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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신경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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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국의 신경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화제의 책]장하준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나라당 의원이 요즘 고민이 '신자유주의'라고 털어놓았다. 신자유주의의 앞날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원히 잘 나갈 것 같던 미국 경제가 지난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래로 휘청거리고 있고, 그 여파로 세계 경제에도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이 같은 미국의 금융불안이 해소되는 데에는 4년 정도 소요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삼성경제연구소. <미국 가계부채의 급증과 조정 전망>) 지금과 같은 국내외적 경제불안이 이명박 정부 내내 계속될 것이란 예상이다.

이명박 정부는 "제3의 오일쇼크"라는 등 위기설을 가장 선도적으로 제기하고 있지만, 현 경제위기가 장기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지는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1일 국회 개원연설에서 "내년 후반기에는 경제회복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1년 정도 '소나기를 피하는' 차원에서 안정기조로 가겠지만 곧 다시 성장모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물가가 급등하면서 인플레이션 위기감이 고조되자 이명박 정부는 경제정책 방향을 선회하겠다고 했지만, 따지고 보면 한반도 대운하의 일시 보류 이외에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MB노믹스의 핵심 정책인 공기업 민영화, 규제완화, 감세 등은 여전히 추진되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맹신하는 MB노믹스는 살아 있다. 과연 MB노믹스로 현 경제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때마침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신자유주의 신화'를 비판하는 책을 냈다. 아일린 그레이블 덴버대학 교수와 공저인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부키 펴냄. 이종태.황해선 옮김)에서 장 교수는 "신자유주의는 지난 20년간 경제발전에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책 제목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는 신자유주의가 아닌 대안이 분명 존재하며, 신자유주의의 신화를 깨고 이 대안으로 시선을 옮겨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1990년대 美 경제실적은 이전시기보다 둔화"

장 교수는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 경제발전에 대한 신화를 비판한다. 한미FTA의 연내 비준을 위해 미국에 쇠고기 시장을 전면 개방하는 등 미국에 목매다는 이명박 정부가 사로잡혀 있는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모델이 이상'이라는 신화도 포함된다.

장 교수는 "1990년대에 미국의 신경제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GDP 평균성장률은 1982-1986년에는 4.4%, 1970-1973년에는 4.8%였는데, 1991-1995년에는 2.7%에 그쳤다. 이후 1996년-1999년 동안의 높은 성장률은 바로 이전 시기의 낮을 성장률을 상쇄시키는 효과를 거뒀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또 1990년대 미국의 연평균 생산성 증가율은 1.9%에 그쳤다.

그는 "상당수 산업국가들이 1990년대에 적어도 미국과 비슷하거나 더 나은 성과를 보였다"며 아일랜드(6.8%), 싱가포르(5.3%), 노르웨이(3.1%), 호주(2.8%), 포르투갈(2.6%) 등은 미국과 비슷하거나 더 나은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런 근거로 장 교수는 "1990년대 미국의 경제실적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다. 이전시기보다 오히려 둔화됐다"며 "신경제 관련 주장들은 실증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분배 문제를 고려하면 1990년대 미국 경제실적은 더욱 내세울 게 없어진다. "1990년대 미국 주식시장의 호황은 상위 20%의 부자들을 더 부유하게 만들었을 뿐"이라는 게 장 교수의 지적이다.

또 1970년에 미국 최고경영자 상위 100명의 평균 연봉은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면 130만 달러로 노동자 평균 임금의 39배 정도였으나, 1999년이 되자 이들 경영자의 평균연봉은 3750만 달러로 노동자 평균 임금의 1000배가 넘는 등 임금 양극화 현상도 가속화됐다.
▲장하준 교수. ⓒ프레시안

빈곤 문제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가계의 비율은 1989년 10%였는데 2000년에도 9.2%로 큰 변화가 없었다.

"신자유주의는 경제발전에 실패했다"

장 교수는 미국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세계화가 진행된 지난 20년간 다른 나라의 성과도 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1950-1980년대의 개입주의 시대보다 1990년대의 신자유주의 시대에 더 높은 평균 성장률을 기록한 나라는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 등 세 나라 뿐이라는 것.

산업국가의 1인당 연간소득 성장률은 1960-1980년대의 개입주의 시대에는 3% 수준이었으나 1980-2000년의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2%로 하락했으며, 개발도상국의 1인당 GDP 성장률이 개입주의 시대에는 1.5%였으나 신자유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0.5%로 하락했다고 장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지난 20년간 개발도상국 전체의 성장률에는 중국과 인도라는 두 나라의 급속한 경제발전의 성과가 보태져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의 경제성장률은 이 보다 더 낮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자유주의 시대동안 라틴 아메리카는 사실상 성장을 멈췄고, 사라하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는 것.

결론적으로 "신자유주의가 지난 20년 동안 경제성장을 이루는데 참담하게 실패했다"며 "신자유주의는 성장을 확산시키기보다는 국제적으로 불균형과 불평등을 조장해왔다"고 장 교수는 밝혔다.
민영화, 정부 예산에 크게 도움 안 돼

장 교수는 이 책에서 무역과 산업, 민영화, 금융규제 등 정책에 있어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정책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공기업 민영화와 관련해, 신자유주의는 만성적인 비효율과 낭비, 부실 경영 등을 이유로 국영기업을 민영화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이를 공기업 민영화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장 교수는 민간기업의 인센티브, 보상, 감독체계 등이 국영기업보다 낫다는 근거가 없다고 지적한다. 또 국영기업의 존재가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신자유주의적 관점에 대해서도 대규모 국영기업을 보유한 많은 국가들이 2차 대전 이후 매우 훌륭한 경제적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반박했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핀란드, 노르웨이 이탈리아가 그 대표적 사례다. 1950-1980년대에 오스트리아는 1인당 국민소득이 연간 3.9% 성장해 16대 경제선진국 중에 2위를 차지했다. 이탈리아는 3.7%로 4위, 핀란드는 3.6%로 5위, 노르웨이는 3.4%로 6위, 프랑스는 3.2%로 7위를 차지했다. 또 개발도상국에서 가장 큰 국영 기업부문을 가진 대만은 2차 대전 이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장 교수는 정부는 민영화가 경제적으로 합리적인지 심사숙고해야 하며, 민영화가 적절한 경우에도 민영화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에서는 수익성이 가장 떨어지는 국영기업을 매각하고 싶겠지만 민간 부문에서는 가장 수익성이 높은 국영기업을 매입하려 할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 골치 아픈 기업은 민간자본에게도 마찬가지기 때문. 그래서 정부는 실적이 나쁜 공기업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상당한 자금을 투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 상당수 국가는 재정수입을 늘리는 수단으로 민영화를 도입하려는데, 민영화는 생각만큼 정부 예산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장 교수는 지적한다. 공기업이 외국투자자나 국내 내부자에게 헐값으로 팔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거래는 상당한 부패를 동반하기도 한다. 이승만 정부, 박정희 정부, 노태우 정부에서 진행됐던 공기업 민영화는 모두 정경유착 및 부패 스캔들이 일었다.

따라서 장 교수는 "민영화로 발생하는 비용을 적절하게 평가한다면 그토록 쉽게 민영화를 선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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