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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판 내가 다시 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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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 영화판 내가 다시 짠다

[뉴스메이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조성우 집행위원장 인터뷰

충북 제천 청풍호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제3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막을 올렸다.개막작 < Once>의 상영으로 시작된 이날 영화제에는 김동호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등 각 영화제 관계자들을 비롯해 유지태 윤계상 등 유명스타 등 국내외 게스트 3,500여명이 참석했다. 영화와 음악을 결합한 독특한 영화제로 출범 초기부터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제천음악영화제는 행사만큼이나 이 영화제를 이끌고 있는 조성우 집행위원장에게 관심과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영화제 뿐 아니라 영화투자배급과 제작 등 다양한 사업에 손을 뻗치고 있어 국내 영화계의 새로운 파워로 급부상중이다. 영화제 시작 전 조성우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이 글은 영화 격주간지 프리미어에 실린 것이다.
요즘 이 사람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은 아주 쉽고, 간단하게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아, 영화음악가 그 사람? 사실 거기까지만 아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사, 알면 알수록 다치기 쉬우니까. 자, 어쨌든 오늘은 영화음악가 조성우에 대한 얘기다.
조성우 집행위원장/음악감독 ⓒ프레시안무비
조성우는 국내 영화음악계의 거성이다. 김성수 감독의 <런어웨이>를 시작으로 그가 지금까지 음악을 맡았던 영화만 40편. <8월의 크리스마스><봄날은 간다><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정사><인어공주> 등등 대표작들이 수두룩하다. 조성우의 필모그래피는 너무도 화려해서 그가 한국 영화음악계를 대표한다는 말에 누구도 토를 달 사람이 없다. 자 그러니 오늘은 영화음악가 조성우에 대한 얘기를 할 생각이 없다. 오늘은 다른 얘기다. 언제부턴가 조성우 안에 조성우가 너무 많아졌다. 그를 점점 알면 알수록 그를 점점 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때문이다. 내가 이 사람을 정말 잘 알고 있었던가,하는 생각에 깜짝 놀라게 된다. 그리고 결국 우리 대부분이 조성우의 아주 작은 면만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조성우가 이런 사람이었어,라고 묻게 된다. 이제 그의 이름 앞에 붙여질 수식어는 영화음악가만이 아니다. 영화제작자 조성우이기도 하고, 제조업체 사장이기도 하며, 방송사 대표인데다, 수천억원의 자산가이기도 하다. 또 하나 더 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이라는 직함도 갖고 있다. 과연 어는 것이 조성우일까. 어는 것이 가장 조성우다운 조성우일까. 가장 손쉽게 얘기를 점핑시킬 수 있는 것은 영화제작자 조성우에 대한 것이다. 조성우는 요즘 같은 불황의 영화계에서 거의 유일한 희망처럼 보일 만큼 '구질 좋은' 작품들을 제작하고 있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영화판의 라이징 스타, 떠오르는 권력이라고 부른다. 그도 그럴만 하다. 최근 그가 제작을 완성한 영화는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오기환 감독의 <두 사람이다>를 비롯해 허진호 감독의 <행복>과 이명세 감독의 등이다. <가족의 탄생>의 김태용 감독과 <인어공주>의 박흥식 감독이 그의 영화사 건물 2층쯤에서 시나리오 작업에 골몰하고 있으며 <꽃피는 봄이 오면>의 류장하 감독도 그의 작업실 소속이다. 조성우는 최근 영화사업의 영역을 제작뿐 아니라 투자와 배급에까지 넓히기도 했다. 지난 해 일본영화 <일본침몰>을 시험삼아 수입배급한 이후 지난 1년동안 <다윈 어워드>와 <블러드 브라더스> 3D 애니메이션 <히어로> 그리고 <프롬 더 시> 등의 외화를 사들였다. 이렇게 시장에 깔아 놓을 제품을 만들고, 사들인 후 급기야 그는 기존 배급사 '청어람'과 손을 잡았다. '청어람'의 영화 <해부학 교실> 등을 합쳐 지금부터 향후 1년간 12편 정도의 영화를 배급하겠다는 것이다. 보통 메이저 배급사들이 1년에 배급하는 작품 편수는 16편 정도. 조성우는 국내 영화계의 메이저 배급업자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쓰다보니 얘기가 다소 혼비백산, 정리가 안되는 느낌이다. 첫줄부터 가만히 복기해 보니 그런 느낌이 드는 건 그의 영화사 이름, 그가 경영하는 회사 그룹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그랬을까. 그의 회사는 한마디로 커다란 산과 같아서 그 윤곽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얘기는 재미없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페이지를 휘리릭 넘기지들 마시길. 가능한 한 재미있게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조성우의 새로운 면을 알게되는 '발견의 재미'를 느끼시기를.
조성우 집행위원장/음악감독 ⓒ프레시안무비
조성우의 회사는 'M&F C'이다. 처음엔 그냥 'M&F'였는데 사업이 다각도로 확장되면서 코퍼레이션의 C자가 따라 붙었다. 'M&F C'는 일종의 지주회사 겸 상장회사다. 그 밑에 두개의 회사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아까 얘기한 영화사업체 'M&F'다. 이쯤 얘기하면 영화사업은 이제 그가 하는 일 가운데 아주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 다른 또 하나의 회사를 보면 재미있다. '합성피혁'이라는 제조업체이기 때문이다. 조성우와 피혁회사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그게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합성피혁'은 경기도 평택 1만여평 부지에 공장이 있으며 직원 수가 150명 정도다. 연 300억 매출을 올리고 있고 최근에는 신규사업 진출을 위해 전자재료사업에 손을 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3~4년 사이에 일부 영화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회사 역시 'M&F'가 우회상장을 위해 인수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고. 우회상장을 위해 인수한 것은 맞긴 맞다. 하지만 상장만 하고 헌신짝처럼 버리는 경우들과는 달리 조성우는 이 회사를 인수한 후 오히려 공격적으로 재투자를 해서 건전한 재무구조의 제조업체로 바꿔 놓았다. 평택에 있는 사원들은 그래서 그를 진짜로 '존경한다.' 평택에 가면 그는 영화음악가니 마에스트로니,아티스트니 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가 영화제작자인 줄 전혀 모르는 직원들도 태반이다. 그는 말투가 사근사근하고 큰 소리 별로 내지 않으면서도 결제는 칼처럼 하는 사장으로 대접받는다. 하지만 'M&F C'에 대한 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두개의 회사 말고 세개의 자회사가 더 있다. 그중 두개는 100%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고 다른 하나는 일본과의 합작회사다.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자회사 가운데 조성우의 이미지와 가장 부합하는 것은 'Music&Film Company'다.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음악회사다. 그의 전공인 영화음악을 제조하고 그가 만든 수많은 음원의 저작권을 관리하며, 공연을 올리고(그는 얼마 전 뮤지컬 <대장금>을 총감독했다),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매니지먼트 사업까지도 한다. 어떻게 보면 그의 사업적 모체는 바로 이 회사였다. 100% 지분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자회사로 조성우의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홈쇼핑 채널이다. '코리아 홈쇼핑'이 조성우가 운영하는 회사다. 지난 해 인수한 이 회사의 연 매출액은 1,000억원에 이른다. 조성우가 수천억원의 자산가라는 소리를 듣는 건 이 방송사업때문이다. 올해 상반기에 상당 수의 지분을 인수한 일본회사 '일본정밀'도 조성우와는 그닥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업체다. 베트남에 공장이 있으며 직원 수만 2,700명이나 된다. 여기까지 훑어 오다 보면 이게 도대체 가능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조성우 같은 뼛속 깊은 아티스트가 어떻게 非아트적 영역의 일을 동시에, 그것도 척척 수행해 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때문이다. 예술과 예술외적인 일이 한 사람의 머릿 속에서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는 술도 많이 마신다. 한마디로 '고래 술'이다. 그러면서 일주일에 한두번은 평택 공장에 가고, 공연기획을 하면서, 제작할 영화들을 선별하고, 늦은 밤에는 골방 작업실에서 음악을 작곡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은? 음악성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아무런 이유가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이건 거의 기인 수준에 가깝다. 이미 너무 오래된 일이라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가 사실은 철학박사 학위 소지자라는 것도 얘기해야 할 대목이다. 요즘 가짜 박사가 많다지만 그는 진짜 철학박사다. 연세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에서 오랫동안 강단에 서기까지 했다. 서양근세철학을 전공하던 학부때부터 강단 활동까지 근 20년 가까이 철학 속에 파묻혀 지내던 그가 영화음악가로 세상에 나온 것은, 역설적이게도 바로 철학적인 이유 때문이다. 철학은 철학이 아닐 때, 곧 세상사 그 자체일 때 철학일 수 있다는 철학자로서의 깨달음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가 영화와 음악이라는 예술적 영역에서 피혁과 정밀기계 분야라는 비예술적 영역을 손쉽게 점프하며 살아가는 것 역시 그런 철학적 모태가 큰 힘이 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철학은 궁극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찾아나서는 사유의 방법론이다. 그의 음악이 때론 소심하고, 때론 편안하며, 때론 심플한 느낌으로 다가서는 건 바로 그렇게 우리들 모두의 소시민적 삶 그 자체를 닮으려는 노력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가 사장으로서 존경받고, 영화 제작자로서 사랑받거나, 따뜻한 부르주아로 인식되는 것 역시 사업이라는 것 역시 사실은 '휴먼 비즈니스'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일 뿐이라는 삶의 태도에서 기인할 것이다. 자, 너무 조성우에 대해 좋은 말만 한 것일까. 이러다가 그가 어느 날 이랜드 사태 같은 볼썽 사나운 노조 탄압 사태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점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꽃피는 봄이 오면 ⓒ프레시안무비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서는 나에게 그는 자신의 베스트 앨범이 나왔다며 두장짜리 앨범을 건넸다. 거기에 그는 어설프게 이렇게 사인을 했다. '동진에게, 2007.7.20, 성우'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그의 음반을 들었다. 비온 뒤 습한 열기가 가득한 거리는 차량들로 가득 메워 있었다. 그가 만든 <꽃피는 봄이 오면>의 음악을 들었다. 영화 장면이 떠올랐다. 한때 잘 나가던 트럼펫 주자였던 주인공(최민식)은 지방 소도시의 음악선생이 된다.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며 살아가는 이 지질이도 못난 인물은 어느 날 혼자 막걸리에 취해 서울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다 큰, 이제는 엄마처럼 늙어가는 이 남자는 전화에 대고 이렇게 울먹인다. "엄마..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 조성우의 음악이 영화속 그 대목에서 많이 울었던 때를 생각나게 했다. 조성우 안에는 정말 많은 조성우가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렇게 사람을 울릴 줄 아는, 나 역시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게 만드는, 아티스트 조성우가 진짜 바로 그다. 그는 변했지만 변하지 않았으며 앞으로 더욱 성장할 것이지만 끝까지 음악과 함께 우리 곁에 머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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