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범여권 '제3지대 유령선'의 출항?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범여권 '제3지대 유령선'의 출항?

[분석] '반쪽 대통합'…5개월짜리 신당 될 수도

범여권 '제3지대 신당'이 우여곡절 끝에 24일 창당준비위를 구성하고 출항했다. 가칭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이 창준위의 이름이다. 국민공모를 통해 신당의 정식 명칭을 정할 예정이라고 하나, 단어 나열식으로 조합된 이 명칭은 이질적인 세력들의 기계적 결합이 신당의 태생적 생리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열린우리당의 실패가 낳은 제3지대 신당은 과연 그 실패의 전철을 피해갈 수 있을까?

제3지대의 필요충분조건

지난 2005년 10.26 재보선의 패배는 열린우리당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선거 패배 직후, 당시 열린우리당 소속이던 염동연 의원이 제3지대 통합론을 주창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만이 살길이지만,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으로 굽히고 들어가는 게 불가능하니 제3지대에서 합치자는 것이었다.

당시 '탄핵세력'과 '분열세력'으로 서로를 몰아붙이던 양당을 재결합시키기 위한 일종의 아이디어성 개념이 범여권 전반의 현실적인 요구로 발전한 계기는 이듬해 지방선거에서 목도한 한나라당의 싹쓸이 현상이었다. 시민사회진영에서 정치참여 논의의 맹아가 싹튼 것도 이맘때다.

범여권은 반(反)한나라당 전선 구축이라는 지상명제와 더불어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전국적 반노(反盧)현상을 피할 공간이 절실해졌다. '비노비한', 혹은 '반노반한'이란 용어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7.26 재보선에서 이를 슬로건으로 내세워 당선된 조순형 의원이나 고건 전 총리, 서울대 정운찬 전 총장 등이 제3지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바통을 이었다.

요컨대 탄핵세력과 분열세력의 화해와 재결합, 노무현 색깔이 전혀 없으면서도 노 대통령이 인정하는 인물의 혜성 같은 등장이 제3지대 신당의 성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었던 셈이다.

5개월짜리 정당?

그러나 신당 창준위가 발족했음에도 탄핵세력과 분열세력은 화해는커녕 서로의 길을 저주하며 삿대질을 하고 있다. 통합민주당의 김한길 그룹이 조만간 통째로 신당에 결합한다고 해도 호남의 터줏대감인 민주당 본류가 버티는 한 신당은 '도로 열린우리당'이다.

민주당 본류에서 떨어져 나온 이낙연, 김효석 의원 등은 현 정부에서 장관직을 제안 받았을 정도로 열린우리당 출신들과 정서적 친밀감이 높았던 사람들이다. 특히 이낙연 의원은 본인이 절대함구하고 있으나 2004년 탄핵안에 찬성하지 않은 야당 의원 2명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했다.
▲ 2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래창조 대통합신당 창준위 발족식에서 창당준비위원장 및 대선주자들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뉴시스

설령 민주당 본진이 내달 5일 공식 창당에 맞춰 전격 결합하거나 추후 신당과 당대당 협상이나 후보단일화 등을 통해 반한나라당 전선을 완성한다고 해도 '대선연대'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내년 총선의 지분 문제나 공천을 위한 지역구 조정 등 현실적인 난제를 고스란히 남겨둔 채 유기적 결합이 가능할 리 없기 때문이다.

통합민주당이 합당한 지 1개월도 못 가 파열음을 낸 데서 확인할 수 있듯이 결합도가 취약한 이질세력은 대선 후 얼마든지 제 갈 길을 갈 수 있다. 이는 범여권의 제3지대 신당이 불과 5개월 후의 진로를 장담하기 어려운 취약한 구조에 놓여 있음을 뜻한다.

외피만 새 정당?

민주당 본진이 당장의 합류를 거부하자 제3지대 신당파는 시민사회세력이 '플러스 알파'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래창조연대의 우경화는 진보진영은 물론이고 시민사회 진영에서도 곱지 않은 눈총을 받는 게 사실이다. "순수성은 사라지고 시민진영이라는 외피로 정치진입을 시도하는 것일 뿐"(민주노동당 김형탁 대변인)이라는 평가나 "범여권의 기존 정치인들에게 면죄부와 회생의 길을 터준 반역사적 행위"(지금종 문화연대 전 사무총장)라는 비판이 단적이다.

미래창조연대는 민주당 본진이 빠진 대통합의 보완재가 되기에는 정치력과 정치기반이 부실하거니와 제3지대 신당에 도덕적 권위를 부여하기에도 흠집이 너무 많이 났다는 평가다. 신당 협상 과정에서 기존 정치권과 빚은 파열음을 돌아보면, 이들의 향후 진로는 신당의 비주류 의견집단으로 전락하거나 '정치꾼'들의 능수능란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다 튕겨 나오는 수순을 배제할 수 없다.

이들 역시 내년 총선에서 의미 있는 숫자를 원내로 진입시키지 못하는 한 '50대50'이라는 파격적인 창준위 지분으로 시작한 정치참여의 종자돈을 건지기도 힘들어진다. 즉, 대선이 끝나면 시작될 공천 경쟁부터 이들의 진짜 위기가 시작된다.

노선의 이질성도 신당의 잠복한 문제다. 창준위 발족식에서 미래창조연대 정대화 대변인의 경과보고에 따르면 "한미 FTA 국회 비준 동의 처리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 신중히 처리하기로 했다"고 한다. 정당의 노선과 직결된 문제를 얼렁뚱땅 봉합해 둔 채 세 합치기 과정에서 지분 따내기에만 주력했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게 됐다.

물론 신당 참여세력들 간의 일정한 양해 하에 노선 문제는 창당 이후의 논쟁거리로 미뤄진 게 사실이지만, 정책적으로는 민노당에 가까운 천정배 세력부터 한나라당 정책과 별반 차별성이 없는 경제관료 출신들까지 뭉뚱그려진 신당의 성격은 열린우리당의 잡탕성과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을 받는 것도 현실이다.

사실상 손학규당?

열린우리당 탈당파와 민주당 일부, 시민사회세력의 이같은 이질성을 기반으로 출발한 제3지대 신당의 얼굴은 현재로선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다. 손 전 지사의 선진평화연대가 신당의 일 주체로 참여하긴 했으나, 이는 손 전 지사가 범여권 대선주자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율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여기에 손 전 지사가 '노무현 색깔'이 가장 옅다는 점도 상당부분 작용했다. 고건→정운찬→손학규로 이어지는 '비노비한 제3후보'의 조건을 손 전 지사가 갖추었다는 논리가 암암리에 작용했다. 실제로 친노 진영 대선주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정동영 전 의장, 천정배 의원 등은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그림자를 씻어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손학규의 비노비한'은 늘 위태로운 곡예를 펼 수밖에 없다. 우선 손 전 지사는 고 전 총리나 정 전 총장과 달리 무려 14년 간을 적진에서 복무하다 불과 넉달 전에 건너온 사람이다. 범여권 다른주자들의 자질구레한 비판은 둘째 치고 한나라당에서 날아오는 '배신자'라는 화살은 치명적이다. 반한나라당의 선봉에 서기에는 '과거'가 너무 두꺼운 반면 탈색의 시간은 너무 짧아 보인다.

또한 노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손을 잡아야만 명실상부한 범여권의 대통합이 완성된다는 점에서 '비노'는 손 전 지사에겐 위험한 도박이다. 손 전 지사가 범여권에 발을 디딘 후 노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한마디도 입에 담지 않았다는 점은 살얼음판을 걷는 '손학규식 비노'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렇다고 손 전 지사가 범여권 대선주자로 선출된다고 해서 노 대통령이 자신의 영향권에 둔 15%를 그에게 통 크게 선물할지도 현재로선 매우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손 전 지사가 청와대에 입성에 실패한다면 제3지대 신당은 결코 손학규당이 될 수 없다. 다른 세력과 주자들은 대선 패배 시에도 일정한 지분이 남을 수 있지만, 대선용으로 굴러온 돌인 손 전 지사는 후보로서의 지위를 상실하는 순간 설 땅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결코 범여권의 적자가 될 수 없는 손 전 지사의 태생적 한계에 기인한다.

이렇게 볼 때 세력의 유기적 결합도, 인물의 참신성도 갖추지 못한 제3지대 신당은 그들의 주관적 염원과는 달리 향후 극심한 격랑을 피해갈 도리가 없어 보인다. 범여권 신당의 첫 발이 5개월짜리 항해를 위해 급조된 유령선의 출항처럼 보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