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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왜 태극기를 흔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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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왜 태극기를 흔들었나"

[토론회] '힙합진보', '헌정 애국주의' 등 다양한 해석

석 달째 계속되고 있는 '촛불집회'를 여러 측면에서 분석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수많은 시민'이 '장기적으로' 이렇게 '평화적인' 형태로 시위를 이어간 것은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촛불집회는 많은 이들에게 흥미로운 분석대상이 되고 있다.

아직 촛불집회는 '현재 진행형'이다. 또 시위 참여자의 수와 시위 성격, 양상 등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일단, 지금까지 진행돼 온 촛불집회 현장의 모습을 토대로 정치, 사회, 여성 등의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그래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지난 25일 서울 중구 정동빌딩 내 회의실에서 "2008년 촛불집회와 한국사회"라는 주제의 간담회를 열고 촛불집회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을 논의했다.

태극기를 흔드는 민주 시민?
▲ 신진욱 교수는 "시위 참가자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민~국을 외친다고 공격적 애국주의, 민족적 내셔널리즘의 위험성을 말하는데 '민주공화국'과 '주권재민의 이념'을 담은 '헌법 1조'를 노래하는 이들의 행위를 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프레시안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로 흔히 꼽는 게 일부 젊은이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벌인 거리행진이다.

태극기는 관변 단체나 보수 진영이 '애국주의'를 고취하기 위해 종종 사용한 상징이었다. 그런데, 이른바 진보 진영이 참가한 시위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장면이 나타난 것은 얼핏 어색해 보일 수 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을 위르겐 하버마스의 '헌정 애국주의(constitutional patriotism)' 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미 2002년의 붉은 악마는 태극기를 흔들고 얼굴에 태극무늬를 새기고 대~한~민~국을 외쳤다"며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시위에 참여한 시민들 역시 그랬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시위 참가자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민~국을 외친다고 공격적 애국주의, 민족적 내셔널리즘의 위험성을 말하는데 '민주공화국'과 '주권재민의 이념'을 담은 '헌법 1조'를 노래하는 이들의 행위를 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2000년대 들어 시민들, 특히 청소년과 젊은 세대들은 대한민국이라는 특수한 정치공동체와 긍정적 동일시 하는 동시에 민주주의와 시민적 자유, 사회적 연대라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집단행동에 참여하고 있다"며 "여기에서 반공주의적 국가정체성이나 저항적 민족주의와 구분되는 새로운 집단적 정체성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 바로 헌정 애국주의다"라고 말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헌정 애국주의는 민주적 법치국가의 보편주의적인 헌법이념을 특수한 정치공동체에의 애착과 헌신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열망이다. 그는 "이것은 한국 저항운동의 역사에서 나타나는 매우 특징적인 현상이며 4.19혁명, 1980년 광주항쟁, 87년 6월 항쟁, 2008 촛불시위로 이어져 오면서 형식적 민주주의로부터 시민적 자결과 사회적 연대의 이념으로 발전해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힙합 진보'로 경영권 승계 이뤄져야"
▲ 조효제 교수는 "시민사회운동 진영의 관점에서 볼 때 이제 엄숙했던 진보가 힙합 진보로 경영권 승계로 이뤄져야 하지 않나 싶다"며 "이들을 신뢰할수 있는 세대로 키워내야 한다"고 말했다. ⓒ프레시안

이번 촛불집회의 큰 특징의 하나는 '십대의 참여'와 '비운동권 성향 시민의 참여'였다. 집회에 참여하는 주체의 변화는 집회의 성격을 바꾼 결정적인 변수였다.

신진욱 교수는 "이번 집회는 '방사형에서 모자이크'로, '전차에서 강물로'의 이행을 보여줬다"며 "노동‧시민단체가 주도하여 목적의식적으로 조직 및 인적 자원 등이 동원되던 형태에서 군중(crowd), 대중(mass)이 아닌 모래 알갱이 같은 개인들이 모여 강물 흐르듯 상황의 변화에 따라 행동의 목표와 수단을 정하는 형태로 변화했다"고 말했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 기존 세대와 청소년을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의 '감각의 차이'가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전통적인 운동이 목표, 비전, 사회적인 그림을 보는 세계관과 요즘 세대들의 생각과 의지, 유동적인 최종목표, 민주적인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보는 발상 등이 겹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며 만난 장이었다"라고 해석했다.

또 조 교수는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 기성세대가 '한계를 갖고 있는 지나간 세대'로 자리매김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청소년들에게 11시가 넘어서 집으로 귀가하라고 하자 이 같은 청소년에 대한 보호주의적 시각에 대해 청소년들이 불쾌감을 표현했다"며 "또 여성들은 시위대 뒤로 물러나라고 요구한는 건 '시건방진 시각'이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기존의 성인, 남성 중심의 전통적 감각과 젊은 세대의 감각의 차이가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 미묘하게 드러났다는 것.

조 교수는 "촛불집회에서 나온 '명박아, 땅을 파지 말고 귀를 파라'라는 구호는 기존 세대가 죽었다 깨어나도 만들 수 없는 구호"라며 "시민사회운동 진영의 관점에서 볼 때 이제 엄숙했던 진보가 '힙합 진보'로 경영권 승계가 이뤄져야 하지 않나 싶다"며 "이들을 신뢰할수 있는 세대로 키워내야 한다"고 말했다.

"'생활정치'는 '주변정치'?""모성이 강조되는 쟁점에만 동원되는 여성?"
▲ 양현아 교수는 "쇠고기 사안을 '생활정치'라는 성격으로 규정하는 것은 기존의 남성, 정치 중심의 사고에 젖어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프레시안

양현아 서울대 법대 교수는 쇠고기 사안을 '생활정치'라는 성격으로 규정하는 것은 기존의 남성, 정치 중심의 사고에 젖어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양 교수는 "아직 언어화되지 않았지만 실제로 체험하고 있는 다양한 현안들이 '생활정치'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며 "남성 엘리트들이 장악해 온 정치 코드로 해독이 안 되면 그것을 생활정치적이라고 두루뭉슬하게, 그리고 조금은 가볍게 불러버리는 것인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신사회운동의 성격을 띠는 이 같은 '탈중심 운동'이 유지되고 다양한 담론과 쟁점이 가능한 개방이 중요하다"며 "7, 80년대 민주화운동이 삶의 질 문제를 간과했고 지난 두 정권에서 그것이 드러나면서 시민들이 이제 큰 주제가 아닌 여러 탈물질주의적 가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그는 '여성을 주변화하는 관점'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보였다. 양 교수는 "촛불집회에서 '시민+여성'이라는 이중화된 시각이 드러났다"며 "거리행진을 벌이는 시민‧구호를 외치는 시민 등은 기본적으로 남성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유모차 부대, 하이힐 부대 등 촛불집회에서 부각된 여성들은 기존의 '여성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측면이 있다"며 "'여성'이란 기호는 매우 이질적인 존재성들이 모여 있는 것인데 상품과 문화의 소비자로서의 여성만 부각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먹거리와 같은 '생활 쟁점', 그것도 '어머니' 모성의 역할과 관련된 쟁점에서만 여성이 동원된다는 통념이 스며들어 있어 불편하다"고 말했다.

정치, 법, 제도가 시민사회의 진화를 따라잡으려면
▲ 정상호 교수는 "논쟁의 구조가 최장집 교수의 정당 민주주의와 반대편 극단의 아나키스트, 하승우 교수가 제안하는 '개인으로의 환원' 등으로 이분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프레시안

진화한 시민사회와 기존의 정당정치의 간극을 어떻게 메우고 조화를 추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었다.

신진욱 교수는 다양한 차원의 개인과 그룹이 각기 주체가 될 수 있는 개방적인 '다차원적 거버넌스(multi-dimensional governance system)'를 제안했다. 신 교수는 "대의제적 정당정치, 코포라티즘적(조합주의적) 합의체제 그리고 개별 정책의제별로 구성되는 거버넌스(통치) 체제를 병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상호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는 정당 중심의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한계를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의 실질적 도입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 교수는 "논쟁의 구조가 최장집 교수의 정당 민주주의와 반대편 극단의 아나키스트, 하승우 교수가 제안하는 '개인으로의 환원' 등으로 이분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자체 등을 포함하는 기존의 중앙정치체제 내에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편, 동국대 철학과 홍윤기 교수는 "이번 촛불시위에서 권력에 대한 탈권력적 상상력이 발휘됐음에도 보수 세력이 정치적 반동까지는 아니더라도 관련된 많은 사람을 괴롭힐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독일과 프랑스는 시위 세력이 기성 정당정치 벨트로 흡수되어 탈권위주의 개혁이 바로 이뤄진 사례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권력 감각에 대한 계몽된 진전이 필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석 달째 계속되고 있는 '촛불집회'를 여러 측면에서 분석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수많은 시민'이 '장기적으로' 이렇게 '평화적인' 형태로 시위를 이어간 것은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촛불집회는 많은 이들에게 흥미로운 분석대상이 되고 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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