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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법인세 인하하면 노동자 성과급이 올라간다고?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장관과 언론의 짜고 치는 고스톱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세금 인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 첫날부터 현행 법인세를 25%에서 20%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강 장관은 "대기업 법인세가 경감되면 먼저 기업의 종업원에 대한 성과급 급여가 올라가고, 올라가면 기업 주위 음식점 술집 장사가 잘 될 것"이라며 "(세금으로 갈 돈이) 소액주주 배당으로 돌아가서 소비가 늘어나고 가장 저소득층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에게 득 되는 법인세 인하라고?

생각할수록 참으로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이다. 지금도 대기업이 보유한 현금 보유액은 수십조 원에 이른다. 종업원에 대한 성과급을 주고도 한참 남을 돈이지만, 대기업은 인색하기 짝이 없다. 더군다나 대기업 노동조합이 성과급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때는 '집단 이기주의'니 '떼쓰기'니 하며 몰아붙이던 경제 관료가 세금에서 깎아 준 돈을 노동자 성과급으로 얹어주라니 동쪽에서 뜨던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세금 인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 첫날부터 현행 법인세를 25%에서 20%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기업 주위 음식점과 술집의 장사가 잘되고 남을 것"이라는 발언이 정녕 이제 막 출범한 정부의 경제정책을 책임질 수장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혹 기업 주변 술집 주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니었을까?

이를 논외로 하더라도, 세금을 깎아준 돈이 "소액주주 배당으로 돌아가서 소비가 늘어나고 가장 저소득층에게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말에는 시비를 걸지 않을 수 없다. 강만수 장관은 감세가 대기업이나 부자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보수 정부가 추진한 감세 혜택의 대부분이 부자에게 돌아갔음은 미국 부시 행정부의 사례를 통해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아무런 통계적 수치도 내놓지 않으면서 감세가 대기업에도 좋고, 소액주주에게도 좋고, 노동자에게도 좋고, 자영업자에게도 좋고, 저소득층에게도 좋다고 주장하는 것은 포퓰리즘(populism)의 전형이다.

'진실'은 외면한 장관과 언론의 짜고 치는 고스톱

강 장관의 말이 나오자마자 노동자와 서민 생활은 안중에도 없는 보수 언론이 호응하고 나서고 있다. <매일경제>는 3월 3일자에서 "홍콩 대만 싱가포르를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는 이미 법인세율을 16~18%대까지 낮췄다"면서 "세율 인하는 경기침체 위험이 커진 상황에서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정책이 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가히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을 연상시키는 사설이다.

중국 경제로 점점 편입되고 있는 홍콩과 인구 400만 명의 도시 국가인 싱가포르가 했다고 우리나라도 해야 한다는 논리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미국을 등에 업고 '대만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중국과 과도하게 대립하다가 성장 동력을 낭비해버린 천수이벤 민진당 정권의 정책을 우리가 따를 이유는 더더욱 없다.

미국과 일본의 법인세율은 각각 39.3%와 39.5%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과 더불어 앵글로색슨 모델로 분류되는 나라들도 우리나라보다 법인세율이 높기는 마찬가지다. 뉴질랜드는 33.0%, 영국은 30.0%, 호주도 30.0%에 달한다.

스위스나 아일랜드 같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OECD 국가 가운데 사회경제적 경쟁력이 떨어지는 나라일수록 법인세율이 낮다. 그리스가 25.0%, 체코 24.0%, 스위스 21.2%, 터키 20.0%, 헝가리 20.0%, 폴란드 19.0%, 슬로바키아 19.0%, 아일랜드는 12.5%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대기업이 돈을 안 푸는 진짜 이유는?

대기업이 현금 수십조 원을 손에 쥔 채 투자를 안 하는 이유는 법인세 수준이 부담스럽기 때문이 절대 아니다. 총수 일가 중심의 지배구조야말로 대기업이 현금을 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SK가 소버린의 경영권 공격을 받은 바 있고, 삼성도 경영권이 불안하다. 현금은 총수 일가의 경영권 방어에 꼭 필요한 실탄이다.

IMF 위기 이후 두드러진 은행 대출의 보수화도 기업의 돈줄을 말리는 데 한몫했다. 기업 투자에서 윤활유 구실을 해야 할 은행이 가계대출로 방향을 틀면서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위축됐다. 국가-기업-은행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던 산업정책과 금융정책이 사라진 상황에서 새로 투자할 만한 사업이 과연 존재하는가도 문제다.

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법인세는 별 문제가 없는 수준이다. 세금 한 푼 깎아주지 않아도 재벌 회장들의 주머니에는 현금이 가득하다. 작년 주가가 한때 2000선을 넘어섰고, 지금도 1700선이다. 노무현 정부 하에서의 주가 폭등으로 '합리적인' 투자를 한 소액주주라면 주식시장에서 챙길 만큼 챙겼다. '시장경제'하겠다는 정부가 이들의 배당금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새 정부는 재벌의 불합리한 지배구조 개혁, 은행의 기업대출을 활성화할 금융정책의 마련, 산업정책을 통한 지속가능한 성장 동력의 확보 같은 영역에서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야 대기업이 움켜쥐고 있는 돈이 돌아 나라 경제에 활력을 줄 것이다.

'대기업 노동자' 욕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들러리로?
▲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법인세 인하와 대기업 노동자의 성과급이 갖는 상관관계다. 대기업 노조의 임금인상 투쟁은 국민적인 비판을 받곤 했다. 그 선두에 있었던 노무현 정부보다 친기업적이고 반노동적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수장이 대기업 노동자들이 성과급을 더 받길 바라는 것일까? ⓒ연합뉴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법인세 인하와 대기업 노동자의 성과급이 갖는 상관관계다. 비정규직이나 중소영세업체 노동자들과 비교했을 때 대기업 노동자들은 임금과 고용조건에서 월등한 우위에 있다. 그 때문에 대기업 노조의 임금인상 투쟁은 국민적인 비판을 받곤 했다. 그리고 '대기업 노조 죽이기'의 선두에 노무현 정부가 서 있었다.

노무현 정부보다 친기업적이고 반노동적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수장이 대기업 노동자들이 성과급을 더 받길 바란다. 그 수단은 법인세 인하를 통해서다.

두 가지 의도가 있다고 보인다. 법인세 인하를 주장하기 위해 대기업 노동자들을 들러리 세우려는 것이 첫 번째 의도다. 두 번째는 대기업 노동운동을 체제(regime) 내로 포섭하려는 것이 그것이다.

전자는 확실하게 계산된 것이고, 후자는 미리 계산은 못했겠지만 결과적으로 얻게 될 부산물이다. 경제적 특권층으로 분화된 대기업 노동자층이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을 지지할 가능성은 크다. 물론 그 주된 추진력은 민주노총 소속 대기업노동자보다 무노조나 한국노총 소속 대기업 노동자로부터 나올 것이다.

생필품에 붙은 부가세부터 없애라

역사적 측면에서는 물론 국제 비교적 측면에서도 대기업과 부자에 대한 감세가 저소득층에 도움이 된 적은 없다. 강만수 장관의 공언과는 달리 법인세 인하로 저소득층이 입게 될 혜택은 없다. 반면, 대기업을 소유하거나 주식을 다량으로 갖고 있는 부자들이야말로 법인세 인하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다.

진심으로 자영업자, 노동자, 저소득층에게 돌아갈 혜택이 관심사라면 별 문제 없이 잘 작동하는 법인세를 내리기보다 역진세(regressive tax)의 성격이 강한 부가가치세를 내려야 한다. 경제정책 수장의 입에서 세금 인하 주장이 터져 나온 이참에 생활필수품에 붙은 부가세부터 내리거나 없애는 것은 어떨까. 강만수 장관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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