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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돼지'의 최후가 궁금합니까?"

[홍성태의 '세상 읽기'] 언론의 적

독일의 마지막 전제군주였던 빌헬름 2세가 황제로서 위세를 떨치던 1907년 블라디미르 레오니도비치 두로프라는 러시아인 광대가 독일에서 반역죄를 선고받고 추방되었다. 그는 돼지를 길들여서 연극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바로 이 때문에 반역죄까지 선고받았던 것이다. 대체 어떤 사연인가?

두로프는 서커스 링 위에 독일 장교의 모자-그가 헬름이라고 부르던-를 올려놓았고, 훈련받은 돼지는 그것을 가지러 달려갔다. 두로프는 복화술을 이용하여 마치 돼지가 'Ich will helm' 즉 '나는 군모를 원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하지만 그 소리는 'Ich Wilhelm' 즉 '나는 빌헬름 2세이다'라고도 해설될 수 있었다. 돼지가 당시의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된 것이었다. (<어릿광대의 정치학-두로프의 돼지>, 조엘 쉐흐터 지음(1985), 김광림 옮김(1988), 실천문학사 펴냄, 10쪽)

두로프가 추방되고 20년이 지난 뒤인 1927년 브레히트와 피스카토르는 '라스푸틴'이라는 연극을 공동제작했다. 이 연극에서 두 사람은 독일의 황제였던 빌헬름 2세를 묘사하려고 했다. 이 사실을 안 빌헬름 2세는 이 연극의 상연을 막으려고 했다. 이에 대해 피스카토르는 그에게 직접 무대에 서 줄 수 있겠냐고 제안했다. 그는 피스카토르의 제안을 거절했고, 법정은 피스카토르에게 그를 묘사한 부분을 삭제하라고 명령했다. 그 뒤는 어떻게 되었는가?

매일 저녁 공연마다 그 장면 대신 법정으로부터의 공문이 큰 소리로 낭독되었다. "본 장면은 전(前) 황제를 '완벽한 바보' 그리고 '고집스러운 멍청이'로 묘사하였으므로"라는 공문의 내용이 읽혀질 때마다 관객은 폭소를 터뜨렸다. 법정의 공문은 이 연극이 연일 매진되도록 하는 데 큰 몫을 담당했다. (앞의 책, 14쪽)

최근에 한국의 언론자유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두 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먼저 삼성전자에서 <프레시안>을 상대로 무려 10억 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전자에게 10억 원은 전혀 큰 돈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프레시안>에게 10억 원은 너무나 큰 돈이다. <프레시안>에게 10억 원의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프레시안>에게 폐업을 요구하는 것과 사실상 같은 것이다.

처음에 삼성전자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를 요청했으나 별 소득을 얻지 못했다. 법조인, 언론인으로 구성된 해당 중재부는 중재 과정에서 <프레시안>의 의혹 제기가 정당하다는 의견을 강하게 개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 삼성전자의 소송에 대한 우려는 더욱 더 커진다. 삼성전자는 <프레시안>의 보도 때문에 브랜드 가치가 훼손되었다며 이 소송을 제기했지만, 이 소송이야말로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레시안>에 대한 삼성전자의 소송이 세상을 놀라게 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이번에는 YTN의 '돌발영상'을 둘러싸고 의혹과 우려가 커지게 되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삼성 떡값 명단'에 이종찬 민정수석과 김성호 국가정보원장 내정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표하기 1시간 전에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자체 조사 결과 두 사람의 혐의가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다는 내용을 청와대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설명회를 끝내면서 기자들에게 자기가 이런 말을 하지 않은 것으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돌발영상은 이 설명회의 시말을 보여줘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얼마 뒤에 YTN과 일부 포털 등에서 이 돌발영상이 삭제되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 때문에 한국의 언론 자유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에서 한 직원이 내부 사진 촬영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세상에 권력이 있는 한, 아마도 언론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과 휴대폰 등의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서 수많은 정보가 지구를 실시간으로 오가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을 통제하려는 모든 시도는 사실상 실패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처럼 고도로 발달한 정보통신기술을 거의 모든 국민이 일상적으로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곳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라면, 그 사실은 결국 널리 알려지고 말 것이다. 그것을 막고자 하는 자는 누구라도 결국 '두로프의 돼지'가 되고 말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의 수준이 극히 열악했던 옛날에도 그랬거늘, 오늘날처럼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한 상황에서는 더욱 더 그럴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의 소송은 전형적인 '위축 효과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이 소송의 실제 목적은 10억 원의 배상금이 아니라 <프레시안>을 위축시키는 것이며, 나아가 다른 언론에 대해 강력한 경고의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소송은 우리의 자유와 민주를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소송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편 돌발영상의 삭제는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보도지침'의 사슬을 떠올리게 한다. 청와대 기자들이 YTN 기자들을 징계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경악하게 한다. 이런 식이라면 청와대에 기자들이 있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두 사건의 뿌리에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삼성 재벌이다. 이른바 '삼성 공화국'의 문제가 다시 드러난 것이다.

두로프와 피스카토르에게 조롱당한 빌헬름 2세는 어떻게 되었는가? 1918년에 그는 1차대전에서 패배하고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나 네덜란드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범하게 살다가 1941년에 그곳에서 죽었다. 정치인이건 경제인이건 절대 권력의 몽상에 사로잡힌 자들은 빌헬름 2세의 삶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유쾌한 두로프와 피스카토르는 언제나 어디에나 있으며, 우리에게는 인터넷과 휴대전화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오늘날 언론은 결코 위축되지 않으며, 삭제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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