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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합, 원칙없는 이합집산이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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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합, 원칙없는 이합집산이 되지 않으려면

<고성국의 정치분석ㆍ2>지금 당장 후보토론 시작하라

어제 오늘 보수언론의 지면에서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범여권 통합관련 기사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내 느낌이 맞다면 이유는 두 가지일 터이다. 하나는 그 동안 정치면을 도배하다시피 해 온 한나라당 경선이 더 이상 새로운 뉴스를 생산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범여권의 통합 움직임이 가닥을 잡아감에 따라 이 흐름에 조중동식 색깔칠하기가 시급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두 번째가 주요한 측면이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철새에서 달새로","김한길의 변신술" 같은 제목만으로도 그 의도가 너무나 잘 드러나지 않는가?

공격할 때는 약한 곳을 치라고 했는데, 범여권 통합에 대한 보수 언론의 1차 공격이 '올해에만 당적을 4번이나 바꾼' 김한길의 정치 행보와 '신당의 90%이상이 열린 우리당 출신'이라는데 집중되는 걸로 봐서 보수언론이 이 둘, 즉 '이합집산'과 '도로 열린 우리당'을 범여권 대통합의 약한 고리로 상정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 둘을 조합하면 범여권 대통합 신당은 "원칙도 명분도 없이 이합 집산을 통해 간판만 바꿔단 '도로 우리당'"이 되는 셈이니 꽤 위력적인 공격이라 할 수 있겠다. 원칙과 일관성 없이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하는 행태를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우리 국민의 심리와 노무현, 참여정부, 열린우리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과 짜증을 엮어 놓았으니, 누구든 한 번 이 덫에 빠지면 좀체 빠져나오기 어렵지 않겠는가.

조금이라도 승부 근성이 있는 프로 기사라면 정석조차도 상대의 의도대로 두어주지 않는 법인데, 하물며 건곤일척의 승부를 앞둔 범여권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신당이 보수 언론이 가둬두고 싶어하는 "명분없는 이합집산의 결과 탄생한 '도로 우리당'"의 프레임을 벗어나려면, '대의 명분에 입각해 열린 우리당과는 질적으로 다른 원칙있는 대통합'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도 출발 단계에 있는 지금부터 부단히 그러해야 한다. 정치를 공학으로 보고 눈앞의 정치 역학에 매몰돼 대의 명분과 원칙은 나중에 갖다 붙이면 된다고 편의적으로 생각하는 순간 신당은 제대로 출발도 하기 전에 보수 언론의 프레임에 갇혀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계산하되, 크게 계산하라"

세상사 모든 일이 그렇듯, 대통합 전야의 혼돈 속에도 좋은 흐름과 나쁜 흐름이 섞여있게 마련이다.

대의명분에 따른 대승적 결단이 있는가 하면 이해득실에 따른 소아적 계산이 있고, 모두의 승리를 위한 헌신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승리를 위한 타산도 있다. 그러나 어떤 길을 선택할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이미 2000여 년 전 로마의 카이사르는 "로마에도 좋도, 카이사르에도 좋은 길"을 찾는 정치예술을 선보이지 않았던가. 카이사르의 정치예술을 현재적으로 풀면 "계산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계산하되 통크게 하라. 대의 명분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결합시켜 낼 정도로 세련되게 계산하라. 그러나 아무리 해도 대의 명분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결합시켜 낼 수 없거든 두말 없이 '선공후사'의 대도를 가라. 그리하면 당신도 살고 모두가 다 살 것이다" 정도로 해석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6개월 동안 네 번이나 당적을 옮기고 있는 김한길의 진정한 속마음은 자신만이 알 일이지만 그에게는 지난 6개월간의 행보보다는 앞으로 한달 동안 보여줄 행동과 선택이 더 중요하다. 앞으로 한달 동안의 선택이 짧게는 지난 6개월 길게는 지난 10여 년의 정치인생을 평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합 국면에서 느닷없이 '배제론'을 들고 나왔던 박상천이 역풍을 맞고 스스로 '배제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도 김한길에게는 좋은 반면교사가 될지 모르겠다. 한때나마 공동대표를 했던 처지이니 정치 지도자의 정치적 선택의 어려움과 민심의 무거움을 더욱 절절히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싶은 것이다.

김한길과 박상천이 그려보여주고 있는 상반된 궤적과 그에 대한 범여권과 국민의 엄정한 평가는 범여권의 여러 대선주자들과 주요 정치 세력들에게도 어떤 경우에도 대통합의 흐름을 거스르지 말 것을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다. 바로 그 힘이 86명의 현역의원들을 신당으로 끌어들인 원동력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보면 사실 여기까지는 시간의 문제일 뿐 어떤 경로를 통해서건 범여권의 대다수가 결국은 도달할 지점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까지는'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고래의 진리를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원칙없는 이합집산의 프레임에 갇힐 것인가

문제는 지금부터다. 보수 언론이 만들어 내고 있는 '원칙없는 이합집산'의 프레임에 갇혀버릴 것인가, 아니면 국민들로부터 대의 명분과 원칙에 입각한 대통합으로 인정받아, 바로 그 힘으로 대선을 주동적으로 치러낼 것인가. 범여권의 모든 것이 여기에 달려있다.

상황이 이러하므로 범여권의 대통합 신당추진 세력들은 관성적으로 앞으로 나가기 전에 한 번 더 자신들이 딛고 선 현실을 주의깊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신들이 주장해 마지 않는 대통합신당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평화와 개혁과 희망과 미래창조를 원하는 국민들과 지지자들이 과연 자신들의 선택에 진정성과 신뢰를 부여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이번만큼은 대통합 신당창당 작업을 이른바 '판메이커'들에게 맡겨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통합신당의 성패를 가름할 국민들이 '판메이커'가 아니라 대선 후보들로부터 직접 그들의 선택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범여권 후보들간의 정치토론이 지금 당장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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