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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시대정신, 개발ㆍ돈ㆍ부자=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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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007년 시대정신, 개발ㆍ돈ㆍ부자=이명박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27> '민주정부' 10년의 실패와 서민민주주의

난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을 찍지 않을 것이다. 전셋집에 살고, 주식과 펀드도 없고, 자기 이름으로 된 땅 한 평 없는 서민들의 형편이 이명박이 당선된다고 나아지리라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동영을 찍지도 않을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다. 그가 되어도 서민들의 인생은 피곤할 게 틀림없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이라고, 말만 번지르하게 하고 얼굴을 꾸미는 정치인은 노무현 하나로 족하다. 물론 나는 노무현도 찍지 않았다.

시대정신이 되어버린 '개발-돈-부자'

나는 이명박을 찍지 않을 것이지만, 이명박이 대통령이 될 거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가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시대정신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대선이 요구하는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그것은 '개발'이고, '돈'이고 '부자'다. 후보 12명이 난립한 이번 대선에서 '개발', '돈', '부자'를 가장 확실하게 떠올리게 하는 후보는 누구인가. 누가 뭐래도 이명박이다.

"이 펀드가 좋다. 저 주식이 좋다. 생빚을 내서라도 아파트를 사라." "이 곳에 신도시가 들어선다. 저 곳에 새 도로가 난다. 미리 땅을 사둬라." "월급 받아 언제 돈 모을래. 정직이 밥 먹여 주냐." "투자를 투기로 몰지 마라. 투기도 능력이다." "여기는 공기도 좋고 풍광도 좋으니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아파트나 골프장을 짓도록 서명 운동을 벌이자." "역사와 전통이 밥 먹여 주냐. 자연이 밥 먹여 주냐. 다 갈아엎고 관광단지 만들자." "학교 교육 못 믿는다. 이 학원 저 강사가 잘 가르친다. 내 자식은 사립유치원 사립고교 보낼 거다."

친척을 만나도 친구를 만나도, 서울 사람을 만나도 지방 사람을 만나도, 배운 사람을 만나도 못 배운 사람을 만나도, 유신론자를 만나도 무신론자를 만나도, 자본가를 만나도 노동자를 만나도 하는 이야기는 똑같다. '민주개혁 세력의 최대 기반'이라는 수도권 40대를 만나면 더더욱 그러하다.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고?
▲ 점차 현실이 되고 있는 '이명박 정권'은 서민 민주주의에는 관심이 없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자업자득이다. 이땅 다수를 이루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잃어버린 10년'에 이른 또 다른 '잃어버린 5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연합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이 '개발-돈-부자 만세'로 귀결되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민주정부를 거치면서 일반 국민들은 민주주의라는 가치에 냉소를 보내고 개혁이라는 말에서 짜증과 위선을 느낀다.

이유는 단순하다. 민주정부가 내세운 민주와 개혁이 일반 국민의 살림살이에 별로 보탬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민주정부의 핵심 정책이라는 것이 증권과 건설 시장을 부양해 돈을 돌리는 것이었고, 그 결과 증권과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버는 불로소득자가 가장 성공한 인생이 되어 버렸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자기 노동에 의지해 묵묵히 땀 흘리며 살아온 사람들은 별 볼일 없는 인생으로 전락했다. 반면, 합법과 불법의 담장을 넘나들며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부를 축적한 불로소득자들은 '시대의 영웅'이 되었다. 이제 이 땅의 젊은이들은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는 거북이나 개미보다 '한방의 성공' 후에 안락한 인생을 즐기길 원하는 토끼나 배짱이가 되어버렸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되찾은 10년"이라고 강변한다. 물론 민주정부 10년 동안에 되찾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부동산, 증권, 펀드를 한 사람들 가운데 망한 이도 있을 테지만, 크게 딴 사람도 많다. 386세대로 대변되는 이른바 민주화운동 세력 다수는 민주정부 10년 동안 사회적으로 대접받고 경제적으로 윤택해졌다.

운동 경력으로 고관대작 된 이들의 "되찾은 10년"

국민들은 80년대 학생운동의 핵심 멤버들이 벤처를 한다면서 공적자금으로 떼돈을 버는 것을 보았다.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고 사교육으로 돈을 버는 것을 보았다. 증권과 펀드로 돈을 버는 것을 보았다. 이들이 관료와 국회의원이 되어 서민을 위해 일하기는커녕 부자와 재벌의 정책을 법제화하는 것을 보았다. 서민을 위한 도서관과 녹지공원을 짓기보다는 문화관광 진흥책이라며 골프장과 카지노와 도박장을 늘리는 것을 보았다. 이들이 민주화운동 당시의 희생을 이유로 국민세금에서 나온 돈으로 보상금을 타는 것을 보았다. 이들에게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은 확실히 "되찾은 10년"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자기 몸 하나로 살아야 하는 서민들에게 민주정부 10년은 "되찾은 10년"이 되지 못했다. 김대중은 자신의 임기 동안 대도시 산동네에 노인들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 걸 알고 있을까. 밤이 늦으면 노인들이 수레를 끌고 뒷골목을 배회하며 폐지를 수집해 푼돈을 벌고 있다.

노무현은 자신의 임기 동안 지하철 안에 노인들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 걸 알고 있을까. 아침부터 노인들이 큰 자루를 들고 기차 칸을 배회하며 보다 버린 신문을 수집해 푼돈을 벌고 있다. 한 장의 폐지라도 남보다 빨리 많이 모으기 위해 다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지난 10년은 "되찾은 10년"일까?

청소년의 꿈조차 '부자'인 세상을 만든 민주정부 10년

그렇다면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되찾은 10년"이었을까? 군사독재 치하에서 대학에 입학한 이들은 입시제도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집안 사정이 어느 정도 된다면, 열심히 학교 공부를 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실제로 그랬다. 과외도 없었고 학원도 없었다.

우리 부모 세대들은 대체로 자식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더 낫고 안정된 삶을 누릴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지방 고교에서 공부한 시골 농부나 우체부의 아들이 학력고사 전국수석을 차지했고 서울법대에 가서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법관이 되겠다는 인터뷰를 담은 소식이 연말이면 신문방송을 오르내렸다. 군사독재 치하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면서 대학입시제도는 웬만한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미로 찾기가 되어버렸다. 이제 과외나 학원 없이 대학에 가는 것은 꿈꾸기조차 어렵다. 규제완화로 대학 수는 많아졌지만, 대학교육의 질은 더 낮아졌다. 대학생들의 독서량도 형편없고, 좋은 대학을 다닐수록 사회적 책임감보다는 개인의 입신양명을 추구하는 대학생이 크게 늘었다.

소수 부유층을 뺀다면 자식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안정된 삶을 누릴 거라 믿는 이가 별로 없다. 중고생들은 물론, 초등생과 유치원생까지도 영어 광풍에 휩싸여 있지만 한국민의 영어 실력이 향상되었다는 객관적인 지표는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다. 어린이들의 꿈 역시 '부자'로 전락한 지 오래다.

여수 엑스포의 부동산 투기 열풍에서 봉화의 '산타클로스 타운'까지

민주정부의 집권자들은 민주주의가 계급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애써 무시했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전진해야 민주주의가 튼튼해진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했다. 노동자를 비롯한 서민층이 민주주의로부터 사회경제적 이익을 얻지 못할 때, 정치적 민주주의조차 위험해진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민주화 세력은 먹고 살 만해졌고, 자신들을 위한 민주주의는 정치적으로나 사회경제적으로나 이미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국민 다수가 주식 한 주 갖고 있지 않고 집과 땅이 없는데도, 민주정부의 정책은 증권시장 부양과 부동산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왔다. 말이 좋아 '금융자본주의'지 경제와 금융이 투기의 수단으로 전락했고, 말이 좋아 '개발'이지 온 국토가 부동산투기장으로 변해버렸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

대전 엑스포의 황량한 시설도 그 처리 문제로 골치가 아픈데, 전남 여수 엑스포 유치에 온 나라가 환호성을 질렀다. 덕분에 이건희 삼성회장과 정몽구 현대회장이 여수에 사두었던 땅 값이 급등했다. 엑스포 덕분에 규제가 풀려 여수 인근의 아름다운 해안가에 골프장도 들어서게 되었다. 경북 봉화군에 들어선다는 500억짜리 '산타클로스 타운' 건설 사업은 점입가경이다. 봉화 바로 위에 자리한 태백에 이미 수천억을 투자한 강원랜드가 도박관광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 바로 밑에 관광레저타운을 만든단다.

민주화 세력이 장악한 중앙정부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장악한 지방정부가 '개발 동맹'을 구축하고 삼천리 금수(錦繡) 강산을 건설족들의 금수(禽獸) 강산으로 만들어버렸다. 부자들은 중앙과 지방 정부의 개발 프로젝트를 활용해 큰돈을 벌기 위해 돈독이 올랐고, 서민들은 그 부스러기라도 주워 먹으려고 혈안이 되어온 세월이었다. 이것이 민주정부 10년이 만들어낸 현재 사회의 모습이다.

민주주의가 서민들의 삶 지켜주지 못했다

부자들은 민주주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투명하고 공개된 세상을 뜻하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투명성과 공개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부에 대해서 되도록 감추고 싶어 한다. 자신들의 부가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숨기고 싶어 한다. 민주주의는 그 부의 축적과 유지 경로를 밝히고, 나아가 부를 누리려면 사회적 대가를 지불하라고 요구하는 체제다. 그래서 부자들은 민주주의에 적대적이다. 특히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부자들이 이번 선거에서 누구를 찍을지는 명약관화하다.

중앙이든 지역사회든 부자가 여론주도층이다. 그들은 중앙과 지방의 기업, 정부, 관료집단, 학계, 지식계, 언론계, 문화계 모두를 장악하고 있다. 부자는 대한민국의 여론을 만들어내고 주도한다. 이들의 의견이 국민의 의견으로 포장된다. 민주주의가 약화될수록 이런 현상이 심화되고, 서민을 위한 주장과 발언은 자리를 잡기 어렵게 된다.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면서 부자들은 '건드릴 수 없는 집단(the untouchable)'이 되어 버렸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법은 부자와 서민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오히려 법은 부자의 편을 들었다. 법 앞의 평등이 무너진 지 오래 되었다.

'부자되세요' 열풍에 이명박 지지는 당연
▲ '부자되세요' 열풍에 이명박 후보에 대한 '묻지마 지지'가 계속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뉴시스


민주정부 10년을 경험하면서 이제 서민들은 민주화와 개혁이 국민경제를 건강하게 만들고 사회정의를 이룬다고 믿지 않게 되었다. 아니 국민경제의 건강한 발전이나 사회정의는 불가능하다고 믿게 되었다. 민주주의가 서민들의 삶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이제 믿을 것은 자기 자신뿐이며, 남부럽지 않은 부자가 되는 길만이 나의 삶을 안정되게 만들 수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나이든 부모도 가난하면 찾아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돈 될 게 없기 때문이다. 이제 사회는 약육강식의 무한경쟁의 시대로 접어들었고, 이 시대에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건 오직 돈뿐이다.

국민 다수가 자의든 타의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회에서 이명박 말고 누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이명박을 지지하는 국민 다수는 사회 정의나 경제적 평등을 그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더 개발하고, 더 돈을 돌려,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게 그들이 원하는 바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지지율 45% 안팎은 오히려 낮다. 더 높게 나와야 정상이다.

'이명박 정권 5년'은 민주주의의 계급성 드러내는 시간될 것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이명박 대세론과 이제 점차 현실이 되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출범은 서민 민주주의에는 관심이 없었던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의 자업자득이다.

'이명박 정권'의 출범이 집권 민주화세력에게는 '되찾은 10년'에 이은 '잃어버릴 5년'이 되겠지만, 이 땅 다수를 이루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잃어버린 10년'에 이은 또 다른 '잃어버린 5년'이 될 것이다.

'이명박 정권' 5년은 '민주화'와 '개혁'의 포장 속에 가려졌던 민주주의의 계급적 성격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계급간 갈등이 한층 고조되는 시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과 갈등을 제도화할 수 있는 정치체제와 권력구조를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만들어낼 수 있느냐 여부에 따라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오는 대선에서 나는 그 가능성을 만들어낼 정당과 후보에게 후회 없는 한 표를 던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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