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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왕국'의 그늘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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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삼성 왕국'의 그늘에서 만난 사람들

[기자의 눈] 검찰, 그리고 우리가 놓쳐선 안되는 진실

9일 서울 제기동성당에서 열린 삼성 특검 관련 기자회견은 이전에 비해 썰렁한 모습이었다. 시장통은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북적이던 기자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기자회견을 중단하게까지 만들었던 생중계석도 보이지 않았다.
  
  김용철 변호사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신부들이 '충격적인 폭로'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미리 돌았기 때문이었을까. 첫 양심선언 이후 두달이 지난, 사회적인 관심이 잦아든 사안이라고 판단해서였을까. 어쨌든 삼성 특검 수사 착수를 하루 앞둔 이날 기자회견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됐다.
  
  "정상적인 검찰이라면 나머지 사항 수사해야"
  
  이날 김용철 변호사의 변호인단을 맡고 있는 이덕우 변호사는 지나쳐선 안 될 중요한 발표를 했다. 바로 특검 수사 범위에 명시되지 않았지만 향후 검찰이 수사해야 할 사항들이었다.
  
  이덕우 변호사를 비롯해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이 강조한 사항은 총 다섯 가지였다.
  
  첫번째는 비자금 조성이 따르지 않은 분식회계 문제다. 김용철 변호사는 외환위기 직후 삼성의 분식회계 규모가 삼성중공업 2조원, 삼성항공 1조 6천억원, 삼성물산 2조원, 삼성엔지니어링 1조원, 제일모직 6천억원 등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또 1999년경 김용철 변호사가 주식명의신탁계약서를 비밀리에 썼다고 밝힌 <중앙일보> 위장 계열 분리 문제와 삼성자동차 법정관리 기록 소각 사건도 특검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재용으로의 경영권 승계 과정 중 특검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나머지 사안에 대한 조사와 '무노조 경영'이라고 알려진 삼성의 노조 탄압 실상에 대한 조사도 시급히 진행돼야 할 사항에 포함됐다.
  
  이덕우 변호사는 "검찰, 국세청, 금감원 등이 정상적으로 작동된다면 이건희 왕국의 의도대로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국민의 세금을 받고 직무를 유기하는 기관은 더이상 존립근거를 인정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삼성 왕국'의 그늘에서 만난 이들
  
  한편 '취재 열기'가 누그러든 이날 기자회견에는 대신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몇몇 새로운 얼굴이 보였다.
  
  지난 1일, 2005년 2월 구속된 이후 34개월만에 특별사면으로 출소한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 그리고 '출교 630일째'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나타난 고려대학교 출교생 안형우 씨.
  
  석방 이후에도 쉴새없이 지인을 비롯해 현장에서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다는 김성환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 소식을 듣고 김용철 변호사와 인사할 기회라도 갖게 되지 않을까 싶어 찾아왔다고 했다. 그는 다소 썰렁해진 기자회견의 분위기에 "벌써 삼성 문제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든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안형우 씨 역시 소식을 듣고 개인적으로 찾아왔다고 했다. 그는 "얼마전 학교에서 제출한 2심 항소이유서에는 출교 이유에 이건희 씨를 언급했다"며 "그동안 이건희 씨는 아무 상관없다고 부인했던 학교가 모순된 진술을 한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회견장에서 우연히 서로 만난 이들은 안부를 물으며 반가워했다. 김용철 변호사 역시 기자회견이 끝난 뒤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분위기는 밝았다. 그러나 어쩌면 서로 평생 모른 채 지나칠 수 있었던 이들의 '만남'이 씁쓸하게 느껴진 것은 기자 개인의 감정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반가운 만남 뒤에 어두운 '삼성 왕국'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그들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건 이덕우 변호사가 밝힌 '검찰이 수사해야 할 다섯 가지 사항' 이외에도 우리 사회가 삼성의 불법 행위, 그리고 '삼성 왕국'의 진실을 끝까지 파헤쳐 나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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