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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애가(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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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애가(哀歌)

[기고] 옥탑방 살림인데 싸워도 당내서 싸웠어야

민주노동당의 이른바 평등파(PD)가 자주파(NL)와의 정면대결에서 패배하자 탈당을 결행하고 독자 창당을 서두르고 있다. 평소에 별로 보도가 잘되지 않던 민노당이 분열극을 보이므로 인해 언론의 각광을 받고 있으니 장한 일이 아니라 구슬픈 이야기다. 그래서 哀歌라고 말해본다.

지금 민노당에 대해 이런저런 조언을 하는 것은 때늦은 일 같다. 또 남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때에 덩달아 끼어드는 것 같아 겸연쩍다. 그러나 작년 권영길씨가 민노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을 때 권씨에 대한 편지형식으로 <헌정>(2007년 10월호)에 글을 쓴 바 있고, 그 글을 두고 NL계의 인터넷 언론 <민중의 소리>에서 반론이, PD계라 할 수 있는 인터넷 언론 <레디앙>에서 반론에 대한 반론이 전개된 바 있어 한 번쯤 정리를 해볼 필요는 있게 되었다. 권씨에의 편지에서는 코리아연방제 운운하는 것과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처럼 반미를 하겠다는 등등을 허황되다고 꾸짖었던 것이다.

진부하다 할 정도로 인용되는 명언에 "진보는 분열하고, 보수는 부패한다"라는 것이 있다. 정당은 투쟁을 하면서 큰다. 대외적인 투쟁이 주이지만 내부의 투쟁도 없을 수가 없다. 특히 진보세력은 이념적이기에 이념을 중심한 분파투쟁이 왕성할 수밖에. 그러나 당내에서 분파투쟁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분당까지 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진보 측 사람들이 잘 쓰는 말에 변증법적 정·반·합·이라는 것과 지양이라는 게 있다. 당내의 이념대립이 정·반·합으로 지양되어야 할 일이지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처럼 되어서는 결코 안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치발전을 위해서는 유럽 모든 나라와 이웃 일본처럼 우리도 진보정당(대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다.)이 최소한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할 정도로는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친근한 미국이 예외인데 거기에 대해서는 전날에 베르너 좀발트의 책을 비롯하여 많은 연구서나 논문이 있다. 광대한 대륙에 이민들로 구성된 나라와 신개척지(프론티어)가 많고, 전래의 고착된 계급이 없는데다가 사회적 이동이 활발하다는 등의 원인분석이 있다. 근래에는 랄프 네이더의 거듭되는 도전이 있었지만 공화·민주 양당제의 벽을 넘을 수가 없었다. 대개의 경우 그런 세력을 민주당이 흡수해 버린다. 우리나라에서 민노당 같은 정당이 원내교섭단체 크기가 된다면 집권까지는 못 가더라도 문제를 파헤치고, 견제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등으로 보수정당들에 밸런스를 취하여 주어 정치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카운터배일(counter vail)이란 표현이 알맞다.

4.19 후 5.16 전의 제2공화국 시절에 진보세력의 움직임이 활발했다. 그때는 혁신계라 했다. 혁(革)이 가죽을 뜻하므로 가죽신이라고 농담삼아 말하여지기도 하였다. 그때 정당으로는 통일사회당(서상일), 사회당(최근우), 혁신당(장건상), 사회대중당 잔류파(김달호)의 4개 정당이었지만, 세로는 통일관련 협의체로 일단 뭉친 민족자주통일연맹(민자통)이 영향력이 컸다. 그러다가 민자통의 남북협상노선에 반대하는 통일사회당계가 이탈하여 중립화통일연맹(중통련)을 구성하는 분열이 생긴 상황에서 쿠데타를 맞은 것이다. 그때 민자통은 대중동원력을 갖고 있었고, 중통련은 행사를 안해 그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때의 민자통과 중통련은 지금의 NL과 PD와는 다를 것이지만 남북관계로만 국한하여 볼 때는 어떤 면 방불하다 할 것이다.

그 무렵인가, 그 후인가에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한 보수신문이 '봄철에 꿩이 스스로 울어 (포수에게 들킨다)'라는 '춘치자명(春雉自鳴)'이란 옛 표현을 써가며 남북협상파를 꼬집은 것이다. 오늘날의 '종북(從北)주의' 운운의 문제제기와도 또한 엇비슷한 것 같다.
▲ ⓒ뉴시스

NL이고, PD고 그 본질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른바 NL에 속한 사람들의 북에 대한 태도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맥아더 장군의 군대가 개입해서 통일이 안되었다고 하는 사람이 그쪽의 대표논객의 하나다.(맥아더 동상 철거 소동까지 있었다.) 또한 이른바 해방공간에서 들은 바 있는 좌익의 이론전개들이 네안데르탈인들이 되살아난 것처럼 그쪽의 간행물에 자주 보이고 있다. 진보적인 평론가인 진중권 씨가 북의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하는 것이 "통일되는 날, 김정일 정권 아래 고생했던 북조선 인민들에게 갖춰야 할 인간적 예의"라고 말한 것이 인용되고 있는데 공감이 간다. 유엔인권선언에 있는 것처럼 인류보편적 가치가 아닌가.

민노당 안의 논쟁을 들으면서 당내 투쟁의 수사법(修辭法·레토릭)과 당외 투쟁의 레토릭이 달라야 한다는 점을 느낀다. "진실은 회색계통의 어느 색깔"이라고 서양사람들이 자주 쓰는 명구가 있다. 인생사나 세상사는 스팩트럼, 그러니까 무지개 색깔처럼 다양하기도 하고 애매모호한 구석도 있다. 흑과 백으로 명명백백한 경우가 드물다는 말이다. 정치에 있어서는 문제를 슬로건(구호)으로 만들다보면 회색지대의 것이 흑백으로 변질해 버리기는 한다.

'운동권 정당' 운운의 비판을 보자. 진보 정당의 경우 원내활동과 원외의 대중운동이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은 불가피하다. 다만 원내의 비중을 너무 낮게 잡고 대중투쟁에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다만 스펙트럼의 어느 쯤이야하는 정도의 문제가 될 것이다.

'민주노총당' 운운도 비슷하다. 영국 노동당 등 진보정당들의 예에 비추어 볼 때 노동조직을 기반으로 출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민노당 당원의 40%쯤이 민노총 소속이라 한다. 다만 영국 노동당도 노조에 휘둘리다가 점차 거기서 탈피하여 비교적인 자율성을 갖는 방향으로 나갔다. 대기업 노조중심인 민노총의 이해관계가 있으니 만큼 거기에만 휘둘릴 수는 물론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의존을 벗어나야 한다는 정도이지 마치 대결주의적으로 공격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역시 정도의 문제.

영국 노동당 이야기에 덧붙인다면, 80년대 초 노조 주도하의 경직성에서 탈피하여 리버럴한 노선을 걷기 위해 로이 젠킨스(재무장관·부당수 역임), 셜리 윌리암스 등 지금 우리나라의 심상정, 노회찬 씨보다 더한 거물 인기스타들이 (진보정당에서의 스타의 역기능을 말하는 측도 있다) 탈당하여 사회민주당(Social Democratic Party·SDP)을 창당한 일이 있다. 처음에는 많은 관심을 끌었으나 노조란 '물'을 잃은 '고기'들은 오래 견디지 못하고 자유당(Liberal party)과 연합하다가 흡수되고 말았다. (영국에는 비례대표가 없다.) 젠킨스는 회고록에서 그 경험을 강물의 본류(本流)에 합쳐진 지류(支流)였지만 나름대로의 역할은 하였다고 자평하였다. SDP의 경우를 민노당의 경우에 바로 적용하여 말할 수는 물론 없는 일이다. 그러나 크게 참고는 될 줄 안다.

'종북주의 운운의 가장 치명적인 비판을 보자. 북의 지령에 따르는, 또는 그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일은 어떻든 수사당국의 과제로 맡겨두어야 할 것 같아 여기서는 제외하자. 다만 남북관계가 같은 민족끼리라는 특수성에 비추어 여기서도 스펙트럼에 있어서의 정도의 문제를 말해야 할 것 같다. 하기는 남북 간에 합의한 문서에 있는 '우리 민족끼리'가 녹피(鹿皮)에 가로 왈(曰)자 처럼 이리도 저리도 해석이 되는 신축성, 애매성이 있다. 그래서 왼쪽의 극단론자들은 '우리 민족끼리'를 당장 '미군은 즉각 철수하라'로 해석하여 소란을 피우지 않았는가. 해석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리 민족끼리'는 국제적 관계를 일체 배제하는 절대배타를 의미하는 게 아니고 민족애를 강조하는 정신일 게다. 쉽게 생각해보면 강대국의 제국주의적 행태는 배격하나 6자회담을 통한 협력같은 것은 수용하고, 남북이(주로 남이) 서로 돕는 그런 차원 말이다.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 근본적으로 문제는 북한의 체제, 행태에 있는 것이고 부차적으로 미국의 압박정책에 있다할 것이다. 요는 '종북주의' 운운도 당내 레토릭치고는 타 정파에 대한 것으로는 너무 대결주의적인 인상을 준다.

끝으로 이른바 일심회 관련 당원의 제명문제. 크게는 국가보안법의 문제고, 작게는 당헌·당규의 문제일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당헌·당규로 제명사유가 된다는 것이 상식이 아닌가. 국가보안법 문제는 정치적 판단을 요구한다. 폐기론과 개정론이 근래에 다투어 왔다. 줄여서 간단히 말하면, 악법이라고 반대투쟁을 하는 차원과, 악법도 법이기에 그것이 개폐되기 전까지는 준수하여야 한다는 차원에서 생각해야 하리라고 본다. 옛날 대학에서 들은 기억에 의하면 독일에서 히틀러가 집권하여 탄압에 나섰을 때 사회민주당 중앙은 당원들에게 준법투쟁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법을 어기지 말라고. 법은 어떤 면 권력 편에 있는 것이기에 위법은 결국은 약자에게 손해가 되기 마련이 아닌가. 개인의 양심에 따른 법의 불복은 있을 수 있다. 양심적 불복종이다. 그러나 정당과 같은 조직의 법 불복은 다른 일이다.

이렇게 NL에 대한 PD의 공격을 생각해볼 때, 양비양시론(兩非兩是論)이라 할지 모르겠으나, 우선 NL의 태도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고, 부차적으로 PD가 당내투쟁이 아닌 당외투쟁의 레토릭을 휘둘렀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고 하겠다. 당 기관지에서 PD측이 보수 측의 언어 프레임에 말려들었다고 지적하는 글을 읽었는데 그런 측면도 생각할 수 있다. 언어 프레임, 달리 말하면 개념 사용에 있어서의 헤게모니 문제라 할 것이다.

지난 2월 15일 한국정치학회와 관훈클럽이 공동주최한 <이명박정부의 과제와 시대정신>이란 학술회의의 한 논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최근 한국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갈등의 중심축은 탈냉전과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에 따른 사회균열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문제, 교육정책, 부동산 정책, 사회복지제도 등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갈등들은 한국의 정치사회나 시민사회에서 갈등의 중심축으로 다뤄지지 않은 채 탈냉전 갈등만이 부각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본질적 갈등을 배제한 채 자신들의 지지 동원에 유리한 냉전구도 갈등만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일반론으로 말한 것이지만 꼭 민노당을 향한 것만 같다. NL이나 PD나 음미해볼 일이다.

생각이 메마르고 답답할 때는 상상력을 갖기 위해 문학의 세계, 시의 세계를 찾기도 한다. 마침 김광규 시인의 <영산(靈山)>이란 시가 마음에 와 닿는다. 짧으니까 전문을 소개하면,

"내 어렸을 적 고향에는 신비로운 산이 하나 있었다.
아무도 올라가 본 적이 없는 靈山이었다.

靈山은 낮에 보이지 않았다.
산허리까지 잠긴 짙은 안개와 그 위를 덮은 구름으로 靈山은 어렴풋이 그 있는 곳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靈山은 밤에도 잘 보이지 않았다.
구름 없이 맑은 밤하늘 달빛 속에 또는 별빛 속에 거무스레 그 모습을 나타내는 수도 있지만 그 모양이 어떠하며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 마음을 떠나지 않는 靈山을 불현듯 보고 싶어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더니 이상하게도 靈山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이미 낯설은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산은 이곳에 없다고 한다."


허무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시대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니 항상 새롭게 생각하자는 이야기이다. 요즘 유행하는 대로라면 새롭게 디자인하자는 것이다.

줄곧 페비안이즘에 집착해오던 필자도 너무나도 시대가 변하고, 난제가 속출하여 해결방안에 당혹하게 되니 그것이 '靈山'이었나하고 몽롱하기까지 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독재의 탄압 아래 맑시즘이나 그 비슷한 조류에 관심을 가졌던 세대에게도 시 '靈山'이 어떤 깨우침을 줄지 혹 모르겠다.

몸담아온 당의 애처로운 분열상에 실망하여 정계를 아예 떠난다고 전해지는 외곬수 노동투사 단병호 의원의 심정은 어떠할지.

* 이 글은 잡지 <헌정>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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