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1년 전에 했던 말이다. 농림부의 '국민과 함께 하는 업무 보고대회' 자리에서였다. 농업문제도 "시장 안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라는 말이었다. 노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해서 농업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봉하 마을 행 채비에 바빴을 올 1월, 중국은 옥수수, 밀, 콩 등 주요 곡물 수출에 수출세를 부과했다. 그리고 밀가루, 쌀가루, 옥수수 가루에 수출 허가제를 도입했다. 사실상 수출을 금지한 것이다. 중국 국내 곡물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음으로써, 중국 국내 곡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조치였다.
올 5월이면, 한국의 아이들이 먹는 과자, 음료수, 아이스크림에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원료로 사용하게 된다. 유전자를 조작하지 않는 자연 상태의 옥수수를 더 이상 현 시세로는 수입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조선일보>에 "눈앞에 닥친" 식량 안보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는 칼럼이 등장했다. 글의 제목이 바로 'GMO 안전성 믿어야 한다'였다.
오늘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현실은 단순히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는 그런 일시적 경제 순환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 생활의 재구성이라는 근본적인 도전이다. 유전자 조작 옥수수 수입 계약을 체결한 국내의 대기업 식품 회사들은 유전자 조작 식품을 이제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매우 솔직한 말이다.
지금 세계 경제의 가장 큰 특징은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제조업과 경제 활동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상황은 일본과 서독이 세계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던 지난 1970년대와는 전혀 다르다. 인도와 중국의 추계 인구만 합해도 거의 25억 명에 육박한다. 이들 거대 나라의 맹렬한 제조업 성장 결과, 세계 경제의 균형점은 값 싼 자원에서 귀한 자원으로 이미 이동했다. 이제 그 다음이 식량이다.
지금의 식량 위기는 일시적이지 않다. 경제 성장 결과 세계의 육류 소비는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육식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더 많은 곡물과 물이 필요하다. 일찍이 1909년, 대한제국 시기에 이 땅의 농업을 견학하러 왔던 미국인 프랭클린 킹은 한국인이 소를 고기로 식용하지 않은 문화를 존경하면서 이렇게 썼다.
"소에게 곡물 100파운드(약 45㎏)를 먹일 경우, 그 가운데 4파운드(약 1.8㎏)만을 인간이 섭취하게 된다. 곡물로 가축을 길러 그 고기를 먹는 것보다는 인간이 곡물로 먹을 경우, 다섯 배나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다."
곡물을 놓고 인간과 갈수록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은 가축만이 아니다. 세계적 규모의 경제 성장이 촉발한 자원 부족에로의 균형점 이동 결과, 이제 차마저 석유 대신 곡물을 먹고 있다. 미국 등에서 차에 옥수수 에탄올을 먹이다 보니, 옥수수 값이 폭등했고, 그래서 내년 5월부터 우리 아이들이 유전자 조작 과자를 먹게 된 것이다.
지금의 성장을 고집하는 한, 소수의 부자를 제외한 다수는 유전자 조작 식품을 피할 수 없다. 식량을 생산할 농지는 전 세계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물은 갈수록 부족하다. 1970년대의 이른바 녹색혁명이 낳은 단위면적당 수확량 증가 효과는 둔화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1996년부터 2006년까지의 10년 동안, 농지생산성은 13.7%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1년에 1.37%밖에 늘지 않은 것이다(2007 농림통계연보). 같은 기간 동안 1㏊당 농약 사용량이 연간 1.08% 늘어난 것을 고려하면, 농약, 비료, 비닐 제품의 투입을 늘려 농지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한계에 이르렀다.
장차 세계의 농업은 크게 두 개로 나뉠 것이다. 유전자 조작 식품 원료를 대규모로 생산하는 공급 기지와, 그렇지 않은 전통적 방식의 농업을 경영하는 곳으로 나뉠 것이다. 미국이 2007년 3월, 한미 FTA 협상 막판에 '농업 생명공학 양해각서'를 한국에 들이밀어 관철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각서의 제1항에는 사람과 동물이 먹는 유전자 조작 식품이 더 쉽게 한국에 들어오게끔 되어 있다.
이대로라면, 인류도 나뉠 것이다. 유전자 조작 식품을 일상적으로 먹는 다수와 그렇지 않는 소수로. 노 전 대통령이 한미 FTA의 목표로 제시했던 농업의 구조조정이란 얼마나 낡은 단어인가! 세계사적으로 한국의 소농은 결코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다. 한국의 소농이야말로 새로운 세계 농업에서 전통적 농업을 담아 낼 자산이 될 것이다.
식량위기 시대에, 노 전 대통령의 한미 FTA는 낡은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한미 FTA가 아닌 다른 방법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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