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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대변인'을 허무는 어리석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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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대변인'을 허무는 어리석음"

[다시 보는 근현대 역사 현장 ②] 대전·부여

"저어 공주 한밭(대전)서 무안 목포루 철로가 새루 나는데, 그것이 계룡산 앞을 지나 연산 팥거리루 해서 논뫼-강경으루 나와 가지구, 황등장터를 지나게 된다네 그려."(채만식, <논 이야기> 중)

'교통의 요충지'로 잘 알려진 대전. 그러나 100년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잘 알려지지 않은 한적한 농촌이었다. '큰 밭'이라는 뜻을 가진 대전의 지역명은 과거 이곳의 모습을 쉽게 떠올리게 만든다.

일제강점기 빠르게 성장한 뒤 주요도시로 자리잡은 대전에서는 곳곳에 남아있는 근현대 건축물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13~14일 문화연대 '다시 보는 근현대 역사현장' 팀은 두번째 답사지로 대전광역시와 충남 부여군을 찾았다.

대전역과 함께 시작한 대전의 근대사

대전역과 주변 일대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 현장 입구에 걸린 '철도기관 공동사옥 신축'이란 팻말은 대전이 코레일(구 철도공사) 본사가 있는 곳이란 점을 떠올리게 했다.
▲ 대전역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보이는 모습. 왼쪽은 철도기관 공동사옥을 신축하는 건설현장이며 오른쪽은 철조망에 둘러싸인 채 남아있는 철도청 보급창고이다. ⓒ프레시안

사실 대전의 역사는 철도와 뗄 수 없는 관계다. 1905년 경부선 개통, 1914년 호남선 개통은 충청권의 중심을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동하는데 일조했다. 일제 침략정책의 일환으로 건설된 철도를 따라 일본인들도 속속 대전으로 모여들었다.

대전시에서 펴낸 '근대문화유산목록화조사보고서'(2003년)에는 "한국의 근대건축은 개항(1876년) 이후부터 시작됐지만 대전의 경우 1904년 대전역 개역 후부터 시작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대전역 주차장 바로 옆에는 세 채의 '철도청 보급창고'가 그 역사를 증명하듯 나란히 서 있다. 1956년에 지어졌다는 슬레이트 지붕을 인 목조건물들은 녹슨 철조망에 둘러싸여 척 보기에도 낡은 느낌이 났다. 대전시는 이 건물들을 엎애고 이 자리를 공원화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대전 발전의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창고들을 없애는 것만 능사일까. 답사 안내를 맡은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은 "이런 건물들을 보수해 차라리 공간 없는 예술가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면서 보존하는 것이 어떻겠나"라고 말했다.

충남도청과 대전역을 따라 발달한 도시

대전역에서 시내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가다보면 충청남도 도청을 만날 수 있다. 3층 높이의 이 건물은 'ㄷ'자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전형적인 일본의 관공서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1932년 당시 약 36만 원의 공사비로 준공된 이 도청은 대전시가 급격한 성장을 이루게 되는 계기가 됐다.
▲ 충남도청. 일제는 당시 철도 개통과 함께 개발되고 있는 대전으로 도청을 이전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공주에서 대전으로 도청을 옮겼다. 한적한 농촌이었던 대전은 그때부터 급격하게 성장한다. ⓒ프레시안

본래 충남도청은 공주에 있었다. 그러나 일제는 조선인 토착세력이 별로 없던 대전으로 도청을 이전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게 된다. 이들은 공주 지역 주민의 반대를 무시하며 도청 이전을 강행했고, 이후 대전은 인구가 급증하면서 교통, 상업, 행정, 공업의 중심지가 된 반면, 공주는 과거 중심도시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이후 충남도청과 대전역 사이로 난 도로(현 중앙로)는 대전의 중심가로 자리잡았다. 이곳에는 아직도 남아있는 근대 건축물들이 개조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1936년 준공돼 대전상공회의소로 사용됐던 삼성화재 충청본부 건물, 1912년 이후 신축을 거듭하며 한성은행, 조선식산은행으로 쓰였던 대전우체국 건물, 1935년 '대전극장'이란 이름으로 지어졌던 현 중앙극장 건물 등을 이 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

또 중앙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도 1938년 지어져 대전지역 최초 보통학교인 대전삼성초등학교 건물로 쓰이다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한밭교육박물관, 1962년 건축 당시 대전에서 가장 높은 종탑으로 건립됐던 대흥동 주교좌성당, 1919년 3월 대전 지역 최초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역사를 가진 중앙도매시장(구 인동만세장터) 등을 찾아볼 수 있다. 모두 나름의 역사를 가진 채 유지돼온 건물들이다.
▲ 대전지역 최초 보통학교로 설립됐던 대전삼성초등학교 건물은 현재 교육박물관으로 쓰여지고 있다. ⓒ프레시안

▲ 1960년대 대전에서 가장 높은 종탑으로 건립됐던 대흥동 주교좌성당 ⓒ프레시안

부여에 숨어있는 근대 건축물들

대전에 이어 답사팀의 발길이 닿은 곳은 부여였다. 당시 백제문화제가 한창이었지만, 인구 8만의 부여에서는 한적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1400년전 123년간 백제의 수도로 기능했던 이곳은 현재까지 '백제' 문화의 명맥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국립부여박물관을 비롯해 정림사지, 궁남지 등 부여 곳곳에서 관광상품으로 단장한 백제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도 숨어있는 근현대 건축물을 볼 수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건 1968년 건립돼 국립박물관으로 쓰이다 현재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로 쓰이고 있는 2층짜리 건물이다.
▲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건물. 건물 외관이 일본의 신사와 닮았다는 이유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프레시안

다소 먼 곳에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이 건물은 1965년 현상설계에서 당선된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이다. 이 건물은 당시 건축가 강봉진이 설계한 구 국립박물관과 더불어 일본의 신사를 닮았다는 이유로 한국 전통 건축에 대한 논쟁을 일으켰다고 한다.

읍에서 조금 떨어진 구룡면에서는 한국 초기 성당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부여 금사리 성당을 만날 수 있다. 단아한 벽돌집을 연상케 하는 이 성당은 현재 쓰이진 않고 있지만 간간히 이 건물을 보러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고 있다.
▲ 부여 금사리 성당. ⓒ프레시안

"근대 건축물은 도시의 역사를 대변해주는 매개체"

대전시가 펴낸 '근대문화유산목록화 조사보고서'는 "여느 도시나 다름없이 대전도 1970년대 이후 도시발전이 지속되면서 구도심은 급격한 변화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며 "그곳(구도심)의 근대 건축물들은 기록도 남기지 못하고 파괴되거나 변형돼 갔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대전의 현대 건축은 근대건축으로부터 출발한 것임을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이라며 "근대 도시로서 시작된 대전에서의 근대 건축물은 도시의 역사를 대변해주는 매개체"라고 강조했다. 도시가 팽창함에 따라 구도심이 '공동화 현상'을 보이면서 오래된 건물들이 헐리는 데에 대한 우려다.

이 같은 지적은 부여의 경우에 비춰봤을 때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백제'가 무너진 지 1500년이 지난 지금, 부여에 남아있는 문화유산들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는 값을 따질 수 없을 만큼 크다. 만약 500년 전, 1000년 전 이것들을 너무 낡았다거나 보기 싫다는 이유로 헐어버렸다면, 그 옛날 백제의 모습을 현재의 우리가 이만큼이나마 접할 수 있었을까.
▲ 만약 500년 전, 1000년 전 백제의 문화유산을 너무 낡았다거나 보기 싫다는 이유로 헐어버렸다면, 그 옛날 백제의 역사를 현재의 우리가 이만큼이나마 만날 수 있었을까. 지난 14일 부여에서 열린 백제문화제 퍼레이드 모습. 부여시민들은 해마다 열리는 이 퍼레이드에 적어도 한번 이상씩 참여했다고 한다. ⓒ프레시안

문화연대는 지난 9월 8~9일 1차 답사를 시작으로 12월 9일까지 총 6차례에 걸쳐 '시민, 청소년과 함께하는 문화답사- 다시보는 근·현대 역사 현장'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일제 수탈의 현장 김제, 생태문화의 보고 부안', '근대 교육 도시 및 항쟁의 도시 광주', '근대 교통의 중심 대전과 고도 부여의 근대사' 등 답사지의 특색에 따라 각기 다른 주제로 진행되며 제주 4·3유적지, 노근리 쌍굴다리, 전남도청 등 상징적인 장소부터 시장, 저수지, 성당 등 책에서는 볼 수 없는 각 지역 내 역사 현장까지 답사 일정이 예정돼 있다.

문화연대는 "현재 근·현대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대한 인식 정도도 미약할 뿐만 아니라 개발이익과 상충되어 소유자의 재산권 침해도 문제가 되고 있다"며 "전문가의 강의와 시민참여적인 답사를 통해 인류문화에 대한 역사의식을 고취하고자 한다"며 이번 답사의 취지를 밝혔다.

참가비는 매회당 4만원(문화연대 회원 3만원)이며 제주 답사 항공료는 별도다. 더 자세한 내용에 관한 문의는 문화연대 홈페이지(www.cncr.or.kr)와 전화(02-773-7707)를 통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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