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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분열'이 아닌 '분화·재편'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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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지금은 '분열'이 아닌 '분화·재편'의 시기"

[인터뷰] 심상정 "민주노총 조합원도 분화될 것"

'진보의 건실한 살림집'을 세워보겠다며 탈당을 선언한 지 사흘, "민노당을 이기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믿음직한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것이 유일한 관심이고 실천 의지가 될 것"이라는 심상정 의원의 말에 냉기와 결기가 교차했다. 당적은 아직 남아 있으되 '민주노동당' 심상정은 더 이상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민노당 8년의 세월이 배출한 걸출한 대중정치인 심상정의 선택에 적이 의아해 한다. 격려가 있지만 걱정도, 비판도 있다. 허나 '개인 심상정'의 선택이 아니기에 애당초 그의 손엔 한 장의 카드만 쥐어져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20일 오후 고양 덕양갑 선거사무실에서 심 의원을 만나봤다.

"일심회 문제의 해결수단은 자주파가 가지고 있었다"

한계를 먼저 고백했다.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종북주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 현실"을 인정했고, "비대위의 능동적 리더십이 제약 받을 수밖에 없었던 환경"을 아쉬워했다.

특히 민노당 혁신의 초입을 틀어막은 일심회 관련자 처리 문제에 대해 그는 "제명이 문제라면 제명의 걸림돌을 걷어낼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은 자주파가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자주파가 혁신을 감내할 요량이었다면 일심회 관련자들에게 자진탈당 등의 방법을 유도할 수도 있었던 게 아니냐는 뜻이다. 그는 "과연 자주파에게 혁신의 과정을 감수할만한 성찰의 공감대가 있었느냐에 회의적"이라고 했다.
▲ ⓒ프레시안

상황 논리로 빠져나가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분당을 필연화시켰고, 심 의원에게서 '선장 역할'을 용도 폐기시킨 2.3 당 대회가 그의 등을 떠민 측면도 부정하기 어렵다. 진보신당의 깃발을 든 것도 아닌데 단병호 의원이 탈당 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과도 얼추 맥이 닿는다. 진보진영의 위기에 대해 자주파와 본질적 인식이 다르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여하튼, 진보신당 창당의 흐름은 형성됐고, 자신도 거기에 몸을 맡긴 때문인지 그는 갈라섬을 적극적으로 정당화했다. "지금은 분당, 분열, 위기의 시기라기보다는 분화, 재편의 시기라고 본다"는 것이다.

'통일중심주의 대 민생중심주의', '엘리트 운동권 정당 대 확장된 대중정당', '패권과 담합으로 운영되는 정당 대 민주적 제도로 운영되는 정당' 등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차이를 적극적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이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차이가 될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더구나 지금은 자주파가 싫어서 뛰쳐나온 평등파들의 당 만들기라고 평가절하해도 참고 견뎌야 할 만큼 실천으로 검증받아야 할 그들이다.

"민주노총 출신 당원은 많은데 노동정치가 없었다"

심 의원이 공식적으로 밝혔듯이 진보신당은 2단계로 만들어갈 계획이다. 총선이라는 현실적인 정치일정을 무시할 수 없어 고안된 방식이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총선 전 창당에 부정적이었다. 그래서 그는 2단계 로드맵을 "차선책"이라고 했다.

정치연대를 위한 세력 규합, 비례대표 인물 구상 등 1단계 계획에는 의지와 복안이 있는 듯이 얘기했다. 그러나 그는 "총선 이후는 총선 결과에 의해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뒀다.

현실적인 말이기는 하지만, 제도권의 일정표보다 진보정당의 가치에 비중을 두는 이들은 그 점을 우려한다. 새집 짓기의 알짜배기가 총선 성적표에 의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새 진보정당이 풀어야 할 숙제 가운데 하나인 노조와 당의 관계 문제는 창당 로드맵보다도 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영역에 해당한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실패한 민노당의 실패와 관련해 심 의원은 "민노당에 민주노총 출신 당원과 간부는 많은데 노동정치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한 민노당에 대한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가 사실상 부정된 현실을 지적하며 "민노당을 지지했던 많은 조합원들도 새로운 노동정치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분화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이런 그의 전망이 적확했는지는 시간이 좀 더 지나야 평가될 것이다. 다만 민노당의 분열로부터 촉발된 민주노총 내부의 이상기류는 진보진영 전반이 본격적인 재편기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증거가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자주파, 성찰의 공감대를 보였나?"

프레시안 : 2.3 당 대회가 분당을 기정사실화한 자리였음은 이견이 없는 듯하다. 이와 무관할 수는 없겠지만 심 의원이 개인적으로 '분당은 필연'이라고 결심한 계기가 있다면?

심상정 : 의지가 주도하는 상황이 있고, 상황이 방향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다. 우선 2.3 당 대회 파행으로 분당은 불가피해졌다고 봤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진보는 사물의 변화와 발전의 철학이다. 민노당의 틀 속에서 변화와 발전을 주도할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너무 크다는 점이 나로서는 가장 안타깝고 고통스러웠다.

분당은 2.3 당 대회부터 시작된 게 아니었다. 이미 잉태된 분당을 심상정 비대위가 제어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적 변수 속에서 비대위의 주동적이고 능동적인 리더십이 발휘되기에 제약이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프레시안 : 심상정 비대위가 '종북주의'를 핵심 의제로 삼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종북주의라는 프레임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심상정 : 종북주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현실에 대해선 인정한다. 그러나 종북주의를 심상정 비대위의 의도나 의지로 바라보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비대위 자체가 종북주의 지형 위에서 출발했다. 종북주의 프레임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비대위 앞에 놓여진 지형을 돌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내부에선 3단계 로드맵을 가지고 있었다. 첫 단계인 2.3 당 대회의 정치적 의미는 탈당 흐름, 분당 흐름을 막자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한 상징적 조치들이 혁신의 1단계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심상정 비대위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임무로 주어진 것이다. 그게 잘 됐으면 2단계 총선 과정으로 넘어가고, 3단계 당직선거를 통해 노선과 주체, 실천방식의 혁신, 즉 제2창당의 길로 나아가려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1단계를 돌파하지 못함으로써 종북주의 지형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

프레시안 : 상징성을 인정하더라도 일심회 관련자 처리가 당초 구상하고 있던 민노당 혁신의 본질이 아니었을 것이다. 반발도 예상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당 혁신의 입구에 배치한 건 무리수가 아니었을까?

심상정 : 그건 혁신의 입구에 이미 놓여있었던 문제다. 정조준 돼 있었던 문제다. 이 대목을 이야기하고 싶다. 자주파들이 과연 혁신의 공감대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은 솔직히 자주파가 가지고 있었다. 즉 일심회 관련 당원들에 대한 제명이 문제라면 제명의 걸림돌을 걷어낼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자주파가 가지고 있는 것이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프레시안 : 피해갈 수 없는 문제였다는 얘기인가?

심상정 : 피해갈 수는 있었겠지만, 그랬다면 분당은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2.3 당 대회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했다면 자주파가 조절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 분들에게 과연 혁신의 과정을 감수할만한 성찰의 공감대가 있었느냐에 회의적이다. 구부러진 철근을 바로잡으려면 반대방향으로 힘을 주어야 한다. 왜 곰과 호랑이가 마늘과 쑥이라는 독한 채식을 했겠나. 인내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주체의 문제다.

대선 참패의 책임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문제에서 자주파는 답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당원들이 받아들이는 민노당의 위기는 근본적이었다. 면피용 제스추어로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근본적 성찰과 인내가 필요했는데 당권파는 이를 인내하지 못한 것이라고 본다.
▲ ⓒ프레시안

프레시안 : 혁신안이 좌초됐을지라도 비대위원장을 맡아 민노당의 간판으로 인식된 사람으로서 당에 남아서 더 할 일이 있었던 게 아닐까. 선장이 먼저 뛰어내린 듯한 느낌도 든다.

심상정 : 2.3 당 대회를 돌파함으로써 분당사태를 막는 것이 선장으로서의 역할을 넓히는 전제조건이었다. 그런데 선장으로서의 자격, 능력에 대한 부정이 2.3 당 대회의 결과였다. 민노당 혁신의 주체들이 균열하는 상황에서 심상정이라는 선장의 역할은 무의미해졌다.

또한 다수파인 자주파의 혁신과 성찰의 공감대 없이 선장의 역할은 민노당 상황에서 맞지 않았다. 그게 사실관계에 부합한다. 내 의지만으로 선장 노릇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주파의 성찰의 의지가 맞물릴 때에만 선장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인데, 2.3 당 대회 결과는 선장으로서의 용도가 폐기된 것으로 본다.

"민노당 이기는 것엔 관심 없다"

프레시안 : 국민들, 일반 당원들, 현장 조합원들은 아직도 왜 분당해야 하는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탈당 선언에 앞서 이들의 의견을 듣고 설득을 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대해선?

심상정 : 국민들과 당원-조합원은 구별해야 한다고 본다. 우선 국민들은 민노당에 최후통첩을 했다. 변화와 혁신을 주문했다.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서 비대위가 출범했다. 말 그대로 비상대책위원회다. 국민들의 강력한 요구를 받아서 비대위가 혁신을 추진했지만 그게 좌절됐다. 국민들은 이 상황에 대해서 불가피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나는 당원들과 민노당에 애정을 가지고 헌신을 했던 조합원들이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에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고통스럽고 아프게 여긴다. 조합원들에게는 충분한 설명의 기회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지금 상황은 넉넉한 시간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총선이라는 시기를 앞두고 충분한 과정을 거치지 못한 점에 대해서 여전히 나는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이런 점은 총선 이후 진보신당 창당 과정에서 충분한 기회를 가질 생각이다.

우리 조합원들은 민노당만의 문제가 아닌, 진보진영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양극화와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서민정치를 포함한 진보의 요구가 사회적으로는 확장되고 있다. 그런데 이 확장된 진보의 요구를 받아 안을 만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기존 진보정치 세력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 괴리가 진보진영의 위기로 표출됐다고 본다.

따라서 지금 시기는 통합과 단결의 가치보다 한계를 보인 진보정치 세력의 자기성찰과 반성을 통해 시대와 역사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과감하고 실천적인 노력이 요구되는 때이다. 그런 점에서 분당, 분열, 위기의 시기라기보다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자 하는 분화 재편의 시기라고 본다. 분화 재편의 요구에 얼마나 능동적으로 주체가 부응할 수 있느냐가 위기냐 기회냐를 결정한다고 본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실천을 통해 곤혹스러워하는 당원들과 조합원들에게 부응하겠다.

프레시안 : 대북관 외에 민노당과 노선이 다른 게 무어냐는 지적이 있다. 관념적 구분 말고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차이를 설명하자면?

심상정 : 진보신당이 출범도 안했기 때문에 말로 차이를 설명하기보다는 실천으로 국민들에게 검증받는 것이 정도라고 본다. 다만 굳이 말하자면 노선 상으로 보면 통일중심주의와 민생중심주의의 차이가 있다. 물론 통일과 민생의 과제는 다 중요하다.

둘째, 주체의 문제다. 민노당은 엘리트 위주의 운동권 정당이라는 한계가 있다. 아직은 진보신당의 주체형성이 되지 않아서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민노당 조직주체의 한계를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출발점이다. 진보신당은 주체의 측면에서 보다 광범위하게 풀뿌리 행동주체까지 포괄하는 혁신을 이룰 수 있느냐 없느냐가 성패의 관건이다. 엘리트 정당이 아니라 확장된 대중정당으로서의 지향을 가지고 있다.

자주파 동지들은 스피커로서의 당의 역할을 강조한다. 우린 정당으로서의 집권전략에 근거해 제도정당으로서 국민의 평가와 책임의 원리에 순응하고 소통할 것이다. 실천방법이 차이로 드러날 것이다. 엘리트 중심과 확장된 대중정당으로서의 지향이 차이를 보일 것이다.

또 하나는 당 조직론에 대한 인식이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는 패권과 담합에 의해 당이 운영됐는데, 진보신당은 철저히 민주주의적인 실천을 할 수 있는 자기성찰과 제도를 이뤄내겠다.

프레시안 : 핵문제, 북한의 인권문제 등에선 기존의 민노당 입장과 달라지나? 예컨대 만약 내일 북한에 대한 인권결의안이 상정된다면 진보신당은 어떤 입장을 취할 건가?

심상정 : 실질적으로 북한 인권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느냐로 판단해야 한다. 유엔 인권결의안이 북한 인권문제 해결에 실질적 도움이 되느냐로 판단해야 한다. 찬성이냐 반대냐는 답변은 적절치 않다. 결의안이 제출된 시기와 의미, 후속조치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다만 북한이기 때문에 인권이라는 최우선적 가치를 유예한다든지 애매모호하게 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인권 문제는 세 가지를 유의해야 한다. 첫째는 실제 상황이 무엇이냐를 이해해야 한다.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이 북한의 악마화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는 실질적인 북한의 인권 개선에 초점을 둬야 한다. 셋째는 북한 책임뿐만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외국의 책임도 크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북한 인권문제는 북한 내부정치의 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외부의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북한 내부에 변화를 만드는 환경조성에 주력해야 한다. 대부분의 인권침해국이 체제위협을 받는 나라라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외부의 위협을 자국민들에 대한 인권 침해에 정당화하고 악용하고 있다는 점을 새겨야 한다.

프레시안 : 조승수 전 의원 등은 남한과 북한을 민족적 특수 관계에 앞서 주권국가 간의 관계로 설정하고 있다. 물론 접근법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명박 정부의 대북노선과 한 곳에서 만나게 되는데 조 전 의원 등의 인식에 동의할 수 있나?

심상정 : 이명박 정부의 노선은 대북 우위적 관점에서 북한을 바라본다. 평화공존을 바라는 진보진영과는 출발부터 다르다. 북한은 법적으로 주권국가이지만 협력을 통해서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야 할 민족적 특수관계가 있다. 민족적 특수관계를 존중하는 협력체제가 유지돼야 한다. 분명히 이명박 정부의 상호주의와는 구별된다.

조승수 전 의원 개인의 견해에 대해선 가타부타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다만 민노당 실패를 종북주의 때문으로 과도하게 일반화한 오류의 반작용이 일정부분 있지 않나 싶다. 민노당 실패를 종북주의로 규정한 건 사실과도 다르고 일부 부분적인 문제를 과도하게 일반화함으로써 민노당이 민생정당으로서 대중들에게 검증받지 못한 오류를 다른 쪽으로 치환한 또 다른 패권이었다.

민노당이 남한의 독자적인 진보정당으로서의 독자성과 자기정체성 확립해야 한다는 문제와 북한과의 문제를 민족적 특수관계로 바라보는 과제는 둘 다 소중하다.

프레시안 : 그런 것을 포함해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 세력과 함께 할 수 있는 전제조건을 분명히 해 달라. 정파 해체를 요구한건 그런 맥락으로 이해된다. 분당으로 치닫기까지 평등파 진영의 오류와 책임을 지적한다면?

심상정 : 먼저 탈당한 분들을 포함해서 민노당 7년의 실패는 자주파만의 실패가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의 실패다. 특히 자주파와 파트너십을 가진 평등파들의 실패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선 정당한 자기 몫의 성찰의 기회가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민노당 일각에선 총선까지는 각개약진 하더라도 총선 뒤에 대승적으로 재결합하자는 주장이 있다. 고려해 볼 수 있나?

심상정 : 이혼에도 숙려기간이 있다. 숙려기간조차 충분치 못했던 상황은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한 울타리 내에서 갈등이 심화돼서 갈라져 나왔다. 독자적 검증 과정을 거치는 게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민노당 내에서 자주파와 평등파 간의 화해협력이 아니라 믿음직한 진보정당의 길로 나서는 것이다. 나는 민노당과의 경쟁, 민노당을 이기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이명박 정권의 등장으로 더욱 가속화될 양극화, 고단한 서민의 삶에 희망을 줄 수 있는 믿음직한 진보정당을 건설하고 발전시킬 것인가가 유일한 관심이고 실천의지가 될 것이다.

"배타적 지지가 부정된 걸 솔직히 인정하자"
▲ ⓒ프레시안

프레시안 : 오늘 아침 단병호 의원의 말에 울림이 있다. 진보정당이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게 무엇이냐는 의미 있는 물음으로 본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사실 노동당 존재의 골간이나 다름없는데, 이에 대해 심 의원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

심상정 : 우리가 노동자 서민정당이라고 말할 때 대다수는 노동자다. 다만 우리나라는 존재가 의식을 배반하는 상태에 있다. 그런 점에서 노동의 가치에 대한 언어를 구사하는 차이 외에 단 의원과의 차이는 없다고 본다.

최근 민주노총의 민노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에 문제제기가 많이 되고 있다. 진보정당이,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당이 노동자 대중조직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끌어내는 것은 소중하다고 본다. 문제는 배타적 지지를 종자돈으로 좀 더 좋은 노동정치를 펴서 민노총을 뛰어넘는, 다수 노동자들의 지지를 확대하는 발전이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민노당은 민노총의 배타적 지지에 안주해서 배타적 지지성원으로부터도 외면 받는 결과를 낳았다. 그게 지난 대선 결과다. 민노당이 3%밖에 얻지 못했다는 것은 민주노총 조합원의 10%밖에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타적 지지는 민주노총 조합원으로부터 부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안타깝지만 배타적 지지가 부정된 걸 솔직히 인정하고 오히려 노동자들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주체적이고 주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제대로 된 노동자 정당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려되는 것은 민노당의 실패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부정하는 것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비관적으로 보는 인식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렇게 가지 않도록 각별한 토론과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까지 과정에선 당과 노조 관계가 지나치게 화석화돼 있기 때문에 혁신과 개편은 불가피하다고 보지만, 노동운동의 방향 모색은 노조 운동의 주체들이 판단할 문제다.

프레시안 : 진보신당파가 노조라는 물을 떠난 고기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노조라는 대중조직의 지지를 어떻게 재조직화해 낼 것인지에 대한 복안이 있다면?

심상정 : 나는 현재 민주노총 조합원의 절대 다수가 민노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본다. 객관적인 사실이다. 민노당을 지지했던 많은 조합원들도 새로운 노동정치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분화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 어떠한 진보신당도 노동자의 기반 없이, 노동자의 지지를 중심전략으로 하지 않고는 존립하기 어렵다.

민주노총이라는 공식적인 틀과 배타적 지지라는 제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안이한 노동정치 전략이 아니어야 한다. 진정으로 870만 비정규 노동자와 이 땅의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노동정치 전략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실천해야 한다. 공식적인 배타적 지지 선언이 없어도 우리가 좋은 노동정치를 함으로써 노동대중들을 진보신당으로 결집시켜 나갈 수 있다고 본다.

내가 민노당 혁신의 과제로 지적한 게 노동자 정당에 노동이 없다는 것이었다. 민주노총 출신의 당원과 간부는 많을지라도 노동정치가 없었다. 그 점이 민노당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이다. 현재 민노당에 없는 노동정치를 노동자 정당, 진보정당답게 노동정치의 비전과 프로그램을 만들어냄으로써 복원해 나갈 것이다.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정치적 선택의 분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비전과 프로그램을 둘러싼 견해의 분화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진보의 든든한 살림집은 총선 후에"

프레시안 : 2단계 창당 구상에서 총선 전까지 이뤄내야 할 일과 총선 후에 추진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구분해서 설명하자면?

심상정 : 민노당 시대를 뛰어넘는 진보정당의 과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민노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정치의 오류가 반복되지 않도록 충분한 성찰과 반성의 토대 위에 서야 한다. 두 번째는 진보의 가치를 재구성하는 것에서부터 주체의 혁신을 포함해 충분한 논의와 결집과정이 매개돼야 한다. 진보의 든든한 살림집은 총선 전에 어렵다고 본다.

기존 보수정당들처럼 선거용 정당, 선거용 리모델링에 그치는 방식으로 진보정당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게 기본 생각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폭주를 우려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이번 총선에서 이명박 정권을 견제할 정치세력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요구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선택할 정당이 없다는 딜레마가 있다.

그런 점에서 민노당 탈당파만의 힘으로는 이명박 정부의 폭주에 맞설 수 있는 정치적 힘이 부족하다. 이를 우려하는 교육, 환경, 복지, 노동, 경제, 언론 등 각 부문의 진보진영이 정치적 힘을 만드는데 총력으로 연대해야 한다는 점을 호소드린다. 이명박 진영에 맞서는 진보진영의 강력한 정치연대를 호소하고 그 틀을 법적 정당의 형태로 등록해서 이번 총선을 치르자는 것이다. 그것이 진보진영에 대한 국민의 요구이고 얼마 남지 않은 총선에 대응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 성과를 토대로 제대로 된 진보신당을 만들자는 것이다.

총선 이후는 총선 결과에 의해 로드맵이 많이 달라질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민노당 비대위원장으로서 하려고 했던 제2창당의 과제가 진보신당 창당과정의 중심 내용을 구성하게 될 것이라는 골격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프레시안 : 연대회의에는 어떤 세력이 함께 하나?

심상정 : 적극적으로 만나봐야 하겠지만 진보정당으로서는 최초로 섀도우 캐비닛 체제를 구성해서 선거에 임하겠다는 생각이다.

프레시안 : 비례대표 후보를 얘기한 것으로 이해된다.

심상정 : 그렇다. 짧은 시간에 많은 세력을 끌어 모으기보다는 이명박 정부의 분야별 정책기조가 나왔고 그에 대한 우려가 많은 만큼 분야별 운동 주체들을 설득해서 섀도우 캐비닛 체제에 동참토록 요구하고 그 체제를 갖춰서 총선에 임하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노동은 기본이고 환경생태분야, 교육, 언론, 경제금융 분야, 인권평화 분야를 아우른다. 주체의 측면에선 노동, 농민, 빈민, 소수자 등 학계와 기층조직을 망라해서 구성해보겠다. 민노당 이외의 정치세력도 있을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최대한 결합해볼 것이다. 연대회의 구상은 참여가 수월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가능하리라고 본다.

프레시안 : 비례로 나설 분들은 리스트 얼개가 갖춰졌나?

심상정 : 이제 시작이다. 기본적으로는 각 부문별로 명망성보다는 실질적으로 검증된, 실천능력이 검증된 분들로 구성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우선 진보신당 연대회의에 참석하는 부문주체들의 의견이 중요할 것이다.

프레시안 : 총선 전과 총선 후로 창당과정을 나눈 로드맵은 위험부담이 일정하게 있다. 총선 결과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더디더라도 천천히 내실을 다지면서 창당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심상정 : 그게 원래 내 생각이었다. 다만 정치적 계기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때 신당건설의 모멘텀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게 고려됐다. 국민들의 요구를 외면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지금의 구상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프레시안 : 진보신당이 총선을 위한 1단계 창당 과정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현실정치의 맥락을 무시할 수 없다. 당의 간판, 즉 대표를 맡으라는 요구가 있다면 응할 텐가?

심상정 : 진보신당으로 가는 길에 내가 해야 할 소임이 있다면 기꺼이 해야 한다고 본다.

프레시안 : 총선에선 어떤 의제로 국민들을 만날 것인가?

심상정 : 이명박 정권의 우려되는 폭주에 대한 대안 정책을 중심으로 해서 국민들의 검증을 받을 생각이다. 사실 총선 시기에 종합적인 진보정당의 비전과 프로그램을 내기는 어렵다. 총선의 특성을 받아 안기도 어렵다. 이명박 정권에 맞서는 정치연대의 성격으로 출발하는 만큼 부문별 정책에 맞서는 대안정책으로 이명박 정부가 낳을 한국사회의 모습에 대한 대안비전으로 승부를 하겠다.

프레시안 : 총선 목표는?

심상정 : 내가 숫자에 약하다(웃음). 국민들에게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견제를 하려면 최소한 교섭단체는 구성해야 한다'고 호소할 생각이다.

프레시안 : 재선은 자신 있나?

심상정 : 재선 돼야죠(웃음). 워낙 한나라당 지지가 압도적인데 그러나 견제세력을 선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고 견제할만한 마땅한 당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진보신당을 주도할 수 있는 인물들에 대해서 많은 애정과 관심이 표현될 것으로 기대한다.

프레시안 : 민노당을 떠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신당 창당도 가시밭길이 될 것 같다. 소회와 각오를 겸해 마무리 말씀 부탁한다.

심상정 : 민노당은 30여년 간의 사회운동에 기반해 등장했고 수많은 당원동지들이 청춘을 바친 당이다. 노동자, 특히 비정규노동자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서민들의 절규가 하늘에 닿아있기 때문에 민노당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 아주 고통스러운 과정이 있었다. 지금도 이런 상황을 놓고 혼란스러워하는 노동자 조합원들에게 매일 밤 전화를 받는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이랜드, 코스콤을 비롯한 비정규 노동자들이 지금의 상황을 우려하는 것을 보면서 최대한 시간을 단축해서 그 분들에게 희망을 줘야겠다는 조바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열심히 하겠다. 지켜봐 달라.

* 후기 : 인터뷰가 끝난 뒤, 참모들이 준비한 케이크를 한 조각 얻어먹고 나서야 이날이 심 의원의 생일인 줄 알았다. 쉰 살이라고 한다. 노동운동의 끈끈한 선후배로 연을 맺은 육순의 단병호 의원은 이날 아침 '평범한 노동자'로 돌아가 낮은 곳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다시 시작하겠다고 했다. 새 길을 나선 이들의 조타수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심 의원의 10년 뒤는 어떤 모습일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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