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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박제창? 공은 이명박으로 넘어갔다"

<고성국의 정치분석ㆍ18>이재오의 사퇴와 박근혜의 침묵

환갑이 넘은 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이명박 후보로부터 '눈물이 쏙 나오도록 야단을 맞고' 최고위원직을 사퇴했다. 반면 "나의 오만을 깊이 반성한다"면서 공개석상에서 머리를 숙인 이재오 최고위원을 박근혜 전 대표는 "사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외면해버렸다. 박정희 전두환의 서슬 퍼런 독재정권하에서도 머리를 숙인 적 없는 이재오가 다른 사람도 아닌 박근혜에게 머리를 숙인 것이나 박근혜가 이재오의 사과를 매몰차게 외면해버린 것이나 모두 TV 멜로드라마 같은 사건들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 후보가 이회창 전 총재의 집을 찾아가 "제가 부족한 탓이다. 출마선언 전 통화라도 하고 싶다"는 메모를 문틈에 넣고 돌아온 장면에 이르면 더 할 말이 없다. 과연 어떤 연출가가 이런 해프닝의 연속을 연출할 수 있을까. 드라마라면 맥 놓고 재미있게 볼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필자는 심한 욕지기를 느꼈다. 어찌해서 우리의 미래가 이런 멜로드라마 같은 정치를 통해 결정되게 되었는가 말이다.

멜로드라마 같은 재미와 기교를 빼고 지금의 사태를 핵심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이명박이 높은 지지도에 걸 맞는 지도력과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한 결과 지지자들이 한편으로는 불안해하고 한편으로는 불만 상태가 돼버렸다.
② 그 틈을 타고 이회창이 출마 했다. 이명박의 낙마를 고대하면서.
③ 그리고 이 틈을 놓칠세라 박근혜는 이명박을 전광석화 같이 압박해 당권을 얻어내려 하고 있다.

그럼 이재오는? 이재오는 이 3자 역학구도에 재수 없게 끼인 희생양이다. 죽어 다시 사는 거라면 몰라도 당장은 희생양이 사는 길은 없다. 희생양이 죽지 않겠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희생의 의미는 훼손되고 부활의 가능성은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억울해할 것 없다. 아무나 희생양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번의 경우 제대로 죽는다면 다시 살아날 확률이 절반 이상은 되는 게임이 아닌가.

'이박제창'? 잘못하면 '이창제이'로 돌아올 수도
▲ 8일 전격사퇴한 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3자구도'의 희생양이다. 사진은 지난 4일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를 만류하기 위해 이 전 총재의 아파트를 찾은 이재오 의원. ⓒ뉴시스

이명박 측은 이재오를 희생양으로 삼아 이박제창(以朴制昌) 전략을 쓰겠다고 공언해 왔다. 전략을 공언하는 것도 처음 보지만 그보다 이명박 측이 자신 있게 얘기하는 이박제창 전략이 제대로 된 전략인지가 좀 의심스럽다. 박근혜로 하여금 이회창을 제어케 해 이기겠다는 이박제창전략의 핵심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박근혜다. 박근혜가 제대로 움직여주어야 전략이 성립되는 것이다. 문제는 박근혜가 '창'을 '제'해야 할 적극적 이유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데 있다. 자체적으로 적극적 이유를 갖고 있지 않다면 밖에서 그 이유를 줄 수밖에 없는 게 세상이치. 바로 이 대목에서 박근혜 측이 지나쳐가듯 슬며시 내민 '당권대권 분리론'은 이명박 측에게는 거부하기 어려운 무거운 주문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이박제창, 좋다. 그러나 '박'이 '창'을 '제'하게 하려면 당권 정도의 동기는 부여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이재오의 사과를 외면하고 끝내 사퇴로까지 밀어붙인 박근혜의 주문이다.

박근혜 측의 말대로 공은 이명박 측으로 넘어갔다. 사태가 이러하므로 이명박 측은 기왕에 이박제창 전략을 쓰려면 박근혜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과감하게 주겠다는 작심을 먼저 했어야 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박제창 전략은 부메랑이 되어 박근혜의 주가만 잔뜩 올려 놓은 채 칼자루를 완전히 박근혜 측에게 넘기고 처분만 기다리는 꼴이 되어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명박의 이박제창이 아니라 박근혜의 이창제이가 먹혀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박제창'의 실패로 '이이제이' 꾀하려면

이쯤에서 한 가지 짚어 두자. 이박제창 전략의 실패는 정동영측이 노리는 이이제이 전략의 성공가능성을 높여주게 된다는 점이다. 이박제창 전략의 실패는 곧 이명박, 이회창 간 팽팽한 접전 양상이 전개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런 상황이야말로 정동영 측이 구사할 이이제이전략이 효과적으로 작동될 수 있는 야권분열 상황인 것이다. 다시 말해 정동영 측은 이이제이 전략을 통해 양이가 다치고 지치기를 기다리면서 힘을 비축하면 되는 것이다. 40일의 시간이 좀 빠듯하기는 하지만 이이제이 전략을 구사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3각 구도에서의 역학 변화는 양자구도에서의 변화보다 훨씬 빠르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회창의 급부상으로 3등으로 밀렸다 해서 정동영이 조급해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여권은 한편으로는 양이의 혈투를 지켜보면서 이이제이 형국을 지렛대로 삼아 그동안 미뤄뒀던 단일화문제의 매듭을 차분하게 풀어감으로써 힘을 비축하면 되는 것이다.

'야권이 분열로 가는 동안 여권이 통합으로 가는 것'이야 말로 가깝게는 2007 대선 정국의 주도권을 잡는 것이고 멀리는 '민주, 평화, 민생, 개혁'이라는 범여권이 지난 10년간 표방하고 실행해 왔던 역사적, 정치적 의제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 의제의 역사적 의미에 정치적으로 동의하는 사람들을 다시 결집시키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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