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문학열차 및 문학현장답사기행에 참가한 100여 명은 김유정작품의 현장인 산국농장과 금병산, 봉필영감네 집터, 수아릿골 등 실레마을 일대를 둘러보며 작품을 추억했다. 이날 실레마을에서는 김유정 소설 속에 등장하는 들꽃 이름 알아맞추기, 떡메치기 등 다양한 참여행사가 마련돼 문학제를 찾은 관광객들을 즐겁게 했다. 또 '좋은 책 읽기 가족모임(대표 : 김수연)'과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운영하는 책버스도 배치돼 인기를 모았다.
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김유정문학촌과 국립춘천박물관에 마련된 이번 문학제에는 3일간 3500여 명의 가족단위 관람객 및 전국 문학도들이 다녀간 것으로 나타났다. 김유정선생의 문학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김유정소설입체낭송대회와 김유정산문백일장, 심사과정중 진행된 마임이스트 유진규 씨의 '마임으로 되살아난 김유정' 공연, 고등학생 아카펠라그룹 아카 앤 뉴와 강원소리진흥회의 민요공연, 점순이 찾기 행사 등이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또 김유정문학촌 앞 마당에서는 신동면 증1리 증3리 주민들이 마련한 풍물장터도 인기를 끌었다. 꿈동이 인형극단의 인형만들기 체험놀이와 김유정의 문학일대기 설명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단위 관람객들로부터 호평 받았다. …(생략)(2007년 4월 30일 강원일보 기사)
김유정문학제는 이렇게 뭔가 특별하다. 여느 문학제와는 다르게 다양하고 재미있는 행사가 이루어진다. 문학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게 아니라 김유정이 살았고 그의 소설의 무대가 되었던 동네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자 전시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강원일보 기사를 읽으며 왜 김유정문학제가 이처럼 다채로운 행사로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김유정 문학촌의 전상국 촌장을 만나고서야 풀렸다. 이 문학제는 김유정이라는 70년 전의 작가에게 미친 한 문학인의 열정과 꿈, 그리고 헌신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문학관, 박물관을 넘어서
전상국 촌장은 김유정 문학촌의 위탁운영을 맡은 지 5년째다. 그 자신이 원로작가이자 김유정이란 작가에 미쳐있던 그로서는 반가운 일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지자체가 시설을 하고 전문가가 운영하는 본을 보여야겠다는 부담감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다른 지역의 문학관의 경우 지자체가 설립부터 운영까지 하다보니 유품이나 자료의 보전관리에만 집중할 뿐 현 시대에 필요한 문학관이 되지 못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문학관이 단순히 한 작가의 자료나 유품을 전시하고 보관하는 공간을 넘어 지역문학의 거점이자 요람, 그리고 작가의 문학정신을 이 시대까지 연결할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김유정을 기념하기 위한 공간을 만들 때 전상국 촌장은 기념관이나 문학관 등의 이름을 붙이지 않고 문학촌이라는 색다른 이름을 붙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유적지의 개념을 넘어서, 죽어있는 문학관이 아니라 창작의 공간이 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그는 김유정 문학촌이란 이름을 지었다.
"작가의 집은 박물관이며 문학관이고, 문학의 산실이면서도 창작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김유정 문학촌에는 유품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김유정이 젊어서 죽기도 했고, 또 친구 안해남에게 자료를 주었지만 그가 월북하면서 김유정에 대한 자료가 고스란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김유정 문학촌을 만든 것은 이곳이 김유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 속에 이곳이 살아있는 것이죠. 김유정 소설을 자꾸 읽다보니 총 31편의 소설 가운데 12편이 이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떡시루를 실레라고 해서 실레마을이라고 부르게 된 이 마을에서 있었던 일,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 등이 김유정의 소설 속에 담겨있습니다.
또 이곳에는 김유정이 대학생 신분으로 야학을 열었던 곳도 있습니다. 지명이 소설에 그대로 나오기 때문에 이곳이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김유정 생가와 기념전시관을 포함해서 마을 전체, 금병산 등을 모두 소중히 여겨서 이 마을 전체를 김유정문학촌이라고 하자고 했습니다. 건물하나 덩그러니 놓여있는 문학관에서 벗어나 한 마을 전체를 문학촌으로 만든 것입니다."
본질을 벗어난 행사는 안한다-마을사람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주도
전상국 촌장은 나름의 철학과 방침을 갖고 문학촌을 운영해왔다. 본질을 벗어난 행사는 삼가고 상업성을 배제한, 소박하고 작지만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김유정의 생애와 작품세계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가능하다는 생각에서이다.
"저는 김유정 문학촌이 김유정의 생애와 작품세계, 그리고 1930년대 이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체험하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해왔습니다. 단순히 주입하는 게 아니라 체험하면서 즐기면서 김유정이 갖고 있는 문학사적인 가치를 공부하고 깨닫게 하자는 것이었죠. 그래야만 김유정이란 작가를, 그리고 그가 살았던 이 공간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런 공간은 지역사회의 주민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민들이, 김유정이 여기에서 작품활동을 했다고 하는 사실을 소중하게 생각하게끔 하고, 긍지를 갖고 그것을 스스로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주민들에게 그런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김유정이라는 작가 자체를 단순히 과거의 인물에 머무르지 않게 하고, 현 시점에서 지역민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살아있는' 작가로 만들어야 했다. 전상국 촌장이 지역주민의 소득을 중요시한 것도 그런 이유다.
"(김유정문학촌이나 문학제가) 지역주민의 소득과 연결되지 않으면 잘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례가 이효석 작가가 태어난 봉평입니다. 사람들은 그곳에 작품을 보러 가지만 메밀꽃이라는 특별한 지역 특산물을 보러 가기도 합니다.
지역주민들이 이효석 작가 때문에 정신적 풍족과 더불어 삶의 만족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것이죠. 봉평의 예를 들면서 마을주민들을 설득해 운영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문학촌은 마을주민들이 중심입니다. 면장이나 주민들은 물론이고, 초등학교 교장이나 김유정역장, 새마을지도자들, 전문성을 가진 학자 등 30여명을 꾸려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가며 운영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 실레마을의 삶이 그대로 재현되다-소박한 행사로 사람의 마음을 끌다
전상국 촌장은 스스로를 김유정에 미친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는 김유정이란 작가에 미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29세에 죽고 저는 배로 살고 있지만 그의 탁월한 언어감각, 전통적 향토색을 세계적 보편성으로 만든 것, 선량하면서도 우직한 캐릭터 등에 제가 미친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절묘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제가 기가 죽다 보니 어느새 그에게 미쳐있더군요."
그는 김유정이 70년 전의 작가지만 오늘의 작가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김유정 문학촌에 온 이들이 김유정의 소설을 읽고, 그 소설에 매료돼 문학촌을 다시 방문하게 되는 자신의 꿈이 이뤄지고 있어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는 "내 책을 읽고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공간에서 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김유정에 푹 빠져있다.
김유정에 미친 전상국 촌장은 현대를 사는 이들에게 김유정을 알리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그 방법에 대해 여러 고민을 해왔다.
"2007년 3월에는 70주기 추모제를 지내고 4월에는 김유정 문학제를 3박4일 동안 했습니다. 다른 축제와는 달리 김유정의 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김유정 소설의 특징에는 판소리가 수용되고 작품이 리드미컬하다는 것이 있는데 이를 살리기 위해 입체 낭송대회를 열었습니다. 그렇게 낭송하다보니 김유정 소설의 가치를 자연히 알게 되는 것이죠."
전상국 촌장은 단순히 김유정의 문학적 가치를 알리는 데 주력하지 않는다. 김유정 소설 속에 살아 숨쉬는, 우리네 옛 사람과 풍경도 그가 알리고자 하는 부분이다.
"김유정 소설이 주로 1930년대 '만무방'과 '따라지'를 그렸는데 농촌과 도시의 밑바닥 인생이 절절하게 나옵니다. 만무방은 농촌의 밑바닥, 따라지는 도시의 밑바닥의 삶을 그려낸 것입니다. 그 소설을 기반으로 해서 문학촌에서는 당시의 만무방, 따라지의 삶이 어떤 것인지 체험하게 합니다.
또 '떡'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모두 떡을 쳐보게 하고 김유정의 소설 가운데 그 부분에 대한 묘사를 들려줍니다. 동백꽃에 나오는 닭싸움을 직접 시켜보기도 했고, 깍두기자치라고 하는 이 동네에만 있는 전통놀이도 해보게 합니다. 점순이 아버지가 욕쟁이인데 그것을 바탕으로 욕대회도 열었고, 다부진 점순이를 모델로 해서 '점순이를 찾습니다'란 행사도 열었습니다.
큰 행사를 다녀본 사람들은 이런 류의 행사가 애들 장난 같이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저는 이런 소박한 행사가 김유정 문학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유정 소설 마니아 만드는 청소년문학제
2007년 5월에 처음 개최한 청소년문학제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그런데 전상국 촌장은 여타의 청소년문학제와는 좀 다른 접근을 했다. 우선 김유정 청소년문학제에 참여하려면 김유정 소설을 읽은 이여야만 가능하도록 했다.
소설 속 점순이와 총각이 그 후에 결혼을 했을까를 점쳐보는 김유정 소설 속편쓰기 대회가 그렇고, 김유정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만화나 그림으로 그려내는 행사도 그랬다. 또 김유정 소설 속 캐릭터에게 편지쓰기, '동백꽃'이나 '봄봄'에 등장하는 주인공 '나'에게 이름 붙여주기, 김유정 소설을 잘 아는 아이들을 상대로 한 골든벨 대회도 열었다.
그리고 오정희란 작가를 초청해 '교과서에 나오는 작가와 만나기'란 행사도 열었다. 작고 소소하지만, 다채롭고 기발한 아이디어에 기반 한 이런 대회는 모르긴 몰라도 여러 청소년들을 김유정 소설의 마니아로 만드는 데 한 몫 할 것이다.
앞으로 전상국 촌장은 이 고장에서 전해 내려오는 농요 부르기 대회도 열고, 7월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문인들을 불러서 문학캠프를 열 계획이라고 했다.(지난 7월에 열린 문학캠프는 은희경 등의 소설가를 초청해 전국의 청소년 7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약 3일간 열렸다.)
또 가을에는 향토작가 알리기라고 해서 이 지역의 학생들이나 인근 군부대 장병, 북한강변의 취약지역의 학교 전교생들을 초청해 이 지역의 동화작가를 소개할 계획이며, 당시 전통식으로 전통혼례식을 올려 장가 못간 김유정의 혼을 달래주고 김유정 소설에 나오는 모든 민속행사도 연다.
지역에서 축적된 문학자산을 가지고 가치창출을 해야
-전국의 문학관은 모두 지역의 문화인들이 맡아야
전상국 촌장은 김유정과 그의 작품세계에 거의 미쳐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김유정의 소설을 거의 외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는 또한 "소설 속에 나오는 김유정의 여자들은 모두 생활력이 강합니다. 생활과 삶을 책임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죠. 심지어 생존을 위해 몸까지 기꺼이 팔았어요. 김유정 소설 속에서 헤어지는 부부는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에는 반드시 재결합하기도 하죠."라고 색다른 분석을 하기도 했다.
전상국 촌장의 말에 따르면 김유정은 프랑스에서 인기가 높다고 한다. 이를 두고 그는 지역특색을 살린 지역문화가 세계적 보편성을 가진다고 말한다.
"김유정 소설은 최미경이라는 작가에 의해 프랑스어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외국인 작가로서 3판이 준비 중일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번역가 최미경 씨를 불러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프랑스 언론이 크게 칭찬했다고 합니다. 모파상에 비교할 정도라고 하더군요.
김유정이 보여주는 캐릭터, 바보스런 캐릭터들의 우직한 성격에 프랑스사람들도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초판에서는 별로 언급되지 않았는데 재판에서는 더 많은 프랑스 언론이 다루어준 이유가 그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한국의 특수한 향토작가가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김유정의 예를 들며 지역문화가 우리 문화의 정수라고 주장한다. 중앙문화가 우위에 있고, 지역문화가 하위에 있다는 생각 자체를 고치고, 그런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중앙문화는 서양문화와 뒤섞여 그 특색을 많이 잃어버렸기 때문에 오히려 지역문화가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역작가들의 활약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는 자신의 작품만이 아니라 자신이 붙박고 살고 있는 지역에서 창출되고 축적된 문화자산을 가지고 가치창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그는 전국에 세워지고 있는 문학관을 지역의 문인들이 운영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국적으로 곳곳에 국고를 들여 문학관을 앞 다투어 설립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미 35개나 되고 올해에도 몇 개가 설립됩니다. 그런데 관리운영도 지자체가 합니다. 공무원이 계속 바뀌다보니 전문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설립은 지자체가 하더라도 그 지역의 문인들이 운영해야 한다고 설득하고 다닙니다. 지역주민들이 발의해서 열심히 해 성공한 것이 이효석 박물관입니다. 지역주민들이 이효석 때문에 먹고산다고 할 정도로 지역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전상국 촌장은 앞서 말한 것처럼 김유정 작가의 신도이다. 그 자신이 원로 작가이면서 다른 작가를 그렇게 숭앙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터이지만 그는 김유정을 알리고자 하는 욕심이 대단하다.
그는 "춘천문화는 인형도 있고 마임도 있지만 뿌리로 보면 김유정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유정 100주년을 맞아 행사를 제대로 할 생각이에요. 이 지역의 문화단체들이 모두 힘을 합쳐 김유정을 이 지역 문화의 중심인물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전상국 촌장. 그는 문학관, 문학촌의 한 모델을 통해 지역문화 창달의 한 지평을 열어 보이고 있다.
면담일시 - 2007년 5월 30일 면담인사 - 전상국 (김유정문학촌장. 소설가) 면담장소 - 춘천시 신동면 증3리 실레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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