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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부정의 유혹, 혹은 손으로 햇빛 가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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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부정의 유혹, 혹은 손으로 햇빛 가리기

[2007 대선이야기]올해 대선이 전혀 감동적이지 않은 이유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에 의한 23명의 한국인 피랍 사건은 언론의 주된 관심을 각 당의 대선 관련 보도에서 인질 석방 문제로 바꾸어 놓았다. 이는 분명히 예상치 못한 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대 대선 정국이 한창이던 2002년 7~8월, 이회창, 노무현, 정몽준 3인의 대결구도가 요동치던 선거의 불확실 국면은 지금 다른 형태로 재현되고 있다.

한나라당 : 과거 부정과 배제의 정치

한나라당은 7월 22일 제주지역 합동연설회를 시작으로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마지막 단계인 지역별 합동연설회와 TV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나라당과 이명박·박근혜 후보에 집중된 여론조사에 나타난 국민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경선은 국민에게 진정한 감동을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 수치로는 당선권에 가장 근접한 두 후보를 보유한 제1당의 경선이 국민적 공감을 일으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외적인 이유는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에게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 본인들이 한사코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의 검증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명쾌하게 해명되지 못했다. 그 결과 이명박과 박근혜는 정치인들의 병역과 재산형성 등 과거행위에 대한 투명성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도덕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두 후보 모두 왜 본인들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비전과 주요 이슈를 개발하지 못한 데 있다. 이명박·박근혜가 내세우는 비전은 박정희식 세계관에 갇혀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명박의 운하건설 계획과 박근혜의 한중열차 페리 구상이다. 더구나 박근혜는 공개적으로 박정희의 5·16 쿠데타를 '구국혁명'이라고 단언하여 이념적 한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 결과 두 후보는 긍정적인 선거 전략을 보여주지 못했다. 자신에게 제기된 각종 의혹은 무조건 덮기에 바쁜 반면, 상대방의 약점과 의혹을 캐내어 확대 재생산하는 부정적 선거전술에 집착하고 있다. 두 후보의 부정적 선거운동은 권력에 대한 편집증적 집착으로 인해 더욱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양 진영은 더 이상 같은 당 소속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상대방에 대한 적대적 공격과 방어를 반복하고 있으며, 이것이 국민을 한나라당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다.

이런 한나라당에서 대통령 후보가 최종 선정되면 당이 잠재적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누가 대선후보가 되어도 당의 단합이라는 지난한 과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 12월 대선에 이기기 위해서는 패자 진영 모두를 포용하는, 진정한 '통 큰' 당내 탕평책이 필수요건이지만 양분된 당을 대선후보 중심으로 통합시키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비록 선거법상 패자가 대선후보로는 출마할 수 없지만 자기세력과 탈당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더구나 한나라당은 대선 승리를 낙관케 하는 여론조사에 도취돼 지지기반의 외연을 넓히는데 무관심하다. 지난 2002년 이회창 대세론에 안주해 당시 당 소속이던 김원웅 의원의 탈당에 모두 무관심했다. 과연 한나라당이 고진화 의원과 같은 개혁세력의 탈당 가능성을 없애고 대선에 매진할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다. 약 30%에 불과한 확실한 지지층에게만 기댄 '배제의 정치'로 한나라당이 집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범여권 : DJ식 통합의 함정

연초부터 진행된 집권세력의 '열린우리당 재단장'에 의한 대선 채비도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반(反)한나라당·비(非)민주노동당의 주요 정치세력은 7월 24일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가칭)' 창당준비위원회의 발족과 더불어 8월 5일 중앙당 창당을 목표로 세 결집을 진행시키고 있다. 8월 12일 경 친노(親盧) 세력을 포함한 열린우리당과의 합당 가능성까지 제시되고 있다.

시민사회세력을 제외하고, 범여권 신당에 참여한 각 세력의 주된 특징은 그들의 정치활동 과정에서 끊임없이 반복됐던 분당 등 분열적 행동에 대한 도덕적 불감증이다. 물론 국민들이 이 점에 대해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러나 통합과정에서 정치적 비전에 대한 고민도 없는 이들을 묶는 유일한 끈은 한나라당의 집권 반대와 '집권 만능주의'뿐이다. 이러한 '반한나라당' 노선의 실질적 설계자는 호남 정치세력의 대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에게 이 노선은 과거 선거승리의 비결이었다. 1997년 대선 때 DJ는 5·16 박정희 쿠데타의 핵심이자 유신체제의 적자인 자민련의 김종필과 지역등권론을 바탕으로 집권했다. 또 집권 후 이인제를 국민회의에 입당시켜 한 때 유력한 민주당 대선 후보로 키우기도 했다. 현재의 상황에서 일정한 민주화 투쟁 경력 속에 햇볕정책으로 개종한 후 유력한 범여권 대선주자로 성장한 손학규가 관심을 모으는 것과 엇비슷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 신당에 대해 국민은 전반적으로 무관심하다. 5월 23일 조인스-리서치앤리서치 여론조사에서 범여권의 정계개편에 대해 국민의 70.7%가 "관심이 없다"고 했다. 7월 14일 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선 54%가 "대통합신당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한 반면, 23%만이 "대통합을 지지하겠다"고 응답했다.

신당 참여세력의 주요한 지역적 지지기반인 광주-전남지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남일보가 7월 18일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이 지역 거주자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아도 상관없다"는 응답이 43.0%,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는 것이 좋다"가 7.2%인 반면,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응답은 27.0%에 불과했다(1997년과 2002년 이회창의 이 지역 평균 득표율은 2.45%와 4.1%였다).

현재 범여권의 대선후보 선출 일정은 국민경선 원칙을 제외하고 막연하다. 일부에서 제기된 한나라당 후보 확정 후 '맞춤형 후보 선출론'은 경선과정의 역동성을 무시한 논의에 불과하다. 20여명에 이르는 후보군은 논외로 해도, 무엇보다 이 신당이 열린우리당과 잔여 통합민주당을 성공적으로 결합시켜 한 개의 정당이 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또한 이들이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미봉된다 해도 이들을 둘러싼 경선은 현재 범여권 후보 1위인 손학규의 한나라당 과거, 구여권 출신 후보들 사이의 민주당 분당과 노대통령 탄핵, 노무현 정부 국정운영의 공과에 대한 책임을 놓고 논쟁을 피해갈 길이 없다. 그 결과 이들 사이에서도 국가 미래에 대한 비전의 논의보다 서로 상대방의 약점 들추기와 불리한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불가피하다. 결국 이들은 지금 통합을 노래하지만, 누가 대선후보가 되느냐에 따라 다시 분열될 가능성이 여전하다.

미래는 있는가?

주요 정치세력들에게 현 국면은 대선 후보 선출 절차에 매진하는 시기다. 민주노동당도 세 명의 후보가 여론과 국민의 무관심 속에서나마 당의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한 경선을 진행하고 있다. 비록 이들이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누가 선정되든 6~9%에 이르는 민노당의 정당지지도로 인해 대선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그러나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립됐다고 강조되는 한국에서, 특히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선정 과정에서 여전히 권력기관의 비민주적 개입이 문제되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더구나 경선 과정에서 언론이 수행한 의제설정의 힘은 손학규가 한나라당 탈당 후 범여권 후보로 부상하는 과정에 커다란 역할을 함으로써 증명됐다.

많은 국민들이 이번 대선에서 "경제"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번 대선 후보 선정과정에서 한나라당, 범여권세력, 민주노동당 모두 먹고 사는 문제와 삶의 질에 관한 국민의 감동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 경선만이 아니라 '민주', '평화', '개혁'과 같은 공허한 언어로 자신을 포장하는 범여권 신당의 후보 경선도 상대방의 과거 들추기와 자신에 대한 강한 과거부정이 횡행할 것 같다.

이들이 감동의 정치에 실패한 것은 우리가 처한 문제를 국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형상화해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데 있다. 과연 국민들은 대선 후보들끼리 상대방의 과거행적을 들춰내 비판하면서도 자신은 무조건 합리화하는 퇴행적 선거 양태 속에서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지도자를 기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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