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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음을 보여준 사건"

[진단] 이명박 승리의 의미…'왜' 이명박인가?

'경제' 대 '애국심'의 대결이었다. 유권자들에 대한 호소력에서 이변이 나올 수 없는 선거였다. 도덕성을 집요하게 파고든 박근혜 후보의 네거티브도 이명박 후보가 대중의 눈에 보여준 '실적'을 무너뜨리기엔 한계가 있었다. 네거티브는 '변수' 이상이 되기 힘든 선거의 속성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하지만 선거 전략에 관한 정치공학적 설명만으로는 이명박 후보가 보수진영의 대표주자로 선출된 의미를 짚는 데 부족함이 많다. 왜 박근혜가 아닌 이명박인가?

"야비한 시장주의의 강화"

지난 5월 10일 이명박 후보의 출마선언식. 이 후보는 "저는 늘 일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일하는 법을 안다. 국가 최고 권력자가 아니라 국가 최고 경영자가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대권 도전이 이만큼 공격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지난 92년 '반값 아파트'의 원조격인 파격적인 공약을 내세워 출마해 반향을 일으켰으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를 재벌 총수의 노욕으로 봤다. 2002년 대선에 출마한 정몽준 의원에겐 '재벌가의 정치적 후계자'보다는 '월드컵을 이끈 한국 축구의 수장' 이미지가 더 컸다. 경제인들의 정치권력 도전기에 '재벌 이미지'는 절대적인 마이너스 요소였던 셈이다.
▲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명박 전 서울시장. ⓒ연합뉴스

이처럼 92년 정주영의 실패와 2007년 이명박의 성공에는 15년의 시간차 이상의 적지 않은 함의가 있다. 정 회장의 92년 대선 출마는 정치적으로는 실패했더라도 더 이상 재벌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 수직적 구조가 지탱될 수 없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나라당 경선을 통과한 것인 만큼 현재로선 이 후보의 궁극적인 성공을 장담하긴 어려워도, 그의 성공가도는 시장권력이 정치권력보다 우위에 선 시대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볼만하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는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대기업 CEO로서 보여준 그의 경영 능력과 실적에 대한 대중들의 호응은 그가 수백억 원 대의 재산을 가진 사람이라거나 그 재산의 형성과정이 투명했느냐는 문제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정주영 회장의 출마 당시 현대건설 회장이던 이명박 후보가 극구 만류했던 과거를 상기해보면 이번 경선에서 보여준 이 후보의 공격적인 'CEO 대통령론'은 격세지감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특히 기업과 개인의 '경쟁력'을 강조한 이 후보의 정책 노선은 곧 신자유주의 시대의 '국가경영'에 대한 보수의 지침서처럼 유포됐다.

한나라당에서 오랫동안 대표적인 전략통 역할을 했던 윤여준 전 의원은 "세계적 추세가 CEO형 리더십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민생이 망가지고 고통스러우니 국민들의 입장에선 당장 자신의 생활을 달라지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의원은 "우리 국민들이 도덕성을 상당히 중시하는 경향이 있음에도 도덕성-유능함의 구도에선 유능한 사람이 뽑힌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 전 의원은 그러나 "CEO는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와는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며 "'CEO 리더십'에 대한 경영학적 이론에는 찬성하기 어렵다"고 우려를 표했다.

경제담론으로 무장한 '이명박 현상'에 대한 진보진영의 우려는 이보다 깊다. 올해 초 '기업사회화'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며 김동춘 교수가 "기업가가 정치가가 될 필요는 없다"고 이명박 전 시장을 겨냥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회의 다른 가치들이 시장주의에 의해 함몰되는 현상에 대한 지적이다.

창원대 안병진 교수도 "이명박 후보의 당선은 한국사회에 시장주의적 헤게모니가 강화되고 있음을 상징하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안 교수는 "미국이 전형적인 기업사회이지만 한국은 미국과 달리 시장주의 강화에 더불어 천민자본주의적 틀이 함께 강화되는 특성이 있다"며 "더 야비한 시장주의가 강화되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보수의 변화? 글쎄…

한편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드러낸 보수진영의 지형변화도 유심히 살펴야 할 대목이다. 국민 선거인단에 50%가 할애됐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한나라당 당원과 대의원, 지지자로 구성된 선거에서 전통적인 보수 이미지의 박근혜 후보가 탈락했다는 점은 사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박 후보는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을 추스르며 '한나라당=박근혜'라는 인식을 심어놓은 인물이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온건한 보수' 이미지의 이명박 후보의 당선은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의 향후 진로를 주조한 계기일 수밖에 없다. 특히 온건보수-전문가 그룹 중심의 비주류가 보수의 신주류로 등장하는 변곡점으로서의 의미를 찾는 분석도 있다.

윤 전 의원은 "이명박 후보는 정치를 오래 한 사람이 아니다.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잘 들여다보면 기존의 정치인과 다르다"며 "일거에 변혁을 이루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한나라당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명박 후보가 박근혜 후보에 비해 유연하고 현실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한반도 정세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적응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후보의 당선이 진정한 '보수의 혁신'으로 나아갈지에 대해선 반신반의하는 시각이 있다. 안병진 교수는 "본선은 중도층의 저변확대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본심과는 무관하게 다른 형태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과연 혁신적 보수가 신주류로 등장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진영이 '전략적 선택'을 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정치컨설턴트인 박성민 대표는 "TK(대구경북)에서 지고 최초로 승리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역별 개표결과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한나라당 경선 막판에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TK에서 박근혜 우위는 확인됐던 사실이다.

특히 경선 막판 이 후보는 경북지역 유세에서 "나는 포항 동지상고 야간부 출신이고 제 어머니는 대구 반야월의 조그마한 과수원집 딸이다. 집사람은 대구 수창초등학교를 나온 대구사람"이라며 "알고 보면 내가 진짜 TK 순종이다"고 지역주의에 호소할 정도로 이 지역에서 고전했다.

이런 맥락에서 범여권과 호남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전략적 선택'이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에서 발생한 점은 집권에 대한 강한 욕망의 반영이라는 시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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