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기망의 협상"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기망의 협상"

[송기호 칼럼] 30개월령 제한 해제는 파기돼야 한다

어제 국회 청문회에서 드러난 사실관계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의 새 사료 조치의 진실을 알지 못한 채, 지난 4월 18일에 미국산 쇠고기 협상을 타결해 주었다.

그런데, <쇠고기에 관한 한미 협의 합의요록>(Agreed Minutes of the Korea - United States Consultation on Beef)을 보면 이런 문항이 있다. 이 합의 요록은 다섯 장 분량의 문서로, 그 말미에는 한국과 미국을 대표한 민동석 차관보와 엘렌 테프스트라 차관보의 서명이 되어 있다.
The United States reported that, for some time, it has been considering strengthening its 1997 feed ban and is now in the final stages of the rulemaking process under the U.S. Administrative Procedures Act....Korea stated that no later than April 22, 2008, the Ministry for Food, Agriculture and Fisheries will publish for public comment (…) If the United States has publicly announced its enhanced feed ban regulation during the public comment period, Korea stated that it will expand the coverage of the new protocol (…) to also provide access for beef and beef products 30 months and older. (미국은 1997년 사료금지 조치강화를 상당기간 검토했다는 점과 현재 미 행정절차법에 따라 입법 최종 단계에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 한국은 농림부가 2008년 4월 22일까지는 입법예고 공고를 할 것이라고 했[다] (…) 미국이 (한국의) 입법예고 기간 중 강화된 사료조치를 공고할 경우, 한국은 새 위생 조건을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 수입 허용에도 적용하겠다고 했다.)

위 합의요록은 참으로 중요한 사실을 드러낸다. 한국과 미국은 합의 당시의 시점에, 미국의 사료 조치 공고가 매우 임박했다는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위 문항에 쓰인 대로, 한국은 4월 18일 협상 타결시에 이미, 한국의 입법예고 기간 중에 미국이 새 사료 조치를 공고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미국은 한국이 입법예고를 공고한 날로부터 불과 사흘 후인 4월 25일에 사료 조치를 관보 공고하였다. 이 시점은 협상 타결 날짜로부터 불과 7일후였다. 그러므로 협상 타결의 시점에, 미국의 새 사료 조치는 그 내용이 사실상 확정되어 있었고, 한국은 그 사료 조치의 공고가 매우 임박했음을 잘 알고 있었다고 봄이 맞다.

그러므로 미국은 한국과 협상 당시, 한국에게 자신이 공고할 사료 조치의 핵심을 설명해 주어야 마땅했다. 비유하자면, 우리가 아파트를 한 채 산다고 하자. 그런데 실은 그 아파트를 대상으로 불과 7일(위 사료 조치 공고까지의 기간인 7일과 같은 날자)후에 경매가 들어올 예정이었다고 하자. 만일 아파트의 매도인이 이를 매수인에게 고지하지 않은 채, 매수인을 유인하여 아파트 계약을 한다면 이는 정당한가? 한국과 같은 대륙법계에서는 이를 기망에 의한 계약으로 불러 파기 대상으로 본다.

영미법의 계약법에서도, 허위 진술의 법리(misrepresentation)가 있다. 어느 계약 당사자가 사실관계에 관한 그릇된 진술(untrue statement of fact)로써 타방을 유인하여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그 계약은 파기가능하다. 여기에는 대략 두 개의 유형이 있다. 하나는 신뢰관계에 어긋나는 부주의한 허위 진술(negligent misrepresentation)이다. 다른 하나는 적극적인 허위 진술을 제공하는 사기 허위진술(fraudulent misrepresentation)이다.

국가 간의 조약을 규율하는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서는, 다른 교섭국의 기만적 행위에 의하여 조약을 체결하도록 유인된 경우에는 조약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49조) 동시에 협약은 조약에 대한 국가의 동의의 본질적 기초를 구성한 것에 관하여 착오가 있는 경우 조약을 파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 48조)

다시 위 합의요록으로 돌아가 보자. 과연 위 합의요록에서 미국이 한국에게 설명하였다고 하는 사료 조치는 무엇이었을까? 미국은 불과 7일 후면 공고될 새로운 사료 조치의 내용을 한국에게 설명했을까? 아니면 입을 다물었을까?

자세한 사실관계는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다만, 어제까지의 국회 청문회에서 나온 사실관계로 볼 때는, 미국은 입을 다물었고, 한국은 필요한 설명을 제공받지 못했다고 보인다. 한국은 2005년 입법예고된 내용으로 공고될 것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국 정부가 지난 5월 2일 다음과 같은 문제의 발표를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30개월 미만소라 하더라도 도축검사에 합격하지 못한 소의 경우 돼지 사료용 등으로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 사료로 인한 광우병 추가 감염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임.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관련 문답자료' 2면)

바로 위 내용이 오역의 결과라고 하지만, 오역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본질은 한국이 미국이 공고한 사료 조치에 대하여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30개월령 제한 해제를 풀어주었던 것이다.

미국이 협상 타결 후 7일 만에 전격적으로 공고한 사료조치는 2005년 입법예고된 사료 조치는 전혀 다른 것으로서,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사료 조치의 핵심은 광우병 원인 물질인 변형 프리온이 닭과 돼지의 사료를 거쳐 다시 소에게 옮겨지는 이른바 교차오염을 막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히 죽은 소(dead), 죽어가는 소(dying), 병에 걸린 소(diseased), 일어서지 못하는 소(disabled) 곧 미국 관보에서 '4D'라고 말하는 소에 대해서는 일체 동물사료로 제공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4D' 소에서도 기립불능소와 같은 광우병 고위험성 우군(cattle population)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한 사료화 금지를 해야 한다. 그러므로 미국이 지난 2004년 7월 14일에 공고한 관보에서 다음과 같이 위험 우군 일체를 소 사료로 금지시킬 것을 입법예고 예정 공지를 한 것은 정당했다.
As previously discussed, the Harvard-Tuskegee Study showed that prohibiting rendering of animals that die on the farm would reduce the potential cases of BSE following hypothetical exposure by a further 82 percent from the base case scenario. Thus, FDA is evaluating the need to prohibit materials from non-ambulatory disabled cattle and dead stock from use in all animal feed. (앞에서 보았듯이, 하버드 대학의 연구에 의하면, 농장에서 폐사한 소를 동물에게 사료로 먹이는 것을 금지하면 가설적 감염에 따른 광우병의 잠재적 발병을 기초 발병 시나리오보다 82 퍼센트 이상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미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기립불능 장애소와 폐사우를 모든 동물사료에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할 필요성을 평가하고 있다.) (69FR42298)

그러나 미국의 동물성 사료처리 업체와 축산업은 이러한 FDA의 방침에 반발하였다. 왜냐하면 기립불능소와 폐사우야말로 사료 처리화의 기본 원료일 뿐 아니라, 사료로 처리되지 못할 경우, 그 처리 비용은 고스란히 축산업자들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반발에 부딪힌 FDA는 2005년에, 바로 이 사건 문제의 입법예고를 하여 크게 후퇴하기에 이른다. FDA의 가장 큰 후퇴는 기립불능소와 폐사우, 곧 '4D' 소의 동물 사료 처리를 허용하는 것이었다. 다만, FDA는 그 뇌와 척수는 연령에 관계없이 제거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를 위해 FDA가 만든 개념이 바로 논란이 되었던 문제의 "cattle not inspected and passed for human consumption"(도축검사 불합격소)이었다. 이 개념은 2004년 FDA의 식품 규정(69FR1862)에서, 식용 목적 도축 합격 쇠고기에는 "inspected and passed"(도축 검사 합격) 표시를 하도록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FDA는 원래 식용 목적 쇠고기에 관한 위 개념을 동물사료 조치 규정에 차용하였다. 그래서 소를 도축 검사 합격 소와 그렇지 못한 나머지 소(cattle not inspected and passed)로 양분하였다. 그 결과 앞에서 본 4D 소의 부정적 어감은 도축검사 불합격소라는 개념 밑에 감추어졌다. FDA는 가장 쟁점이 되었던 기립불능소가 여기에 포함한다는 것을 명시하였다. 그러므로 앞에서 본 도축 검사 불합격 소는 단지 도축 검사장에서 불합격 처분을 받은 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본 4D 소 전체, 그러니까 죽은 소, 죽기 직전의 소, 병든 소, 기립불능 소를 모두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FDA가 위 2005년 입법예고에서 4D소 사료처리 허용으로 후퇴하면서도, 연령에 관계없이 뇌와 척수를 제거하라고 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이에 대하여 FDA는 다음과 같이 입법예고에서 직접 설명하였다.
These findings suggest that cattle not inspected and passed for human consumption are more likely to test positive for BSE than healthy cattle that have been inspected and passed for human consumption. Because cattle not inspected and passed for human consumption are included in the population of cattle at highest risk for BSE, and processes are currently not established in the rendering industry for verifying the age of such cattle through inspection, the agency is proposing to define brains and spinal cords from all cattle not inspected and passed for human consumption, regardless of age, to be cattle materials prohibited in animal feed (이러한 연구 결과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도축 검사 불합격 소들은 검사 합격한 건강한 소들에 비해 광우병 양성 반응이 나올 가능성이 더 높다는 점이다. 도축 검사 불합격 소들은 광우병 위험 최고 우집단에 포함되고, 사료 처리화 업계가 그러한 소를 검사 과정에서 월령을 확인할 공정이 현재 마련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FDA는 소의 연령에 관계없이 도축 검사 불합격 소들에 있는 뇌와 척수는 동물사료 사용을 금지한다.) (70FR58578)

그런데 이와 같은 고위험군 소의 심각성은 우리 정부도 잘 알고 있었다. 앞에서 본 문제의 '문답 자료' 5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럽연합의 사례에서 고위험군 소의 검사는 정상 소에 대한 검사보다 광우병 확인 사례가 29.4배 높다고 알려져 있음.

그러나 미국이 막상 공고한 사료 조치는 이와 전혀 달랐다. 가장 핵심적이고 대부분의 영역을 구성하는 30개월령 미만의 소를 뇌 척수 제거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아시다시피, 미국에서 도축되는 소의 약 90% 가까이가 30개월 미만이다. 그리고 4D 소의 경우, 대부분 30개월령 미만이다. 왜냐하면 미국 축산업자의 입장에서는 병들거나 기립불능 소를 굳이 30개월이 넘도록 계속 사육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30개월령 미만의 소에서 나온 뇌와 척수를 동물사료로 허용한 것은 사실상 사료 조치의 근간을 포기한 것이다. 뇌와 척수야말로 정부 스스로 인정하듯이 광우병 원인 물질인 변형 프리온이 90% 가까이 집적된 곳이다. 공고된 사료 조치는 사료 조치로서의 의미를 잃은 것이다. 입법예고된 사료조치와 공고된 사료조치의 차이는 마치 100평의 논을 팔기로 해 놓고는 실제로는 10평의 논을 판 것과 같다.

어떤 이는 입법예고된 사료 조치와 공고된 것의 차이는 실제로 없다고 주장하거나 혹은 오히려 공고된 조치가 더 강화된 것이라고 말한다. 30개월령 미만의 뇌와 척수는 광우병 위험부위가 아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서로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도축 검사를 합격한 건강한 소와, 고위험군 4D 소에서의 광우병 위험 부위가 갖는 의미가 같을 수 없다. 만일 한국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광우병에 걸린 소라도 30개월령 미만이면 뇌와 척수를 먹어도 된다.

심지어 공고된 사료조치에는 광우병에 걸린 소를 사료로 쓰지 못한다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오히려 공고된 사료 조치가 강화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광우병에 걸린 소를 동물사료로 쓰도록 허용하는 경우는 없다. 입법예고된 사료 조치도 마찬가지이다.

영어 오역이 문제가 아니다. 공무원의 영어 능력은 전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한국은 협상 타결 당시에 미국의 사료조치 공고가 임박했다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은 공고될 사료 조치의 내용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고, 그런 상태에서 협상 타결을 해 주었다.

미국이 협상 타결의 마지막 시점까지도 공고될 사료조치의 진실을 한국에게 알려 주지 않았을 개연성이 높다. 설령 그 내용을 묻는 한국 공무원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잘못은 덮어지지 않는다. 만일 이러한 사실관계가 맞다면, 이 협상은 기망의 협상이다. 그렇다면 30개월령 제한 해제는 파기되어야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