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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기업의 노동비용을 늘일 수 있는 후보는 누구인가?"

[프레시안이 묻습니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비정규직 노동자를 늘려야 한다거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통령 후보는 단 한 사람도 없다. 후보들마다 한 목소리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규모를 줄이고 그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역대 정권이나 정치인들이 노동자들에게 약속했던 각종 허울 좋은 장밋빛 약속들은 대부분 기업이 비용을 늘이거나 부담해야 하는 대목에서 번번이 좌절되곤 했다. 노동자들에 대한 복지 혜택의 폭을 넓히고 그 수준을 높이기 위한 정책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이나 청년실업의 해소 방안들도 모두 기업이 지금보다 노동비용 부담을 조금이라도 늘이지 않고는 실현이 불가능한 정책들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차별성이 크게 구별되지 않는 대선 후보들의 노동정책을 비교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누가 어떻게 실질적으로 대기업의 비용 부담과 지출을 늘이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기업이 상당한 규모로 지출을 늘이고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수많은 정책들이 한낱 공염불에 불과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1) 이명박 후보
  
  이명박 후보는 비정규직 차별 등 우리 사회 노동문제의 가장 큰 원인을 '노사간의 불신'으로 보는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따라서 그 해법은 노사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양보하고 타협하는 것에 머물 수밖에 없다.
  
  재벌 기업 경영자 출신답게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을 정규직의 경직된 고임금 체계와 노동법보다 우위에 있는 대기업의 단체협약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사업주들이 비정규직 고용을 통해 노동비용을 낮추거나 비정규직 관련법의 '차별시정제도'로 기업이 떠안을 추가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외주화하는 것을 일응 불가피한 현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점거농성과 같은 불법적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비정규직 문제를 푸는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쟁의행위는 법에 정해진 테두리 내에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잇따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
  
  노동문제에 있어 정부가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하는 것보다는 조정자로서 역할을 기대한다는 주장은 집권 뒤 노동문제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게 하지만, 노동운동이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진행돼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는 입장에 비추어 볼 때 집권 뒤 공정한 조정자로서의 역할보다는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노동운동을 억압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비정규직의 확대는 기업에게 단기적으로 노동비용을 절약시켜줄지 모르나 노동 숙련도나 업무 집중도를 떨어뜨림으로써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이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비정규직 문제가 시장경제주의 시각으로 볼 때에도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은 이윤추구 못지않게 노동자 복지 증진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보고, 이랜드 사태는 기업이 그러한 부분을 너무 가벼이 생각한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다. 기업은 공정한 성과 배분과 고용 안정 그리고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주장은 옳다.
  
  정규직의 임금 인상분 일부를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에 쓰도록 노사가 합의한 것을 바람직하다고 평가하고 정규직이 일정 부분 손해를 감수하는 모범을 확장하는 해법을 강조한다. 그러나 대기업 노동자의 양보로 비정규직과의 차별을 해소하는 해법은 국내총생산의 노동소득 비율 감소를 불러온다. 이와 같은 비정규직 차별 해소 방안은 특별히 진보적 시각이 아니라 철저한 시장경제주의 입장으로도 피용자 보수율을 낮춤으로써 건전한 내수의 창출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경제 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상식인데, 이에 대한 우려는 없다.
  
  KTX 승무원 문제 등에 대해서는 차별시정 제도의 실효성 강화와 간접고용 관계에서의 차별 규제를 강화함으로써 간접고용의 남용을 방지해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기업의 간접 고용을 불가피한 측면으로 보는 시각일뿐만 아니라, 기업이 노동비용 증가에 대해 완강하게 저항할 것이 명백해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2) 정동영 후보
  
  정동영 후보도 노사 불신을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이랜드 경영진의 사실상 '무노조경영'에 가까운 경영철학을 지적하고 있지만 노조 지도부 역시 경영진에 대한 극도의 반감과 배타적 정서를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를 적발한 노동부가 제 때에 시정조치와 감독기능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함으로서 사태를 방조하고 악화시켰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바람직하지 않게 보고 있는 이명박 후보와 다른 지점이다.
  
  노동자들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폭력행위를 동반하지 않는 한, 파업권을 보호하는 것이 원칙이고 단체행동 중에 있는 불법적 행위에 대해서는 즉각적 공권력 투입이 아니라 사후적 보정과 책임 추궁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점은 다른 후보들보다 상대적으로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노조 지도부가 노사갈등을 정치적 주장 확대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지적에서 기존 수구 보수 세력과 크게 다르지 않은 노동운동에 대한 몰이해가 엿보인다.
  
  노동시장 유연화는 세계화에 대응하는 불가피한 선택으로서 각 나라의 일반적 현상이라고 본다. 단지 우리 정부가 적극적인 정책을 실기함으로써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영미식 노동유연화 정책도 기업이 노동자를 채용하고 해고하는 유연성을 높임과 동시에, 노동자가 기업을 선택하는 유연성을 동시에 높이기 위해 노력했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서비스산업 육성, 고용서비스 선진화, 인적자원 개발, 사회보험제도의 정비, 취약근로계층 대책, 정규직 고용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 도입과 고용증대 특별 세액공제, 4大 보험료 할인 등 제도적 보완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이 역시 마찬가지로 기업의 비용이 늘어나는 것에 완강하게 저항할 것이 분명한바 이에 대한 구체적 해법이 제시돼야 할 것이다.
  
  KTX 승무원 등 간접고용 문제에 대해서는 분사, 외주위탁 등을 배타적으로 규제할 수는 없고 위장도급이나 불법파견 등에 대한 규제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규제 기준이 오히려 탈법을 합법화하는 도구로 기능할 우려가 없지 않다. 당사자 간 협상이 진행 중인 만큼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사안이라는 원론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3) 권영길 후보
  
  비정규직 관련법의 입법 과정에서 일관되게 반대한 정당의 후보로서 이랜드 사태는 잘못된 비정규법이 부른 최악의 사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박성수 회장에 대한 처벌을 주장하는 것이 다른 후보들과 다른 점이다.
  
  다른 후보들이 대부분 노사간 문제에 있어 정부는 공정한 중재자로서의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권영길 후보는 비정규직 관련법을 만든 현 정부가 원인 제공자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노동부에만 맡겨 놓을 것이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집권 뒤 노동정책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음 정권 창출을 위해 출마한 대통령 후보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책임지고 나서야 한다고 보고 대선후보 비상시국회의와 중재단 구성을 현시점에서 제안하고 있다.
  
  기업들이 기술경쟁력과 혁신적인 작업방식 개선 등에 의존하기보다 인건비 절감으로 이윤을 확보해왔고 역대 정부 역시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대변되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국정 운영 목표로 삼았던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은 옳다. 다만 그러한 정책기조가 기업에게만 단기적으로 유익할 뿐 시장경제주의의 시각으로 볼 때에도 사회 전체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을 것이 분명하다는 분석과 설득의 제시가 정책들 속에 다양하게 포함되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다. 그러한 설득이 부족하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을 강조하거나 경영진의 기업 경영 방식의 부도덕성을 탓하는 지적이 노동문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유권자들에게는 노동자 중심의 편파적 주장으로 오해될 가능성이 있다.
  
  기업별 질서에 갇힌 채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나서지 못한 노동 진영의 대응에 대해서도 지적하는 것이 다른 후보들과 다른 점이다.
  
  KTX 승무원 등 간접고용 문제에 대해서는 엄격한 규제, 원청 사용자성 책임 확대, 원하청 이윤공유제 등 구체적인 보호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바, 이 역시 대기업으로 대표되는 자본의 완강한 저항을 어떻게 제어하느냐에 그 실효성 여부가 달려 있다.
  
  더 나아가 기존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이나 외주화된 업무들이 대부분 애초에는 직접고용 형태를 띠고 있는 고용계약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외환위기 이후 외주화된 고용계약을 다시 직접고용으로 원상회복하는 방안이 기업 경영과 사회 전반에 어떠한 영향을 불러올지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는 차별성이 최소한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에게는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4) 문국현 후보
  
  노자간 타협적 질서가 역사 속에 제대로 자리잡아본 경험이 없을 정도로 극우보수화된 한국 사회에서는 문국현 후보의 시장경제주의에 입각한 주장조차 진보적 대안으로 인식되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자들이 법 테두리를 벗어난 폭력적 행동을 한다 할지라도 이에 대해서는 사후 선별적 처리가 바람직하고 단체행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방식은 노동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많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노동부가 적극적인 문제 해결의 의지를 보여주지 못한 채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태도를 '방관'이라고 지적하는 한편,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는 노동 현실에 대해 일응 이해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후보들과 달리, 이러한 현상을 노동시장 유연성의 확대라고 주장하는 것이 맞지 않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다만 그 해법은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재야 시절 '대중경제론'에서 주장했던 중소기업 입국론을 상기시킨다. 비정규직의 85%가 100인 이하 중소기업에 몰려있다거나 중소기업 평균 이익률이 3% 미만이라고 지적하며 비정규직 문제 역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하도급관계개선, 중소기업의 경쟁력 향상, 대기업의 고용상의 책임 강화를 근본적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 역시 대기업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좌초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이 그 실현성을 담보할 것이다.
  
  정부와 기업의 "기업하기 좋은 나라"와 함께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노동하기 좋은 나라" 역시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라고 동등한 차원으로 지적하면서 종소기업에게도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중소기업의 2,800시간에 이르는 노동시간을 프랑스나 독일처럼 1,500시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2,000시간 미만으로 낮추어야 하고 그의 평소 지론대로 줄어든 초과근로 대신 평생학습을 통해 중국과의 저가경쟁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그러한 경영방식이 모든 업종에 일률적으로 적용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노동강도 강화를 동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노동조합이 비정규직과의 사회적 연대에 솔선수범하지 않는다면 노동운동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현재의 노동운동을 대기업 중심의 기득권 세력으로 보는 현 정부의 시각이나 대기업 노동자들이 과도한 고임금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보수 세력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KTX 승무원 등 외주화 남용 문제에 대해서는 원청 사용자에게 단체교섭 및 부당노동행위 연대 책임 의무를 지우도록 하고 핵심 업무의 사내하청 형태 외주화에 대해서는 불법파견 법적용 강화를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문국현 후보 역시 외주화 형태의 경영방식에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지는 않고 있다.
  
  5) 이인제 후보
  
  이인제 후보 역시 '법과 원칙'에 의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동자들이 요구를 합법적으로 표출할 때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나 노사간 자율 타협의 원칙을 강조하는 것 역시 우리 사회의 노사간 불균형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면에서 보수 세력 후보의 시각과 대동소이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비정규직, 임시직 형태의 고용계약은 실업 상태보다 낫고 직업 이동을 원활히 하기 위해 임시직 저임금·저숙련 일자리가 필요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 단지 문제는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규모가 너무 크다는 데 있으므로 비정규직 규모를 2002년 이전 수준인 20% 정도로 줄여나가겠다고 하지만, 이 역시 기업의 완강한 저항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그 관건이다.
  
  기업은 비정규직 관련법을 회피하기 위해 편법을 사용하기보다 정규직 전환을 긍정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원론적 주장을 하지만 그 해법으로 기업 경영자 사고의 전환을 강조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 기업 경영자의 사고를 전환하는 '소프트웨어' 방식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한국 자본의 비인간적 경영방식을 바꾸기 위한 법 제도 곧 '하드웨어'를 마련하는 것이 노동정책의 핵심이다.
  
  비정규직 관련법의 오남용에 대한 감시와 고용 증대를 위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문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공생의 일터를 만들어 가야한다는 주장은 역시 정규직 노동자의 양보를 강조하는 것으로서 앞에 살펴본 다른 후보들의 해결 방안과 마찬가지 이유로 바람직한 해결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KTX 승무원들을 원칙적으로 정규직화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 절차와 방법을 결국 노사간 합의에 맡기고 있다. 다만 정규직화가 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눈에 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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