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29일 남은 대선판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몇 개의 정치적 변수로 인하여 크게 요동치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변수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관련 여부가 논란인 김경준의 BBK 주가조작 사건이다. 그 다음의 변수는 '범여권'으로 지칭되는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와 민주당 이인제 후보, 그리고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사이의 합당이나 연합을 통한 후보단일화 시도이다. 세 번째 변수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회창 후보의 선전 여부, 마지막 변수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대선에서 '정치적 역할 가능성' 여부이다.
현재 후보들 사이의 정책적 논쟁보다 이들 변수들, 특히 이명박의 BBK 주가조작 연루 여부가 12월 19일 대선을 결정할 것 같다.
민노당 권영길 후보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
이들 네 개의 변수를 역순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민노당 권영길은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이인제와 더불어 주요 정당 대선후보 중 자기 출신정당의 지지율에도 못 미치는 대통령 후보(최근엔 이명박도 포함)이다. 권영길에 대한 아주 낮은 지지는 주로 현실성이 결여된 대통령 선거 공약, 대통령선거인지 대중운동인지 차별화되지 않는 선거전략 등에 기인한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이번 대선에서 권영길의 정치적 역할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이회창의 경우 이미 한나라당 탈당과 대선 출마로 소위 '원칙'과 '대쪽'이라는 대국민 이미지를 상실했다. 이회창은 지난 두 번 대선출마로 형성된 지역적 지지 기반과 본인의 강경 대북자세에 대한 국민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회창의 지지율과 대선 역할은 이명박의 BBK 주가조작 연루 수사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 종속변수다.
범여권 후보들의 단일화
현재 범여권에서 진행 중인 후보단일화 또는 합당·연합 논의는 1997년 김대중-김종필의 선거연합이나 2002년 노무현-정몽준의 후보단일화와 달리 국민적 관심을 전혀 끌지 못한 채 진행되고 있다. 정동영은 10%대 초·중반에 불과한 낮은 지지율로 인해 대선에 당의 힘을 전혀 조직적으로 동원하지 못하고 있다. 집권세력에게 절망적인 현 대선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후보단일화 논의도 정치공학적 차원에 머물러 있다.
이미 발표된 신당과 민주당의 합당과 후보단일화 합의는 신당 내 여러 세력의 반발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대통합민주신당의 창당 과정에서 범여권에 실망한 국민을 더욱 무관심하게 만들고 있다. 더구나 새 정치를 표방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의 후보단일화에 대한 우유부단한 대응은 단일화만이 아니라 그 기대효과도 감소시키고 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BBK 주가조작 사건 연루설
이명박은 이회창의 무소속 출마로 대선 가도에 위험 신호가 켜졌지만 지난 12일 박근혜의 이회창 출마 비판으로 당 내분을 가까스로 봉합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명박 본인의 건물관리회사에 자녀를 위장 취업(특히 지난 3월 아들의 경우)시킨 것은 다시 한 번 후보의 도덕성과 정치적 판단력에 심각한 의문점을 제기했다.
이 와중에 BBK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김경준의 구속은 대선을 앞둔 이명박의 최대 정치적 장애물이 되었다. 이 사건의 진전은 국민 여론조사에 바로 반영되어 이명박에 대한 지지의 감소와 약 20%에 달하는 부동층의 증가로 나타났다.
이명박의 연루여부로 여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김경준의 BBK 주가조작 사건은 복수의 금융회사가 관련된 전문적 금융사기 사건으로서 그 전모를 일반인이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 사건은 이명박의 도곡동 땅 소유의혹과 연결되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명박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에서부터 이런 의혹을 일관되게 부인해 왔지만,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김경준의 소환과 구속으로 인해 검찰의 수사가 급진전되고 있다. 검찰이 대선후보 등록일인 25~26일 이전에 수사결과를 발표할 경우 대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명박 연루 의혹 수사와 역대 대선의 검찰 수사
이번 사건 수사는 1997년·2002년 대선과 비교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1997년 김대중 비자금 의혹 수사는 김대중에 대한 호남(출신) 유권자들의 감성에 근거한 절대적 지지로 인해 수사에 부담을 느낀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으로 중지됐다. 그로 인해 검찰 수사가 대선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반면 대선 후 대법원 판결로 신뢰를 상실한 2002년 검찰의 병풍의혹 수사는 김대중 대통령의 방치 속에 수사가 진행돼 이회창의 낙선에 일정하게 기여했다.
이명박 연루 여부에 대한 검찰 수사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반복적으로 공언한 상황 속에 진행되고 있다. 더구나 범여권의 대선 후보들도 상당히 낮은 국민 지지를 이번 사건 수사를 통해 극적으로 반전시키려고 한다. 지금까지 이명박이 자신의 BBK 연루 의혹 자체를 강하게 부정해 왔지만, 그의 주장은 다른 여러 사실과 상치돼 국민의 의혹을 불식시키지 못하였다.
현재 이명박 후보가 약 40% 정도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만약 이 후보의 BBK 주식조작 사건 연루가 사실로 판명될 경우 기존 지지자 중 약 40%가 즉시 철회할 수 있는 불안정한 지지이다.
검찰수사와 한국의 민주주의
후보의 도덕적·법적 문제 논의가 당내 대선 후보 확정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는 것은 한국정치의 한계이다. 그러나 검찰이 이명박 관련 수사를 긴박한 정치상황 속에 증거와 법으로 엄정히 하여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느냐는 것은 검찰의 조직적 생존만이 아니라 법치주의에 기반한 한국 민주주의와도 직결된다.
비록 각종 범법 행위자를 대상으로 한 반복적인 사면·복권이 한국에서 준법정신과 법치주의 근간을 많이 약화시키고 범법 행위(자)에 대한 도덕적 판단마저 무뎌지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법치주의는 성공적인 민주주의를 위해 아주 중요한 제도적 요소이다.
이명박 후보의 BBK 연루 의혹이 엄정한 검찰수사로 일단락될 수 있다면 남은 대선 기간에도 후보들 사이에 정책을 둘러싼 합리적 논쟁을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긴박한 대선 일정 속에 진행되는 검찰 수사가 제대로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국민 중 일부는 아직도 검찰의 공정한 수사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고, 이명박이 그의 연루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는 상태에서 수사 결과를 인정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후보 등록 후라도 이명박의 BBK 연루의혹을 수사를 통해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사실관계를 밝힐 필요가 있다.
비록 이명박이 대통령 당선 후에도 BBK 연루 의혹이 밝혀질 경우 대통령직을 걸겠다고 몇 차례 공언했지만,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어느 누구도 대통령 선거나 재임 중에 '대통령직과 관련'하여 국민들에게 공개적으로 한 약속을 지킨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더구나 대통령 당선자가 공식 취임하기 전에는 헌법 68조 2항 "…'판결 기타'의 사유…"로 당선을 무효화시킬 수 있지만, 대통령에 취임할 경우 현직 대통령에 대한 형사상의 소추는 헌법 84조에 의해 정지된다.
'만약' 이명박이 BBK 주가조작에 연루됐다면, 현재 검찰의 수사 속도로 볼 때 이명박을 내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 전 기소할 수 있겠지만 취임 전 대법원까지 재판을 종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럴 경우 이명박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탄핵만이 유일한 법적 절차인데 이를 실현하기에는 정치적 비용이 너무나 크다.
결론적으로 한국 민주주의에서 법치주의를 확립시키기 위해 검찰은 이명박의 BBK 연루의혹을 공정한 수사를 통해 밝혀, 국민 정통성 있는 후보를 다음 대통령으로 선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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