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7시 서울 양천구 신월동성당에서 이길준 이경의 양심 선언 기자 회견이 열렸다. 이 기자 회견은 애초 지난 25일 서울 종로 기독교회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부모의 만류로 3일 만에 열린 것. 그의 굳은 결단에 부모도 끝내 지지를 보냈다.
이날은 당초 25일로 예정된 그의 특별 외박 복귀 시한에서 만 이틀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길준 이경 인터뷰 보기 : "그때 하얗게 타버렸다. 내 안의 인간성이…")
이길준 "삶을 위협하는 권력, 촛불은 '살고 싶다'는 외침이었다"
이길준 이경은 양심 선언문에서 "지난 2월 저는 지원을 통해 의무경찰로 입대했다"며 "의경으로 있는 동안 느낀 것은, 언제고 우리는 권력에 의해 원치 않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몇 달간 촛불 집회를 진압대원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촛불을 든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결국 '권력은 언제든지 우리 삶을 위협할 수 있고, 그에 대해 살고 싶다는 것'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삶을 위협할 수 있는 권력에서는 소통의 의지가 느껴지지 않았다"며 "오히려 제 또래의 젊은이와 시민들이 적개심을 갖고 맞붙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았다"고 질타했다. 그는 "방패를 들고 시민들 앞에 설 때, 폭력을 가하게 될 때, 폭력을 유지시키는 일을 할 때, 저는 감히 그런 명령을 거부할 생각을 못하고 제게 주어지는 상처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수박에 없었다"며 "이런 나날이 반복되고, 저는 제 인간성이 하얗게 타버리는 기분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가해자로서, 피해자로서의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 고민 속에 흐려져가는 삶을 재정립하는 방법은 저항이었다"며 "힘들고 괴로운 일이 많겠지만, 제가 원하는 저를 찾아간다는 것은 즐겁게 느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비장한 각오의 투쟁을 선언하고 싶진 않다"며 "저항의 과정은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저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에 있어서의 억압에 대해 저항해나가는 게 작은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양심 선언문' 전문 보기)
"감옥엔 가도, 방패 못 들겠다는 선언 이해해 달라"
이날 기자 회견에 참석한 이덕우 변호사(진보신당 공동대표)는 "며칠 전, 이길준 이경이 더 이상 군 복무를 하지 않겠다며 도움을 요청해왔을 때 힘들더라도 군대 생활을 마치도록 설득했다"며 "그러나 젊은이의 객기가 아니라 상당히 고민을 한 신념이라는 확신을 알게 된 뒤, 변호사로서도 설득이 아니라 양심 선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덕우 변호사는 "문제가 된 전투경찰대설치법은 위헌이라는 논의가 많았다"며 "1991년 박석진 전경이 헌법재판소에 낸 위헌소송에서 재판관 9명 중 5명이 합헌, 4명이 위헌이라는 의견을 내 합헌 판정을 받은 뒤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다시 위헌 여부를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덕우 변호사는 "병역 거부를 선언했는데도 이계덕 상경의 예에서 보듯 영창에 넣고 징계한다던가 하는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될 대응을 하지 않도록 경찰에 당부한다"며 "명백히 병역 거부를 선언한 이상 본인의 희망에 따라서 정식 재판을 받으면서 헌재의 판단을 받을 수 있도록 조속히 결정하는 것이 경찰 당국, 정부 당국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전·의경 제도 폐지를 위한 연대 공동대표)는 "이번 문제의 근본 원인은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있는 정부 때문"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은 소통이 안 된 게 잘못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아직도 국민과 대화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홍구 교수는 "촛불 집회가 계속되고 있는데, 정부는 아직도 국민들이 왜 촛불을 드는지 모르고 있다"며 "적당히 물리력을 동원해서 탄압하면 수그러든다고 생각하겠지만, 물리적으로 촛불을 끌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정권은 앞으로 4년 6개월 내내 이처럼 국민과의 대화를 거부한 채 젊은이들을 앞에 세우고 뒤에 숨어 있을 것인가"라고 질타한 뒤 "더 이상 젊은이들을 진압의 도구로 몰아내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진압을 못 하겠다, 방패와 곤봉을 못 들겠다고 선언한 그가 고민했을 숱한 시간을 떠올려 달라"며 "앞으로 체포될 수 있고, 감옥에 갈 수 있지만, 도저히 방패와 곤봉은 못 들겠다고 하는 마음을 이해해 달라"며 당부했다.
이정희 의원은 "특정한 전쟁에 가서 명령을 거부할 경우까지도, 양심의 소리로 인정하는 것이 오늘날 국제 사회 인권의 수준"이라며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한국은 국제 사회가 요구하는 인권을 실현시켜야 할 도덕적, 법률적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의경제 폐지 약속까지 무기한 농성 벌일 것"
이날 이길준 이경과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한 평화·사회단체들은 앞으로 신월동성당에서 정부가 전·의경 제도 폐지를 약속할 때까지 무기한 농성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들은 매일 저녁 이 이경의 뜻에 동참하는 '촛불'들의 모임을 열고, 박노자 교수 등 다양한 인사들의 강연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전·의경제도에 대한 헌법 소원을 할 계획이며, 전투경찰제설치법 폐지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이를 위한 온·오프라인상 서명과 청원 운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홍구 교수는 "언제까지 농성을 벌일 계획이냐는 질문은 곧 촛불을 언제까지 들 것이냐는 질문과 같다"며 "위헌적이고, 폭력적이고. 젊은이들의 양심을 하얗게 태워버릴 수밖에 없는 전의경 제도 폐지를 약속할 때까지 농성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어둠이 있는 곳이 바로 촛불이 켜져야 하는 곳"이라며 "이곳은 5만 명의 다른 이길준, 전·의경 제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처지를 알리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많은 시민에게 부탁한다"며 "지금 이렇게 이길준 이경처럼 양심 선언을 하지는 못했지만, 소리없이 고통당하는 전·의경이 많이 있는데, 그 젊은이들과 부모에게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주는 편지를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성당 포위한 경찰, 기자회견장 무단 진입…'촛불'도 속속 모여
한편, 이날 기자 회견에 앞서 양천경찰서 소속 10여 명의 사복 및 정복을 입은 경찰들이 회견장 안에 무단으로 들어와 주최 측과 마찰을 빚었다. 신월동성당 나승구 주임신부는 "경찰은 정식 절차를 밟고 성당 안에 들어와 달라"며 퇴거 요청을 했다. 주최 측은 "5공 시절에도 경찰이 성당 안에 함부로 난입하는 일은 없었다"며 질타했다.
또 이길준 이경의 기자 회견이 열린다는 소식을 온라인으로 접한 40여 명의 누리꾼들이 성당을 찾아 지지의 뜻을 밝혔다. 근처에 사무실이 있어 급히 성당을 찾았다는 허은태(34) 씨는 "이길준 씨가 무엇보다도 굉장히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며 "군 생활이라는 환경 속에서 보통사람으로서는 어려운 결정을 내린 그는 깨어있는 지성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경찰도 성당 주변에 빈틈없이 배치됐다. 4대의 경찰 버스와 2대의 관광 버스를 동원해 출동한 경찰은 주택가에 위치한 성당 주변에 수 미터 간격으로 배치됐으며, 성당 입구에도 사복 경찰 20여 명이 상주하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지난 25일 서울지방경찰청은 이 이경에 대해 검거 명령을 내렸으며, 성당 주변에는 이 이경의 얼굴을 복사한 전단지를 든 전경들이 배치됐다.
주최 측은 경찰이 이날 밤 사이 성당 안으로 진입해 이길준 이경을 연행해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 이경을 지지하러 모인 시민들도 대부분 촛불을 들고 밤새 성당을 지키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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