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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이제 대중에게 완전히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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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이제 대중에게 완전히 넘어갔다

[2007 대선이야기] 조용한 혁명…'포스트 2007'의 징후들

시간이 흐른 뒤 뒤돌아보면 2007년은 한국 정치의 '혁명'이 시작된 해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너무도 조용히 진행되고 있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지만 땅 밑 깊은 곳에선 거대한 판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판과 판이 부딪히면 커다란 지각변동이 시작되고 쓰나미가 닥친다. 해변 사람들은 다가올 내일을 모르고 어제처럼 태평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오늘까지다. 쓰나미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운명을 바꿔 놓는다. 누가 가장 큰 희생자가 될까? 필연은 우연이라는 옷을 입고 나타난다. 과거와 다른 현상이 자주 일어나면 뭔가 오고 있는 것이다. 조용하지만, 혁명의 조짐은 숨길 수 없다.
▲ 2007년 대선은 한국정치의 혁명으로 기록될까?ⓒ연합뉴스

대선을 불과 100여일 앞두고 후보 선출을 위한 각 당의 경선이 한창이다. 각자의 셈법이야 어찌됐든 확실한 것은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미 후보로 선출된 이명박을 빼고는 모두들 시간과 싸워야 한다. 바둑으로 치자면 초읽기에 몰린 형국이다. 누가 승자가 되고 누가 패자가 될 것인가? 누가 역사의 장에서 사라질 것이며 누가 여전히 무대에서 활동하게 될 것인가?

그것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치의 변화의 '조짐'을 읽어야 한다. 각 진영의 경선에 나타난 현상을 통해 혁명의 방향을 예측하는 것이 우선이다. 뭔가 과거와 달라진 현상을 따라가 보자.

막후 '절대 권력'의 소멸

우선 주목할 점은 경선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경선은 불과 1.5%포인트 승부였다. 민주신당, 민주당 역시 누가 후보가 될지 예측이 쉽지 않다. 민노당은 현재 권영길 후보가 연전연승하며 유리한 고지를 점했지만 만약 50% 득표에 실패한다면 결선투표까지 가야 한다.

경선이 이렇게 유례없이 치열하게 치러지는 이유는 경선 결과를 좌지우지할 절대 권력자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당의 원로들이 판세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YS의 영향력조차 의외로(?) 별 것 없었다. 힘겨운 승리를 한 후 이명박이 '나 혼자 선거 치른 것 같다'는 말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이다.

범여권도 전·현직 대통령의 영향력을 두고 날마다 시끄럽지만 과거에 비해 현실적인 파괴력은 떨어진다. 민주당은 대놓고 'DJ가 그런다고 현실 정치가 바뀌는 게 아니다'고 비판한다. 또 노무현 대통령과 가까운 후보일수록 힘겨운 승부를 하고 있다. 오히려 노대통령의 비판을 받는 후보일수록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

민노당엔 특정 정파의 힘이 관통할지 몰라도 다른 정당들은 절대 권력의 소멸로 인해 대혼전으로 빠져든 것이다. 이젠 후보자 자신이 킹메이커 노릇도 해야할 처지다. 특정인이나 특정 세력과의 관계에서 일찌감치(!) 후보로 결정되던 과거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젠 누구도 후보가 될 수 있고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대중정치 시대의 개막

절대 권력의 소멸과 맞물려 주목할 현상은 '민심이 만물의 척도'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권력은 이제 대중에게 완전히 넘어 갔다. 정치 시장의 소비자인 유권자가 주도권을 장악했다. 대중의 지지만 받으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박근혜의 지지자들이 아무리 승리를 도둑맞았다며 농성을 한다고 해서 결과가 바뀌지는 않는다. 선거인단에서 이기고도 여론조사에서 뒤집혔다고 항변해도, 진 건 진 것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민심에서 앞선 후보가 점점 유리한 현상은 가속화될 것이다. 아무리 선수(選數)가 높고 정치 경험이 많다고(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후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승리의 척도가 '대중성'이라는 것이다. 물론 여론조사를 표로 환산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미 2002년 대선 후보 단일화도 그렇게 한 마당에(그것마저도 오차범위 내의 차이까지 인정한 용기가 실로 놀라웠지만) 이제 와서 한국 정치의 '독특한 관행(?)'을 되돌릴 수 있을까?

수많은 기술적 오류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가 대단히 과학적인 양 숭배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오늘도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여론조사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는데…. 오늘날 정치는 여론조사 기관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장인들이 쉴 새 없이 변하는 주식시황판 눈을 떼지 못하고 울고 웃듯이 정치인들도 그 놈의 숫자에 하루 울고 하루 웃는다.

대통령조차 20% 중반대의 지지율이 나오자 '너무 좋아 입이 째진다'고 할 정도니 정치인들, 특히 대선 후보가 되려는 정치인이 받는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간다. 이젠 아무리 뛰어난 콘텐츠를 가진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대중과 소통하는 데 미숙하면, 다시 말해 대중성이 없으면 대통령은 꿈도 꿀 수가 없는 시대가 됐다.

주도권은 여성에게

현재로서는 여성 대통령의 탄생이 쉽지 않아 보이지만(물론 강력한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였던 박근혜의 패배가 이런 전망의 근거다) 올해 대선에는 유례없이 여성 정치인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여성 총리, 여성 법무장관에 이어 여성 대통령에 도전한 인물들이 수에 있어서나 질에 있어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신장했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민주신당의 한명숙, 추미애, 민주당의 장상, 민노당의 심상정에 이르기까지 만만치 않은 여성 정치인들이 마지막 남은 '유리천장'에 도전하고 있다. 사실 박근혜 후보가 얻은 놀라운 득표를 생각하면 여성 대통령의 탄생은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는 여성 유권자의 발언권 강화와도 무관치 않다. 97년 대선에서는 50대 남성 자영업자가 여론을 주도했다. 2002년 대선에는 30~40대 남성 화이트칼라가 그 역할을 맡았다. 2007년에는 30~40대 여성 주부가 결정권을 쥘 가능성이 아주 높다. 아파트를 중심으로 학교, 교회, 상가, 스포츠센터, 찜질방, 문화원, 할인마트 등을 통해 빠르게 정보가 생산되고 유통된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이들이 관심을 끌 만한 이슈를 내놓는 후보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선거 주도권이 여성에게로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가는 세대교체

여성 정치인들의 약진에 비해 한국 정치의 세대교체는 거꾸로 가고 있다. 미국은 이미 92년에 전후세대인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부시 역시 클린턴과 같은 해(46년)에 태어났다. 일본의 아베는 54년생으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과 동갑이다. 영국은 토니 블레어(53년생)에 이어 고든 브라운(51년생)이 총리가 됐고 프랑스의 사르코지는 55년생이다.

전 세계의 지도자들이 세대교체에 성공한 반면 우리는 전후세대(6.25 이후 세대) 지도자가 아직도(!) 나오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이명박은 41년생이다. 민노당의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권영길도 같은 41년생이다. 민주당의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은 조순형은 놀랍게도 35년생이고 그 뒤를 쫓고 있는 이인제는 48년생이다. 민주신당의 지지율 1위인 손학규는 47년생이고 기존 정치권 밖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는 문국현도 49년생이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과 젊은 정치인들이 대중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확인해주는 현상이다. 한마디로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것이다. 물론 젊은 지도자들은 억울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자신들에게도 과도하게 덧칠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됐건 대중의 신뢰를 잃은 것은 그 자체가 무서운 것이다. 마치 평소 한국 교회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탈레반에게 피랍됐다 구사일생으로 풀려난 21명의 젊은이들에 대한 과도한 폭력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지역'과 '이념'에서 '정책'으로

한나라당 경선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점은 이명박이 대구에서 지고도 승리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정치에서 혁명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한나라당, 신한국당, 민자당에 이르기까지 대선후보와 당대표 경선에서 대구, 경북에서 이긴 사람이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얼마나 놀라운 결과인지 알 수 있다.

민주신당이나 민주당 경선에서도 광주에서 이긴 후보가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이것은 거대한 지각의 판과 판이 부딪히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지난 수 십 년 동안 한국 정치를 지배해 온 지역주의는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여론조사 상으로는 심상치 않은 조짐들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이와 맞물려 보다 본질적인 변화는 이념 혹은 정책적 차이를 두고 정치세력의 분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 역시 한국 정치의 커다란 판과 판이 크게 부딪힌 것으로 조만간 새로운 지형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쓰나미는 필연적이다.

냉전이 끝나고 세계화, 반세계화, 제3의길, 생태주의 등 다양한 정치적 견해들이 충돌했던 90년대에는 유동성이 컸었다. 대중들이 쉽게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3~4년간의 세계 선거의 흐름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이 보인다. 부동층의 상대적 감소와 투표율의 상승이 눈에 띄는데 이것은 어느 정도 조기에 결정을 내린 대중들이 여타의 변수에 별로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유동성이 적어진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며 나타난 이같은 현상은 중국과 인도의 급부상에 비례해 각국마다 위기감이 커진 것과 무관치 않다. 많은 나라에서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고, 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FTA를 추진할 수밖에 없으며, 과거와 같은 복지모델은 더 이상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결과 독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특히 금년에 치러진 프랑스 대선은 이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과 세계 전 지역에서 진보진영의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었다.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보수와 중도정당이 경합하는 양상을 띠면서 세계화와 FTA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취하거나 무조건 반대만 외쳐서는 존립하기가 어려워졌다. 분명한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신자유주의 반대'만 갖고는 정치세력으로 생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노당과 민주신당의 미래가 밝아 보이지 않는다. 한 발로 서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반대로 너무 두 다리의 간격이 넓어도 힘을 쓰기 어렵고 오래 서 있을 수 없다.

2008년 총선을 주목한다

만일 대선 후에라도 한나라당이 이명박의 중도정당과 박근혜의 보수정당으로 분화하고 왼쪽으로는 민노당보다는 '대중성'을 강화하고, 민주신당보다는 '진보성'을 강화한 '대중적 진보정당'이 나온다면 총선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아마도 '문국현 현상'은 그런 측면에서 주목해 봐야 한다. 문국현 진영이 일정한 지지율만 확보되면 그의 지지조직인 창조한국을 기반으로 언제든 독자정당화 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은 그의 목표가 '장기적'인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른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진보세력의 등장이 가까이 와 있는지도 모른다. 기업인 출신들이 손잡고 내놓는 '솔루션'에 대한 기대는 이제는 단순히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산업정책, 외교정책, 교육정책, 세금정책, 부동산정책, 안보정책, 복지정책, 통상정책 등 '정책'을 둘러싸고 세력이 재편될 가능성을 보인 것이다.

2007년 대선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런 조짐들이 빠르면 2008년 총선구도를 결정하게 될 수 있다. 과거의 패러다임이 물러가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쓰나미처럼 온다면 누군가는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 올 대선의 결과보다 나는 그게 더 궁금하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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