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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아직 '죽은 이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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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아직 '죽은 이슈'가 아니다

[2007 대선이야기] 이명박의 '경제'는 안전한가?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난 직후인 지난 주말,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상승 한 것으로 보도됐다. S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에서는 43.4%, KBS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에서는 무려 53.7%였다.

신뢰할 만한 두 조사기관이 거의 같은 시점에 한 조사에서 10% 포인트 가량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지지율은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번 회담으로 인해 상당한 정도로 지지율이 상승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과의 FTA 타결 즈음에 지지율이 겨우(?) 30%로 뛰어 올랐을 때도 급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번의 상승이 얼마나 큰 폭인지 알 수 있다.

잔잔한 호수에 파문이 일었다. 한나라당이 놀랐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더니 한나라당이 바로 그 짝이다.

돌이켜보면 한나라당의 긴장이 이해는 간다. 2003년에 10%대의 바닥을 친 노대통령의 지지율이 탄핵 직후인 2004년 3월에는 50%대 중반으로 치솟았고 그 힘으로 열린우리당은 총선에서 아무도 예상 못한 원내 과반이라는 압승을 이끌어냈다. 이 결과는 총선을 불과 70일 남겨둔 시점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3년 전의 총선 때처럼, 별다른 이슈도 없고 변수도 없어 보이던 2007 대선에 변수가 생기는 걸까? 70일 후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또 벌어질까?
▲ ⓒ청와대 사진기자단

이명박의 치명적 실수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는 평양에서 남북의 정상이 만나는 그 시점에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 불발이 공식적으로 확인된다. 치명적 실수였다. 세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었다.

첫째는 비공식라인을 통해 면담을 성사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이명박 후보 진영에서는 오히려 자랑인 양 이를 구체적으로 다 밝혔지만 사실 이것은 이명박 후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일만 될 수 있다면 비정상적 방법도 쓸 수 있다는)을 대중들에게 확인시켜준 꼴이 됐다.

둘째는 국민적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은 보수, 진보를 떠나 국가적, 민족적 자존심에 민감하다. 2002년에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으로 크게 데인(?) 미국이 이번 한국 대선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들이 이슈가 되지 않으려 조심하고 있는 상황을 인지했다면 결코 그렇게 무리하게 추진해 망신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부시가 '이명박의 위상을 인정해 만나기로 했다'는 둥의 지나친 자찬만 없었어도 덜 민망했을 터이다.

셋째는 이번 실수가 대중이 쉽게 '잘못'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실수라는 점이다. 대선을 앞둔 이명박 후보에게 치명적인 것은 말실수를 포함한 그의 실수 대부분이 대중이 판단하기 쉽다는 것이다. 정책적 오류는 대중이 쉽게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론에 영향을 덜 미치지만 누구나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실수는 바로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친다. 매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잽도 많이 맞으면 내상을 크게 입는다.

'한 번만 더' 논리가 위력을 발휘할 때

전통적으로 북한과 미국은 한국 대선에서 늘 변수였다. 87년 대선에서는 KAL기 사건, 92년에는 이선실 간첩단 사건, 97년에는 외환위기와 IMF 지원, 2002년에는 고농축우라늄 개발 프로그램 통보와 미군 장갑차 사건 등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금년 대선은 과거와 두 가지 점에서 다르다. 하나는 미국이 한국 대선에 어떤 변수도 만들어 주지 않으려 극히 조심한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남북 간에 긴장이 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87년, 92년, 2002년 대선과 같이 긴장이 제고되는 경우에는 북한이 변수가 될 수 있지만 긴장이 완화되는 경우에는 별다른 이슈가 되지 못한다. 대중은 주머니 속에 들어온 돈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 무드가 조성되고 북미 간에도 대화가 잘 풀리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금년 대선에서는 경제 이슈가 평화 이슈를 압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현재까지의 여론조사 결과도 그런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 후보도 '경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등에 업고 순항을 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12월 19일까지도 '경제'는 '평화'를 압도할까?

비교할 만한 사례가 있다. 미국의 1988년 대선과 1992년 대선이다. 1980년 집권한 공화당의 레이건은 대내적으로는 감세 정책으로 상징되는 레이거노믹스를, 대외적으로는 대소련 봉쇄를 위한 강력한 군비증강 정책을 추진했다.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까지 부른 레이건이지만 '힘을 가진 평화'라는 슬로건 아래 소련과의 대화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때마침 집권한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은 자주 만났다. 1984년 민주당의 먼데일을 꺾고 재집권에 성공한 레이건은 한편으로는 소련을 더 압박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화를 계속했다. 그러는 사이 미국은 재정 적자와 무역 적자의 이른바 '쌍둥이 적자'에 시달렸다. 그 틈을 타 일본은 미국에서 욱일승천했다. 미국인들은 위기감에 휩싸였다.

미국은 변화가 필요했다. 1988년 야당인 민주당은 듀카키스를 후보로 내세워 공화당의 조지 부시 부통령과 맞서게 했다. 그는 변화를 설파했고 상당히 큰 차이로 앞서나갔지만 결국 역전당하고 말았다. 민주당으로서는 3연속 패배였다. 공화당의 승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듀카키스에 대한 유례없는 네가티브 켐페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냉전의 종말이 임박해 오고 있는 시대상황이었다.

1987년 소련은 제27차 당대회에서 페레스트로이카와 '새로운 정치적 사고(신사고)'라고 불리는 외교노선을 당의 정식 노선으로 채택했다. 사회주의의 종말이 보이는 시점이었다. 미국인들은 다시 한 번 공화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마치 97년 집권한 국민의 정부, 2002년 집권한 참여정부가 10년간 추진한 햇볕정책이 드디어 '햇볕'을 보게 됐다고 하면서 이제 한 번만 더 정권을 맡겨준다면 한반도에도 '평화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고 선전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집권한 부시는 89년 독일 통일, 90년 소련 해체, 91년 걸프전 승리 등의 엄청난 업적을 남겼지만 92년 대선에서 46세의 햇병아리 빌 클린턴에게 패배한다. 대중은 이미 주머니 속에 들어온 냉전 종식이라는 돈에 더 이상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미국인들은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정말로 냉전이 끝났다면 이제야말로 미국의 경제 문제를 신경 쓸 때가 된 것이었다. '문제는 경제야! 이 멍청아'라는 클린턴의 슬로건은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했다.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에서 고르바초프의 뒤를 이어 집권한 보리스 옐친은 집권 당시 57%의 득표를 했는데 이 지지율을 그는 다시는 경험하지 못했다. 국정혼란과 과음, 심장병 때문에 러시아의 대중들이 그를 다시는 대통령으로 선출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996년 주가노프 러시아 공산당 대표와 맞붙은 대선에서 그는 힘겨운 승리였지만 대역전에 성공한다. 그 전해인 1995년 총선에서 제1당이 될 정도로 기세등등하던 러시아 공산당은 결국 집권하면 '무서운 과거로 되돌아 갈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바꾸지 못해 패하고 말았다.

이명박, 집권 시 평화에 대한 답이 있나?

결국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지금까지의 우세를 승리로 연결시키려면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하나는 이명박의 경제 아젠다가 범여권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는 평화 프로세스를 뛰어 넘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나라당이 집권했을 경우에도 평화 프로세스는 계속된다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유감스럽게도 평화 프로세스는 시간이 갈수록 구체적으로 진전되는 데 비해 한나라당의 경제 비전은 아직도 추상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리에게 한 번만 더 정권을 맡겨주신다면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의 불안은 없습니다. 평화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라는 범여권의 주장에 맞서 '우리에게 정권을 맡겨주신다면 대한민국이 확실히 달라질 것입니다. 적어도 경제 하나는 확실히 달라질 것입니다'라는 한나라당의 주장 사이에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을까?

한나라당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기 위해서는 좀 더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제시돼야 한다. 왜냐하면 추상적 슬로건으로 경제 아젠다를 '거저 먹을 수 있는' 경제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스피 지수 2000 돌파, 국가신용등급 상향 조정, 부동산 가격 안정, 여전한 수출 호조세, 1인당 GDP 2만 달러 육박, 국제 대회 유치의 성과 등이 나오는 상황에서 경제와 민생에 '파탄'을 갖다 붙일 수 있겠는가?

'경제, 확실히 살리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은 이회창의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슬로건처럼 추상적이어서 대중의 높은 눈(?)을 못 맞출 수 있다. 만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압도할 '대한민국 선진화 프로그램'을 못 내놓는다면 70일 뒤의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평화를 기다리며' 살지만 그 평화는 아직도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화 이슈는 아직 죽은 이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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