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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신당, 오충일 단일대표체제로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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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신당, 오충일 단일대표체제로 출범

최고위원에는 이미경ㆍ정균환ㆍ김상희ㆍ양길승 씨

범여권 제3지대 신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이 5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창당대회를 열고 오충일 위원장 단일 대표 체제로 공식 출범했다.

미래신당은 이날 오전까지 오충일 단독 체제냐 오충일-정대철 공동대표 체제냐를 놓고 막판까지 논란을 벌인 끝에 신당의 간판은 새 인물이 맡아야 한다는 시민사회진영의 주장을 받아들여 오충일 단독대표 체제로 첫 발을 떼기로 했다.

신당의 지도부인 최고위원에는 이미경, 조일현 의원, 정균환 전 의원, 김상희 전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양길승 녹색병원 원장이 인선됐다. 양길승 원장은 당초 시민사회진영 몫으로 추천된 김호진 공동위원장이 고사 입장을 밝힘에 따라 행사장에서 추천됐다.

오충일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대표로서 맡은 바 소임에 최선을 다하겠다. 연말 대선에서 우리 후보가 꼭 승리할 수 있도록 온 몸 바쳐 뛰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 시점까지 함께 하지 못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과의 협의를 통해 조속한 시일 내에 대통합을 반드시 완수하겠다"며 "국민에게는 민주평화개혁세력의 통 큰 단결된 모습이야말로 감동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두 당과의 통합 협상에 주력할 방침을 밝혔다.

오 위원장은 "우리는 대통합의 꿈을 이뤘다. 역사의 수레를 거꾸로 가게 할 수는 없었다"며 "우리는 반드시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충일 위원장은

진보적 성향의 목사로 시민사회진영 내에서 재야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1975년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곧바로 민주화운동에 투신,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아 6월 민주화항쟁의 선봉에 섰다.

당시 한차례 투옥되는 고초를 겪었으나 1980년대 후반 전국적 규모의 재야운동세력의 결집체인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의장과 기독교사회운동연합 의장 등 굵직한 직책을 거치며 대표적 재야운동가로 자리매김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진보적 개신교단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장,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6월사랑방 대표, 노동일보 대표이사 사장을 지내며 시민사회 진영의 원로로 활동을 계속해왔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으로부터 전국구 의원을 수차례 제안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를 고사, 정치권과는 일정한 거리를 둬왔다.

하지만 참여정부 출범 이후 2004년 11월부터 국정원 과거사진상규명위원장을 맡았으며 올들어서는 시민사회그룹인 미래창조연대 창준위원장을 거쳐 대통합민주신당 창당 과정에 참여, 정치권에 진출했다.

▲서울(67) ▲성동고.연세대 신학과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이사장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의장 ▲기독교사회운동연합 의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노동일보 대표 ▲국정원 과거사건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위원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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