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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진 '밀실 심사' 이젠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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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진 '밀실 심사' 이젠 달라져야 한다"

[인터뷰] '학진 심사자료 공개' 이끌어낸 강철구 교수

그간 베일에 싸였던 학술진흥재단(학진) 심사 과정이 공개될 길이 열렸다. 앞으로 이 기관의 주관 사업에 지원한 연구자들은 원할 경우 심사 서류를 볼 수 있다.

대법원은 최근 이화여대 강철구 교수(사학과)가 학진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학진 측의 상고를 기각했다. 그간 심사 관련 서류 공개를 거부해온 관행이 잘못됐음을 법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학진은 정부가 출연한 재단법인으로 매년 수천억 원에 달하는 국고를 기초 학문 분야에 지원하고 있다. 연구자가 계획서를 제출하면 학진이 위촉한 심사위원이 지원 과제를 최종 선정한다. 그러나 학진은 지원자 본심 심사평 외에 다른 연구자의 심사 관련 서류는 공개하지 않아 왔다.

이런 사정 탓에 그간 많은 연구자는 학진의 심사에 납득이 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심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시정을 요구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 불이익이 두려워 문제제기를 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결로 학진은 앞으로 불공정한 심사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연구자가 정보 공개를 요구하면, 예비 심사, 본 심사, 종합 심사 등의 심사 관련 서류 전부를 공개해야 한다.

<프레시안>은 이번 소송 당사자인 강철구 교수를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민족미래연구소에서 만나 그가 왜 이번 소송을 제기했고 이번 판결의 의미는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학진 심사 공정성 신뢰할 수 없다"
▲ 이화여대 강철구 교수(사학과). ⓒ프레시안

프레시안 : 학진을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제기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들었다. 그 배경이 궁금하다.

강철구 : 2005년도에 학진이 주관하는 기초학문육성사업의 인문사회분야에 연구계획서를 제출했다. 심사에서 탈락했다. 그런데 심사가 진행되기 이전부터 내정자가 있다느니 담합이 있다느니 하는 소문이 있었다. 심사 결과를 보니 수년 전부터 학진의 지원을 계속 받고 있는 연구소가 또 지원을 받게 됐다.

그 연구소가 제출한 두 개의 연구는 유사하고 내용도 부실해 보였지만 3년씩 지원이 결정되어 향후 3년간 서양사 분야 지원액의 근 절반을 차지하게 되어 있었다. 채택된 다른 두 주제는 1년짜리에 불과했다. 심사의 편파성과 불공정성이 뚜렷하게 보였다.

여러 차례에 걸쳐 이의를 제기하고 심사 관련 서류 공개를 요구했다. 그러나 학진은 이를 거부했다. 그래서 결국 심사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고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프레시안 : 이번 소송의 결과로 강 교수의 연구 과제와 최종 선정된 연구 과제의 심사 관련 서류가 공개된다. 이 정보 공개가 왜 중요한가?

강철구 : 앞에서 얘기한 대로 지금까지는 심사 결과가 발표된 후, 함께 지원했던 다른 계획서의 내용이나 그것의 심사평을 볼 수 없었다. 선정 과제가 무엇인지 정도만 알 수 있었을 뿐이다. 이의 신청을 해도 다른 계획서의 내용은 절대로 언급을 하지 않는다. 심사위원이 대답할 사안이 아니라고 발뺌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어떤 계획서도 결점을 지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다른 계획서와 비교해서 비교 열위에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심사의 공정성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이번 공개로 그것을 뒤늦게라도 비교, 확인할 길이 열렸다.

"밀실 심사와 행정편의적 제도가 문제"

프레시안 : 연구자가 학진 심사 과정이나 심사 결과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럴 때 연구자는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나?

강철구 : 일단 본인의 연구 계획서에 대한 본심 심사평을 볼 수 있다. 1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계획서를 제출했는데, 학진의 본심 심사평은 매우 허술했다. 10여 줄에 불과했다. 계획서를 제대로 읽지 않고 쓴 것 같았다. 이의 신청을 하면 기존 심사 위원이 계획서, 심사평을 검토해 답변을 해준다. 그러나 기존의 결정을 확인하는 수준이다.

학진의 이런 태도에 연구자는 불만을 갖고 있지만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기 어렵다. 불만을 제기했다 현직 교수인 심사위원의 심기를 건드릴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같이 인맥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이들이 교수 채용 등에 불이익을 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학진의 논문 심사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는가?

강철구 : 우선 심사위원의 재량권이 너무 크다. 그러나 그것을 적절히 제어할 제도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심사가 밀실에서 담합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를 하곤 한다. 이번 심사에서도 이러한 행태가 나타났을 가능성이 크다.

심사 제도도 문제가 있다. 연구자의 이의 신청에 심사위원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심사 결과를 바꿀 방법이 없다. 심사위원이 의도적이건 아니건 잘못된 판정을 한 경우라도 말이다. 앞에서 얘기한 대로 그들은 이의 신청을 해도 이미 내린 결정을 확정해줄 뿐이다. 심사가 잘못됐을 때 이를 바로잡을 내부 기구가 없다는 것은 문제다.

"심사의 공정성 확보와 연구비의 적절한 배분 가능해질 것"

프레시안 : 이런 판결이 학계에 어떤 중요한 의미를 갖는가?

강철구 : 학진이 주관하는 기초학문육성지원사업은 현재 인문사회분야에서 연구자에게 가장 큰 수혜를 주는 사업이다. 규모도 매우 크고 1인당 수혜액도 많다. 중형 프로젝트는 연간 연구비가 약 3억, 소형 프로젝트는 약 1억 5000만 원에 이르고 연구원 1인당 수혜액은 3000만 원이다.

다른 각종 연구의 연구원 1인당 수혜액은 약 200~500만 원에 불과하다. 연구비의 수혜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문 분야에서 이 사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사업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심사의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또 인문학, 특히 서양사 분야는 지원을 받아야 하는 미연구 분야가 산적해 있다. 이번 판결이 특정 연구주제나 연구소에 수혜가 편중되는 상황을 개선해 연구비가 고르게 배분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학술진흥재단은…

정부 출연으로 1981년 설립된 재단법인이다. 인문사회, 기초과학 등의 기초학문 분야에서 대학의 연구활동과 인력양성을 지원하고 있다. 연간 우수연구지원, 특정목적사업, 국제교류 사업, BK21 사업 등 여러 사업을 주관하고 연구지원규모는 수천 억 원에 이른다. 연구비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기초학문 분야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큰 액수의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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