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접근에 그친 문화산업 공약
사실 문화산업 정책은 다른 문화예술 정책에 비해 그 특성상 산업과 제도적 특성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후보들의 문화산업 정책을 비판할 때 너무 산업적이고 상품논리에 기울어져 있다는 언급을 쉽게 해서는 곤란하다. 문화산업은 말 그대로 산업적인 지위와 시장의 기능을 포기할 수 없는 자기 정체성이 있기 때문이다.
문화산업 정책에 있어 시장의 성장과 균형은 다른 정책 평가요소와 더불어 중요한 평가 관점이 될 수 있다. 시장은 원천적으로 거부한다거나, 문화의 산업화 자체를 애초부터 부정적으로 간주해버리면 평가 자체는 특정한 입장을 드러내는 것 수준을 넘지 못한다.
후보자들의 공약을 평가하기에 앞서 이러한 문제의식이 중요한 것은 문화산업 정책에 대한 공약이 문화산업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문화산업의 시장 기능, 여가 기능을 인정하면서도 문화산업의 투명한 체계가 성립되고 문화산업 내 불공정한 관행들을 개선하려는 생각들은 여전히 의미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면서 각 후보의 공약들을 점검하도록 하자.
정동영…스크린쿼터 축소하면서 '다양화' 실현하시겠다?
먼저 정동영, "영화산업과 출판산업의 진흥을 위한 정부 지원 확대", "세계 7위 문화콘텐츠 강국 실현" 등을 문화산업 정책의 핵심공약으로 내걸었다. 문화콘텐츠가 국가경쟁력 강화, 선진국가로 이행하기 위한 일종의 관문처럼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특히 '세계 몇 대 강국'을 실현하겠다는 공약은 여전히 선진국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양적인 성과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 문화산업의 활성화와 경쟁력강화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문화산업이 일정한 시장의 기능을 충실이 하고, 문화자원들에 대한 적절한 배분과 주류문화산업과 비주류문화 산업이 균형 있는 성장을 이루어 낸다면 굳이 흠잡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문화산업 강국을 실현하겠다는 선언 안에는 문화산업의 인프라를 튼튼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 개선의 대안들이 충분히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한류 스타들이나 엔터테인먼트 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지적하는 것이 바로 국내 문화산업과 국제 문화산업의 시장을 효과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유통시스템의 혁신이다.
말하자면 홍보나 세일즈보다 먼저 선결되어야 할 것이 여전히 후진적인 환경에 놓여있는 문화산업의 배급과 유통의 선진화이다. 이것은 한 예에 불과하고 문화산업 시장을 투명하게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에 대한 꼼꼼한 분석이 선행되지 않으면 문화콘텐츠 몇 대 강국이라는 것은 단지 숫자놀음에 그칠 것이다.
또한 정동영 후보는 "한국 영화의 다양성과 저변 확대를 위해 독립영화, 예술영화, 다큐멘터리영화 등에 대한 지원 확대"라는 공약을 내걸었는데 이 공약 자체는 긍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찬성과 스크린쿼터제 축소에 대해 찬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공약을 어떻게 실현가능하게 만들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명박…"예술, 관광, 체육 남김없이 팔아요~"
이병박 후보의 문화산업 정책은 정동영 후보에 비해 훨씬 친시장적이고 경쟁력 우위를 강조한다. 그는 "대한민국을 문화 브랜드로! 창조문화강국 실현"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국가 자체를 브랜드화 하겠다고 달려든다.
가령 △콘텐츠산업과 관광레저산업의 경쟁력 확보 및 △ 창조산업의 기반으로서의 디자인분야 육성 △ 스타디자이너와 예술가 성장의 산실 및 문화창조산업의 기지로서의 아시아문화허브 '문화창작발전소' 건립을 핵심 공약들을 살펴보면 무엇보다 문화산업 분야에 집중된 특성을 가진다.
예술, 관광, 체육을 남김없이 산업화, 시장화하겠다는 생각 안에는 문화를 경제발전의 중요한 동력으로 삼겠다는 신개발주의의 노선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시아문화산업의 허브구현이 말대로 쉽지 않고, 관광산업 개발을 위해서는 각종 규제완화, 난개발이 예상되는 바, 이러한 문화산업의 마인드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문화주의를 반영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문제이긴 하지만, 문화와 예술, 콘텐츠 분야에서 한국이 아시아의 허브가 되겠다는 선언은 대부분 구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한국이 아시아문화산업, 관광산업의 허브가 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아니 현재가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가능한 근거가 무엇일까?
실제로 한국의 문화산업은 '한류'라는 마취효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에서 허브로 기능하기에는 너무 많은 한계를 안고 있다. 이른바 창조산업, 콘텐츠 산업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장기적인 구상이 제대로 나온 게 없다. 이명박 후보 역시 경제주의자, 개발논자라는 비판에 앞서 자신의 공약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로드맵 구상에 별로 얻을 게 없다.
문국현…대체 어떻게 '르네상스' 실현하실지…
문국현의 문화사업 정책 공약은 다문화시대 문화산업을 통한 '아시아 르네상스의 실현'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문국현 후보도 역시 아시아 르네상스라는 말로 '문화산업의 아시아 중심'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문국현 후보의 공약들은 나머지 후보들 중에서 가장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공약이 나열만 되어있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성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
물론 관광분야의 경우, 세부 공약 중 '한국 전통사상과 학문 발상지들의 역사문화 관광유적지화 추진'이라는 공약은 흥미롭다. 또 전통사상과 학문에 바탕한 인본주의 기풍 진작, 아시아 여성문화센터 및 아시아 청소년문화센터 설립, 범국가적 디지털 아카이브 사업의 체계적 추진, 다문화 한국사회의 구축 등 나름대로 의미 있는 공약들을 내세우고 있지만, 구체적인 구상을 얻을 수가 없어 충분한 연구가 되지 않은 인상을 받았다.
권영길…비판은 있지만 대안은 '여전히' 부족
마지막으로 권영길 후보의 문화산업 정책 공약은 주로 영화와 대중음악 분야에 집중되고 있다. 영화의 경우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를 법률로 명시, 스크린독과점방지법 제정, 멀티플렉스 내 대안상영관 설치, 영화공공제작협정 체결 등의 공약이, 음악의 경우 음악진흥위원회 설치, 공공도서관에 음반과 음원 구비, 음악창작기금 설치, 제3세계음악쿼터 등이 제시되고 있다.
문화정책의 현상 진단을 통해 신자유주의와 경제중심주의, 한류 등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진행한 것에 비하면, 문화산업 관련 공약의 경우 개별산업 내에서의 대안제시 정도로 축소되어 있다. 노무현 정권 시절, 그리고 다른 대선후보들이 "문화산업은 성장의 동력", "문화강국 실현"과 같은 경제논리에 갇힌 문화산업 강화논리만을 반복하고 있는 것에 비한다면 분명 긍정적인 차별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산업에 대한 과도한 예산배정, 지원과 같은 행정체계에 대한 개선방안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구체적인 공약에서는 TV·라디오 프로그램 내 제3세계음악쿼터, 멀티플렉스 내 대안상영관 설치 등은 실효성과 가능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공약이며, 또한 문화산업 각 영역에서 문제되고 있는 제작·유통과정의 투명성 제고나 시스템 구축에 대한 공약 제시도 아쉽다.
'문화강국', '아시아 허브'…구호만 외치면 다 되나?
현재 한국의 문화산업 정책은 무엇보다도 장기적인 균형성장을 위한 투명성 확보와 민주적 제도개선이 요구된다. 그리고 21세기 유비쿼터스 시대에 문화산업이 어떤 외적인 환경에 놓여있는지에 대한 거시적 분석과 진단이 필요하다.
또한 갈수록 심해지는 문화산업 시장의 독점화,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시장에서의 일정한 조절이 어떤 수준에서 필요한지, 그러한 조절을 통해서 문화산업 시장이 어떻게 종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일종의 '조절과 균형 전략'이 필요하다. 가령 방송통신융합, 문화콘텐츠의 저작권 보호와 공정이용, 문화시장의 투명한 시스템 구축, 문화자원들의 균형 있는 분배 등에 대한 실제적인 고민이 중요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대선 후보들 모두 관심을 갖지 않다. 문화산업에 대한 홍보와 비판의 이분법을 넘어서 새로운 지도 그리기를 위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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