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가장 부러운 사람은, 쉽게들 예상하는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아니다. 부럽긴 커녕 끌끌끌, '을매나' 할 일이 많을까를 생각하면 안됐다는 생각까지 든다. 진정으로 부러운 사람은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다. 그는 얼마 전 새로 사귄 애인인 카를라 부르니와 함께 이집트 나일강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52살 대통령이 39살짜리 미모의 여가수와 손을 잡고, 허리에 팔을 휘감고 다니는 모습은 국내에서라면 상상할 수도 없거니와 그랬다가는 심지어 탄핵 소리까지 나왔을지 모른다. 아 그러나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정치든 뭐든, 그쪽 사람들은 어쨌든 의식적으로라도 삶의 여유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삶의 질을 높이려고 애쓴다. 그런데 우리에게서는 그런 태도를 발견하기가 힘이 든다. 딱 10년 전의 영화계와 지금은 그 구분하기 좋은 만큼의 시간대만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10년 전에는 한국영화가 제2의 르네상스기를 맞기 시작한 때였다. 지금은 한때의 영광이 언제였냐는듯 한국영화는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10년 전 이맘 때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부산국제영화제가 2회, 3회를 맞으면서 아시아 지역을 대표하는 새로운 영화제로 부상하기 시작한 때였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부산영화제는 최악의 행사를 치렀다는 비판을 받았다. 10년 전의 영화계가 특기할 만한 사항 가운데 하나는 영화저널의 성공이었다. 그때만 해도 지하철을 타면 젊은이로 보이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특정 영화 주간지를 보고 있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당시의 영화저널은 영화지가 아니라 문화지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리 애를 써도 책이 잘 팔리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은 영화비평과 정보를 영화지에서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10년 전의 영화계와 지금의 영화계의 진짜 차이는 그런 '하찮은 일'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10년 전에는 정치적 민주화, 사회 개방화에 대한 미래 비전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그동안의 실험과 성과는 모두 '좌파'라는 딱지를 붙여 매도당하고 있다. 정치 민주화와 사회개방이 영화의 수준을 얼마나 올려 놓았는지 아는 사람만큼은 분명히 안다. 10년이 지난 지금 사회 개방의 속도가 떨어지거나 아니면 아예 '개방적'이 되기를 포기한다면 영화문화는 급속도로 퇴행할 가능성이 높다. 하여,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사랑하는 여인의 손을 잡고 흡족한 미소를 띠며 여행을 다니는 모습을 일부러라도 연출할 필요가 있다. 하이고 근데 그게, 의지만으로 잘 될 일인지 모르겠다. 오로지 경제,경제만 얘기하는 사람들이 청바지를 입고, 뒷주머니에는 극장표를 꽂고 다닐 마음의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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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이었던 사나이 |
아직 누구에게도 공개가 되지 않아 어떨지는 잘 모르겠으나 내년 초에 개봉할 영화 가운데 재밌겠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정윤철 감독의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다. 황정민이 맡은 이 슈퍼맨 아닌 슈퍼맨이 초능력을 상실한 후 이 동네 저 동네를 다니며 갖은 궂은 일을 도맡아 한다는 얘기다. 그것 참, 요즘 시대에 이처럼 딱 들어맞는 얘기도 없을 듯 싶다. 어떤 사람은 지난 5년동안 자신이 슈퍼맨인줄 알았지만 사실은 초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지금은 당장 초능력을 갖고 있을지언정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건, 그 초능력을 써서 지구를 지키는 것 같은 '큰 일'이 아니라 영화속 황정민처럼 동네 아줌마를 구하고 건널목 건너는 할머니를 도와주는 등등의 '작은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초능력을 쓰지 않기는 매한가지라는 얘기다. 자, 그러니 퇴임자든 당선자든 지금 제일 필요한 일은 영화를 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데 정권인수위원회에서는 인수위원들도 영화를 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것 참 안된 일이다. (*이 글은 영화주간지 무비위크 309호에 실린 글임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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