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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대추리, 그 이후…"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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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평택 대추리, 그 이후…"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범국민행동의날 릴레이 기고③] "'그들만의 잔치'를 그냥 둘 수 없다"

2007 가을, 다시 평택을 찾아가다

서울역에서 송화리까지 가는 동안 머릿속은 평택에서 벌어진 지난 4년여의 시간을 두서없이 더듬고 있었다.

평화, 인권, 생명을 사랑하는 광범위한 수많은 사람들이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했다. 크고 작은 많은 집회와 처절했던 투쟁이 있었고, 평생 세 번씩이나 고향에서 쫓겨난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의 피눈물이 있으며, 왜곡되고 뒤틀린 한미관계가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솟구치는 울분과 한을 가슴에 묻은 채 고향에서 쫓겨나 타지에 살고 있다. 그러나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막고자 했던 그 싸움은 지금도 결코 끝나지 않았다.
▲ 서울역에서 송화리까지 가는 동안 머릿속은 평택에서 벌어진 지난 4년여의 시간을 두서없이 더듬고 있었다. 주민들은 울분과 한을 가슴에 묻은 채 고향에서 쫓겨나 타지에 살고 있지만 평택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프레시안

다시 한 번 남북의 두 정상이 만나고 새로운 남북 정상선언을 약속했고 6자회담이 진전을 거듭하고 있다.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구축까지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한미당국 모두 평택 미군기지 확장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의사는 없어 보인다.

복잡한 생각들이 뒤엉켜 있는 사이에 어느새 평택역에 다다랐다. 천막농성, 3차 평화대행진, 군부대 투입 1년을 맞이한 집회 등이 벌어졌던 광장을 가로질러 15번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다. '혹시 알만한 마을 주민을 만나지는 않을까?' 기대 밤 설렘 반으로 버스 안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런 행운은 오지 않았다.

팽성 초등학교 앞. 버스에서 내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대추리 마을'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어쩐지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졌다. 사람들의 임시 거주 지역인 송화리에는 44가구가 10동 빌라에 나누어 살고 있다. 105동 101호가 마을회관이다.

마을회관에 들어서니 낯익은 얼굴들이 반겨 준다. 김지태 전 이장, 신종원 이장, 김택균 사무국장 등 모여 계신 어르신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공사현장만 보면 가슴이 무너져서 거긴 잘 안 가"
▲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마을을 떠난 후 철조망은 걷히고, 군부대는 철수한 상태다. 마을은 흔적이 없어졌고 일부 성토작업이 진행 중이다. "거기 잘 안 가. 공사현장만 보면 가슴이 무너져." 신종원 이장의 말이다. ⓒ프레시안

반가움도 잠시, 신종원 이장에게 "성토작업은 어떻게 되고 있냐"고 물었다. 잔인한 질문이었다. 역시 신 이장은 한숨부터 내쉰다. 그리고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거기 잘 안 가. 공사현장만 보면 가슴이 무너져."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마을을 떠난 후 철조망은 걷히고, 군부대는 철수한 상태다. 마을은 흔적이 없어졌고 일부 성토작업이 진행 중이다.

나머지 그 넓은 황새울 벌판은 2년째 놀고 있다며 마을 어른들은 분노를 토해냈다. 노무현 정부는 군부대를 투입하고 철조망을 쳐서 영농을 허용하지 않았다. 주민들이 기지 만들 때까지 만이라도 농사를 짓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어젯날 황새울 벌판의 가을은 그야말로 황금벌판이었다. 여간해서는 가뭄, 홍수에도 끄떡이 없었다. 특등품 쌀만 나오는 곳이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흉년이라는 올해는 그 들녘이 더 그리울 수밖에 없다.

어른들은 "철새들만 좋은 일 시켜준 거지"라고 말했다. 철새도래지로도 유명한 황새울 벌판이다. 사람은 가지 못하는 그 들녘에 지난해 파종한 곡식의 낟알들이 새봄에 다시 자라나 철새들에게만 풍요로운 땅이 됐다.

"평생 농사짓는 일보다 훨씬 더 힘들었어"
▲ 평생 농사만 짓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들녘에서 쫓겨 난 이후에는 할 일이 없다. 그 심정이 어떨까? 불안하고 막막함 그 자체 아닐까.ⓒ프레시안

평생 농사만 짓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들녘에서 쫓겨 난 이후에는 할 일이 없다. 그 심정이 어떨까? 불안하고 막막함 그 자체 아닐까.

그래서 시작한 것이 휴경지를 찾아 농사짓는 일이었다. 2700여 평정도 되는 휴경지를 찾아냈다. 여러 곳에서 물이 나는 수렁논이다. 다른 사람들이 농사를 포기하고 버려둔 땅이었다. 소일거리가 변변치 않아 불안하고 막막했던 70~80살 먹은 노일들이 일을 하면서 활기를 찾았다.

황새울 벌판을 떠날 때 다시는 농사를 지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렁논일지언정 일을 시작하는 날, 논에서 새참을 먹으며 다 같이 울었다. 감정이 복받쳐 올라 눈물을 펑펑 쏟은 것이다. 비록 수렁논에 허리춤까지 빠지고 논바닥에 넘어져도 흙냄새 맡으며 일한다는 자체가 기뻤다. 평생 일군 황새울 벌판을 쫓겨난 설움까지 겹쳐 70~80살 먹은 노인들이 서로 끌어안고 울고만 것이다.

그러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봄에는 트랙터가 수렁논에 빠져 트랙터 대신 불도저를 동원했고, 가을에는 콤바인 대신 낫으로 벼를 베고, 콤바인으론 탈곡했다. 오전에는 농기계 수리했고, 오후에 서너 시간 잠깐 동안 일할 정도였다.

"평생 일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어."
"수십 년 기계가 논에 빠진 것 보다 더 많이 빠졌어."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때를 회상하며 뱉은 말이었다. 오는 11월 18일, 농활 와서 도와준 평택지킴이들과 함께 마을잔치를 연다고 한다. 10일 날 하려다가 '범국민 행동의 날' 때문에 연기했다.

마을주민들도 '범국민 행동의 날'과 대통령 선거에 관심이 많다. 가을걷이가 막 끝나서 충분히 소식을 듣지는 못했지만 '범국민 행동의 날'에 "정말로 수십만 명이 모이나, 이번 대선에서는 미국에 당당한 대통령이 뽑히게 되냐"고 주민들이 이것저것 물어온다.

"뭐든지 돈이야. 꿈쩍하면 돈 들어가"

시쳇말로 올해는 재수가 좋아서 휴경지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었지만 사실은 바늘 하나 꽂을 땅이 없다. 일을 너무 하고 싶어도, 당장 먹을 곡식을 심고 싶어도 주민들에겐 땅이 없다. 어떤 분들은 화분에 고추 심고, 파를 심고, 호박을 심었다고 한다. 이것이 주민들의 가슴 아픈 현실이다.

혹자는 보상금 많이 받아서 좋겠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국가에서 받은 보상금으로 이주할 지역에 땅도 사고 집도 지어야 하는데 이것도 부족한 주민들이 많다. 지금이야 그나마 임시 거주지만 정부가 마련해 줘서 같이 살고 있지만 정식으로 이주할 때가 되면 함께 모여서 살수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뭐든지 돈이야. 꿈쩍하면 돈 들어가."

어려움과 곤란은 곧바로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다. 살길이 막막해 공공근로를 나가는 분들이 많다. 최대의 소득원이 공공근로인 셈이다.

그러나 그것도 일 년 내내 있는 것도 아니다. 11월부터 공공근로기간도 끝났다. 내년에 다시 시작할 때까지 그냥 쉬어야 하는 형편이다. 한 가구에 한 명만 할 수 있으며 75세 이상은 그나마 공공근로를 할 수도 없다.

"더 이상 우리 정부가 아니지"
▲ 대추리와 도두리는 단합이 잘되고 인심 좋기로 소문난 마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해와 불신이 많다. ⓒ프레시안

옛날부터 대추리와 도두리는 단합이 잘되고 인심 좋기로 소문난 마을이었다. 다른 마을에서 무척 부러워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오해와 불신이 많은 것이다.

마을 입구에 있는 '대추리 마을' 간판을 가지고도 말들이 많다. 보상 더 받으려고 '외부단체' 끌어들여 보상 많이 받고 이주했으면서 무슨 '대추리 마을' 간판을 거느냐는 힐난이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살면 이런 악담을 듣지 않으니 속이나 편할 것 아니냐"며 장탄식을 한다. "하루빨리 이주단지로 가고 싶다"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삶이 팍팍하고 낯설고 물선 곳에 적응이 쉽지 않아서인지 그토록 인정 많았던 분들이 이웃 간에 잦은 싸움이 벌어진다고 한다. 정신적, 물질적 피해의식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웠던 마을공동체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이 신종원 이장의 걱정이다.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자기들과의 싸움을 치열하게 하고 있는 것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을 힘겹게 치루고 있는 중이다.

이럴수록 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원망과 분노는 높아간다. 신종원 이장은 이 모든 책임은 미국 앞에 쩔쩔매는 정부에게 있다고 일갈한다.

"더 이상 우리 정부가 아니지 뭐. 이게 무슨 정부야!"

기공식 앞둔 평택 "그들만의 잔치를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다"
▲ 오는 13일 부지조성공사 기공식을 앞두고 평택에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살풍경이 벌어지고 있다"고 마을 주민들은 전했다. 전국의 중소건설업체가 평택으로 몰려 들었고 미군기지 공사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받아먹기 위해 물고 물리는 아귀다툼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프레시안

"지금 평택은 차마 눈뜨고 볼 수없는 살풍경이 벌어지고 있다"고 마을 주민들은 전했다.

정부는 평택시민의 반발을 무마하고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평택지원특별법'을 만들어 주민피해보상, 지역발전 등 온갖 장밋빛 약속을 하며 약 19조 원을 투자한다고 했다. 이런 '돈벼락'에 군침을 흘리고 '대박'을 노리는 전국의 중소건설업체가 평택으로 몰려들었다. 불과 3년 사이에 500여 개가 늘어나 현재는 800개가 넘는다.

그런데 입찰 기준을 둘러싸고 갈등과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평택의 수주 능력이 떨어지는 업체가 입찰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하면서 격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정부 부처 간에 의견이 다르고, 지자체 사이에 입장 차이가 났다.

미군기지 공사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받아먹기 위해 물고 물리는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이를 지켜보는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은 억장이 무너진다.

주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은 또 있다. 오는 13일, 부지조성공사 기공식이 잡혀 있다. 그런데 한미당국은 반대 여론을 무마하고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1500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심지어 눈물을 삼키며 고향에서 쫓겨난 주민들도 행사에 초청했다고 한다. 이벤트를 하기 위해 주민들을 이용해 먹겠다는 심보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100년 이상 가는 미군기지를 세우는 첫 삽을 뜨는 행사를 곱게 둘 수 없다"고 어른들은 말했다. 평택범대위도 오는 13일 오후 1시 본정리 농협 앞에서 대규모 규탄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피눈물이 배어있는 바로 그 땅위에서 '삽질'을 하며 '그들만의 잔치'를 하는 것을 그냥 두 눈뜨고 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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