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유 때문인지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도 관심이 뜨겁다. 이미 개봉 전 광주의 시사회를 찾았던 보수여권의 대선예비후보들이 새삼 민중항쟁의 현재적 의미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는가 하면, 민중항쟁의 바리케이드 저편에 서 있었던 수구 야당의 두 대선 예비후보들도 <화려한 휴가>에 주목하고 5.18민중항쟁이 한국 민주주의의 원천이었음을 역설하면서 호남의 민심을 잡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선의 해이기에 가능한 풍경일 수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격세지감이다.
어떤 이는 <화려한 휴가>를 광주를 후경으로 한 멜로드라마로, 또 어떤 이는 역사적 사실과의 차이, 표현상의 미숙함 등 한계가 있지만 5.18민중항쟁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안내서와 같은 영화라는 다소 상반된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주어진 역사적 공간 속에 놓인 인간의 삶, 그들의 관계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간과하지 않는다면 이 영화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감추어진 나름의 작지 않은 의미를 발견하는 것에 인색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식자와 정치인들이 떠난 도청에 남은 힘없고 평범한 이들
그렇다면 그 의미란 무엇일까. 택시기사 민우(김상경 분)가 한가로이 달리는 봄날 메타세쿼이아 가로와 초록의 들녘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지며 연출된 평화스러운 첫 장면 이후 작전명령 '화려한 휴가'에 의해 화면은 흥건한 피로 얼룩지며 온통 붉은 색으로 변한다.
<화려한 휴가>는 5.18민중항쟁 시기 드러난 대중들의 권력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탄식과 분노, 그리고 그에 저항하는 일련의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대중들을 고정되어 있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어떤 계기들을 통해 끊임없이 변하여 재구성되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카메라는 이들이 항쟁의 주체로 형성되는 이런저런 동선을 따라 움직인다. 바로 이것이 이 영화가 지니는 첫 번째 중요한 의미이다.
그렇다면 항쟁 이전 그 대중은 어떤 '군상들'이었는가. 그들은 어떻게 하면 별다방 미스리의 속살을 한 번 더 보듬어 볼까 호시탐탐 노리는 동네 건달이고 가족과의 단란한 행복을 꿈꾸는 평범한 가장이며 동생이 일류대학에 진학하여 보란 듯 법관이 되기를 바라며 뒷바라지 하는 부모와 같은 형이다. 그리고 고맘때 누구나 그렇듯 악기점 진열장에 놓여 있는 세고비아 기타 하나 가지는 것이 꿈인 풋풋한 청춘들이다.
영화는 그런 힘없고 평범한 이들이 왜 그 많은 명망의 식자들, 정치인들이 사라진 공포의 빈 공간에 홀로 남아 예견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지 묻는다. 정작 전면에 나서 그 죽임을 대면해야 할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그들의 목소리를 자기의 것으로 추종해 왔던, 그 힘없는 대중들만 싸늘한 도청 건물에 남아 핏기 없는 총기를 가슴에 품어야 했는가.
그들이 용감무쌍했기 때문인가. 아니다. 공수부대의 도청진압 공격을 앞둔 항쟁의 마지막 날 새벽, 담장 너머 시민군 방송차량의 확성기를 타고 들려오는, '도와주세요, 저희를 잊지 말아주세요'라는 애절한 호소가 비수가 되어 심장을 찌르는데도 이미 육신에 선명히 각인된 죽임의 공포에 단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는, 그리하여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에 회의하고 모멸감을 느끼며 흐느끼는 나약한 모습들이 아마도 그들의 일상적인 모습에 더 가까웠을지 모른다.
바로 그런 그들이 서서히 '역사의 중심'으로 밀려들어가게 된다. 삶과 죽음의 선택을 결단해야 했을 이 과정은 영화 속에서 묘사된 것 이상의,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내적 긴장과 분열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권력이 휘두른 총과 몽둥이에 튄 붉은 피는 한편으로 공포를 심화시키지만, 다른 한편 자기방어라는 삶의 본원적 욕구를 증폭시킨다. 바로 그렇기에 그것은 예상치 못한 죽임에 놀라 가슴 졸이는 대중들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자극한다.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고립의 상황'과 그로부터 야기된 공포는 그들을 '말하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공동의 인식에 이르게 한다.
자신들을 지켜 주리라 믿던 그 국가의 무차별적인 폭력 속에서 그들이 나누는 크고 작은 아우성, 흐느낌과 절규는 분노가 되어 교감을 일으키고 서로에게 신뢰와 위안을 주고 연대케 하는 연결고리로 기능한다. 어릴 적 어두운 골목길을 걸을 때, 불안함을 달래려 친구와 함께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던 그 어떤 노랫말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서 자기결단의 의지를 벼려나간다. 도청에서 총에 맞아 죽어가는, 별다방 미스리를 사랑했던 용대(박원상 분)는 유언처럼, 그러나 스스로를 대견해 하며 말한다. '양아치가 인간이 되었어.'라고. 결코 역사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은 이렇게 변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 가능성과 무관하게 "총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람이다"라고 진정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왜 살아남은 자만이 웃을 수 없는가
언젠가 5.18민중항쟁을 다룬 소설 <봄날>의 작가가 어느 시상식에서 1980년 이후 자신의 삶을 규정한 것이 바로 '그 긴 새벽'이었다고 말한 것이 떠오른다. 그 이후 그의 글쓰기작업은 자기모멸의 그 고통스런 기억을 넘기 위한 싸움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 그 혹은 그들뿐이었겠는가. 그 시공간 밖의 사람들 또한 깊은 상흔에 힘들어하지 않았는가. 남도 땅 그곳에서는 신군부 파시스트와 타협하자는 일련의 흐름을 투쟁을 통해 반전시키며 이름 없는 이들이 그렇게 죽어갔건만, 정작 그들과 정면으로 대결해야만 했던 한국사회의 심장, 사통오달의 서울역과 시청 앞에 모인 그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인텔리들과 명민한 리더들은 '좀 더 사태를 관망하자'며 스스로 해산하고 발길을 돌렸으니, 결국 그것이 남도의 학살(genocide)을 방조한 것 아닌가. 바로 이런 생각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숨 죽여 자책하고 함께 흐느꼈는가.
그런데 그 죽은 자들의 결단과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이 어우러져 되살리고자 한 민중항쟁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와 있는가. 국가기념일 지정과 보상을 대가로 그 정신은 누더기가 되어버렸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5.18국립묘지의 거대한 콘크리트 추모탑은 민주주의의 상징이라기보다 민주주의를 선물하는 국가의 시혜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식기념식에 비표를 지니지 못한 이들은 저만치 그렇게 죽은 자들의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 그 탑의 기세는 작고 소박하지만 삶에 대한 끈끈한 애정과 민주주의에 대한 결속력이 숨 쉬던 구(舊)묘역의 생명력을 고갈시켜버린 지 오래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해 끊임없이 견제하며 지양해 나가야 할 대상인 바로 그 국가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기념하고 민주주의자로서의 자격을 심판할 수 있는가. 어찌 그들이 민주주의자 여부를 심사한다는 명목 아래 인간의 사상, 양심을 재단할 수 있는가. 하지만 이것이 지금 민주화 이후 이 사회의 현실이다.
바로 이 지점에 4반세기가 지나 어느 날 갑작스럽게 찾아온 <화려한 휴가>의 두 번째 의미가 놓여 있다. 그 의미는 민우의 마지막 외침, 즉 항쟁의 주체들이 폭도가 아니었다는 점을 다시 확인하기 위한 사후예식에 있지 않다. 역사는, 그 속에서 흘린 대중의 피눈물은 그 외침을 진부하게 만든 지 이미 오래다. 아마도 카메라 앵글이 이 지점에서 멈추었다면 <화려한 휴가>는 과거 민중항쟁의 역사를 거칠게 복사한 계몽영화라는 평가와 함께 민중항쟁을 담은 영상물의 목록에 또 다른 이름 하나 올리는 것으로 끝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 카메라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민우의 죽음과 엔딩크레딧 사이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배경으로 결혼 사진을 삽입한다. 편곡으로 과거의 비장감이 완화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세월의 흐름과 변화를 상징하지만, 그 멜로디에 맞추어 사진 속에 박혀 있던 신랑 민우 등 죽은 자들이 하나, 둘 튀어나와 자유로이 웃고 춤춘다. 그런데 웬일인지 살아남은 신부 신애(이요원 분)는 여전히 어둡고 슬픈 표정으로, 흔들림 없는 정적인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며 그렇게 서 있다. 그리고 사진은 점차 흑백으로 변하며 엔딩크레딧에 자리를 내준다.
이 지점에 이르면 처음부터 영상의 흐름에 장단 맞추어 무의식적으로 탄식과 분노, 회한의 눈물을 훔치던 우리는 죽은 자들과 살아남은 자의 표정 사이에 놓여 있는 팽팽한 긴장감을 의식하게 된다. 이 순간 우리는 시종일관 이 영화를 지배해 왔던 신군부로 상징되는 반민주적 권력에 대한 혐오와 비판으로부터 벗어나 질문하게 된다. 그들의 표정에 나타난 그 긴장감은 무엇 때문일까.
장렬히 '죽은 자들'은 떳떳하고, 반대로 '살아남은 자들'은 그것 자체가 치욕스럽고 부끄럽기 때문에 그런가. 이제는 다소 희미해진 그 오랜 부채의식이 아직도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건가. 하지만 죽은 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어 웃고 춤춘단 말인가. 그들은 오직 살아남은 자들의 입과 눈, 귀를 빌어 말하며 보고 들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 상반된 표정과 몸태는 결국 지금 살아남은 자들 사이의 긴장과 갈등, 그리고 분기(分岐)의 반영이라고밖에 할 수 없지 않은가.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 <화려한 휴가>는 현실 속으로 진입하게 되고 관객이었던 '우리' 또한 '살아남은 자'로서 좋든 싫든 현실의 주체로 서게 되면서 '영화'와 '현실'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당신들에게 광주는 '과거'인가, '현재'인가
그렇다면 지금 살아남아 분기된 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민중항쟁의 정신을 집권의 도덕적 기반으로 삼았던, 그리고 그 정신의 적자임을 끊임없이 내세우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한 대선 예비후보는 "5.18정신의 핵심인 평화, 인권, 정의는 21세기에도 더욱 발전시켜야 할 정신"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그에 뒤질세라 원칙 있는 개혁주의자임을 자임하는 또 다른 예비후보는 "인간존엄성,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5.18민중항쟁의 핵심정신"이라고 서슴없이 토해낸다.
그런데 그들이 창출했다고 자부하는 바로 그 권력, 민중항쟁을 '민주항쟁'으로 기념하는 그 권력은 지금 어떻게 그 대중을 대하고 있는가. 1980년 영문도 모른 채, 신군부의 살육대상이 되었던 그 평범한 대중은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 그 민주권력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유일한 해법이라며 이 사회를 자본과 시장의 지배하는 사회로, 그리하여 '90대10의 비대칭사회'로 만드는데 온갖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다.
많은 돈도 필요 없고 최소한 먹고 살 수 있게 일자리만 보장해 달라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절절한 외침을 이른바 공권력으로 진압하면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참여민주정부'라는, 그 알량한 최소민주주의를 정당성의 근거로 내세우며 눈 한번 꿈적이지 않고 있다.
한때는 살아남은 자로서 시대의 고통을 함께 나누기도 했던 그들은 자신들의 그런 정치적 행태가 그들 스스로 민중항쟁의 정신이라고 역설한 평화, 정의, 인권, 그리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산산이 부숴버리는 이율배반이라는 지적에 더 이상 귀를 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대중들의 고통스런 삶의 아우성을 이기주의로 폄훼하며 이 사회가 선진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불식시켜야만할 병리현상 쯤으로 취급할 뿐이다.
이처럼 그들에게 광주는 단지 과거일 뿐 더 이상 현재가 아니다. 그들에게 80년 광주의 민주주의는 이미 실현된 과거의 기억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그리고 '참여정부' 운운하며 민주주의를 자신들의 집권과 동일시하면서 그것을 대중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런 그들이 <화려한 휴가>의 시사회장을 찾아 죽은 자들이 웃으며 춤추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민주주의를 이룬 초석이라 칭송하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거기 홀로 살아남은 자, 신애의 얼굴 속 깊숙이 드리운 슬픔, 그 길고 어두운 그림자를 어찌 볼 수 있겠는가.
'비정규직 여성들의 아픔'을 외면한 채, 어찌 웃을 수 있나
12월 대선을 앞둔 지금, 이 시대의 징표를 읽고 있다고 자임하며 대중에게 정치적 지지를 호소하는 '명민한 지도자들'이여, 진정 <화려한 휴가>가 정의, 평화, 인권,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가르친 민주주의의 원천이라고 믿는가.
만일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 1980년 그날을 언급하는 대신 이 고통의 현실을 노래하라.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과거의 영광'을 불러내는 창백한 이론(Theory)가 아니라 지금 이 현실 속에서 재생산되는 배제, 억압, 차별의 비대칭적 사회관계들을 문제시하고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살아 있는 목소리들(voices)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신자유주의 지구화시대에 대중이 직면한 삶의 고통을 문제시하지 않은 채, 그들의 애절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은 채, 1980년 민중항쟁의 '역사적 의미'만을 읊조리는 것은 그 때 죽은 자들을, 따라서 민주주의를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희화하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살아남았지만, 더 이상 '살아 있는 자'가 아님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일 뿐이다.
1980년 5월, 죽은 자를 남기고 4반세기를 살아온 지금 2007년 8월, 무한경쟁을 통한 이윤증대를 지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자본과 이제는 노골적으로 그것을 옹호하는 권력이 지배하는 이 숨 막히는 현실 속에서 신애가 어찌 삶의 고통에 등이 휘어버린 가난한 비정규 여성노동자들, 대중들의 삶을 향한 절규와 아픔을 외면한 채 화사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가.
5월 그 마지막 날 새벽 "50년 후에 다시 만나자"며 사랑하는 사람을 죽임의 어둠 속으로 보내며 울부짖었던 그녀가 지금 무엇이 기뻐 춤출 수 있겠는가. 죽은 자들은 살아남은 자들을 통해서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살아 있는 자들'이 되어 억압, 고통 받는 이들과 어깨를 함께 하고 커다란 목소리로 그 현실을 고발하지 않는 한, 천상(天上)의 '죽은 자들'은 지상(地上)의 현실을 알지 못하기에 그저 웃고 춤출 따름이다.
그렇기에 마지막 순간에도 그녀는 '죽은 자들'의 향연과 흥에 답할 수 없다. 혹시 과거만을 노래하게 될까봐, 그래서 그 과거에 누가될까봐 그녀는 죽은 자들의 웃음을 외면한 채, 슬픔과 고통을 억누르며 정면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화려한 휴가>을 뒤로 한 채 매섭게 내리치는 빗속으로 나서는 당신의 뒷태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인다.
'살아남은 당신'은 '죽은 자'인가요, 아니면 진정 '살아 있는 분'인가요!
"도와주세요. 저희를 잊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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