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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가?"

[기고] 李 당선인은 '인권'을 내팽개칠 셈인가?

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인수위)가 정부 조직 개편안을 발표하자 온 사회가 떠들썩하다. 통일부 폐지는 우리 민족의 평화 통일을 한반도 주요 과제 중 후순위로 밀어내겠다는 것이라 생각되어 우려스럽고 여성가족부의 폐지는 여성들이 여전히 차별받고 있는 사회 구석구석을 보지 못하는 가부장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 같아 안타깝다.

과거사 관련 위원회 중 일부는 통·폐합하고 한시적 기구들은 그 기한이 다해 '자연사'하면 자동 폐지하겠다는 입장은 어떤가? 진상 규명에는 아무 관심이 없고 자신의 정치적 지향과 거리가 있다고 여겨지는 기구는 무조건 없애고 보겠다는 발상이라 생각된다. 지난 수십 년간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해 피눈물의 세월을 살아온 수많은 유족과 피해자에게 송구할 뿐이다.

특히 독립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겠다는 방침은 인수위 내부의 인권감수성이 바짝 말라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독립기구인 것이 삼권분립의 원칙에 맞지 않고 헌법에서 국가인권위원회를 독립기구로 규정하고 있지 않아 대통령 소속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며 그 직무의 독립성은 보장하겠다는 인수위의 주장은 참으로 논리적이지 못하고 억지스러울 뿐이다.

차라리 인수위의 입장 발표 이후 한나라당에서 발표한 논평이 훨씬 솔직하게 느껴진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노무현 정권 시절 지나치게 권력층의 코드에 맞추느라 정권의 시녀 노릇을 충실하게 해왔고, 새 정부에서 새로운 위상과 기능으로 출범할 국가인권위원회는 북한주민들의 인권을 신장시키는 파수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라는 주장을 담고 있는 한나라당 부대변인 명의의 논평은 차라리 얼마나 솔직한가?

이제 경찰이나 검찰, 구금 시설 등에서 일어나는 각종 인권 침해 사안들은 국정 운영을 위한 '필요악'이니 정부의 정책은 그것이 반인권적이라도 군소리 말고 따르는 것이 좋겠고 앞으로는 북한 인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6자 회담이나 남북회담에서 우리가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도록 '인권'을 잘 이용하는 데 앞장서라는 저들의 진심이 담긴 논평이 아닌가.

국가인권위원회가 마음에 쏙 들게 일을 잘해 온 것만은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때문에 속 터지고 열 받았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가 우리 사회의 인권 신장을 위해 큰 역할을 담당해 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교도소, 구치소, 유치장 등에서 일어나는, 너무나 빈번하고 일상적이어서 인권을 침해하는 것인지, 침해당하는 것인지도 느끼지 못했던 수많은 부분이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쪽으로 개선된 것에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공이 있다.

군대 내의 의료 접근권을 보장하고 군 의료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혁을 권고하였으며 사회복지시설과 정신병원 등의 실태를 조사하고 개선하는 일 등을 통해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 노무현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의 인권 침해적 독소 조항을 삭제하게 한 것이나 강력한 의지로 밀어붙이던 이라크 파병에 반대 의견을 낸 것,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대체입법을 권고 한 일, 사회보호법, 사형제도, 국가보안법 등 대표적인 반인권 법의 폐지를 권고한 일 등은 정권의 눈치를 봤다기보다는 '인권'의 언어로 말해왔다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 모든 것들이 국가인권위원회가 그나마 행정부나 입법부에 속하지 않고 독립기관으로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독립기관이었던 시절에도 정권에 코드를 맞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통령 직속으로 끌어와서도 독립성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 시민·사회단체들이 국가인권위원회 독립 보장을 요구하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프레시안

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는 그동안 부족하나마 발전해온 우리 사회의 인권을 '인수'할 마음은 없는 것이 분명하다. 또 인수위와 한나라당 안에는 인권 감수성이나 국제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는 것이 분명하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국제사회에서 독립성을 가지고 일하는 것에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을 건드리는 일이나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의 정중한 요청에 대해 '국내 상황을 모르고 하는 답답한 소리'라는 말로 일축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인권기구의 독립성을 보장해야한다는 유엔총회 결의 사항인 '파리 원칙'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국가인권기구가 독립적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 아닌가? 만일 대통령이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정책을 추진한다면 또, 같은 대통령 소속의 국가정보원이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저질렀다면 과연 대통령 직속 국가인권위원회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국회가 반인권적 법안을 만들려고 하고, 법원이 인혁당 사건 같은 판결을 내렸을 때 행정부 소속의 국가인권위원회가 개입하는 것이야말로 삼권 분립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일찍부터 '끔찍한 인권관'을 가지고 있음을 각종 매체를 통해 스스로 밝혀왔다. 도덕성이 바닥이어도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인권 감수성 수치가 '0'에 가까울 그가 국가인권위원회를 귀찮고 번거로운 존재로 인식하고 자신의 통제 안에 두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예상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 사회에는 인권과 평화를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기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힘으로 7년 전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들었고 그 마음들이 그래도 이 땅이 살아볼 만한 곳이라고 믿게 해왔다. 그 힘과 마음을 다시 하나로 모을 때가 왔다. 인권·사회단체에서 강력한 기자 회견과 성명을 통해 인수위의 방침에 반대를 표명했고 유엔인권고등판무관, 국제앰네스티, 아시아인권위원회 등 국제사회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명박 당선자와 인수위가 이러한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피와 눈물로 발전시켜온 이 땅의 인권 수준은 다시 바닥을 치게 될 것이다.

어떤 주장을 펼쳤다가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고 고쳐나갈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용기이다. 잘못한 결정이라는 것을 이미 알게 되었으나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억지로 밀어붙이려 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다. 난 내가 지지했던, 하지 않았던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이 비겁한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누가 보아도 잘못인 국가인권위원회 대통령직속화 추진은 지금 즉시 멈추는 것이 가장 멋있고 올바른 결정일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이명박 당선자와 인수위가 그동안 자신들에게 인권 정책이 없었음을 깨닫는 계기가 되고 친기업, 친미국적인 정책이 아니라 친국민, 친인권적인 정책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인권에는 양보도 없고 포기도 있을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를 독립기구로 지켜내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진정한 국민의 인권보호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모두 한 마음이 되어야 할 때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대통령 직속화는 절대 불가하다는 것을 국회 역시 가벼이 여기지 말고 논의에 임할 것을 촉구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 문제가 당리당약을 위한 협상의 조건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인권의 개념은 대통령도 변화 시킬 수 없다. 인권을 지키는 일은 생존권을 지키는 일이다. 이 점을 이명박 당선인과 인수위가 깨닫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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