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문화부에 있는 친구가 어느 날 툭, 책 한권을 던졌다. "재밌던데?" 이 한마디 말 뿐이었다. 문숙 씨가 쓴, <마지막 한해, 이만희 감독과 함께한 시간들>은 처음엔 그렇게 책상 한구석에 묻혀 버렸다. 오로지 이만희라는 이름만이 눈에 들어왔다. 이만희 감독은 조금 아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탓일까. 빨리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정말 벼란간이라는 표현이 걸맞듯이, 문숙이라는 이름이 기억이 났다. 아아 그 사람, 그 배우! 어린 시절 TV에서 만났던 그 여배우. 그래서 후다닥 책을 열었다. 문숙 씨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책의 앞부분 몇장을 넘길 때만 해도 과거 이만희 감독의 영화에 나왔던 한 여배우가 뒤늦게 자신이 존경했던 감독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이만희의 대표작인 <삼포가는 길>에서 주연을 맡았던 만큼 그 영화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룰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그냥 또 다른 종류의 한국영화사 책일 뿐이야. 하지만 책은 엉뚱한 방향으로 나를 몰고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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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해 ⓒYES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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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건, 책의 부제를 볼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었어야 했다. '이만희 감독과 함께 한 시간들'이었으니까. 책은 감독에 대한 단순한 회고담이 아니었다. 1974년에서 1975년까지 단 1년간 이만희 감독과 살을 부비고, 섞으며 살았던 한 젊은 여인의 애틋한 순애보다. 실제로 책의 중반쯤 가면 이만희 감독과 처음 섹스를 나누게 되는 풋풋한 여인의 가슴 떨리는 장면이 나온다. 읽는 사람까지도, 때 아니게, 가슴을 떨리게 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그는 양쪽 침대에 있던 이불과 시트를 모두 들어내어 두 침대사이 바닥에 깔아 잠자리를 새로 만들고 있었다. 새둥지 모양 포근해 보이는 잠자리에는 마지막으로 목욕탕에 있던 흰 목욕 타월들을 한번 더 깔아서 깨끗하고 아늑하게 만들었다…나는 몸에 두르고 있던 타월을 내리고 하얀 시트 아래 조용히 누웠다. 그리고 두 눈을 감았다." 이런 대목을 읽으면서 적잖이 흥분이 됐던 것은 성적 호기심이나 충동, 혹은 내 안에 있는 욕망을 건드렸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 글이 묘사하는 방식때문이었다. 바로 그 디테일때문이었다. 30년을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처음 섹스를 나누었던 그 당시를 어떻게 이렇게 자세하게 기억할 수 있을까. 진짜 사랑했다면 그건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일까.
. 남김없이 모든 것이 기억나요 문숙 씨의 책에는 그런 디테일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이만희 감독이 영화를 촬영하는 내내 저녁마다 그녀를 데리고 충무로 뒷골목 술집을 전전하던 어느 날 처음으로 자신의 집으로 가자는 말을 할 때의 장면도 여느 영화장면 못지가 않다. 그녀는 그때가 '시간이 꽤나 늦었던 때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신성상가 아래쪽 골목이었다는 것'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나중에 그녀를 만나 둘이서 마주앉았을 때 그 대목을 물어보았다. "신성상가니 뭐니 하는 지명 모든 것이 그렇게 명료하게 기억이 납니까?"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하나도 빠짐없이요, 모든 것이 다요." 단 1년간을 만나고 살았을 뿐이지만 문숙 씨는 이만희 감독과의 관계를 30년 넘게 간직해 왔으며 그를 30년 넘게 계속 사랑해왔다.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30년 넘게 사랑할 수 있을까. 찰라주의적 사랑이 넘쳐나는 지금 시대에 그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얘기에 불과한 건지도 모른다. 그런 건 다 거짓말이자 위선적인 것일 뿐이라고 비웃는 소리도 들린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개인적인 일로 어떤 신문사를 갔다 나오는 길에 우연히 커피숍에 앉아있는 문숙 씨를 발견한 것은 아마도 책을 보면서 느꼈던 극단의 호기심이 결국 그녀에게 나를 운명처럼 연결시키는 에너지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출판사 기획자와 한창 얘기에 빠져있는 그녀 곁에서 주저주저하다가 결국 말을 걸었다. 한번 뵙고 싶다고. 인터뷰를 요청드린다고. 머리는 이미 하얀 백발이 돼버린 50대 여성이지만 눈매와 표정만큼은 여전히 과거 20대 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나를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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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숙 ⓒ창작과비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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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정상적인 반응이라면 "아직 나를 기억하세요?"가 돼야 했을 것이다. 그만큼 그녀는 스스로를 이쪽 사회로부터 완전히 차단시킨 채 살아왔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건 한 시대가 그냥 지나간 것이 아니라 완전히 버려졌음을 자각하는 사람의 말투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여배우의 귀환. 그녀는 왜 갑자기 자신이 1년동안 치열하게 사랑했던, 23살 연상의 남자의 기억을 사람들에게 토해내려 했을까. 왜 그 기억의 보따리를 가지고 뒤늦게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려 했을까.
. 좌절한 지식인과의 사랑 문숙 씨가 이만희 감독과 어떻게 만나게 되고 또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됐는지는 이번의 자전 스토리인 <마지막 한해>에 소상히 담겨져 있다. 문숙 씨는 영화 <태양닮은 소녀>에 캐스팅되면서 이만희 감독을 처음 만나게 된다. 그 시대답지 않게 180이 넘는 훤칠한 키에, 유난한 앞짱구인데다가 서글서글하게 보이는 눈매를 가졌지만 처음엔 그게 눈에 들어온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히려 그때나 지금이나 늘 비정상적이고 불균질하게 움직이는 충무로의 영화촬영 스케줄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지치게 되면서 점점 더 이만희 감독에게 의지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서서히 그에게 빠져들어가게 됐다고 한다. 영화 <만추>로, 이미 당대 최고의 감독 반열에 들어섰던 이만희는 한편으로는 여성 편력의 문제가 늘 따라다녔다. <만추>를 찍는 과정에서 연상인 문정숙 씨와 염문을 일으켰으며 아마도 그 과정을 전후해 아내와도 이혼하게 됐다. 문숙 씨가 이만희 감독을 만난 것은 그 모든 개인사의 폭풍이 지나간 연후였다. 문 씨는 정치적인 암흑기였던 1970년대에 탄압받던 한 지식인의 초상을 사랑하게 됐으며 그 짧은 기간동안 자신 안에 담겨있던 연정의 불꽃을 남김없이 태워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그녀는 너무 어렸다. 막 스물한살이 됐던 그녀는 마흔 다섯의 사내가 지니고 있던 시대적 울분을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만희 감독이 죽기 직전 둘이서 머물렀던 자양동의 옛 한옥집에서 그가 자신의 사진을 오려가며 벽면 가득 콜라쥬를 만들던 모습을 보고나서야 그가 갖고 있는 정신적 상처와 광기를 조금씩 알게 됐다는 정도다. 하지만 이만희는 그때 이미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진 상태였다. 1964년 반공법 위반으로 투옥되기도 했던 그는 끊임없는 정치사찰로 영화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으며 매일 이어지는 음주와 과로로 육체적으로도 거의 끝을 향해 가고 있었던 때였다. 그가 서둘러 유작인 <삼포가는 길>을 찍으려 했던 것, 황석영의 원작소설을 국내 최고의 로드무비로 만들려고 했던 것은 자신의 죽음을 일찍부터 예견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작품에 자신이 마지막이자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의 모습을 담으려고 했다. 이만희 감독이 문숙 씨 곁을 떠날 준비를 하는 장면을 읽을 때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게 웬 신파 연속극이냐는 마음 속 비아냥은 어느덧 작은 목소리로 묻히고 이런 사랑이 과거 한때 존재했으며 그 불씨가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 남아서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진다. 슬퍼할 수 있다는 건 우리시대에 어쩌면 매우 낯설고 신기한 일에 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숙 씨의 기록에 따르면 그때 이만희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어디 멀리 가야 할 것 같다." 순진한 스물한살짜리 여자는 자꾸만 이렇게 묻는다. "오랫동안 가요?" "그럼, 나도 같이 가면 안돼요?" "나도 같이 갈거에요! 아프리카보다 더 멀어도 같이 갈 수 있어요." 하지만 이만희 감독은 그의 말대로 그녀를 혼자두고 먼 길을 떠난다. 갑작스럽게 찾아 온 그의 죽음은 그녀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그녀는 이만희 감독이 장지로 떠난 날 한 선배에게 이렇게 묻는다. "오늘 밤 이 감독님 산소로 가서 자나요?" "땅이 아직도 얼어있는데..그 사람은 외로움을 많이 타요..그리고 춥고 어두운 밤을 아주 힘들어 해요."
. 여전히 꿈속에 나타나는 남자 책의 그 대목을 얘기하면서, 이상하게도 목이 콱 막혀왔다. 앞에 앉아있는 문숙 씨의 눈길을 피하며 간신히 물었다. "이제는 이만희 감독을 보내주셨나요?" 바보처럼 앞에서 켁켁거리고 있는 중년의 기자를 바라보면서 그녀는, 푸근해진 표정으로, 이제는 모든 세상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아직도 종종 꿈속에서 나를 찾아오시는데..내 인생에서 남은 것은 이제 사랑밖에 없어요." 끄적끄적 취재수첩에 자꾸 30이란 단어를 썼다. 30년의 사랑, 영원한 사랑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이 책을 출판한 창작과 비평사에서도 처음엔 책의 출간을 주저주저했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 원고를 검토한 사람들 대다수의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이런 투의 순애보적 사랑이 상업적으로 먹히겠느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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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가는 길 ⓒ프레시안무비 |
문숙 씨의 이번 기록은 이만희 감독과의 불꽃같았던 1년간의 사랑을 담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래서 그 이후의 삶, 그간 자식을 둘을 가졌으며 현재 하와이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또 다른 개인 삶은 병풍처럼 에둘러 드러내고 있다. "감독님이 그렇게 되시고 서둘러 한국을 도망가고 싶었어요. 그때는 그랬어요. 감독의 여자였다는 것, 감독의 어린 여자였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굉장히 쉬운 여자처럼 인식되던 때였어요. 감독님이 살아 있을 때는 그분 자체가 보호막이 됐지만 돌아가시고서는 누구나 다 취할 수 있는 여자처럼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도망을 가려 했어요. 여기에 미련이 없었어요. 그저 빨리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죠." 그래서 서둘러 결혼을 했고 애들 둘을 낳았으며 아이들의 아빠와는 그녀가 서른여섯이 되는 해에 이혼을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줄곧 혼자 지내왔다. 미국으로 가서 미술공부를 했고,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개인전도 수차례 가진 화가로 활동했다. 무슨 역마살이 있는지 산타페와 뉴욕, 플로리다, 하와이에 이르기까지 3~4년만에 한번씩 머무는 곳을 옮겨다니며 살았다. 지금 보는 모습 그대로 명상치유의학과 요가 강좌를 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문숙 씨는 이번 원고를 10개월이나 걸려 썼다고 했다. 많은 기억들을 하나하나 차례로 정리하는 시간이 솔찮게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무슨 마음이 들어서 30년동안 묶어놨던 이만희 감독과의 러브 스토리를 공개하려 했을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이제 그를 그로서 기억하지 않는 것같아서에요. 이만희 감독은 정말 이만희 감독으로서 기억돼야 합니다. 지금 이걸 쓰지 않으면 그가 잊혀질까봐 두려웠어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도, 그리고 나의 기억속에서도."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이만희 감독과 문숙 씨의 짧지만 아름다웠던 사랑을 위하여. (* 이 글은 영화주간지 프리미어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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