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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청수 가는 곳에 '피바람' 불었다"

[추적] '05년 부산APEC, '06년 대추리 강경 진압의 주역

"폭력 시민이었기 때문에 강경 진압했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지난 2일 자유선진당 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 달 1일 있었던 경찰의 촛불 집회 폭력 진압을 놓고 이렇게 말했다. 경찰의 방패, 군화로 피해를 입은 시민이 수십 명인데도 그는 이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시민의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이런 어 경찰청장의 발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가 어떤 경찰이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앞으로 보겠지만 최근 몇 년간 경찰의 폭력성이 문제가 되는 현장에는 늘 그가 있었다. 말 그대로 "어청수 가는 곳에 피바람이 불었다."

어청수 청장은 바로 2005년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반대 시위, 2006년 평택 미군 기지 반대 시위를 강경 진압한 당사자다. 시민의 집회를 진압하는 데 장기를 발휘해온 그가 이명박 대통령 밑에서 '물'을 만난 것이다. 어 청장이 있는 한 앞으로도 항상 시민은 경찰만 보면 공포에 떨어야 할지 모른다.

2006년 대추리 피바람
▲ 최근 몇 년간 경찰의 폭력성이 문제가 되는 현장에는 늘 어청수 총장이 있었다. 말 그대로 "어청수 가는 곳에 피바람이 불었다." ⓒ뉴시스

어청수 총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경찰 고위직을 역임하며 강경 진압의 진수를 보여줬다.

2006년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이었던 어청수 총장은 평택 미군 기지 확장을 위해 대추리 마을 주민을 폭력적으로 내모는 책임자였다. 2006년 5월 어 총장은 '여명의 황새울'이라는 작전을 지휘하면서 숱한 폭력 사태를 낳아 주민·시민단체의 반발을 샀다. 당시 경찰 진압 과정에서 주민·시민 630여 명이 강제 연행되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관련 기사 : 전쟁터 같은 대추리…주민들 밀리며 오열 )

당시 인권침해진상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보면, 경찰 폭력 피해자의 19%가 중상을 입었고 피해자의 63%가 머리에 부상을 입었다.이는 경찰이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하고자 무차별 폭력을 행사했음을 의미한다. 당시 피해자 증언을 보면, 경찰은 지난 1일 진압과 마찬가지로 도망가는 이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했다.

2005년 APEC 강경 진압

어청수 청장은 지난 2005년 11월 18, 19 양일간 부산에서 열렸던 APEC 정상회의 당시에도 부산경찰청장으로서 경비와 테러 대비 임무를 총괄했다.

어 총장은 APEC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철저히 봉쇄했다. 우선 그는 보수단체가 낸 집회 신고를 사전에 허가하는 방법을 이용해 APEC 반대 시위를 사전 차단했다. 또 APEC 전담 경비 부대를 만들어 경비 체계를 강화하고 해운대 정상회의장 등 네 곳을 '특별 치안 구역'으로 정해 집시법 위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1차 정상회의가 열렸던 11월 18일에는 벡스코 회의장으로 진입하는 수영강 3호교에서 경찰 7000여 명과 반APEC 구호를 외치는 시민 2만 여명이 대치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경찰은 컨테이너박스 10여 개를 이중으로 쌓아 시위대의 진입로를 차단하고 30개 중대 병력(3000여 명)을 배치하며 원천 봉쇄했다.(☞관련 기사 : 아펙반대 대회 충돌…시위대도 경찰도 부상자 속출)

당시에도 1일처럼 '물대포'가 등장했다. 시민 수십 명이 밧줄로 컨테이너 박스를 묶어 끌어내리자 경찰은 물대포를 시위대에게 쏘며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30여 명이 부상을 입었고 전경 3명도 컨테이너박스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었다.

시대착오적 진압 방식, OUT!

불법 시위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2003년 134건, 2004년 91건, 2005년 77건, 2006년 62건, 경찰청 자료) 속에서 어청수 총장의 이같은 강경 진압 태도는 명분도 없고 과도한 조치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어 총장은 전혀 변화할 기미가 안 보인다.

어 총장이 올해부터 축소, 2012년 폐지될 예정인 전·의경 제도를 놓고도 "2만 명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 것은 그 단적인 예이다.

이번 1일 경찰이 부른 폭력 사태는 이런 어 청장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줬다. 어 총장이 있는 한 한국의 경찰은 절대로 '선진화'할 수 없다.
해바라기 어청수…경찰 내에서도 '눈총'

전 방위적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어청수 경찰청장은 지나친 정치 지향성으로 경찰 내에서도 '해바라기'라는 비판이 많다.

어청수 청장은 지난 1992년 서울 강남경찰서 정보과장을 지내며 당시 민자당 비례대표였던 이명박 대통령과 교분을 맺기 시작했다. 당시 어 청장은 이 대통령에게 '비례대표 대신 서울 종로와 같은 큰 지역구에 가서 정치를 하라'는 조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일선 경찰서 과장 때부터 정치 감각이 남달랐던 것.

이런 남다른 정치 감각 덕분인지 어청수 청장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까지 승승장구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으로 낙마한 홍영기 서울경찰청장의 빈자리를 꿰찬 어 청장은 '참여 정부의 이념'을 구현하는 데 맨 앞에서 앞장섰다.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 논란을 빚던 2007년 12월, 어청수 청장이 심야에 경찰 9명과 전·의경 20명을 동원해 서울지방경찰청 기자실을 폐쇄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어 청장의 이런 조치를 놓고 당시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도 "우리 방안과는 거리가 먼 것이으로 강제 폐쇄를 지시한 적이 없다"면서 "어 청장이 왜 '오버'하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어청수 청장은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넘어가자 재빠르게 변신을 꾀한다. 그는 경찰청장 후보자 시절이던 지난 1월 29일 서울 은평구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모임에 참석했다. 당시 최고 실세였던 이재오 전 의원을 비롯해 노재동 은평구청청장, 이기태 전 은평경찰서장 등 은평구 '실력자'들이 총 출동한 이 모임을 놓고 총선 중립 시비가 불거지기도 했다.

결국 경찰청장에 오른 어청수 청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시위 진압 부대 부활', '불법 시위 엄단' 등을 내세우며 변화한 '코드'를 구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한나라당 홈페이지 해킹 사건은 불과 이틀 만에 득달같이 처리하면서 경찰의 폭행 사건을 놓고는 '조사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만 흘러나오는 것도 어 청장의 '정치성'이 반영됐다는 지적이다.

현재 경찰은 "현장 부대와 가해자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이는 말도 안 되는 해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여대생 머리를 군홧발로 밟는 동영상에는 기자의 카메라를 막아서는 기동단 부단장급 경정의 얼굴이 뚜렷하게 찍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류에 편승해온 어청수 청장이 있는 한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난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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