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년 전 이맘 때 시작된 이랜드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과 관련해 빠지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다. 그런데 과연 이 말로 그들의 1년을 설명할 수 있을까?
평생 투쟁이라는 단어조차 입에 담아본 적 없다는 '아줌마 부대'의 그 심장 떨리는 파업과 매장 점거, 그리고 난생 처음 맛본 해방감과 자유. 연행과 구속, 손배 가압류와 끝이 보일 것 같지 않던 노사 교섭. 그 사이 그들 곁을 지나쳐 간 네 계절과 복귀하는 동료들, 쌓여가는 카드빚과 각종 고지서.
어느 날 갑자기 '난데없이' 그들에게 벌어진 그 모든 일들을 짧은 신문 기사나 아무리 길어야 1시간인 방송 프로그램이 담아낼 수 있을까? 아니, "겹겹의 얇은 막과 같아서 하나의 고통에도 여러 층이 있는 그 무수한 갈등과 아픔의 흔적들"의 단편이라도 드러낼 수 있을까?
지난해 7월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기에 지금도 누구나 '이랜드'하면 "아, 그때 그 아줌마들"이라고 떠올릴 법 하다. 하지만 이랜드 파업 1년을 맞아 출간된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권성현·김순천·진재연 엮음, 후마니타스 펴냄)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좁은 구멍으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이 교섭의 진전 여부나 노조 간부에 대한 징계 해고 등 변화되는 '새로운 사실(new fact)'에만 시선을 두는 동안, 그 시간을 삶으로 살아 낸 평범한 여성 노동자의 날 것의 목소리가 이 책에는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서오십시오, 고객님. 고객님, 고객님, 고객님…"
"어서오십시오, 고객님. 무얼 도와 드릴까요? 포인트 카드 있습니까? 고객님, 4만7500원입니다. 5만 원 받았습니다, 고객님. 거스름돈 여기 있습니다. 고객님,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그들은 하루에도 몇 백 번씩 기계처럼 이런 말을 해야 했던 계산원들이었다. "내가 정말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걱정해야 할 만큼 "돈 세는 게 긴장되던" 아줌마들이었고, 사람이 몰리는 휴일에는 "여섯 시간 15분 동안 화장실도 못 가고, 저녁밥도 못 먹고 쉬지 않고 일해야 했던" 노동자였다.
조희숙 씨(40)는 홈에버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올 때 저는 야, 오늘도 무사히 잘 들어왔구나, 하고요. 그 다음날 출근하기 전에는 기도를 해요. 오늘도 아무 일 없이 편히 하루 일 마치고 잘 돌아오기를요. 너무 많은 일이 홈에버에서 벌어지니까요."
그들이 일상에서 겪어야했던 '고통'과 '모욕'에 대해 김순천 씨는 "그것은 너무 세밀하여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 의미와 가치를 포착하기 힘든 것이었다"고 표현했다.
"추운 겨울에도 스웨터를 입지 못하게 하는 회사, 청소 아주머니들을 해고해 쓰레기가 쌓인 채 근무했던 일터,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을 만큼 심한 일의 강도, 손님인 척 가장해 자신들을 감시하는 모니터링제, 강제로 발리는 빨간색 립스틱, 정규직만 회원 가입할 수 있는 회사 홈페이지, 손님과 회사 사이에서 정지해야만 하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들, 늘 두렵고 쫓기는 생계."
어쩌면 그녀들에게 '노동조합'이란, '파업'이란, "말하기조차 구차하게 일상적으로 반복돼 자신들의 삶을 파괴하는" 고통과 모욕으로부터의 탈출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결국 회사가 이분들 노조 가입을 독려한 셈"이라는 이경옥 부위원장의 설명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리고 파업과 점거, 봄날 같이 따뜻했던 그 날들
만약 이랜드그룹이 그 뿌리 깊은 차별에서 그쳐주었더라면, 파업과 점거까지 나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랜드그룹은 스스로 "자초했다." "이렇게 잘릴 줄도 모르고 그동안 바보 같이 너무 열심히 일했다"는 그들을 거리로 내쫓음으로써.
대량해고에 맞서 이들은 지난해 6월 23일 파업을 시작했고, 6월 30일 홈에버 월드컵점을 점거했다. 당초 지도부는 1박2일 투쟁으로 계획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들 스스로 '못 나가겠다'고 버텼다.
"그 다음날 분회별로 토론을 했죠. 나갈 건가, 끌려갈 때까지 여기를 지킬 건가. 얘기를 했는데 다들 못 나간다는 거야. 어떻게 한 점어긴데 우리 발로 걸어 나갈 수는 없다, 지도부들이 회사나 경찰과 두루뭉술 타협해서도 안 된다, 그런 얘기를 했죠."
황선영 씨(44)는 "우리는 너무 힘들게 일했기 때문에 맺힌 게 많았던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21일의 점거. 이경옥 씨(32)는 1년의 파업 기간을 돌아보며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았던 일을 묻는 질문에 그 시간을 떠올렸다.
"날도 따땃하니, 그때 생각하면 진짜로 따사로운 봄날 같아요.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데, 다들 아무 생각이 없으니까, 같이 한다는 게 좋았죠. (…) 그때만 해도 우리는 회사에서 항상 위축되어 있어서, 뭐라고 그러면 겁내면서 돌아가고 그랬는데, 점거하니까 재미도 있고 스릴도 있고 기분이 묘했죠. 세상이 안 돌아갈 것 같고, 놀랍고 신기하고. 그렇게 처음에 다 해서 할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 끝날 줄 알았더니만……."
동시에 그들에게 그 날들은 "좋은, 그런데 두 번 다시는 해보고 싶지 않은 경험"이기도 했다. 봄날은 너무 짧고 겨울은 유독 길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시작했는데 여기저기 다니려니까 덥지, 내 처지가 처량하지, 노래가사는 왜 인간답게 살아보자, 내 얘기 같아서 노랫말 하나하나가 다 눈물이야. 노래하다가 막 울고." (황선영 씨)
"아, 우리는 이 나라 국민이 아니구나"
그들은 끌려 나갔고 또 끌려 나갔고 또 끌려 나갔다. 세 번의 매장 점거가 회를 거듭할수록, 점거에서 공권력 투입까지 걸린 시간은 도리어 가파르게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회사는 더 강경해졌다. 드문드문 열리는 교섭은 아무 진전도 없었고 지난해 말에는 노조 간부에 대한 무더기 징계해고마저 날아 왔다.
그 과정을 고스란히 겪어 내며 이들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 회의하고 또 절망했다. (☞관련 기사 : "광화문 뒤덮은 촛불 물결 보며 절망했다")
"우리는 노동부에서도 버림받았어. 그리고 민중의 지팡이 경찰한테도 버림받은 민중이야, 우리는 우리나라, 정부한테서도 버림받았어. 우리는 국민이 아니야."
황선영 씨(44)는 "국적만 여기지 이주 노동자랑 다를 게 없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런 표현은 책 곳곳에서 눈에 띈다. 이경옥 씨(32)도 그랬다.
"아무리 목소리를 내 봐도, 아무 영양가 없는 전경한테만 들리지. 정말 들었으면 하는 정부나 경찰청이나 노동부에는 안 들어가거든요. 들어도 그 사람들이 무시할 테지만. 그런 걸 느낄 때 정말 마음이 아파요. 아무 것도 아닌 존재구나, 이 나라에서. 얘네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구나."
스스로의 존재감에 대한 회의는 차라리 사치였을지 모른다. 당장 오늘 먹을 끼니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은 '현실'이었다.
돌아간 이의 고통 "희망? 내게 그런 답을 원하지 말아요"
"파산 신고 여부를 저울질해야 하는 '워킹 푸어(working poor)' 신세"가 된 이들은 발을 빼기도 했다. 김남희 씨(40)도 그런 경우다. 한 달에 100만 원도 안 되는 돈이었지만 파업을 하는 6~7개월 동안 그마저도 벌지 못하면서 고스란히 모두 빚이 됐다. "더 이상 빚을 늘릴 수가 없어서" 그는 "손을 뗐다."
"막말로, 빚 갚아 준다고 하면 최저임금 받아도 그러겠다고 하고픈 심정"이라는 그에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일은 고통이다. "여럿이 함께 대응하면 회사가 멋대로 안 굴 것 같아서" 노조에 가입했을 뿐인데, 그 대가는 너무 크고 지독했다.
"내가 왜, 구조조정이든 비정규직이든 뭐든, 대세가 뭐였든 간에, 계속 일을 했으면 빚은 지지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를 하는 거예요."
당연히 지난해 6월로 돌아간다면 파업은 안 할 거다.
"몰랐으니까 했지 난 안 해요. 난 내 갈 길을 갈 거예요. 늘 그렇게 해 왔던 것처럼, 사람들이 와서 뭐라고 해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난 내 일 할 거예요. 믿을 사람도 없어. (…) 나한테 어떤 희망적인 말을, 그런 답을 원하지 말아요. 그냥 이대로 끝내면 되는 거예요. 절망적이야, 힘들어."
남은 이의 고통 "빛? 희망? 남만 다 빛내 주고 우리는 왜 이래"
돌아간 이들도 고통스럽지만 남은 이들도 고통스럽다. 돈을 못 내 전기와 가스가 끊긴 집에서 촛불을 켜고 공부하는 아이들, 다른 집 애들은 다 다니는 학원은커녕 야간 자율 학습비 조차 낼 돈이 없어 선생님들이 모아준 일. 여전히 파업은 하고 있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사실 이러고 있을 입장들이 다들 아닌" 사람들의 입에서 "'괜찮아', 그런 얘기는 도저히 안 나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남들은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라며 추켜세우고, 비정규직법 시행 1년을 맞아 또 다시 이들의 얘기가 언론에 오르내렸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 오히려 더 서글프다.
"여러 사람한테 우리가 빛이 되고 희망이 되었다, 그런 말 들으면요, 지금은 그럼 우린 뭐야, 다른 사람들한테는 빛이고 희망이고, 우리는 왜 이렇게 구렁텅이에 들어간 기분인 건데. 우리는 뭐야, 남만 다 빛내 주고 우리는 왜 이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경옥 씨)
"이런 특이한 생활 말고, 그냥 평화롭게,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마음,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그래서 더 여기서 포기할 수가 없다.
"중간에 포기하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내 인생에서 1년을 지워야 하는 거니까. 그게 계속 남아있을 거니까. 내가 마지못해서 끌려갔다면 모르겠지만 나름 열심히 했는데 중간에 포기해 버리면 그게 계속 남아 있을 거야. 그래서 결론을 빨리 봤으면 좋겠고." (서은주 씨)
지난 1년을 인생에서 지우고 싶지는 않다는 그들. 이 책은 묻고 있다. 그들이 빛내 준 '남들'이 이제 그들을 빛내 줄 차례 아닐까? 소박한 그들의 꿈을 응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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