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장 교수는 공기업 경영의 폐해 중 하나로 정부의 낙하산 인사 문제를 들며 이를 견제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다만 이명박 정부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니라고 했다.
"공기업 성과 개선 뒤 민영화 이해 안 돼"
장하준 교수는 5일 한국전력공사 한빛홀에서 열린 초청강연회에 참석해 공기업 민영화가 마치 선진화의 길인 양 인식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는 결코 효율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장 교수는 "정부는 성과 없는 공기업을 매각하고 싶겠지만 살 사람이 없다. 이 때문에 정부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민영화 대상 기업의 실적을 개선시켜야 한다"며 "결국 민영화 없이도 공기업 성과 개선이 가능하다면 왜 팔아야 하나? 내가 보기에는 이데올로기적 이유 외에는 (공기업 매각) 다른 근거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장 교수는 '공기업은 무조건 방만할 것'이라는 시각 자체에 문제를 제기했다. 산업의 구조에 따라 공기업이 민간기업보다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공기업을 볼 때는 실적 외에도 사회적 형평성, 행정적 비용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얼핏 기업 회계장부만 본다면 구조조정이 필요해 보이는 부분이 있더라도, 사회적인 비용까지 고려한다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전기와 수도, 공공교통 등은 대표적 사례다.
그 근거로 장 교수는 산간벽지에 우편물은 물론 사람까지 태워다 주는 스위스 우체국 서비스를 들었다. 민간기업이라면 효율성 때문에 산간지방 서비스를 포기하겠지만 사회적 책임과 형평성을 고려하는 공기업이기에 이런 일을 실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싱가포르항공, 폭스바겐, 르노…효율적 공기업도 많다"
나아가 장 교수는 공기업이 민간기업보다 더 효과적으로 경영을 이어가는 사례도 무수히 많다고 지적했다. 그 사례로 장 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싱가포르항공이나 주정부가 지배주주인 폭스바겐, 그리고 프랑스 정부가 30% 지분을 보유한 르노 등을 들었다.
장 교수는 "싱가포르항공은 지난 1965년 설립 이후 한 번도 정부보조금을 받은 일이 없다"며 "역설적으로 자유시장 경제의 전도사 역할을 하는 미국 기업 중에는 정부보조금을 받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 신자유주의를 국가적 이데올로기로 정착시킨 레이건 정부는 당시 부실 경영으로 파산 위기에 몰렸던 크라이슬러에 대대적인 공적자금을 투입한 적이 있다. 미국 정부는 최근에도 모기지 사태로 금융시장이 위기에 몰리자 패니매와 프래디맥 긴급구제에 나섰다.
장하준 교수는 무조건적인 민영화 예찬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렇다고 그가 국영기업 예찬론자도 아니다. 강연 내내 장 교수는 "경제문제는 단순화시킬 수 없다. 모든 문제는 산업 상황에 따라, 나라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공기업 문제를 볼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실용주의적 접근'이라고 강조했다. 실용주의는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기치다. 하지만 장 교수가 말하는 실용주의론은 신자유주의를 적극 추진하는 이명박 정부의 '실용'과는 조금 달랐다. 장 교수는 여러 권의 저서에서 일관되게 신자유주의를 비판한 바 있다.
장 교수는 "같은 산업이라도 상황에 따라 공기업이 옳을 수도, 민간기업이 옳을 수도 있다"며 "'무조건 민간기업이 옳다'는 시각을 버려야 한다. '흑묘백묘론'처럼 공기업이든 민간기업이든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는 쪽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낙하산 인사 등 정부의 정치력 남용 우려"
장 교수는 정부가 지나치게 공기업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 사례로 장 교수는 낙하산 인사가 낳을 부작용을 우려했다.
어디까지나 학자로서 얘기할 수 있는 일반적인 말을 한 것이지만 최근 낙하산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는 우리나라 실정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장 교수는 "낙하산 인사 등 정부의 정치력 남용은 공기업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국민경제에도 부담을 준다"며 "집권자의 의사결정권 남용을 막을 수 있는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다만 '우리 정부의 공기업 낙하산 인사 결정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보인 것으로 해석해도 되느냐'는 질문에는 "딱히 우리 정부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시각을 얘기한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그는 마치 기업경제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듯 인식하는 것에는 거부감을 나타냈다. 그는 "사람들이 '경제, 경제'하는데 지금 얘기되는 '경제'는 어디까지가 기업 이윤이나 높이자는 좁은 의미의 경제인 것 같다"며 "국민의 기본생활과 경제형평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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