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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격변'의 역사는 반복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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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격변'의 역사는 반복되나?

[2007 대선이야기]'구도'도 '후보'도 '이슈'도 오리무중

제17대 대통령 선거가 꼭 100일 남았다. 올해 대선의 특징적 현상은 '불확실성'이다. 14~16대 대선 때 주요 후보들은 대개 4~7월까지 선정됐지만, 올해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제외하고 다른 정치세력들의 후보는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1987년 13대 대선 이래, 당 대선후보가 선출된 후에도 D-100일 이후 공식 대선후보 등록 전까지는 예측할 수 없는 구도의 요동이 있었다.

100일 남기고도 요동…정당정치의 미제도화

13대 대선의 경우, 6월 항쟁으로 직선제 대선을 규정한 현행 헌법은 1987년 10월 27일 국민투표로 확정됐다. 그러나 김대중은 김영삼과 대선후보 단일화에 실패하자 동교동계를 이끌고 10월 29일 통일민주당을 분당, 평화민주당을 창당하고 대통령후보가 됐다. 김영삼은 11월 9일 통일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고, 김종필도 10월 30일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해 대통령후보가 됐다. 이밖에 대선 기간 중 백기완의 후보 사퇴 등 1987년 12월 16일 실시된 13대 대선은 대통령선거 직전까지 대선구도가 불확실하게 진행됐다.

1992년 12월 18일 실시된 14대 대선도 대선 D-100일 이후 대선판이 요동쳤다. 노태우 대통령은 9월 18일 선거중립내각 구성을 표방하고 민자당을 탈당했다. 이어 민정계 박태준 최고위원도 김영삼 후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0월 9일 민자당을 탈당했고, 이는 곧 박철언 등 일부 의원의 연쇄 탈당으로 이어져 집권당이 대선을 앞두고 분열됐다.
▲ ⓒ연합뉴스

1997년 12월 18일 치러진 제15대 대선도 D-100일 이후 대선구도가 급격히 변화했다.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는 9월 장남의 병역기피 의혹인 '병풍(兵風)'으로 후보교체론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에 이인제는 9월 13일 신한국당을 탈당,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대통령출마를 선언했다. 또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자민련 김종필과 '내각제 개헌'을 고리로 11월 3일 소위 DJP연합을 성취시켰고, 이에 맞서 신한국당은 (꼬마)민주당과 11월 21일 대통령후보 이회창, 총재 조순으로 합당해 한나라당을 창당하는 등 선거판이 급변했다.

2002년 12월 19일 실시된 16대 대선도 격변의 연속이었다. 집권당인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9~10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무소속 정몽준 후보보다 낮은 지지율로 위기를 맞았다. 이에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후보단일화를 외치며 민주당을 탈당, 노 후보를 괴롭혔지만, 노무현은 11월 25일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와 후보단일화에 성공해 마침내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이길 수 있었다.

이처럼 1987년 이후 한국에서의 대통령선거는 대선 직전까지 예측할 수 없는 대선 구도의 '불확실성'이 특징을 이루고 있으며 이번 대선도 이러한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대선구도의 급변은 한국정치의 가장 큰 문제인 정당정치의 불안정과 미제도화(未制度化)에 기인한다.

'링' 위엔 이명박 뿐

이같은 불확실성 탓에 선거구도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도 대단히 복잡할 수밖에 없다. 선거구도를 분석할 때 맨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대선 본선에 진출하는 주요 후보와 그를 뒷받침하는 정치세력(또는 정당)이다.

한나라당은 경선에서 패배한 박근혜의 경선승복 선언으로 분열에 대한 우려를 일단 봉합했다. 국민의 높은 지지도와 집권 가능성, 2002년 탈당했다가 복귀한 쓰라린 경험과 2004년 총선을 계기로 당을 살렸다는 주인의식을 갖고 있는 박근혜의 존재, 당심(黨心)에서의 승리로 확인된 박근혜의 당내 위상과 차기에의 기대, 그리고 범여권의 낮은 지지도 등은 한나라당의 분열 가능성을 낮게 하는 요인이다.

범여권은 대선 본선 이전에 '최종 후보단일화'의 가능성을 언급한 점을 기준으로 대통합민주신당, 민주당, 그리고 유한킴벌리 전(前)사장인 문국현 등이 포함된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예비경선을 통해 5명의 대선 예비주자를 선정했다. 열린우리당 출신이 압도적이지만 한나라당 출신의 손학규, 비노의 정동영, 친노의 이해찬·유시민·한명숙 사이의 계파 갈등이 표면화됐고, 민주당 출신 세력과 일부 시민사회세력의 혼합으로 인해 단결보다 분열의 원심력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더구나 대선후보 5인 사이의 정통성과 정체성 논쟁,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 규칙을 둘러싼 후보 간의 첨예한 갈등과 대립, 당내 예비경선에서 탈락한 천정배, 신기남 등 소위 '당내 개혁세력'의 친(親)문국현 노선 가능성은 당의 단결을 불안하게 한다.

이런 상황은 10월 15일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후보가 선정돼도 당을 일사분란하게 단결시켜 대선에 임할 수 있을지를 불분명하게 한다. 무엇보다 지금 같은 국민의 낮은 지지가 대선후보 선출 뒤까지 이어진다면 이명박 후보를 이길 묘수를 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유일한 본선경쟁력 제고 카드라면 민주당 후보 및 문국현 등과 후보단일화이겠지만 성사여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민주당은 10월 16일 대선후보를 선정한다. 조순형과 이인제는 국민적 인지도를 인정한다고 해도 이들이 강력한 반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되기에는 세력이 상당히 약하다는 게 딜레마다. 문국현은 일부 인터넷 매체를 중심으로 후보 홍보가 상당히 진행되고 있지만,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에 편승한 축구협회장 출신의 정몽준 의원과 비교해 볼 때 인지도나 선거자금에서 상당히 열악해 보인다.

대선을 앞두고 3개월여의 짧은 시간에 정치적 파괴력을 보여줄 수 있는 세력으로 성장하기에는 기회보다는 장애가 많다고 보는 게 객관적이다. 문국현은 독자창당과 '국민후보론'으로 범여권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현재 그에 대한 지지 세력은 민주당보다도 약한 게 현실이다.

민주노동당도 9일 당의 대선후보 확정에 실패해 연장 승부에 들어가 15일까지 치러지는 권영길과 심상정 사이의 결선투표를 통해 최종 후보를 선출한다. 민노당의 지지율은 6~8%가량으로 후보들이 받는 지지율 1-2%보다 상당히 높다. 당의 지지도로 인해 당선된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2002년 권영길 후보의 총유효득표율 3.9%보다는 높은 득표가 예상된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대선에서 몇 %를 득표하는가는 내년 총선에서 당의 생존과 직결된다.

盧-DJ 정치개입, 어디까지?

이번 대선 구도의 새로운 변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과정 개입이다. 1987년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현직시절 관권선거의 한계, 임기 말 측근 부패와 정치·정책적 실패로 인해 노골적 대선개입이 상당부분 제약을 받았다. 그러나 DJ는 이러한 관례를 깨고 범여권의 통합과정에 깊숙이 개입했을 뿐 아니라 구체적인 방향까지 제시했다. 더구나 그의 행보에 비추어 볼 때 범여권 후보의 최종 단일화 단계까지는 상당히 개입할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은 이미 고건과 정운찬의 대선 출마 포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며,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후보 선출과정에서 반(反)손학규의 입장을 분명하고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공개적 개입은 이전 대통령과는 분명히 다른 양상이다. 더구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검찰에 고소한 것은 국정원과 국세청의 이명박 후보 관련 정보 수집활동과 맞물려 주목되는 대선 변수가 아닐 수 없다.

대선은 후보들의 선거구도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결정적인 것은 대선의 성격을 규정하는 후보의 '프레임'(frame) 설정 능력이다. 즉 '대선 이슈'를 선정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국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요구된다. 각 후보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정책은 이런 틀 속에서 국민들에 의해 논의되고 검증되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떠오른 것은 '경제'다. 경제 이슈는 이명박 후보가 선점한 듯 보이지만 이를 앞으로도 성공적으로 국민에게 제시하고 관리할 수 있으리라고 장담키는 어렵다.

조만간 예정된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관계, 한미관계도 중요한 관심사이지만 평화협정 체결 가능성이 논의될 정도의 추세이고 한미 FTA의 국회비준이 18대 국회로 이월된다면, 2002년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 북핵문제나 한미관계는 지배적 이슈가 되지 못할 것 같다. 그렇지만 남북정상회담에서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남북 평화체제나 경제통합을 선언할 경우 그 양상은 달라질 수 있다.

이렇듯 구도와 이슈가 모두 불안전한 상황의 연속이어서 선거를 치르기 위한 각 진영의 효율적인 대선 전략 수립과 집행, 그리고 텔레비전 정책 토론회 등 미디어 선거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상대로 상당한 효력을 발휘한 네거티브 전략에의 유혹은 범여권에 강한 것 같다. 이 과정에서 후보들의 사소한 말실수나 이미지 홍보의 실패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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