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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영남 탈락자들, 눈물 뒤범벅 아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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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내가 왜!?"…영남 탈락자들, 눈물 뒤범벅 아우성

한나라당 공천 현장..."당권에 눈이 뒤집힌 정권 실세의 사주"

14일 아침.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최고위원회 회의장에 도착한 안강민 공천심사위원장은 전날 영남 공천 결과에 대해 일부에서 '학살'이라 표현한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살'이란 표현을 쓰자면 당사 근처엔 온 종일 '시체' 냄새가 진동했다.

한나라당은 평소와 달리 이날 최고위원회 시간과 장소를 기자들에게 예고하지 않았다. 그만큼 영남 공천 발표로 긴장이 고조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들은 최고위원회 장소를 간파하고 미리부터 진을 치고 있었다.

공천에서 탈락한 '박근혜계 좌장' 김무성 최고위원이 굳은 표정으로 최고위원회장에 입장했다. 김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할 것"이라고 예고한 상태.

비공개로 최고위원회가 진행되는 동안 공천에서 탈락한 최구식, 권철현, 송영선 의원 등이 최고위원회 주변에 모습을 드러냈다. 강재섭 대표에게 항의하러 온 것.

당사 기자실에도 공천 탈락 인사들이 '친이', '친박'을 가릴 것 없이 찾아와 줄줄이 기자회견을 열어 공천 탈락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 최고위원회에 참석하는 이방호 사무총장과 취재 중인 기자들. ⓒ뉴시스

억울


친이계로 분류되는 권철현 의원(부산 사상)은 "제가 왜 이 자리에 서야 되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 당의 공천 기준이라는 것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3선 의원인 권 의원은 12년간의 의정활동, 지역에서의 지지도, 당 대변인, 이회창 전 대선후보 비서실장, 국회 교육위원장 활동 등의 당기여도에 대해 구구절절이 소개한 뒤 공천이 내정된 상대 후보(장제원)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권 의원은 "내정자의 아버지는 대학 이사장이고 어머니는 대학 총장이고 형은 대학 부총장, 며느리는 교수"라며 "정말 비리 족벌 사학의 대표적인 곳에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가장 열심히 하고 개혁적이며 도덕적인 나를 자르려면 나보다 더 젊고 개혁적인 사람을 뽑으면 좋겠다"면서 "한나라당이 족벌사학 옹호하는 단체는 아니지 않느냐"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권 의원은 "재심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겠다"고 했지만, 권 의원이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한나라당 최고위는 내정자를 확정해버렸다.

체념

권 의원이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친박계인 김재원 의원이 기자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권 의원이 퇴장하는 길에 잠깐 '동병상련'의 인사를 나눈 김 의원은 "재심청구를 하지 않겠다"며 체념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결과가 달라질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다만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지역 주민들 여론을 알아본 뒤 선택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김 의원은 오히려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지켜볼 예정이고, 내가 필요하면 이명박 정부가 잘 되는 일에 기여할 생각"이라고 다소 의외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 구체적으로 어떤 기여를 할 것이냐?"고 묻는 대목에서는 감정이 북받쳤던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비교적 차분해 보이던 김 의원은 기자들과 따로 만난 자리에서는 "총기난사 공천"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김 의원이 나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자들이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좌장' 김무성 최고위원이 기자실에 나타났다. 순식간에 기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흘리는 김무성 최고위원. ⓒ뉴시스

눈물


김 의원은 준비한 기자회견문과 '부적격 공천' 사례 자료를 배포하고 공천 기준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김 최고위원은 '좌장'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는 듯 한 모습을 보였다. 배포한 자료에는 자파 현역의원 등의 공천 기준에 대한 문제제기가 담겨 있었고, '동료'를 얘기하는 대목에서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동료 지역구 공천의 문제점을 지적한 뒤 자신의 '탈당' 기자회견문을 읽을 때, "10년 동안 고생고생하며 한나라당을 지켜온 아무 하자 없는 동지들은 낙천을 했습니다"라는 대목에서 눈물을 글썽거렸고, "제가 그토록 사랑하고 헌신했던 한나라당이 여기까지 온 데…" 대목에서는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그는 질의응답 시간에 무소속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내 입으로 내가 좌장이라면 뭣 하지만, 대표적 입장에 있다"며 "지난 대선 경선 과정에서 나의 권유에 의해 박 전 대표를 선택한 많은 사람들이 나 때문에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한 것에 대한 책임감이 있기 때문에 그 분들과 상의하겠다"고 말하면서 또 목이 매였다.

하지만 상대(친이계)를 향한 적대감을 나타내는 대목에서는 맹수처럼 두 눈을 번뜩였다. 이미 기자회견문에서 '청와대 밀지 공천'이라고 공격한 김 최고위원은 "청와대 개입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다"며 "현장에서 박희태 공천 배제 주장이 돌발적으로 튀어나오니 청와대에서 박희태를 반대하면 김무성을 같이 걸라고 해서 내가 탈락했다"고 말했다.

적개심

김 최고위원은 특히 공천 문제에 대해 "문제는 사무총장(이방호)과 7월 전당대회에 눈이 뒤집힌 정권 실세에게 사주를 받은 공심위원들이 자격도 없고 당선 가능성도 없는 사람을 공천했다는 것"이라며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다.

안강민 위원장에 대해서는 "비정치인으로 내용도 잘 모른다. 훌륭한 분이라 생각한다"면서도 "박재승 신드롬에 경쟁심이 발생해 이런 대참사를 결정했다고 본다"는 견해도 밝혔다.

김 최고위원은 이어 "통합민주당은 정권을 잃어버린 정당으로 선거 패배에 대한 문책과 분위기 쇄신을 위해 지도급 인사의 교체율을 높일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민주당과 다른 입장인데 한나라당은 지난 10년 동안 노심초사 당을 지켜온 공로를 인정해줘야 할 동지들을 상대 당과 (물갈이) 비율을 맞추기 위해 이런 공천을 했다는 것은 정말 비인간적인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 최고위원은 특히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에 별 공로도 없는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다"고 말하는 등 이번 공천 과정에서 입은 계파 갈등의 내상이 상당히 깊다는 것을 짐작케 했다.

김 최고위원은 추가 질문을 위해 달려드는 기자들을 등 뒤로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당을 떠났다. 탈당 선언을 한 김 최고위원은 이제 언제 다시 당사에 발을 들여놓을지 기약할 수 없게 됐다.
▲ 서청원 전 대표 및 김무성 최고위원 등 친박계 공천탈락자가 14일 점심 서울 여의도 한 일식당에서 모여 향후대책을 논의고 있다. ⓒ뉴시스

자포자기

이어 최고위원회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기 위해 나경원 대변인이 등장했다. 나 대변인은 공심위 공천 내정자 중 8곳만 보류됐음을 알렸다. 영남 공천 탈락자들의 '억울함 호소'가 이어졌지만, 최고위 확정으로 '재심 청구'가 불가능해진 셈이었다. 기자들이 나 대변인에게 '최고위원회 분위기는 어땠냐?'고 묻자 "좋았을 리가 있겠어요?"라고 반문했다.

최고위원회 정원은 9명. 이날 최고위원회에는 강재섭 대표, 안상수 원내대표, 전재희 최고위원, 김학원 최고위원, 한영 최고위원, 김무성 최고위원 등 6명이 참석했다. 공천에서 탈락한 정형근 최고위원은 참석하지 않았다.

또 김무성 최고위원도 준비한 자료를 통해 공천 기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뒤 표결에는 참여하지 않고 자리를 뜨는 바람에 간신히 5명의 의결 정족수를 채워 영남 공천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다만 '친박계'로 분류되는 김학원 최고위원은 기권을 했다고 한다.

복수혈전

나 대변인이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는 역시 친박계 의원으로 공천에 탈락한 이인기 의원(경북 고령.성주.칠곡)이 기자회견장에 올랐다. 무려 A4 4장 분량의 기자회견문을 준비한 이 의원은 "이번 공천은 한마디로 정치보복성 표적 공천, 낙하산 공천의 전형"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작전명'도 붙였다. '박근혜와 그 지지세력 고사작전.'

이 의원은 자신의 의정활동과 지역을 위한 활동을 소상히 소개한 뒤 "공천 내정자는 인구 4만의 성주군 출신으로, 인구 12만의 칠곡 출신인 내가 확실한 주민 대표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이 의원은 "내 요청(재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민주정치를 후퇴시킨 이번 밀실 표적 공천에 대해 지역주민들이 엄중한 심판을 내리도록 하겠다"고 무소속 출마를 시사했다.

오후 들어 당을 찾은 손님은 1984년 LA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유도 영웅' 하형주 동아대 교수. 하 교수는 "당은 나를 두 번 죽였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당초 부산 사하갑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당에서 1차 심사 결과 자신을 전략공천할 듯 사하을로 보내더니 결국 떨어뜨렸다는 얘기다. 하 교수는 사하구 지역 주민들과 동아대의 인연과 지역 연고를 무척 강조했다.
▲ 하형주 교수. ⓒ뉴시스

퇴장


기자회견장 연단에 선 하 교수는 "이 자리에 처음 서보고, 앞으로 설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1984년 금메달을 땄을 때 많은 기자들을 접한 뒤 이렇게 많은 기자들은 처음 접한다"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사 기자실에 혈혈단신 찾아와 기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했던 하 교수는 하고 싶은 말을 다한 뒤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겠다고 했으나 질문이 많지 않아 아쉬운 눈치였다. 그 와중에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이 있었고, 하 교수는 착잡한 듯 "(무소속으로) 나갈 수도 있고, 학교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말하고 쓸쓸히 기자실을 떠났다.

한편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한 낙천 인사 중 가장 결연한 모습을 보였던 권철현 의원은 이날 오후 부산 지역구 사무실에 내려가 당원들에게 입장 설명을 하다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인생이 '희노애락'(喜怒哀樂)으로 채워져 있다면, 이날 한나라당사에는 '노'(怒)와 '애'(哀)만이 가득한 하루였다.

한나라당은 전국 245개 선거구 중 29곳의 공천 심사를 남겨두고 있다. 공심위는 14~15일 쉬고, 서울 '강남벨트'와 강원 일부 지역 등에 대한 심사를 개시한다. 당 주변에서는 또 한 번 폭풍이 몰아칠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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