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말씀드릴 것은, 나는 환경운동가가 아닐뿐더러 어떤 환경단체의 회원도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나는 지난 십여 년 동안 포클레인 기사로서 환경파괴에 일조해온 사람이다.
나도 80년대 초 공해문제연구소가 세워져 서울의 물과 공기를 정화해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자고 했을 때는 이를 적극 지지했다. 당시, 공장폐수와 생활폐수로 인한 수질오염, 농약과 화학비료의 남용으로 인한 토지오염은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거의 삼십 년이 되어가는 오늘날 한강을 비롯한 수원지들이 이만큼이라도 깨끗해지고 공장 폐수와 매연에 대한 대책이 세워진 것은 공해문제연구소와 같은 환경단체들의 노력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이후 환경단체들의 활동이 인간을 위한 공해퇴치운동으로부터 모든 생물의 생존을 위한 생태문제로 발전하면서 나는 환경운동에 점차 흥미를 잃었다. 노동운동과 민중생존권 보장처럼 인간의 삶을 위한 운동으로 평생을 보내온 내 감성으로는 도롱뇽이나 수달 같은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또는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일체의 개발을 중단하라거나 댐을 만들지 말라는 주장을 이해는 해도 동참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때는 환경운동 단체에 가입하기도 했었지만, 보내오는 회보의 내용을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떠오르는 의문들은 이러했다. 생태를 보호하기 위해 댐을 만들지 말라고 하는데, 만일 댐이 없다면 이 나라 5천만 국민이 어떻게 마음 놓고 수돗물을 마시며 살 수 있단 말인가? 하천변 제방을 쌓지 말고 자연 상태로 만들라는데, 인류의 역사야말로 제방 건설의 역사가 아닌가? 자연 하천을 방치하면 농토는 물론 주거지의 대부분이 모래사장 아니면 늪지로 변할 텐데 생태를 위해 인간은 죽어도 좋다는 말인가? 천성산에 터널을 뚫으면 도롱뇽이 죽는다며 절대 반대하는데, 그럼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있는 들판에 길을 내면 농민들은 어디로 간단 말인가? 농민들이 농약과 비료를 써서는 안 된다고 강변하는데, 수천 년 전의 원시적인 농업기법으로 돌아가 농업생산량이 몇 분의 일로 줄어들면 굶주리는 사람들은 어쩔 것인가?
이런 큰 문제 말고도 회보에 실리는 온갖 사소한 반대들도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골프장 건설에 반대하는 건 이해가 되지만 설악산 입구에 모노레일을 깔고 차량 출입을 금지하면 매일 수천대의 차량이 뿜어대는 매연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도 자연파괴라며 안 된다하고, 사람이 오르기 힘든 높은 산에 케이블카 건설도 절대 불가하다는 등, 뭐든지 안 된다고만 하는 것처럼 보였다. 환경론자들 말대로 하자면 일체의 건설공사를 중지하거나 아니면 과거로 회귀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요즘의 환경운동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사람을 지구의 적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환경운동가들은 나름대로 여러 가지 답변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답변도 나를 시원하게,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했다. 모든 인간이 수천 년 전으로 돌아가 전기, 전화, 차량, 도로, 빌딩 같은 것 없이 살지 않는 이상, 일정한 개발과 자연훼손은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다만 지나친 훼손과 난개발, 과도한 자원낭비를 막으려는 노력은 언제든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여러 선후배들이 운영하는, 이십여 년 이상 관계를 맺어온 환경단체에서 스스로 탈퇴를 해버리고 말았다. 이는 적어도 내가 인간과 모든 생물을 동등하게 생각하는 원리주의적인 생태주의자가 아님을 말해준다. 또 무조건 개발을 막아야 한다는 자연보호주의자도 아님을 말해준다.
내가 탈퇴까지 하게 된 데는 10여 년 간 포클레인 기사로 살아온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토목건설, 건축 공사가 서민들의 생계에 얼마나 큰 바탕이 되는지를 보았고, 토목공사는 환경을 훼손하는 의미만이 아니라 자연재해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기능도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할까?
아무튼, 이처럼 요즘의 생태주의 환경운동에 별 호감을 갖고 있지 않던 내가 이번의 한반도운하 건설만큼은 필사적으로 저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서게 되었다. 그 이유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제시했듯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나는 포클레인 기사의 한 사람으로서 기술적인, 공해적인 측면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아름다운 충주호와 월악산
이천에 살고 있는 내게 남한강 일대는 퍽 낯익다. 현재 운하의 제3안인 스카이라인 노선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달천강은 그 상류에 오랜 벗이 살고 있어 벌써 30년 전부터 드나들던 평화롭고 고요한 곳이다. 십여 년 전만해도 달천강가에 텐트를 치면 강물을 그대로 퍼서 마시고 밥을 지어 먹었다.
또한 26킬로 산중 터널 노선으로 거론되는 이화령부터 주흘산, 월악산 그리고 충주호 일대는 평소 내가 남한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세와 물길을 가진 곳이라 칭송해오던 곳이다. 서울서 친한 벗이 오면 반드시 월악산에 들렸다가 충주호에서 배를 타는 게 일과였다. 충주호의 맑고 깨끗한 물에 놀란 친구들은 중국의 계림보다 더 상쾌하고 좋다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포클레인을 배우자마자 수안보와 새재 일대를 새로운 정착지로 정하고 집을 사러 드나들다가 멀지 않은 이천에 자리 잡은 것은 우연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맑은 물 위에 수천톤급 컨테이너선을 띠우겠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강을 파헤치고 기암절벽을 때려 부수고 가장자리에 둑을 쌓겠다고 한다. 미칠 노릇이다. 중국 남부나 유럽처럼 해수면과 큰 차이가 없는 드넓은 평야에 물길을 파서 자연스레 새 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멀쩡한 배를 해발 110미터 이상 들어 올려 억지로 물 위로 끌고 다니겠다는 거다. 배를 산으로 끌고 가는 것도 기막힌데 승강기에 실어 열아홉 번이나 오르락내리락 거리겠다는 거다.
남한 땅에 도로가 부족하거나 차량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평야지대의 운하처럼 별도의 큰 동력이 필요 없다면 고려해 볼 수도 있으리라. 중국의 운하처럼 식수원과는 상관없이, 어차피 버려진 더러운 물이라면 배를 띄울 수도 있으리라. 아니,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이 맑고 깨끗한 물에 수천 톤의 배들을 수십, 수백 척이나 띄워 기름때를 묻히겠다는 거다. 떡밥이 물을 더럽힌다고 낚시도 통제하던, 철저한 정화시설을 갖추어도 강변 근방에서는 일체 농축산을 하지 못하게 해오던 수원지 보호 정책들이 갑자기 무의미해지고, 마음껏 물을 더럽히겠다는 거다.
그들은 말한다. 석유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 운하는 기름을 가장 적게 먹는 운송수단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배를 열아홉 번이나 들었다 놨다하는 에너지 비용은 공짜란 말인가? 평지 운하라면 최소한의 비용으로 많은 짐을 나를 수 있겠지만 이런 구조로는 에너지대비 비용도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전혀 타당성도 경제성도 없는 운하를 위해, 도대체 왜 이 깨끗한 물을 더럽히려 하는가?
정치적 이해득실로만 본다면 기어이 운하가 추진되는 것이 오히려 진보세력에게 유리하다. 경부운하 공사가 시작되고 그로 인한 엄청난 재앙이 현실로 드러나 국민의 공분을 사게 되면 이명박 정권과 보수우익들은 이후 오랫동안 정치권력에서 배제될지 모른다. 거꾸로, 우리의 반대를 핑계로 운하를 포기한다면 이명박과 보수정권은 손 안 대고 코 푼 결과가 될 것이다. 정치적 이해득실로만 보면 적당히 반대의견을 제시하다가 슬그머니 운하를 추진하게 내버려두는 게 우리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알량한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한반도의 대재앙을 방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포클레인과 강물
설사 운하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도대체 운하를 만들기 위해 이 아름다운 산천을 얼마동안이나 더럽혀야 하는가? 또는 영원한 불구로 만들 것인가?
이번에 우리 리얼리스트100의 소속 작가 26명이 직접 탐사해본 결과, 현재 운하의 유력한 노선으로 거론되는 지역들은 절대 함부로 물을 건드려서는 안 되는 지역이었다. 수심이 불과 일 미터에서 이삼 미터 밖에 안 되는 인공호수와 강을 최소 6미터 이상 깊이와 수십 미터 폭으로 파내는 작업은 그 자체가 엄청난 공해가 될 수밖에 없다. 대형 기계들이 물속을 헤치며 일으키는 흙탕과 기계들 고유의 기름으로 인한 오염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을 완전히 파괴해 버리는 과정에서 일어날 풍경의 변화와 물고기 몰살 등 온갖 환경 재앙에 대한 분석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자. 나는 포클레인 기사로서 포클레인 작업에 관련된 부분만 말하자.
강물을 휘저어 강바닥의 흙을 퍼 올리고 바닥의 돌을 분쇄해야 하는 포클레인은 수십 군데가 넘는 굴절 부위마다 윤활유의 일종인 그리스를 치게 되어 있다. 크림처럼 생긴 이 그리스는 물속에서 두어 시간만 작업하면 물에 다 녹아버리고 기계에서 뻑뻑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물이 닿는 작업을 할 때는 하루에서 서너 번씩 그리스를 쳐야만 한다. 먼저 친 그리스는 물에 녹아 하류로 흘러간다는 말이다.
그리스뿐 아니다. 포클레인들은 연속작업을 할 경우 최소 한 달에 한 번씩은 엔진오일을 교환해야 하는데 오일 교환시설이 갖춰진 카센터에 갈 수가 없으니 일하는 현장에서 직접 이십여 리터에 이르는 오일을 교환하게 된다. 이때 포클레인 기사들은 그냥 땅을 파고 폐오일을 버리는 일이 많고, 아무리 조심해 수거한다 해도 상당한 기름은 밖으로 흘리기 마련이다. 수천대의 포클레인이며 불도저, 콘크리트 펌프 같은 온갖 기계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오일을 갈아대는 것만도 또 다른 재앙이다.
그리스는 양이 적다치고, 폐오일 관리도 철저히 한다고 치자. 그러나 포클레인은 수백 개의 유압호스로 이뤄졌는데 다소의 차이가 있을 뿐 거의 모든 포클레인에서 조금씩 유압유가 흘러나오기 마련이다. 약해진 순서대로 차례로 유압호스가 새거나 터지기 때문에 포클레인 밑에는 늘 유압유가 흥건하기 마련이다. 호스가 터지는 일은 일상사나 다름없는데 큰 차의 경우 호스 하나만 터져도 20리터들이로 몇 통의 유압유가 흘러나온다. 방금 산 기계가 아닌 이상, 포클레인 기사라면 누구라도 한 달에 한두 번, 낡은 차는 이틀이 멀다하고 호스를 교환해 주어야만 한다. 50개 공구에서 수천 대의 포클레인들이 일한다면 그 일대가 얼마나 더러워질 것인가? 사소한 것 같지만 거대 장비들이 투입된 지역은 그 자체가 이미 오염인 것이다.
기름이란 얼마나 무서운 환경파괴물질인가? 한 예로, 몇 해 전 이천 우리 집 바로 옆 길가 논에 유조트럭 한 대가 전복되어 맑은 석유가 쏟아졌는데 이를 완전히 걷어내기까지 수억 원의 비용이 들어가고도 결국은 포기한 채 새 흙을 수천대나 퍼부어 땅을 돋우어야 했다. 그 작업은 내가 직접 포클레인으로 했기 때문에 기름의 독해가 얼마나 지독한가를 잘 안다. 그 땅에는 올해도 아무 것도 심지 못했다. 믿어지지 않거든 직접 와서 보라. 내가 직접 안내해 줄 수 있다.
경기활성화를 위해, 장기적으로 석유를 절약하기 위해 꼭 운하가 필요하다면 나는 차라리 경부고속도로처럼 평야지대를 일직선으로 뚫으라고 권하고 싶다. 왜 굳이 굽이굽이 아름다운 강물을 파헤쳐 물을 오염시키고, 물고기들을 몰살시키고, 그러고도 꾸불꾸불한 노선과 고도차이 때문에 실효성이 거의 없는 노선을 택하려 드는가? 차라리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평야지대의 생땅을 되도록 직선으로 파서 완벽하게 물길을 다듬어 놓은 후 한강 하류와 금강, 낙동강을 잇는 게 훨씬 낫지 않겠나?
큰 배가 지나가기에는 너무 굽이치는 데다 이미 흐르고 있는 물을 이리저리 막거나 혹은 흐르도록 내버려둔 상태에서 기름범벅인 포클레인이 들어가 모래와 흙을 파 올리겠다는 건 아예 강물을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또 그 강물이 흘러내려갈 팔당호와 서울의 한강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다.
건설업자들의 이심전심
건설 자체가 너무 많은 어려움과 피해를 줄 것이며 건설한 뒤에도 이를 이용할 화물주가 없어 결국은 막대한 경제 손실만을 가져올 운하를 왜 추진하려는 것일까?
찬성론자들 스스로 말하듯이 우선 건설경기를 살리기 위함일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설 무렵, 포클레인이나 덤프트럭 기사들 사이에서는 새 정부는 꽤 힘들겠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왜냐하면 영종도의 인천공항 공사며 중부지방의 두 개 남북 고속도로 등 주요 대규모 토목공사가 끝났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큰 공사가 사라진 노무현 정부는 시작부터 서민들 살기가 어려워졌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행정도시니 뭐니 하는 신도시 건설을 추진했지만 제대로 공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임기가 끝남으로써 끝내 경제를 죽인 대통령 취급을 받아야 했다. 노무현 정권 내내 무역흑자는 사상최대를 기록하는 등 온갖 경제지표는 환상적인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망친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새 정부는 바로 이런 과오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빠른 시간 안에 운하 공사를 시작하기 위해 좌충우돌하고 있다. 대규모 토목공사가 벌어지면 당연히 정치자금도 풍성해지겠지만, 그것은 나중의 문제일 것이다.
건설업자들의 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망하든 흥하든 일단 수조원이 오가는 공사에 뛰어들어야만 한다. 건설업자들이 분양이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지방에 아파트를 짓는다거나, 근본적으로 손해인 줄 알면서도 싼 값에 공사를 맡는 것은 회사를 가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사가 끝난 뒤에는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큰 공사를 맡으면 최소한 몇 년 동안은 마음껏 돈을 굴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운하는 4년 만에 공사를 마무리하겠다는 황당무계한 주장과 달리 십 년이 걸릴지, 이십 년이 걸릴 지 알 수 없으니 그동안은 어떻게든 목돈을 굴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공사 자체도 거의 불가능한 데다 엄청난 환경재앙을 가져오는 운하, 설령 완공이 된다 해도 이용자가 없어 배를 띠울 일이 거의 없을지도 모르는 이 운하를 추진하는 것은 오로지 건설업자들과 이들을 통해 불법적 정치자금과 국민의 지지를 함께 얻으려는 어리석은 정치가들뿐이다. 아마 이런 측면에 대해, 건설업자 출신 이명박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건설업자끼리 이심전심이다. 건설업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댓가다.
내륙 관광 재미없다
고도 차이와 수질오염 등의 치명적인 한계 때문에 만일 운하가 완성된다 해도 정상적인 운송수단이 되지 못한 채 관광 상품에 머물게 될 것은 자명하다. 찬성론자들은 이 부분에도 역점을 두어 설명한다. 운하를 오가는 컨테이너선들을 보는 재미에다가 이 컨테이너선들을 수십에서 일백여 미터 댐 위로 끌어올리는 리프트 이동 광경이 관광 상품으로 인기를 끌 것이라고 한다.
참으로 기가 막힌 상상력이다. 우리 작가들조차 입을 다물 수 없는 상상력이다. 아시다시피 소양호와 충주호에는 관광유람선이 운영되고 있으며 성수기 때는 제법 승객이 있는 편이다. 그러나 평소에는 거의 텅텅 비다시피 한다. 또, 처음 유람선에 오르면 갑판에 나가 사진 찍기 바쁘던 관광객들이 십 분만 지나면 대부분 실내로 들어와 바깥 경치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비슷비슷한 산으로 이뤄진 내륙 호수의 풍경은 금방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만의 하나, 너무나 비합리적이고 기괴한 이 희대의 유물을 보기 위해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온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 하더라도 최소 20조 원으로 추정되는 투자를 회수할 수 있을까? 공사에 따르는 엄청난 환경파괴와 공사 이후의 재해를 보상할 정도로 돈을 벌어줄 수 있을까? 물론, 이런 기괴한 실패작을 보기 위해 엄청난 외국인들이 몰려온다는 가설 자체가 황당하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설사 관광객이 넘친다 해도 전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투자다.
운하 추진세력의 항변?
누군가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까짓 포클레인 기사가 뭘 아느냐고. 그래? 나는 더 큰 소리로 퍼부어주고 싶다. 그래도 나는 십여 년 간 온갖 토목공사 현장에서 맨 앞장서서 일해 본 사람이다. 평생 흙 한 번, 기름 한 번 안 묻히고 책상머리에서 노닥거리던 교수 나부랭이들이, 타인을 속여먹는 일로 이골이 난 정치모리배들이 뭘 안다고 나서는가? 정치배들은 그렇다 치고, 이 명명백백한 재앙을 전혀 지형이 다른 외국의 사례를 들어 국민을 속이는 교수란 자들은 도대체 양심이라곤 있는 자들인가? 이 하찮은 포클레인 기사도 뻔히 알 수 있는 재앙을 교수 명함으로 가리고 거짓을 일삼는 저들의 추악한 행태를 누가 처단할 것인가?
또, 한국의 토목기술은 세계 최첨단이니 이 정도 운하는 얼마든지 건설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소리도 들린다. 그래, 할 수 있겠지. 이 엄청난 현대식 장비와 기술을 동원하면 수백 미터 빌딩만 세우겠냐? 수천 킬로미터 높이의 탑은 왜 못 세우겠냐? 바벨탑은 왜 못 세우겠냐? 일본까지 다리는 왜 못 놓겠나? 운하는 아무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필요가 없다는 거다. 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그들은 또 항변한다. 경부고속도로도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 결과 큰 성공을 거두지 않았느냐고. 기가 막히다. 경부고속도로는 차량이 거의 없던 시절에 자동차 시대를 앞당기는 선구적인 일이었지만 운하는 역사를 교통의 수천 년 전으로 돌리는 황당한 짓이다. 그럴 거면 차라리 말과 소가 다니는 도로를 개설하여 무공해, 무연료 도로라고 광고하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은가?
정말, 끝까지 운하를 하고 싶다면 한강 하류와 금강, 낙동강을 잇는 평야지대 경부운하를 파라. 그것도 미리 생땅을 직선으로 곧게 파서 물길을 완전히 다듬어 놓고 강물을 흘려보내라. 멀쩡히 흐르는 상수원, 그것도 헤아릴 수 없이 굽이쳐 흐르는 강물에 수천, 수만 대의 기계를 들이대어 들쑤셔놓고 오염시키는 짓은 제발 하지마라. 진정, 당신들을 위한 충고다.
한국사에 길이 남을 거대한 실패작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분주히 움직이는 운하 추진세력은 불과 십 년 후면 역사적 죄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멀쩡한 배를 태백산맥으로 끌고 올라가려는 자들, 교통의 역사를 수천 년 전 과거로 돌리려는 자들, 바로 눈앞에 놓인 가공할 재앙에 눈감은 채 돈벌이에만 급급한 투기꾼들, 운하를 추진하는 이 모두에게 역사의 심판이 따르리라.
필자 소개 1960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다. 강원대 재학 중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구속되어 제적되었다. 90년대 중반까지 구로공단 동일제강, 청계피복노동조합, 태백탄광지대, 구로인권회관 등지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장편소설 『파업』으로 제2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사랑의 조건』, 『황금이삭』, 『경성 트로이카』, 『이관술 평전』, 『이현상 평전』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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