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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무현과 이명박, 그리고 문국현

[2007 대선, 기로에 선 한국정치]서둘러 찾아온 손님, 경제②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최근 포천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정치"라고 지적했다. '경제대통령'으로 불리운 그의 회고록 출간과 잇따른 인터뷰는 뉴스거리가 틀림없지만 일부 우리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한 의도는 따로 있는 듯 보였다.

재계가 각종 규제를 풀어달라고 할 때나 '쩨쩨하게' 써먹던 그 말이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했던 그의 입에서 나왔으니 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에 대한 맹렬한 비판이 포함된 내용은 그리 대수롭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그린스펀의 발언은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주장과 얼마나 유사한가.

노무현과 이명박

이 후보의 경제지상주의는 단순명료하다. 그는 연초 한 특강에서 "우리나라가 살아나기 위해선 정치가 경제를 뒷바라지 하는 수준으로 가야 한다"면서 "경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고 했다.

사실 이 발언은 자신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비판에 대한 대구였다. 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실물경제 좀 안다고 경제 잘 하는 것 아니다"고 콕 찍어 자신을 맹타했기 때문.
▲ ⓒ연합뉴스

신년벽두에 벌어진 현존권력과 유력한 대선주자 간의 공방전은 최근까지 이어져 왔다. 노 대통령은 지난 12일 "종부세로 인해 지방이 엄청나게 혜택을 받고 있는데 이 정책을 폐기하는 사람도 있고 지방세로 바꿔버리는 사람도 있다"며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이 후보를 겨냥했다.

노 대통령은 17일엔 "수도권의 용적률을 높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보도를 봤는데 이 무슨 망발이냐"며 당일 보도된 이 후보의 인터뷰 내용을 비판하는 예민함을 보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그간 집요하게 이 후보를 겨냥한 이유는 최근 청와대 참모들이 집필해 발간한 '한국정치 이대로는 안된다'는 책의 추천의 글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최근 야당과 일부 지식인 사회에서 '잃어버린 10년', '민주세력 무능론'을 말하고 있고, 이런 틈을 타고 다시 성장 지상주의, 경제 만능주의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며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또한 "이러다가 민주주의의 역사적 가치와 평가마저 후퇴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우리는 다시 민주주의를 고민하고 민주주의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노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저평가를 토양으로 한 이 후보의 '경제대통령' 주장을 용납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더욱이 '낡은 정치 청산'을 슬로건으로 걸고 당선된 노 대통령에게는 여전히 여소야대, 지역구도 등이 한국정치의 핵심적 위기요인으로 여겨졌을 법하다.

하지만 '경제 프레임'에 대응하기 위한 '정치민주화 프레임'은 적어도 노 대통령이 진두지휘해선 공감대를 얻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대연정과 개헌 제안의 냉정한 실패를 겪은 바 있고, 무엇보다 노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은 경제에 있기 때문이다.

취임 반년 만에 "정말 경제대통령 한번 하고 싶다"고 했던 노 대통령은 임기 말에 이르러선 "많은 사람들은 (차기 대통령의 자질을) 경제라고 하는데, 경제정책은 (여야 간에) 차별화가 거의 불가능하다. 경제정책에 무슨 차별성이 있느냐"(신년 기자회견)고 말하기까지 했다.

경제노선에 있어선 한나라당과 똑같다는 '노무현 식'의 자기고백은 솔직함 이상의 의미를 찾기 힘들다. 번번한 정치실험의 실패와 팽배해진 경제적 위기감 앞에 '탈(脫)여의도 정치'와 '고도성장'을 약속한 이명박 후보에 대한 쏠림은 당연한 현상인 것이다.

한 손에 한미 FTA를, 다른 한 손에는 장밋빛 복지 환상으로 채색된 노무현 정부 '비전 2030'의 아류 버전을 든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들이 좀처럼 이 후보를 넘어서지 못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대선을 석달 앞두고도 지리멸렬한 범여권의 처지는 노무현 대통령 방식으로는 결코 이명박 후보를 꺾을 수 없는 논리의 방증쯤 되겠다.

이명박과 문국현

따라서 범여권에 시급히 요구되는 과제 가운데 하나는 경제 노선에 관한 '이명박과 다른 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뒤늦게 뛰어든 문국현 후보의 주장이 주목받는 건 이런 맥락에서다.

건설회사 CEO 출신으로 경쟁력과 효율성을 지고의 가치로 삼는 이 후보와 달리 '사람중심,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를 내건 문 후보의 주장은 나름의 설득력을 갖췄다는 평가가 많다. 그가 유한킴벌리 사장 재직시절 4조2교대, 평생학습을 통해 고용안정과 고생산성을 모두 충족시킨 모범 사례를 창출한 인물이라는 점도 세간의 시선을 사로잡은 한 요인이다.

KDI 유종일 교수는 각 당 대선후보들이 내건 경제정책을 싸잡아 "7%, 8% 성장률 공약만 내건 초보적 수준"이라고 일축하면서도 "문국현 후보의 경우 일자리와 중소기업의 문제, 성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함으로써 부족한 정당기반이나 늦은 (대선출마) 타이밍, 낮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호응을 얻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문 후보를 지지하는 안병진 교수는 "대중들은 아직 '이명박의 경제 프레임'에 중독돼 있지만 일부 중도층과 진보층부터 문 후보의 비전에 대해 반향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 ⓒ프레시안

그러나 서로 다른 길을 걸어 온 기업가이고 사뭇 다른 경제관을 가진 대선후보라는 '인물'에만 초점을 두면 '문국현 바람'의 상승 가능성을 낙관하기 쉽지 않다. 단지 '경제대통령'을 표방하는 이명박 후보에 대한 맞수 경쟁에서의 일정한 우위가 문 후보의 성공을 보장하는 티켓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표면화된 우리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 이명박 후보와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비전과 가치를 공유한 세력이 문 후보에게 충분한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문 후보에게 경제노선에 따른 정당의 분화를 추동할 힘은 있는지, 이 때 범여권 기존 세력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선 진단과 전망이 엇갈린다.

11월 께 독자신당을 예고한 문 후보는 일단 범여권과는 전혀 다른 모색을 하고 있다. 안병진 교수는 "과거의 열린우리당이나 현재의 신당이 정당정치를 내면화한 세력이 아니기 때문에 파격적으로 깨질 필요가 있다"며 "따라서 학자들이 원론적인 정당정치를 얘기하면 불편함이 느껴진다"고 범여권 합류에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안 교수는 이어 "경제에 관한 전면적 대립만이 새로운 정치모델을 구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 선거에서 중요한 건 매니페스토 식의 공약검증을 뛰어넘어 우리 사회가 어떤 경제노선으로 갈 것인가에 대한 내면화된 신념체계를 놓고 승부가 이뤄져야 한다"며 "경제 노선을 중심으로 당이 분화돼야 정치적 힘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문 후보를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신당의 한 의원은 그의 정치행태에 관해서만큼은 평가가 냉정했다. 그는 "문 후보가 가장 잘못하고 있는 일은 자꾸만 신당과 자신을 보완재가 아닌 대체제의 관계로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후보의 독자행보로 말미암아 범여권이 죽을 쒀야 문 후보가 뜨는 관계가 구축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한나라당이 일정한 변화를 의미한다면 범여권에서도 새로운 진보가 나와야 하는데 (범여권과 별도로) 제한된 유권자들을 상대로 직접 호소하는 문 후보의 방식은 논리적으로는 범여권의 몰락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성공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경제 이후의 정치

어느 쪽이건 문제는 세력, 즉 이명박 후보는 물론이고 노무현식 경제노선과 차별화된 정당의 착근 여부로 모아진다. 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당과 지지기반인 유권자의 관계가 긴밀하게 복원된 정당 민주주의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박상훈 박사(후마니타스 주간)는 "IMF 이후 10년이 흘러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을 피부로 절감하는 시대가 됐다"면서 "문 후보에게 대중들이 호응하는 이유는 (경제 자체보다는) 정당 제도화의 실패와 인과관계가 높다"고 말했다.

서복경 국회입법조사연구관은 "정당구조나 시스템에 선행하는 게 내용"이라며 "경제가 화두로 등장한 올해 대선이 A에서 B로 시스템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가 될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범여권의 환골탈태가 됐건 문국현 세력의 괄목상대가 됐건 경제노선의 차별화를 담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치적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 한 올해의 '경제 대선'은 이명박 후보의 '경제대통령' 슬로건과 이에 대한 범여권 후보들의 맞수론 정도로 겉돌기 십상이다.

이렇게 볼 때 적어도 현재의 정치 시스템으로는 뒷받침되기 어려운 조건 속에서 서둘러 찾아온 '경제선거'가 정당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기회가 될지, 87년 체제의 붕괴 경향과 맞물려 또 다른 아노미의 입구가 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 윤곽은 내년 총선을 거치며 보다 분명히 드러나겠지만, 통상 개혁정책의 후퇴와 맞물려 경제 문제가 전면화 되는 시기가 찾아온다는 점에서 정치 전반의 보수화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경제선거 이후의 정치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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