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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쇠고기 재협상 배제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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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쇠고기 재협상 배제하지 말라"

"'실질적 재협상' 운운 이해되지 않아…옳지 않은 태도"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우회적으로 이번 쇠고기 협상에 대한 실망감을 내비쳤다. 정 전 총장은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신중하게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쇠고기 재협상 안 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19일 희망제작소(박원순 상임이사)가 주최한 강연회 '비농업인이 바라본 한국 농업과 농촌의 미래'에 참석한 정 전 총장은 "쇠고기 재협상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운데 이론적으로 재협상은 불가능한 게 아니다"라며 "(정부가) '실질적 재협상' 등의 이해가 되지 않는 말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정 전 총장은 "이 문제(쇠고기 재협상)에 대해 '예스, 노'로 명확히 대답하기는 어렵지만 재협상을 배제하지는 말라는 게 내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결국 앞으로 우리 국민이 이 시국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중요한 문제"라고 말해 정부가 국민의 뜻을 존중하라는 의견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억지로 FTA 추진해 위험 감수할 필요 없지 않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큰 나라와 작은 나라가 협상할 때는 큰 나라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며 미국과의 FTA 추진을 조심스럽게 할 것을 주문했다. ⓒ프레시안

정 전 총장은 나아가 정부의 FTA 추진에 대한 불안감도 드러냈다. 위험을 일부러 감수하려는 것은 지금 우리나라 상황과 맞지 않다는 얘기다.

그는 "나는 기본적으로 자유무역 옹호론자로 국가간 무역의 중요성에 대한 믿음을 굳게 갖고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다만 작은 나라가 너무 앞서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FTA 추진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것은 좋지 않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는 "도그마로부터 탈출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경제원론' 앞부분만 보고 FTA가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는데 잘못"이라며 "경제원론에서 나온 '세상은 교환체계'라는 뜻을 인용하려면 '강제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교환을 하는 게 좋다는 말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정부가 세계 각국과 추진하는 '동시다발적 FTA'를 따로 언급하며 "이는 정말로 잘못된 생각이다. 잘못하면 정말 자유가 없는 트레이드가 된다. 염려스럽다"고 했다.

정 전 총장의 말은 결국 자유무역 만능론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자유무역을 추진할 때 '강제성'과 '경제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분명히 언급한 데서 드러난다.

그는 이 같은 입장을 한·미 FTA에 대한 생각을 말해달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밝혔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1년 내로 미국과 FTA를 체결하겠다"는 말을 듣고 "한·미 관계가 그때까지 삐걱댔기 때문에 한 편으로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우리가 얼마나 많이 양보해야 할지 걱정스러웠다"며 "작년 저는 쌀시장 개방 반대, 투자자 정부제소권 허용 불가, 개성공단 제품의 국산 인정 등 3가지 원칙을 분명히 하라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FTA를 추진한다고 금방 나라가 망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지금도 이미 한국과 미국 간 교류에 큰 제약이 없고 상당한 수준의 개방된 경제체제를 우리가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덧붙여 그는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대에서는 '위험부담형' 경제가 아니라 '위험회피형' 경제로 가는 게 맞다"고 했다.

"산업화·국제화에 대한 맹신 버려야"

강연이 끝난 후 참석자들은 그가 가진 농업에 대한 생각을 많이 물었다.

그는 경제학자 케인스가 쓴 글을 인용하며 "물자는 적절히 교환해야 하고 심한 불편이 없다면 국산이 좋다. 무엇보다도 금융은 근본적으로 그 나라의 것이어야 한다"며 개방을 할 경우에도 "송두리째 뿌리를 뽑는 식의 것이 될 게 아니라 천천히 나무를 다른 방향으로 자라도록 훈련시키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전했다.
▲정운찬 전 총장은 조순 전 경제부총리의 논문을 인용하며 "우리나라는 위험에 맞설 게 아니라 '위험회피형'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조건적인 개방 정책의 위험을 경고했다. ⓒ프레시안

그는 케인스의 글을 좋아한다며 "우리나라같이 작은 나라는 이게 경제 정책의 기본 방향이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사람들 사이에 '농업을 버리고 산업구조를 고도화하자'는 바람이 불었다"며 "극단적으로 가는 것은 좋지 않다. 특히 곡물 자급도는 지금보다 더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화에 대한 맹신도 버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가 언제까지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은 보호정책과 규제정책을 효과적으로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도 제조업과 금융업 구분 지킨다"

정 전 총장은 "미국도 제조업과 금융업의 구분을 아직 지키는데 우리는 금산분리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위험회피를 위해서는 양 산업의 구분을 지켜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금산분리 완화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가 강조하는 것은 '정직과 투명성'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국가도 정직하게 운영돼야 한다"며 말을 맺었다.

한편 정운찬 전 총장의 차기 국무총리설에 대해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강연회 모두에서 "정 전 총장에게 '전화 온 것도 없다. 갈 생각도 없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날 강연회는 희망제작소 부설 농촌희망본부 주최로 작년 10월부터 열린 기획강좌의 하나로, 희망제작소 희망모울(강의실)에서 열렸다. 앞으로 남은 두 번의 강연회에는 정진승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장과 신동환 KBS플러스 사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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