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GM대우 비정규직지회 박현상 씨는 올 겨울이 어느 때보다도 춥다. 자신이 일하던 GM대우 부평공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20m 상공에서 밤낮을 지내며 영하의 칼바람을 맨몸뚱이로 받아낸 지도 어느덧 16일로 21일째다. 제대로 몸을 펼 수조차 없는 좁은 공간이다보니 푹 자는 일도 어렵다.
그러나 현상 씨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는 것은 겨울 추위도 허리와 다리에서 전해오는 통증도 아니다. 바로 무관심이다. 노무현 정부도, 이명박 당선인도 그와 동료의 목소리에 귀를 열지 않는다.
20일을 추위에 떨어도 GM대우, 노동부 모두 '나 몰라라'
박 씨가 CCTV 관제탑에 올라간 것은 지난해 12월 27일. 노동조합 설립 이후 줄줄이 해고된 35명의 복직을 위해서다. GM대우에는 지난해 9월 처음으로 하청업체 비정규직이 노동조합을 만들었지만 노조 설립 후 업체가 아예 폐업을 하면서 조합원 대다수가 길거리로 나앉았다(☞ 관련 기사 : 새해에 들떠있는 지금, 당신의 이웃은…).
업체 폐업으로 사실상 해고된 조합원을 공장 안으로 돌려보내고자 비정규직지회 조직부장 박 씨가 한겨울 고공농성을 시작했지만 GM대우 측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마음이 영 답답하다."
박현상 씨는 이날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농성 전에도 GM대우와 하청업체는 우리의 대화 요구에 응하지 않았었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해도 계속 요지부동"이라고 현재 심경을 밝혔다.
지회는 단체교섭 요구조차 회피하고 있는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를 해결해 달라며 노동부도 찾아가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새 정부에 기대를 걸어볼까 싶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찾아갔고, 미국 기업인 GM 본사의 힘을 빌릴 생각에 주한 미 상공회의소와 주한 미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 앞에서 열린 '언론 사찰' 규탄 기자 회견에는 방송사 카메라를 비롯해 기자들이 몰렸지만 같은 장소에서 뒤이어 열린 GM대우 비정규직지회 등 비정규 노동자의 기자 회견은 '썰렁'했다.
그 기자 회견 현장에 있었던 한 참석자는 "방금 언론 사찰 기자 회견에는 그렇게 많은 기자들이 와서 언론자유를 말하더니 금세 사라졌다"며 "그들이 언론자유를 얻어서 하고 싶은 일이 도대체 뭔지 궁금하다"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3년 흑자 GM대우 문제도 못 풀면서 비정규직 살린다고?"
해결이 난망한 GM대우 사례는 경제성장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이명박 당선인의 '철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GM대우는 회사 출범 이후 지난해 최대 판매 실적을 기록했다. 2006년과 비교했을 때, 판매대수가 25% 늘어났고 수출실적은 30%나 성장했다. 특히 GM대우는 최근 3년간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명박 당선인은 "법을 어떻게 바꾸더라도 수지가 안 맞으면 기업은 비정규직을 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GM대우는 경영 실적과 비정규직 문제는 큰 관계가 없음을 잘 보여준다.
이대우 비정규직지회장은 "얼마나 더 기업이 성장해야 고용을 늘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쓸 수 있다는 말이냐"며 "경제 성장을 한다고 비정규직 문제가 자동 해결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업체 폐업으로 노조 활동 막는 관행 확산…제어 장치? "없다"
한편, GM대우 비정규직의 대량 해고는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보복' 성격이 강하다. 최근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경우 원청과의 계약 해지에 따라 업체가 폐업하면서 자연스럽게 해고되는 일이 회사에 관계없이 당연한 수순처럼 확산되고 있다.
충남 서산의 자동차 조립전문업체 (주)동희오토에서도 최근 하청업체가 폐업하면서 7명이 공장에서 쫓겨났다. 업체 폐업 후 신규 업체로의 고용 승계를 거부당한 이들 7명은 모두 금속노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이다.
이런 '수법'을 제어할 수 있는 법적 장치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뒤늦게 법원이 이같은 사례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결하며 제동을 걸고 나섰지만, 현실적으로 해고자의 복직은 쉽지 않다. 일단 부당해고 판정을 받더라도 복직할 업체가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원청이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지만,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권'을 지켜 달라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절규는 오늘도 차가운 칼바람 속으로 공허하게 흩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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