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노동조합법 일부 개정안에 관한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 엄진령 씨의 글이다. 이 글은 "국회를 넘어 다시 조직되어야 할 특수고용투쟁"라는 제목으로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에도 실렸다. <편집자>
특수고용직, 노동자성 인정의 먼 길
현재 특수고용과 관련해서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법안은 세 개이며, 올 6월 정부가 김진표 의원을 통해 발의한 안이 또 있다. 이는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슈가 되고, 또 그만큼 노동자들의 요구와 투쟁이 있었다는 것의 반증일 것이다. 그럼에도 특수고용 노동자성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논의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경우는 보기 힘들고, 다만 노동3권 보장이라거나, 노동법 전면 적용 혹은 사회보장 적용 등의 단순한 구호로만 회자되고 있기도 하다.
지난 수년간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외쳐온 '노동자성 인정'의 요구는 다만 몇 가지 사안에 대한 보호 혹은 보장의 요구로만 규정될 수는 없다.
특수고용 노동자로 불리는 이들이 이 전의 정형화된 노동자와 노동의 양식이 다르듯이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 군이 등장하고 있고, 또한 사용자의 다양한 비근로자화 시도에 의해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 군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 존재했다.
그 속에서 노동법적 보호를 누구에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그리고 노동법이 지우고 있는 사용자 책임을 누구에게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에 있어서 사회가 해답을 제시해야 했고, 그에 대해 특수고용 노동자들과 노동계는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의 범위를 넓히는 것을 통해 현실에 맞게 노동법적 보호가 행해지고, 권리의 주체가 주체로서 제대로 인정될 수 있기를 요구했다. 그것이 투쟁의 구호로서는 노동기본권 쟁취, 노동3권 쟁취, 노동자성 인정, 사회보장 적용 등으로 외쳐진 것이다.
또한 이는 당사자에게 노동자의 이름을 되돌려 주는 것뿐만 아니라, 노동 전반에 있어서는 노동자 권리의 확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끊임없이 시혜적으로 접근해 온 이들은 이런 요구를 지나치게 원칙적이어서 비현실적인 것으로 왜곡하거나 의미를 축소시켰다.
그것이 곧 노동 전체의 권리 축소로 귀결됨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말이다. 그런 흐름은 곧 유사 노동자 논리를 통해 1권, 2권 적용이 마치 노동기본권을 일부라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인 양 포장되었고, 사회보장 적용이라는 것은 사업자임을 못박으며 관련법을 개정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기본권이라는 것이 일부만 보장되고, 일부는 안 되는 그런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 전부를 위한 싸움이 원칙적이라고 비판하였으나, 결국 온전한 권리 전부를 위해 싸우지 않는 한 결코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
국회 계류 중인 법안들이 담고 있는 내용
2004년 제출된 단병호 의원안은 노동계의 논의와 요구를 담아 만들어지고 국회에 제출된 것으로, 근로기준법 및 노조법상의 노동자, 사용자 개념 확장을 기본 내용으로 한다. 즉,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을 노동자는 누구이고, 법을 지켜야 할 사용자는 누구인가에 있어서 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의 범위를 확대해야 하고, 법의 준수 의무를 지키는 사용자 범위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형식적인 조건 몇 가지를 바꾸어 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니게 만들거나, 자기 사업에 노동자를 사용하면서도 자신의 노동자가 아닌 것처럼 위장하여 법적 의무를 벗어나는 것을 규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해에는 노조법상 노동자 개념에 "이 법에 의한 보호의 필요성이 있는 자"를 추가하였다. 이는 근로기준법은 개별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개별적 근로관계 속에서 보호되어야 할 내용을 정한 것이라면, 노조법은 현실적 근로관계 속에 있지 않더라도 노동관계에서 집단적 권리의 보호가 필요한 자에게 그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근로기준법 보다 더 넓은 범위의 보호를 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를 반영하여 노조법상 노동자성의 개념을 더 폭넓게 제기한 것이다.
지난해 발의된 우원식 의원안은 여성단체와 한국노총의 요구안을 기본으로 발의되었고, 노조법상 노동자성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그 부분에 있어서는 단병호 의원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인다.
조성래 의원안은 단병호 의원안이나 우원식 의원안이 노동법 개정을 통한 노동자 개념의 확대를 요구하는 것과는 달리 '특별법'으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는 안이다. 특수고용직에 대한 보호는 필요하되, 노동자는 아니므로 새로 법을 만들어 열악한 조건에 있는 개별 사업자들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즉, 그 보호는 노동자로서의 보호가 아니라 개별의 사용자로서 거대 사용자의 횡포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몇 가지를 제공하는 것인데, 결국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사업자로 바라보고, 공정거래법이나 약관법상의 조항을 손대서 일부 불합리한 것을 해소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은 오히려 노동자로 인정될 수 있는 근거를 축소, 박탈하는 것이 된다.
올해 6월에 발의된 김진표 의원안은 그간 미루어 온 정부의 입장이 사실상 발표된 것으로 상세히 볼 필요가 있다. 이 안은 그 내용에 있어서 상당한 문제를 포함하고 있는데, 노동자를 이중 삼중으로 위계화 시키는 내용일 뿐 아니라, 노동자 전체의 권리를 축소시키는 것을 의도하고 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간주근로자를 나누며, 이들을 일반적인 노동자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이는 곧 기존 노동관계법상의 노동자 개념의 축소를 의미한다. 또한 이러한 구분은 노동자들을 노동자-간주근로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위계화 시키고 보호를 달리하며, 당연히 노동자인 이들을 점점 노동자가 아니게 만들어 갈 것이다.
그리고 시행령을 통해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해당되는 직종을 정하겠다고 하니, 이에 해당하는 직종과 해당되지 않는 직종이 또 갈릴 것이고, 이후에 조직되어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노동자군은 노동자-간주근로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위계 아래에서 온전한 노동권 쟁취 투쟁을 만들어내기 힘겨워질 것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요구는 다만 조직된 몇몇 직종에게, 현재 특수고용 형태로 드러난 몇몇 업종 노동자들에게 노동법을 적용해 달라는 요구가 아니었다. 현재 조직된 특수고용 노동자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노동자들이 자본의 전략에 의해 얼마든지 특수고용화 될 수 있으며, 이미 그러한 시도는 진행되고 있다.
'특수고용화'라는 이름을 빗겨가면서 특수고용도 아닌, 그러나 특수고용과 다를 바 없는 노동자들이 정부의 정책 속에서 양산되고 있다. 자활이라는 명목으로, 사회적 일자리라는 이름으로, 가사사용인, 비공식 노동이라는 미명하에 노동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고, 그렇게 각 직종을 분할하며 정부의 법안이 구상되었던 것이다.
다시 현장에서, 좀 더 길게, 더 큰 싸움을
이렇게 현재 국회에 계류된 법안은 세 개이고, 논의가 시작된다면 정부의 입장인 김진표 의원안이 언제 재빠르게 상정되어 논의를 주도 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러니 입법과정에서의 힘 싸움이란 아무리 잘해도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법, 실제 현장의 대규모 투쟁을 조직하기에 힘에 부친 특수고용 단위들로서는 입법을 빨리 진행하라고도, 하지 말라고도 할 수 없는 입장이 된 셈이다. 마음이야 조금이라도 숨통을 트고 한숨 돌린 후 다시 달리고 싶지만, 그 약간의 숨이 노동자로서의 마지막 숨이 될 수밖에 없다면 그 한 숨에 수년의 싸움을 결코 넘기고 싶지는 않다.
최근 몇 가지 변화된 상황들이 있다. 현장에서, 정부기관에서, 또 법원에서다. 현장에서는 지난해 학습지 대교 지부장 해고 투쟁을 승리로 마무리 하면서 현장의 기운을 조금씩 모아가고 있고, 덤프, 화물, 퀵서비스, 대리운전기사, 학원차량 운전자 등 다양한 노동자들이 조직을 형성하면서 움직이고 있다. 그 힘들을 현장에서부터 잘 모아낸다면 다시 한 번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큰 대중투쟁을 조직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특수고용 관련 입장을 제출한 바 있다. 그 내용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집단적 권리가 전반적으로 확대되고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노조법상 노동기본권은 특수고용 노동자에게는 당연히 적용되어야 하며, 특히나 사용자에 의해 위장된 자영인의 경우에는 당연히 일반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노동법상의 모든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는 일반적인 내용인 듯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피해갈 수 없는 우려의 지점이 존재한다. 상세한 결정문이 아직 제출되지 않아 구체적 판단 지점을 알 수는 없으나,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위장자영인의 구분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그에 사용되었을 노동자성의 판단기준이 먼저 확인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문제되었던 법원의 노동자성 판단기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노동자성을 확대하는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인지가 밝혀져야 한다.
또한 후자라면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라는, 지금 현재 조직되어 투쟁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 외에 좀 더 자율성이 강하고 사용자성도 강한 직업군을 상정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이 지금 현재의 특수고용 문제에만 집중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집단적 권리에 대한 통제와 제한에 대하여 집단적 권리의 확대를 위한 방안으로서 제출된 것이라면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투쟁에 좀 더 가깝게 위치한 자로서 현재로서는 이에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자본의 노림수와 맞물려 결국은 직종을 구분하여 누구는 위장자영인, 누구는 특수형태근로라는 식으로 또 다시 노동자 갈라치기에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의 입장제출 보다 좀 더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학원강사의 노동자성에 대한 최근 법원의 판결이다. 사건 자체의 결과와 관계없이, 판결에서는 노동자성 판단에 있어서 기존의 판결들 보다 확장된 노동자성 판단 기준을 사용하고 있고, 더욱 중요하게는 사업자성에 대한 판단을 하고 있다.
실제로 사업자로서 경영을 조직하고, 이윤을 위한 활동을 행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대한 판단은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노동자성 판단 속에 고려되어야 함에도 지금까지는 사업자 등록만 있으면 무조건 '안돼'라는 방식이었다.
그것에서 법원이 한 발 나아간 내용을 판결로 제시하고 있고, 이는 이후 법률 투쟁에 있어서도 기대 가능성을 높이는 부분임에 분명하다.
17대 국회는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국회에서 논의되지 않는다고 물러서지 않을 것이며, 이후에도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입법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또 현장의 투쟁을 일구어나가며 자본이 두 손 들 때까지 싸울 것이고, 끊임없이 현장투쟁과 그를 넘어서는 전체 투쟁 속에서 노동자성 인정, 노동기본권 쟁취를 외칠 것이다.
그 때가 되어도 누군가는 여전히 지나치게 원칙적이라 안 된다 할 것이고 비현실적이라 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돌아가는 길이라 여기는 것이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기에 원칙으로 밀고나갈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그 속에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논의는 더 나아갈 것이고, 조직은 더 확대될 것이고, 우리 사회는 제대로 된 답을 내기 위해 좀 더 노력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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