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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준 자료라는 얘기는 왜 쏙 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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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삼성이 준 자료라는 얘기는 왜 쏙 뺐니?"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세계 경쟁력 순위'의 실체

노사관계가 "세계 꼴찌"라고 한다. 노동부가 낸 자료를 보고 <연합뉴스>가 그랬다. 무슨 근거로 그랬을까?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노동부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08년도 세계 경쟁력 연차보고서를 분석해 "우리나라의 노사관계 생산성은 조사 대상국 55개국 중 최하위인 55위"라고 밝혔다. <연합뉴스>는 노동부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껴 "노사관계 생산성 세계 꼴찌"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한국이 노사관계 세계 꼴찌"라는 IMD의 실체는?

IMD는 스위스 로잔에 있는 경영자 교육기관이다. 알루미늄 회사인 알칸(Alcan)이 1946년에 만든 IMI와 식품회사인 네슬레(Nestle)가 만든 IMEDE가 합해져 1990년 출범했다. 1989년 세계경쟁력보고서(World Competitiveness Yearbook)를 처음 낸 이래 매년 같은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해 이를 언론에 알리는 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홍보해왔다.

IMD 홈페이지에 가면 2008년 세계경쟁력보고서를 맛볼 수 있다. 여기서 "볼 수 있다"가 아니라 "맛볼 수 있다"고 쓴 것은 말 그대로 다 보지 못하고, 일부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영자 교육기관답게 돈을 내면 다 볼 수 있다. 얼마를 내면 될까? 개인은 800스위스 프랑, 한국 돈으로 80만 원이다. 기업이나 정부에서 돌려 보려면 각각 5760프랑과 3000프랑을 내야 한다.

누가 IMD 세계경쟁력보고서를 돌렸나?
▲ 노사관계가 "세계 꼴찌"라고 한다. 노동부가 낸 자료를 보고 <연합뉴스>가 그랬다. 무슨 근거로 그랬을까? ⓒ프레시안

노동부는 우리 돈 300만 원을 주고 사보았을까? 그런 다음 영어로 써진 <세계경쟁력보고서>를 꼼꼼히 분석해 "노사관계 생산성이 최하위"라고 홍보했을까?

스위스에서도 5월 15일자로 자료가 나갔던 IMD 보고서를 노동부가 어떻게 알고서 자료까지 낸 것일까?

가능성은 두 가지 뿐이다. 첫 번째 가능성은 삼성경제연구소로부터 자료를 직접 받은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IMD 세계경쟁력보고서의 한국 파트너다.

두 번째는 기획재정부의 경쟁력전략과가 만든 'IMD의 2008년 세계경쟁력 평가 결과 분석'이라는 제목의 8페이지 짜리의 보도자료를 마치 노동부가 분석한 것처럼 재가공해 언론에 돌린 것이다.

'국가경쟁력지수' 국무총리 훈령을 아시나요?

원래 IMD의 한국 파트너는 경쟁력평가원이었다. 2002년 5월 만들어진 경쟁력평가원이 IMD와 관계를 맺은 것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핵심에는 정진호 원장이 있다. 정 원장은 1991년부터 2001년까지 재벌들의 이익단체인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에서 활동한 경력을 갖고 있다.

정진호 씨가 원장으로 있는 경쟁력평가원의 활발한 노력으로 IMD 세계경쟁력보고서가 한국에서 언론과 정부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2004년 4월 국무총리훈령(제452호)으로 '국가경쟁력 분석 및 국제평가지수 제고에 관한 규정'이 만들어진다.

이 훈령 제2조는 정부가 중점 관리할 국제평가지수로 모두 17개를 지목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과학기술, 건설교통, 에너지, 노사관계, 보건, 교육 등 6가지의 경쟁력 지표를 스위스의 사설기관인 IMD가 만드는 세계경쟁력보고서로 가름하도록 돼 있다.

전체 내용(full text)은 아무도 모른다?!

문제는 IMD 보고서의 전체 내용(full text)은 누구도 본 적이 없다는 데 있다.

IMD의 한국 파트너인 삼성경제연구소도 못 봤고, 여기서 받은 자료를 번역해 보도자료를 낸 기획재정부도 못 봤다. 물론 노동부는 삼성경제연구소가 전해준 영문 자료조차 보지 못했을 것이다. "노사관계 6년째 세계 꼴찌"라고 보도한 <연합뉴스>가 이런 사실을 알았을 리는 더더욱 없다.

왜 아무도 보지 못했느냐?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 전체가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고서의 전체 내용은 6월이 되어야 볼 수 있다고 한다.

IMD의 노사관계 지표? 기업인들만의 설문 결과일 뿐!

IMD의 세계경쟁력보고서는 모두 331개 항목을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77개는 배경정보로만 활용되고, 나머지 254개 항목을 토대로 국가별 경쟁력 순위가 매겨진다. 이 254개 항목 가운데 131개는 정부 통계 등의 수치로 만들어진 객관적 데이터고, 나머지 123개는 설문조사를 통해 이뤄지는 주관적 데이터다.

조사대상 55개 나라 가운데 55위를 차지한 "노사관계 생산성" 항목은 객관적인 데이터나 통계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단지 한국에서 활동하는 국내외 기업인(!)들만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근거한 수치일 뿐이다.

IMD 설문 조사에 대한 답변은 1점에서 6점까지 점수를 부여한다. 설문조사에 응한 기업의 CEO나 경영자가 몇 점을 주느냐에 따라 "한국 노사관계의 생산성 경쟁력"이 결정되는 구조인 것이다. IMD는 2008년 보고서를 위해 55개국 3960명으로부터 2008년 1월부터 3월까지 응답을 받았다고 한다. 국가별로 72명 꼴이다.

IMD 홈페이지를 보면 설문조사는 국제 경험을 가진 기업인을 대상으로 이뤄지며, 국가별 경제규모를 갖고 응답자 수를 조정한다는 설명만 있을 뿐이다. 어느 분야에 종사하는 기업인 몇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한국 기업인이 몇 명인지, 외국 기업인이 몇 명인지 같은 설문 조사의 기본 요소는 흔적도 없다.

더 큰 문제는 보도자료를 만든 정부도, 이 자료를 그대로 기사화 한 <연합뉴스>의 기자도 "노사관계의 생산성"을 묻는 설문조사의 질문이 대체 무엇이었는지를 본 적 없다는 사실이다. 그냥 삼성경제연구소가 보낸 영문 자료를 정부는 열심히 번역해서 냈고, 연합뉴스는 이것을 그대로 받아썼을 뿐이다.

"노사관계의 생산성"은 또 뭔가?

노사관계는 말 그대로 '관계'다. 관계는 상대가 있는 것이고 이점에서 양적 수치로 환원하기 어렵다. 노사관계에는 노(勞)와 사(使)라는 상대가 있다. 노사관계가 생산적인지 비생산적인지에 대한 판단은 노사 간에 다르고, 회사마다 다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노사관계의 생산성을 묻는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또한 조사방법의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다. 이런 복잡다기한 문제를 과연 많아야 100명 안팎의 기업인들만을 상대로 했을 설문조사로 평가할 수 있을까? 주관적인 판단을 위주로 하는 설문 조사는 질문을 어떻게 작문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인데 말이다.

더욱이 노사관계는 기업이나 국민경제의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이지, 노사관계 자체가 생산성을 측정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 삼성이 준 자료라는 사실은 왜 뺐나?

IMD의 세계경쟁력보고서 자료가 삼성경제연구소로부터 받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획재정부나 노동부 자료 어디에도 삼성의 'ㅅ' 자도 안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 정부를 뺀다면, 세계 어느 나라 정부가 스위스 민간기관인 IMD의 지표를 훈령에까지 넣어 챙기고 있을까? 2004년 IMD의 지표를 담은 국무총리 훈령을 만들 때 정부 관료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무엇보다도 "노사관계의 생산성"을 묻는 질문은 어떤 내용이었을까? 어떤 일에 종사하는 몇 명이나 그 질문에 응답을 했을까? 노동부는 관련 자료를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직접 받았을까? 아니면 기획재정부의 자료를 재탕한 것일까? 한국의 언론들은 IMD 보고서의 객관성과 과학성을 어떻게 보기에 대대적으로 다루는 것일까? 도대체 "노사관계의 생산성"이라는 게 있기나 한 것일까?

세계 10대 경제강국이 자기 나라 경쟁력조차 측정하지 못해서 스위스라는 나라의 경영자 양성기관의 지표를 빌려 쓰는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농림부의 대미 소고기 협상문 오역의 파동이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국가경쟁력을 팔아 해마다 되풀이 되는 IMD의 홍보 쇼를 보며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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