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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이 돈을 벌어준다고? 천만의 말씀!

[TV와 수다] 눈 앞 이익에 급급해 판을 깨나

연초부터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표절'이라는 익숙하면서도 반갑지 않은 논란이 새해 첫머리부터 대중문화계를 들썩이고 있다. MBC <가요대제전> 오프닝 표절 의혹과 <무한도전>의 일본 프로그램 표절 논란부터 이승환과 컨츄리 꼬꼬의 공연 무대 표절을 둘러싼 공방, 인기 로맨스 작가 이선미의 <태백산맥> 표절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표절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대응 방식도 가지가지다. 누구는 "표절이 아니라 패러디"라고 '강변'하다가 '침묵'하고(<가요대제전>에 대한 MBC 예능국의 입장) 또 누구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한다(<무한도전> 제작진). 심지어 "우리만 무대를 도용한 게 아니다"며 '물귀신 작전'으로 나가는 쪽도 있다(컨츄리 꼬꼬 공연기획사 대표). 그나마 양심적으로 잘못을 솔직히 인정한 후 공개 사과와 함께 표절 콘텐츠를 전량 회수한 쪽(이선미 작가)이라도 있어 불행 중 다행이다. 약간의 윤리 혹은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대응이(이선미 작가를 제외하고) 참 '궁색'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표절 논란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
▲ 표절 논란을 불러일으킨 MBC <가요대제전>의 오프닝 화면 일부. 어린 출연자들이 성인이 돼 무대에 등장한다는 컨셉이 일본 인기 그룹 SMAP의 콘서트를 베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잘못을 하면 무조건 잡아떼거나 침묵으로 일관하는 게 우리 사회에서 은근히 잘 먹히는 편이지만 이들은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았다. 대중문화 시장은 법적, 사회적 구속과 상관없이 대중들의 '판단'에 따라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이 산업의 구매자들은 언제든지 더 재미있는 것을 찾아 미련 없이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그렇기에 표절 당사자들이 겁내야 할 것은 법적 제재나 사회적 비난이 아닌, 대중들이 그들에 대해 갖게 되는 '지속적 이미지'이다. 이런 상황에서 표절 의혹에 대한 변명이나 핑계, 침묵의 '기술'은 당장의 위험을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한 표절 의혹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60, 70년대 한국 영화 제작자들이 감독에게 해외의 유명 영화를 보여주며 비슷하게 만들어 보라 권했다는 이야기는 새삼스럽지 않다. 90년대 한국 텔레비전에 트렌디 드라마 붐을 일으켰던 <질투>가 일본의 <도쿄 러브 스토리>를 표절한 것은 유명한 사건이며, 일본 음악의 전면 개방이 이루어진 지 5년이나 된 지금에도 일본 대중가요에 대한 표절 시비는 끊이지 않는다. 미국, 일본 등의 문화 산업 '선진국'의 콘텐츠를 베끼는 것을 넘어 홍콩 영화 <아저씨 우리 결혼 할까요?> 표절 논란에 시달린 <어린 신부>처럼 표절(의혹)의 대상은 전 세계 곳곳에 퍼져있다.

통신 기술이 발달하며 인터넷은 글로벌 콘텐츠의 천국으로 바뀌었고 문화 수용자들 역시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일본 드라마를 비디오테이프에 복사해 드라마 제작진들끼리만 돌려보던 과거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인터넷이 대중화 되지 않았던 시절에도 소수의 '선진' 수용자들 덕에 표절 시비가 심심치 않게 불거져 나왔음을 생각해보면, 모두가 '선진' 수용자가 되어 버린 지금 상황에서 표절을 한다는 건 용감해도 너무 용감하다. <가요대제전> 오프닝이 스마프(SMAP)의 공연 오프닝을 표절한 사실을 알게 되는 데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인터넷 시대의 표절, 멍청한 거야 무식한 거야?

이런 시대에 일어나는 표절 의혹은 과거와는 성격이 다르다. 예전에는 웬만한 사람들은 표절이라는 사실을 알기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표절이 의심 되도 증거를 들이대기가 어려웠다. 일본 드라마 비디오테이프나 음악 CD는 '암시장'에서나 살 수 있었고, 그 '암시장'을 알고 즐기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마저도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사회 공론장이 없었기에 '이 작품, 표절인데?'라는 생각은 혼자서 간직해야만 했다.

지금은 일본 드라마나 음악을 인터넷에서 손쉽게 구입 혹은 다운로드 할 수 있다. 표절이 의심되면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쓰면 된다. 소문은 알아서 퍼진다. 언론에서 척척 '기사화' 해주기도 한다. 덕분에 제작자는 '몰래' 베꼈다가 인터넷에서 호되게 당하는 와중에 '비밀리에' 모방한 작품 '판권'을 사와 '리메이크'라고 '당당하게' 주장한다.

또는 애초에 '대중의 예리한 눈'이 겁나 판권을 진작 구매하고 원작을 숨긴 채 시장에 풀었다가, 표절 논란이 일면 '슬그머니' 원작 이름을 한 줄 삽입한다. 이 정도면 그나마 양심적이다. <가요대제전>이나 최근 벌금형을 선고받은 가수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 뮤직 비디오 표절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표절을 '패러디' 혹은 '오마쥬'라고 강변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논란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하며 시간이 흘러 저절로 잊히길 기다리는 쪽도 있다.

웬만큼 현실 인식 없는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이런 시대에 남의 것을 베끼면 바로 들통 날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표절은 끊이지 않을까? 수용자들이 '원본' 콘텐츠를 모를 거라 생각해서? 아니면 들키지 않을 거라 자신해서? 그도 아니면 '확실히' 빠져 나갈 구멍이 있기 때문에? 하지만 시대 상황을 생각했을 때, 원본을 아는 사람이 소수라도 분명 있을 거라는 사실과 표절 사실이 낱낱이 밝혀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들킬 경우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것쯤은 '영리한' 제작자들도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버젓이 표절 의혹이 끊임없이 불거지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것이 '단기적인' 돈벌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눈 앞의 이익에만 급급

<가요대제전>을 예로 들어보자. <가요대제전>과 같은 연말 쇼 프로그램은 다음해 광고 수익을 위해 동시간대 경쟁사의 프로그램을 시청률에서 앞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 '채널 고정'은 필수이고 인상적인 오프닝은 리모컨을 붙들 수 있는 가장 효과적 방법 중 하나이다. <가요대제전>은 동시간대 타 방송사의 쟁쟁한 연기대상 두 편을 제치고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가요 프로그램이 전혀 인기를 끌지 못하는 지금 시대에 말이다. MBC 예능 관계자들은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표절 논란이 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시청률 1위였으니 내년 연말 편성에서 타 방송사에 비해 유리한 광고 조건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 광고주들은 시청률만 신경 쓰지 표절 의혹 따위 관심도 없을 것이고, 심지어 표절 의혹도 시간이 지나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것이다. 혹 원본 생산자인 스마프의 소속사 쟈니스에서 고소라도 하면 문제가 달라지겠지만, 벌금 몇 천만 원 정도는 내년 연말 <가요대제전>의 광고 기대 수익을 감안하면 참아줄 수 있다. 게다가 <가요대제전>은 일회성 방송이기 때문에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따위 전혀 겁나지 않는다.

이 정도면 표절 따위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적어도 '당장은' 말이다. 한국 사회는 표절에 대한 제재가 심하지 않다. 미국처럼 '법정 손해배상제도'라는 것이 있어 표절 한 번 했다가 수십억에서 수백억이 '깨지는' 일은 절대 없다.

게다가 표절 당한 당사자가 법적으로 고소하지 않으면 처벌 받지도 않으니 합의만 잘 하면 된다. 신경 쓰이는 건 '사회적 비난' 정도인데 이상하게 요즘에는 '사회적 비난'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히려 '재미있으면 그만', '요즘 세상에 오리지널이 어디 있어' 같은 열성팬들의 비호가 그 비난에 대한 방패가 된다. '사람들이 재미있다는데 무슨 말이 많아'라는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대중문화 포퓰리즘의 논리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순간의 달콤함이다. 제작자들이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는 '대중의 선택'은 득인 동시에 독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 시장에서 대중문화 '산업'은 '정글' 그 자체이다. 이 산업만큼 '더 재미있고 더 좋은 것'이 나타나면 주저 없이 등 돌리는 사람이 많은 곳도 드물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다른 콘텐츠보다 더 재미있다는 혹은 앞으로도 더 재미있을 거라는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미·일 방송에 길들이기

표절은 그 믿음의 토대를 스스로 무너뜨린다. 그것은 시장에 '더 재미있는 것'이 있음을 스스로 까발린다. '베낀 게 이 정도인데 원본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지금까지의 구매자와 잠정적 구매자의 상당수가 이탈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리고 이것은 '장기적으로' 꾸준히 이루어진다.

방송 콘텐츠를 예로 들어보자. 가뜩이나 재미도 없는 연말 쇼, 야심차게 내놓은 것이 남의 나라 가수 공연 베낀 거라는 사실을 이번 표절 의혹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을까. 안 그래도 한국의 방송 콘텐츠에 만족하지 못해 '미드', '일드'에 이어 '미국 리얼리티 쇼', '일본 버라이어티 쇼'에 열광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시장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표절 의혹을 통해 한국 방송 콘텐츠가 '저질'이고 노력만 하면 '더 재미있는 것'을 볼 수 있음을 스스로 만방에 선포한 꼴이니, 앞으로 더 많은 시청자가 떨어져 나가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는가. 시청자들은 인터넷에 떠다니는 창의적이면서 재미있는 '오리지널' 콘텐츠만 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

어차피 표절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양심이니 윤리니 백날 말한들 귓등으로 흘려들을 게 뻔하다. 그러니 그들이 그렇게 사랑하는 '돈 버는' 관점에서만 표절에 대해 생각해보자. 간당간당 유지하고 있는 시장 점유율을 알아서 잘라먹는 꼴에 경쟁 상대의 '무혈입성'까지 도우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게다가 바로 앞에는 한미 FTA라는 끔찍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FTA와 함께 미국의 저작권 개념이 도입되면 표절에 대한 수억 원대 벌금 폭탄이 떨어지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국내 대중문화 콘텐츠를 위한 보호 장치도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 스크린 쿼터는 이미 축소됐고 방송 쿼터 축소는 눈앞이다.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질 것은 뻔하다.

이런 시대에 소비의 주체인 대중에게 콘텐츠의 질과 재미에 대한 '지속적인 믿음'을 심어주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다. 그러니 쪽팔릴 대로 팔리는 데다 이미지까지 왕창 구기는 표절의 '효용성'에 대해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보라. 한 5년 쯤 뒤에 시청률이 반토막 나고 공연 티켓과 책 판매량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후에야 뒤늦게 '다 내 탓이었어'라 후회하지 말고. 한 번 버려진 믿음과 구겨진 이미지는 좀처럼 회복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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