나름대로의 음악적 색깔을 지닌 빅뱅과 가창력이 뛰어난 브라운아이드걸스 등도 성장했다. 분위기가 반전되고 수익시스템도 어느 정도 조정되자 왕년의 아이돌 스타들까지 속속 복귀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보기 힘들었던 모습이다.

한편에선 '드림콘서트'에서의 집단행동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실 이 행사는 전부터 배타적인 팬덤 문화를 극명하게 노출해왔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가수가 나올 때에만 풍선을 흔들며 환호하고, 나머지는 침묵하는 그로테스크한 진풍경을 수년전에도 목격한 바 있다. 그래서 오히려 이번 일이 도마에 오르는 것을 보며 그동안 많이 나아졌던 모양인가 했을 정도이다. 또 모 대학교가 축제의 흥행을 위해 원더걸스를 불렀다가 자칫 불상사를 낼 뻔한 일은 대학문화와 대학축제의 현재를 여실히 보여줬다. 그런데 이처럼 부정적인 사건들마저도 이른바 아이돌 전성시대의 재래를 보여주는 이슈가 되었다. 이쯤 되면 대중음악계가 되찾은 활기와 누적된 질적 향상이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고 해야겠지만 그리 간단치가 않다.

한국음악산업협회에 따르면 2008년 상반기 음반판매 1위의 주인공은 아이돌 가수들 중 하나가 아니라 김동률이다.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원더걸스는 2007년에 5만장도 넘기지 못하면서 15위에 머물렀다. 오히려 유희열의 음반이 상당한 판매량을 기록했고, 자신의 앨범을 통제하는 이 프로듀서형 가수의 단독 콘서트는 성황을 이루었다. 노래의 히트가 히트수로 판가름 나고 음반이 힘을 잃은 상황과 새로운 매체에 민감한 청소년층의 향유방식 변화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흥행이 관객 수로 판가름 나듯이 음반판매량은 여전히 실증적인 지표이다. 음악수용자의 계층화 현상, 그리고 막강한 지원에도 불구하여 성과는 충분치 못한 아이돌의 몇 가지 한계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이 보다 공정하다.

'바보 캐릭터' 대신 '비호감 캐릭터'가 뜨고, 스타들의 짝짓기 프로그램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정도로 소비방식이 변화한 데에는 경험이 쌓이면서 어떤 단계를 지나왔기 때문이다. 최근 보여준 여학생들의 참여성과 팬덤문화 역시 그러하다. 아이돌 팬클럽은 이미 인터넷 동호회와 카페를 통하여 집단소통과 군중동원의 선례를 남겨왔다. 또한 아이돌이 어린 세대만의 향유물이라는 전제 역시 편견이 되었다. 마이클 잭슨, 마돈나, 카일리 미노그도 아이돌이었고, 서태지 역시 아이돌이다. 오래전, 만화는 아이들만 보는 것이라던 시절처럼 다소 촌스러운 인식이라고나 할까.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 전제에 대한 공감이 없기 때문에 아이돌에 대한 비판 역시 오해를 받아왔다. 다양성과 창작의 최소 기반을 위해선 일방적인 과점이 아니라 공존이 중요하다는 것이 하나, 아이돌 시스템이 안이함에 갇혀 스스로 자기기반을 허무는 것에 대한 비판이 둘이다. 그런데 중요한 논점들을 선점 당하자 이러한 지적을 계몽적이며 교조적인 태도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향유물과 자신의 격을 동일시하는 성향은 어떤 대상이 비판받을 때 자신의 격까지 의심받는다고 생각하여 공격성을 보이게 된다. 그러나 듣지 않고 폄하하는 것만큼이나 무턱대고 두둔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이 와중에 아이돌을 옹호하기 위해 등장한 논리가 뮤지션과 아이돌의 분리이다. 태생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기획사시스템에 의한 수동형 아이돌만이 부각되었다고 해서 '아이돌≒뮤지션'이지 '아이돌≠뮤지션'은 아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아이돌 가수들 중에는 자신의 곡을 스스로 작곡하는 일이 흔했다. 박남정, 현진영, 김원준 모두 아이돌 댄스가수였지만, 동시에 작곡하는 음악인들이었다. 물론 아이돌을 대상으로 음악성만 운운한다면 그야말로 코미디가 되지만, 앞서 언급한 결과론적인 규정으로 선배들이 그 시절로 돌아가 작곡을 하지 말아야 될 것 같은 상황까지 강요하는 것도 적절치는 않다. 자기는 편견이 아니라면서 남은 편견일 것이라는 생각은 결국 자신의 편견을 인정하는 격이다.

문제는 관행적인 제작과정에 있다. 무수한 후보 곡들을 '수집'하여 그 중 몇 곡을 골랐다는 자랑이 일반화되면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백화점이 아니라 잡화점식 음반들 속에서 노래들은 어쩌다 자기가 여기에 누워있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투로 투덜댄다. 일관성을 결여한 음반과 추억 속의 동시상영은 다르다. 상품임을 강조하면서 정작 품질을 외면하면 불량품이 되고, 다른 의도가 강할수록 음악적 성격은 불분명해지기 마련이다. 다른 하나는 곡비를 주고받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곡(노동)을 제공했으나 간택 받지 못한 작곡자들의 생계문제이다. 반면, 예전처럼 권력자의 은밀한 '행사'에 가야할 일은 없어졌거나 혹은 줄었지만, 아이돌과 기획사의 수입처는 여전하다.

기실 외적인 포장의 중시는 규격화와 완성도의 혼동에서 비롯되었다. 팝음악에 대한 콤플렉스는 굳이 밟지 않아도 되는 계단을 만들어 밟게 했다. 그러다보니 시도 자체와 기술보다 내용과 정서가 중요함에도 스타일 수입과 아이디어 수집을 통한 재현을 창작으로 오해하기에 이르렀다. 노래 자체의 힘보다 편곡과 안무가 우선시되는 것이다. 그 슬로건은 "대중성을 좇으라, 그러면 대중이 따를 것이다"이다. 보편성에 대한 오해와 자기위안을 위한 단정, 즉 자기정당화는 조금 다른 의미의 '수월성'을 거쳐 듣는 이마저 민망하게 만드는 노래들과 '재미있음'에 대한 심각한 오해로 이어진다. 덕분에 큰 가능성이 있었던 아이돌마저 "낮은 데로 임하게" 된다. 시대착오적인 음악과 시대초월적인 음악의 구분은 의외로 쉽다.
▲ 소녀시대 ⓒSM엔터테인먼트

다행히 이효리, 민효린, 태양 등의 경우처럼 여러 면에서 나쁘지 않은 사례들이 있다.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는 일단 노래에 매력이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원더걸스의 'Tell Me'는 '스테이시 큐'의 'Two of Hearts'를 샘플링 했고, 쥬얼리의 'One More Time'은 '인 그리드'의 'One More Time'을 그대로 가져온 곡이다. 재창작 자체가 나쁘지는 않다. 스크린에서 물감이 떨어질 듯한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의 삽입곡으로 새삼 화제가 되고 있는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역시 지난 40여 년간 '애니멀스'와 '에릭 버든' 그리고 '게리 무어' 등에 의하여 수없이 리메이크되어온 곡이다. '산타 에스메랄다' 버전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영화 자체부터 세르지오 레오네의 웨스턴무비에 핏줄을 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샘플링과 리메이크을 내세웠을 뿐 사실상 번안곡에 가깝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새로운 히트 곡을 얻었지만 새로운 수준의 곡을 얻은 것은 아니다. 노래뿐 아니라 뮤직비디오, 의상, 공연컨셉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모방과 차용이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리메이크, 샘플링, 오마주, 모티브 등 사연도 가지가지이다. 카우보이를 목동이라 번역하면 이미지가 달라지는 게 세상이치이다. 무수한 앨범들에 이러한 곡들이 관례적으로 삽입되는 요즘의 상황은 옛날 옛적 가요계의 '번안곡 시대'를 연상시킨다. 주류 가요계의 창작이 한계에 달한 시점에서 1980년대와 1990년 가요들을 리메이크했듯이 현재의 풍조 역시 그와 목적은 유사하고 방식은 안이하다. 심지어 소녀시대는 '모닝구 무스메', 이효리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식으로 컨셉 자체가 차용이 아니냐는 이들도 없지 않다.

물론 아이돌은 다소 다른 방식으로 소비된다. 쥬얼리의 서인영은 '소비이즘'의 상징이 되었고, 원더걸스는 선망 받는 스타로서의 욕구를 'So Hot'을 통해 판매한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아동을 대상으로 한 폭력과 살해가 금기시되지만 코미디에선 금기를 노골적으로 깸으로써 쾌감을 선사하듯이 아이돌은 욕구의 자유지대가 되었다. 사육이라는 다소 심한 말이 나올 정도로 엄혹한 환경에서 치열한 경쟁을 거치며 생존한 그들은 대중이 가질 수 없거나 될 수 없는 인공적인 대리물로 받아들여진다. 음악애호가들이 영웅보다는 친근하게 이름 붙일 수 있는 음악을 즐기는 한편에서 아이돌은 자본주의사회의 또 다른 아이돌로 기능한다.

그럼에도 적정선을 넘어선 아이돌의 일방적인 과점양상은 그대로이고, 문화소비자의 선택권과 문화다양성 그리고 창작기반은 여전히 열악하다. 강점은 약점이기도 하기에 어느 선 이후부터는 한계가 된다. 이 부분에 대한 반성이 공감을 얻어가던 때에 등장한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에 대한 반응은 "대중음악계의 구원투수"였고, 어느 정도 '잘못된 신호'로 작용했다. '경쟁력'과 '성장'을 중시하는-또는 해야 한다는 강박이 강력히 개입했다. 여전히 제작자들에게 아이돌을 투기물이고, 어린 가수들 역시 연기자 또는 연예인으로 가기 위한 경로로 생각하며, 팬과 평단마저 지레 낮은 기대수준을 갖고 대하는 태도를 취한다. 자칫 본의 아니게 아이돌을 소모품으로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에 참여할 수도 있다.

긍정적인 모습의 아이돌들이 나타나면서 주류대중음악계에도 희망은 보인다. 다행이다. 그런데 여전히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지난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이 그 동네에 일어난 일이다. 건조한 땜질로 시스템을 다시 가동시킬 수는 있지만, 언제고 같은 상황을 맞아 발목을 붙들릴 위험은 그대로이다. 시청률 제고를 위해 부활한 TV가요프로그램들의 순위제가 이렇다할 효과를 얻지 못하는 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전제와 출발이 잘못되면 언짢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뱀에게 머리를 물렸을 때 응급처치를 하겠다고 목을 졸라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중음악계에 생기가 돌고 이슈가 연이어 발생한다. 어려운 시절에도 악기를 팔지 않은 음악인들의 층은 깊어졌으며 진지한 담론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이 흐름을 성숙으로 이어가 아이돌이 다른 음악과 공존하는 시대를 기대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야,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충분히 호감을 가질만한 아이돌들이 어떤 품새로 자리 잡는가에 시계를 거꾸로 돌려 같은 길을 재차 밟게 되거나, 아니면 '지속가능한' 단계에 접어들거나 할 것이다. '어덜트 아이돌'이 아니라 '얼트 아이돌'을 기대해본다. 누군가는 중학교 시절 영어선생님이 교실에서 자주 사용하던 생활영어를 들려주고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Be quiet, Shut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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