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나 어머니의 넉넉함으로 친환경농가들의 순환과 협력의 메커니즘을 만들어가고 있으니 그들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읽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강원도 횡성 그 거친 땅에서 지역의 친환경농업인과 영농조합을 꾸린 그들을 만났다. '지역순환 영농조합법인 텃밭'의 공동대표인 청일점 윤종상 씨와 홍경자 씨, 횡성여성농업인센터의 한경미 대표다.
텃밭은 지역의 친환경농업인과 여성농민의 참여로 만들어진 영농조합법인이다. 영농조합 텃밭이 만들어진 것은 작은 두부공장에서부터 시작됐다. 여성농민회가 주도해서 두부공장을 만들었고 이것이 기반이 되어 텃밭이 만들어졌다.
가공공장을 만들고 생산을 시작해 판매망을 확보하는데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농사짓는 농민이 이런 복잡하고 행정적인 일들을 하려니 산 너머 산이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고 하나씩 해결되어가는 중이다. 농민들이 직접 가공을 하고 생산을 하는 것이 농가수익 증대와 지역순환경제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측면에서 텃밭두부 사례는 전국적으로도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고 생각한다.
지역순환농업의 부분으로서 영농조합법인 텃밭이 만들어지다
지역에 살면서, 여성으로 살면서, 농사를 지으면서 그들은 고민했다. 친환경농업을 대안으로 취한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하며,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택한 것이 두부였다.
눌어붙거나 탄내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해 뜨거운 가마솥을 팔이 빠져라 주걱질 해대면서도 솔솔 풍기는 콩 냄새에 가슴 훈훈해지는 그런 전통방식의 옛 두부 말이다.
전통방식으로 만들어낸 맛있는 두부를 해결하고 나니 판로가 걱정이었다. 조촐하게나마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여성농민회 회원들이 스스로 두부를 만들어 먹으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원주 한살림에서 구매를 해주겠다는 의사를 전달해왔고, 이를 좀 더 규모 있게 해보자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게 영농조합법인 텃밭이다.
"요즘 농가들은 분화되어서 각자 다른 농사를 하고 있어요. 논농사만 하는 사람도 있고 야채만 하는 농가도 있습니다. 물론 이 두 개를 복합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요. 농업의 이런 분화가 마냥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이는 현실이고 이러한 여러 분야의 농업이 상호 협력적인관계를 가져가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에 지난해 횡성유기농영농조합법인이 횡성친환경곡류센터를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하나 더 보충하고자 하는 것이 친환경농산물을 가지고 가공하는 일입니다. 농가 스스로 소비 의존적인 것에서 탈피해 자립적으로 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일단 콩을 주원료로 하는 가공상품을 만들어보려 합니다.
사실 밭농사는 주로 여성농민의 몫입니다. 남자가 거름내서 밭을 갈아주면, 김매고 수확하는 것은 여성이 담당하지요. 그래서 그 콩을 가지고 가공하는 것까지 여성이 해보자 마음먹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영농조합법인 텃밭이 만들어졌습니다."
콩으로 두부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콩의 부산물인 비지 등은 축산농가에 가서 사료가 되고 사료가 되지 못하는 것은 발효를 시켜 거름으로 만든 후 친환경농가에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친환경농가들의 순환과 협력의 메커니즘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 영농조합법인 텃밭이 있다.
텃밭은 집에 딸리거나 집 옆에 있는 밭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농조합법인에 이 이름을 사용한 것은 식구들이 먹는 소소한 채소들을 가꾸던 텃밭처럼 가장 정성스럽고 비옥하게 음식과 농산물을 만들겠다는 다짐의 의미이다.
산 넘어 산-창업과 영업의 어려운 과정
텃밭을 하면서 여러 한계가 있었다. 그냥 포장해서 팔려고 하니 상표가 필요해 등록을 했고, 허가를 받고, 바코드 처리를 하고, 준비하는데 1년이 소요됐다. 그러한 행정적 처리를 몰라서 발생한 문제였다.
가장 처음 필요한 일이 법인을 만드는 일이었다. 법인을 만들기 위해 주체가 있어야했지만, 작목반으로는 안 되는 것이었기에 별도의 법인을 구성해 창업보육센터에 입주신청을 했다.
입주계약서가 있어야 영업신고가 가능하고 영업신고서가 있어야 사업자등록이 가능하고 사업자등록이 있어야 바코드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사이에 품목제조를 군에 제출했고, 영양성분조사를 했으며, 포장지 표시도 병행했다. 모든 것이 낯설었고, 산 넘어 산이었다.
"업체를 하나 운영하는 셈인데 농사만 짓던 농민이 하려니 당연히 쉽지가 않죠. 하면서 배워요. 횡성군에서 운영하는 창업보육센터 들어오는데 1년 걸렸지요. 지역에서 농산물을 가지고 1차로 생산을 하고 그것을 가공해 시중에 판매하는데 필요한 것이 정말 많더군요.
농민들이 협동의 방식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요. 자본도 없고, 시설도 없어요. 우리는 농사를 지어 생산물만, 그것도 농협에 내서 농협이 팔아주는 데에 익숙했는데 더 이상 농협에 위탁해서 하는 것으로는 안돼요.
농촌에 살아도 아이들은 가공품을 모두 사먹기만 하거든요. 농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가공까지 책임져야 먹거리의 안전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농민이 스스로 사는 일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농민들이 적은 자본으로 가공사업을 시작하는 게 쉽지 않아요. 공장설립도 어렵고, 판매로 확보를 위해 급식 등을 하려해도 맘처럼 안 되고요. 특히 전통음식 부분이 더욱 그런 것 같아요.
포도농사를 하고 좋지 않은 포도를 즙이나 술로 팔려면 주조법에 걸립니다. 고춧가루도 마찬가지죠. 고추를 그냥 내다팔면 괜찮지만 고춧가루를 내서 상표를 붙여 팔려면 안되는 식입니다. 자본 중심의 가공사업을 바꾸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뜻만으로 어려운 것들이 많은 게 현실이죠. 법제도적인 것을 바꾸어야 진정으로 지역순환이 가능해지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가공사업을 시작한다고 해서 끝나는 일은 아니다. 판매와 마케팅이라는 더 높은 산이 버티고 있다. 횡성은 특히 그렇다.
"횡성은 친환경농산물을 취급하는 단위가 많지 않으나 원주는 한살림생협이 시작된 곳으로 생협조합원이 많고 판매로도 나름대로 든든하게 확보된 편"이라고 그들은 설명한다.
그들 스스로 판매로를 확보하기 위해 상지대학교와도 접촉해보고 있다. 횡성에서 만든 두부지만 사실상 횡성에서 판매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상지대학교의 경우 구내식당의 재료를 유기농으로 바꾸고 있는데 두부도 올해 계획이 있어 지금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격차이가 크기 때문에 고민이 큰 것으로 압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는 횡성에서 먼저 판매를 확보해가는 게 중요한데 농협'하나로 마트'에 넣으려고 했지만 장소문제로 거부당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충분히 홍보하지 못한 측면도 있긴 하지만 서운한 마음도 일더군요. 횡성 관내에서도 할 일이 많다고 느낍니다."
영농조합법인 텃밭의 현재 손익계산서-아직은 수지균형을 맞추지 못했다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공사업을 시작하기도 판매하기도 어려운 그 현실 때문에 이들이 만들어내는 두부는 아직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적자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두부를 만들어 돈 내고 나누어 먹자고 해서 1년을 유지해 왔습니다. 두부 생산 공간도 확보하고 출자도 받는 과정이었죠. 출자조합원이 26명이고 출자총액이 3600여만 원입니다. 회원의 대부분이 여성농민이고, 나머지는 친환경농민들입니다. 조합원 가운데 4명만이 남자입니다. 함께한 단체로서는 여성농민회, 여성농업인센터, 산골농장이라는 친환경농산물가공업체 등이죠."
텃밭 영농조합법인은 26명의 조합원이 3000여만 원이라는 적다면 적은 금액으로 탄생했다. 둥지를 틀고 있는 횡성창업보육센터가 다른 공장보다 훨씬 조건이 좋지만 당장 보증금과 월세도 부담스러운 형편이다.
"손익분기점이 하루에 300모정도입니다. 네 사람이 일하면 이 정도는 팔아야 균형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주권의 한살림과 생협, 상지대를 포함하고 횡성군에 팔아도 150모밖에 안됩니다. 인건비와 재료비, 포장비와 연료비 등을 따지면 1일 생산량이 45만원어치는 넘겨야 하는데 말이죠. 아직 분기점에 다다르지 못했으니 초기비용이 더 필요한 상황입니다. 서너달은 더 걸리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텃밭은 우선은 원주권을 중심으로 공급하고 있지만 이를 서울과 수도권까지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라는 것을 그들은 잊지 않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에서 지역민이 기업하기 힘들다
영농조합법인텃밭이 가공사업을 시작하고 느낀 점은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표방하는 횡성군이 내부인들에게는 닫혀있다는 것이다. 외지인들을 향해 열린 '기업하기 좋은 도시'라는 공간은, 하지만 내부인들이 진입하기에는 어렵다.
"횡성군은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지역주민들에게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아요. 외부에서 자본이 들어올 때 편의가 되는 거죠. '디ㅇㅇㅇㅇ'이라는 곳이 있는데 원래는 횡성의 특산물인 복분자를 육성하기 위해 유치했습니다.
그래서 20억 가량을 지원해 공장과 펜션을 지어주었죠. 그런데 첫해만 횡성의 복분자를 수천만 원어치 사준 것뿐이고 나중에는 전라도의 것을 수매하더군요. 복분자에 주목한 것도 거의 단체장의 개인적 생각이었다고 보입니다.
전 군수의 경우 복분자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을 다해보려고 했죠. 묘목도 거의 무상으로 해줄 정도였으니까요. 군수 바뀌고 나니 더 이상 복분자에 대한 관심이 없어진 것이 그 증거일 겁니다. 판로가 없어지니 농가들이 복분자 갈아엎기도 했죠."
농산물 가공도 여성농업인의 책임-그동안 싸우기만 한 농업인들의 생각이 전환되어야
농민들은 농사를 짓거나 싸워왔다. 무능한 정부와 싸워왔고 숱한 규제와 싸워왔으며, 농민대상의 정책적 지원을 요구하며 싸워왔다. 하지만 이제 시대는 바뀌고 있고 농업인들의 생각도 바뀌고 있다.
"여성농민의 이러한 작업을 농림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정책적인 주장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전국의 농민들이 그냥 자포자기하고 주저앉아 있는 상태나 다름없어요. 우리 같은 젊은 여성농업인들이 이런 사례를 성공시켜 전국적으로 벤치마킹할 수 있는 모델로 만들고자 하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그 동안에는 싸우기도 바쁜데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려니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성농민회 스스로 이러한 일들이 우리가 할 일이고 우리가 하지 않으면 농업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텃밭은 탄생했다. 어렵게 만든 텃밭인 만큼 텃밭을 가꾸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조금도 쉴 줄을 모른다. 그들은 텃밭뿐 아니라 텃밭에 들어오는 콩 등의 원재료에도 크게 신경 쓰고 있다.
맛은 재료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때문이다. 텃밭에 들어오는 콩을 재배하는 농민들에게 이들은 '착한 콩 작목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착한 사람들이 농사지은 것을 텃밭에 들어오게 하자는 취지에서 작목반을 구성하기로 한 것이다. 내년에는 안착이 되리라 보인다.
이렇게 하루하루, 그렇게 한 달과 한 해를 보내고 나면 텃밭이라는 이름을 더 자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들 스스로 욕심 없이 시작한 일이다. 돈벌어보자는 경제적 필요성보다 농업과 농민으로서 당위적 필요성을 먼저 느꼈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다. 시작은 어려웠지만, 그런 일일수록 결실은 더욱 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제대로 굴러가는 사회가 아니겠는가.
지금 당장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고,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아직도 넘어야할 산이 굳건히 앞에 버티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앞날은 결코 어둡지 않을 것이다. 또 그렇게 밝은 미래를 소망해본다. 그리고 그렇게 땀 흘리는 농부들이 좀더 행복해지는 사회가 되어야한다는 믿음만큼 그들의 성공을 믿는다.
면담인사 - 윤종상(지역순환 영농조합법인 텃밭 대표) 홍경자(지역순환 영농조합법인 텃밭 대표) 한영미(횡성여성농업인센터 대표) 면담일시 - 2007년 10월 28일 면담장소 -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묵계리 횡성군창업보육센터 10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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