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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파국이 코앞인데, 오렌지? 오뤤지!"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30> 크루그먼의 경고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과 그 관료들이 날로 치솟는 증시에 현혹돼 경기를 낙관하던(혹은 속으로는 달리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낙관한다고 강변하던) 무렵이었다. 그리고 이명박 당선인과 그 당의 브레인들이 '규제 완화'로 고삐가 풀린 세계 경제의 문제들과 고군분투하는 각국 정부와의 추세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역주행'하면서 규제 완화를 신주단지처럼 내세우고 경부운하를 통한 부동산 거품 유지를 공약이라고 발표하던 무렵이기도 했다.

그 즈음 대서양 건너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프린스턴대 교수는 점차 현실로 다가오는 '파국'을 경고하고 있었다. <뉴욕타임스> 2007년 10월26일자에 '예고된 파국(A catastrophe foretold)'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크루그먼 교수의 글은 3개월이라는 시차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점에서 한국 시장과 세계 경제 '불안정성'의 원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예고된 파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담보 대출)가 증가할수록 연체와 채무불이행도 증가했다. 어떤 경우에는 대출관행의 부정도 늘어났다." 미국연방준비은행 관리로 일했던 그램리치(Edward M. Gramlich)의 말이다.

이와 비슷하게 오늘날 많은 사람이 정상적인 금융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주택 구매자에게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제공됐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램리치가 앞의 사실을 지적했던 때는 2004년 5월이었다.

물론 그게 첫 번째 경고는 아니었다. 최근 암으로 죽은 그램리치는 그가 쓴 마지막 책에서 2000년 초 자신이 앨런 그린스펀으로 하여금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도록 만들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물론 성공하지는 못했다.
▲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 위기는 전 세계의 경제를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로이터

그렇다면, 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대실패를 피하기 위한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던 것일까? 이 문제에 답하기 앞서 여러분이 알아둬야 할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 대출자와 투자자를 위한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미 의회 합동경제위원회가 새로 낸 보고서는 2008년 말까지 200만 건의 채무불이행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미국의 200만 가족이 집을 잃은 채 치욕감과 금전상의 고통에 시달릴 거라는 얘기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지탱된 자산을 구입한 투자자들 역시 계속하여 심각한 손실로 고통 받을 것이다. 모든 상황은 메릴린치 같은 사례가 훨씬 더 많이 생길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메릴린치는 악성 대부금 때문에 84억 달러를 평가절하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몇 주 전에 밝힌 30억 달러보다 훨씬 큰 액수였다.

둘째, 많은 사람들이 주택 시장의 거품이 심각한 상황임을 분명히 알고 난 다음에도, 그리고 그램리치 같은 이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상황에 대해 공개적인 경고를 보낸 다음에도, 심각한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상당 부분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2003년 무렵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규모는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8.5%에 불과했다. 그런데 주택 거품이 절정에 달했던 2005년과 2006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규모는 전체의 20%에 달했다. 지금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연체율은 다른 담보 대출 상품보다 훨씬 높은 상태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재난을 피하기 위한 조치가 아무것도 취해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 답은 이데올로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램리치는 죽기 직전 발표한 글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은 미국 개척시대의 서부와 같다. 주택 담보 대출의 절반 이상이 연방정부의 감독을 받지 않는 자영(自營) 대출기관들을 통해 이뤄졌다"고 썼다. 그가 언급하진 않았지만, 이는 워싱턴을 지배하고 있는 자유방임주의 이념가들의 방식이다. 그린스펀을 비롯한 이 이념가들이 원했던 방식인 것이다. 이들은 정부는 늘 문제이고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규제는 언제나 나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들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규제 철폐가 전기 요금을 낮출 거라는 주장이 거짓으로 판명되었듯이, 규제가 철폐된 금융시장이 금융시장 자체를 저절로 돌아가게 할 거라는 주장도 거짓으로 드러나고 있다.

프랭크(Barney Frank)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위원장이 <보스턴 글로브> 의견란의 한 기사에서 말했듯이,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급증은 급진적인 금융시장 규제철폐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이론을 검증하는 "자연 실험"같았다. 그리고 프랭크가 말했듯이, 그 교훈은 분명하다. "시스템이 작동했던 것은 세심한 규제와 단속 때문이다. 그것이 없다면, 결과는 비극이다."

사실, 대출자와 투자자 모두 신용 사기를 당한 셈이다.

얼마 전, 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연관된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신용등급 AAA의 자산을 사고 있다고 확신했다가, 실제로는 어느 날 갑자기 정크본드(수익률이 높지만 신용도가 낮은 채권 : 역자)를 소유하게 됐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충격은 금융시장에서 신뢰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으며, 경제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비극은 괜찮은 거래로 듣고서 돈을 빌린 사람들이 맞닥뜨린 문제다. 이들이 자신이 빚더미라는 덫에 걸렸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램리치는 마지막 장에서 자신의 2004년 경고를 언급하면서 "대출에서 규제 완화가 많이 이뤄질수록 대출 관행의 부정도 커진다"고 강조했다. 사실 많은 대출자들은 처음에는 썩 낮은 이자율을 제공하다가 2년 후에는 갑자기 이자율이 급등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같은 "신종" 대출상품에 대해 판단할 식견을 갖고 있지 못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대출자들의 실수를 예방한다는 이유로 선납 조건도 포함하고 있다.

이런 대출은 주로 판단력이 가장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제공된다. "가장 위험한 대출상품이 (금융상품에 대한) 지식이 가장 떨어지는 대출자들에게 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그램리치는 묻는다. "질문 자체가 답이다. 지식이 가장 떨어지는 대출자들이야 말로 이런 상품을 구입할 만큼 사기 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상 가능한 결론은 아수라장이다."

지금 프랭크 위원장은 온건한 규제책을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에 확대하기 위한 법제화 노력을 하고 있다. 재난의 규모는 거대하지만, 그의 싸움은 쉽지 않을 것이다. 워싱턴에서는 돈이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택 담보 대출 산업이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 막대한 자금을 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가져올 파국은 우리로 하여금 금융 규제가 최우선으로 도입되어야 했던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토록 만들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크루그만의 글에 덧붙이는 필자의 사족

1월 29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가 추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한 2008년 세계경제 성장 전망에서 IMF는 미국과 국제 금융시장에서 신용경색 위험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세계경제가 앞으로 더 둔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 주택시장 붕괴에 따른 경제성장 둔화와 금융 경색이 한국을 비롯한 세계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거라는 얘기다.

다음날인 30일 한국의 코스피지수는 1600선이 무너졌다. 1700포인트가 무너진 지 아흐레 만이었다. 앞서 1700포인트는 1800포인트가 무너진 지 열흘 만에 붕괴했다. 지금 증권시장에선 '지지선'이란 말이 힘을 잃은 지 오래다. "더 이상 지지선은 없다"는 우울한 전망이 미디어의 경제면을 장식하고 있다.

미국 경제를 뒤따르며 증권시장과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맞물리며 지탱되어온 한국 경제가 부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2008년 1월 14일자 머리기사의 제목은 "그것이 시작됐다(It has begun)"였다. 이 신호가 경미한 신음소리에 그칠지, 아니면 거대한 파열음으로 증폭될지는 다가오는 시간이 증명해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물러가는 노무현 대통령이나 들어오는 이명박 당선인이나 한마디 말이 없다. 권력의 과도기에서 '막강 파워'에 탐닉한 인수위는 '후렌들리, 오뤤지' 하며 국적 불명의 영어로 날밤을 지새우고 있다. 노는 격이 꼭 '바람풍 바담풍' 꼴이다.

한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에서도 "뭔가가 시작됐고, 그 무엇이 오고 있다"는 징후가 농후하지만, 국가 경영을 책임진 그 누구도 다가오는 사태의 심각성에 눈을 감은 듯하다. 아니 시장 근본주의(market fundamentalism) 신앙에 너무 깊이 취해 뭐가 뭔지를 모르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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